〈 12화 〉제 01계-챕터 01: 에볼루션 시스템
본인이 가진 광기마저 순식간에 숨기며 배우가 봐도 경악을 할 정도로 자신이 이미지 한 남자를 완벽하게 연기한 공선자의 대답에 자신을 튜토리얼 NPC라고 소개한 천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인간은 원래 이렇게 확확 분위기가 바뀌는 종족입니까? 잘 알 수 없군요. 하지만 질문은 받았으니 성심성의껏 대답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챌린저 후보자, 공선자. 당신은 죽었습니다. 하지만 살아났죠. 에볼루션 시스템. 이 위대한 시스템을 구축하신 존재에 의해서 당신은 새로운 신체를 가지고 새롭게 태어난 겁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경악스러운 대답이 튀어나와주셨다.
……자신이 죽었다는 거야 받아들이는 게 어렵지 않았지만 새로운 몸으로 다시 태어났다고?
‘이게? 어디가? 파트너, 뭔가 위화감 같은 거 안 느껴져? 이거 완전히 다른 몸이라고 하는데?’
-……전혀. 원래의 우리 몸과 전혀 다를 게 없어.
천사의 믿기 힘든 이야기에 공선자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을 한 상태로 자신의 또 다른 인격과 빠른 속도로 의견을 나누어보았다.
본래 신체의 주도권을 주고 있던 형의 인격도 늘 심상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모든 신체의 지배권을 형에게 양보하는 동생의 인격도 현재 그들의 느끼고 있는 신체에 아무런 위화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 그들이 원래 사용하던 신체와 전혀 다를 것은 못 느끼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상쾌함마저 느낄…….
‘……눈치 챘어? 파트너?’
-으, 으응. 이건……, 잃어버렸던 시간이, 돌아왔어?! 어, 어떻게?!
상쾌함을 느낀다는 부분에서 비로소 형과 동생은 눈치 챌 수 있었다. 자신들이 초능력을 발휘할 때마다 깎여나가던 모든 시간이 돌아왔다.
아니, 그뿐만이 아니었다. 당장 시안을 통해 사고를 가속하여 동생의 인격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특유의 페널티인, 시간이 갉아나가는 감각이 존재하지 않았다.
대신 무엇인가가 소모되는 감각이 존재하기는 하는데……, 이것은 전혀 느껴본 적이 없는, 완전히 생소한 무엇인가가 소모되는 감각이었다.
그 사실에 동생의 인격은 물론 광기에 휩싸였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냉철한 형의 인격마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새로운 신체를 가지고 태어난 당신에게 저희 튜토리얼 NPC는 한 가지 제안을 한 생각입니다. 다름 아닌, 위대한 이가 만들어낸 ‘권능’인 에볼루션 시스템을 받아들여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것인지. 말지를.”
아니, 가뜩이나 지금 자신의 상태를 받아들이기 힘들어서 혼란스러운데 거기서 더 혼란스럽게 만드는 발언을 그만두었으면 좋겠다.
공선자가 자신의 사고를 자신의 능력을 통해서 가속시켰기에 눈앞의 천사가 잠깐의 틈을 두고 말을 한 것처럼 들린 것이지 실제로는 잠깐의 틈도 없이 곧바로 말이 이어진 것이었으니깐 말이다.
‘……파트너, 아무래도 우리가 죽어서 사후세계에 왔다. 라는 선택지는 눈앞 천사님의 발언을 들어보면 접어둬야 하는 사항 같지?’
-……서, 설령 사후세계라고 해도 이 정도 감각 정보를 생각해보면 또 하나의 현실이라고 해도 문제가 없지 않을까?
영화에서 영혼은 물건을 만지지 못하고 통과하거나 몸이 반투명하다던가 하던데, 그런 기미도 없고 말이다.
그렇다면 진짜로 눈앞의 천사가 말한 대로 새로운 신체로 다시 태어난 것이란 말인가? 그 믿을 수 없는 사실에 공선자가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에볼루션 시스템? 그러고 보니 챌린저 후보자라는 이야기도 있었지. 천사씨. 방금 말하길 천사씨는 최대한 진실만을 이야기해준다고 했지?”
“최대한이 아니라 무조건입니다. 저희 NPC는 챌린저 후보자에게 반드시 진실만을 말할 것은 선언하는 바입니다.”
공선자의 날카로운 안목으로 대충 D컵 정도 하는 가슴을 당당하게 내밀며 선언하는 눈앞의 천사, 자칭 튜토리얼 NPC의 발언에 공선자는 자신의 턱을 쓰다듬었다.
이런 영문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아무리 단둘이 있다고 하지만 눈앞의 존재가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것도 바보 같은 일이다.
하지만 이 자칭 NPC말고 현재의 상황을 알 수 있는 정보원도 없는 것 같으니까 일단 이 녀석한테서 얻어낸 정보를 조합해보는 공선자.
-첫 번째, 일단 자신들은 죽은 게 맞았다. 단지, 죽은 인간마저도 소생해낼 수 있는 정체불명의 ‘무엇’인가에 의해서 새로운 몸을 소생했다는 모양.
…………하긴, Z바이러스까지 스스로 투하했는데 죽지 않고 살아있다면 그게 이상한 것이다.
그 로켓 런처의 포망에서 살아남아도 결국 한 마리의 좀비가 될 운명이었다는 거지.
-두 번째, 눈앞의 천사는 자신이 알고 있는 그런 종류의 천사가 아닌, 아마 자신을 소생시킨 ‘무엇’인가가 자신을 소생시킨 뒤, 자신에게 무엇인가를 얻어내기 위해서 보내온 대리인일 것이다.
튜토리얼 NPC라는 등의 게임적인 용어를 사용하는 게 조금 분위기를 깨는 부분이 있었지만 어쩌겠는가, 당장은 살아있다는 사실만(아마)으로도 기뻐하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 번째, ……어처구니없게도 무려 죽은 자를 ‘소생’시킬 수 있는 존재가 이 세계에는 존재하는 모양이다. 거기에 그와 같은 어마어마한 능력을 지닌 이가 공선자, 자신에게 무엇인가 바라는 것이 있고 말이다.
‘나(우리)에게 바라는 게 없으면 일부로 죽어버린 녀석을 소생시킬 이유가 없으니깐 말이야. 안 그래, 파트너?’
-챌린저 후보자로서의 조건은 생존에 대한 집념과 성취욕이라고 했어. 나(우리)에게 바라는 게 있는 건 맞지만, 나(우리)만은 아니지 않을까?
‘과연, 세계를 멸망시킨 공선자를 꼭 집어서 되살린 게 아니라 불특정다수의, 집념과 성취욕을 지닌 이들이 지금 나(우리)와 같은 상황에 처해있는 건데, 내(우리)가 거기에 어쩌다가 끼어버린 것일 수도 있다는 건가?! 캬하하! 파트너는 가끔 이런 부분에서 예리함을 발휘한단 말이야!’
-이, 이런 걸 가지고 뭘…….
이렇게 정신을 되찾은 뒤 수집한 정보를 정리해본 공선자는 눈앞의 천사를 날카로운 시선을 노려보았다.
사실,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이 모든 것이 전부 거짓이자 환상이 가능성도 부정할 수 없었다.
그야 자신은 거하게 세계를 멸망시키고 죽어버린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당신을 선택받아서 살아났습니다!’ 라고 이야기해도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거 아닌가?
호접지몽이라는 말이 있다. 내가 나비가 되는 꿈을 꾸는 건지, 나비가 내가 되는 꿈을 꾸는 건지 확인할 수 없다는, 알아 처먹기 힘든 사자성어가 말이다.
뭐, 대충 자기 자신의 세계는 자기가 관찰자가 될 수밖에 없는데 이 자기 자신이 고정된 자신이 아닌 이상 자신이 보고 있는 세계 역시 고정된 세계가 아니다, 라는 개소리로밖에 안 들리는 개소리라고 보면 된다.
여하튼 여기서 중요한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이 보고 있는 세상은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는 이상 진짜 세상이어도 진짜 세상이 될 수 없다는 이야기.
‘그러니 믿어보자고, 지금 내(우리)가 보고, 느끼고 있는, 우리가 살아있다는, 우리를 살릴 정도의 능력을 지닌 이가 있다는 믿기 힘든 세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한 번 믿어보자고 파트너.’
-난 널, 형을 믿어. 형이 믿으면 나도 믿어. 응, 우리는 살아있는 거야. ……간신히,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거야……!
어쩌면 좋은 쪽으로 해석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본래의 공선자라는 인물은 그 로켓 런처 속에서 재가 되어 사라진 채, 그 영혼만이 꿈을 꾸고 있는 것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이야기하면 사람이 살아간다는 사실 자체가 허상이 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러니 지금은 눈앞에 있는 이 광경을 믿도록 하자.
자신들이 그 지옥에서 빠져나왔다는 사실을 믿고, 당장 눈앞의 문제에 눈을 돌리도록 하자!
“그럼 일단 몇 가지 물어보고 싶은데 말이야. 죽었을 우리들을 어떻게 살려낸 건 지 들을 수 있을까?”
“간단합니다. 위대한 존재가 만드신 챌린저가 될 후보자를 탐색하는 시스템은 그 조건에 맞은 이를 찾아내면 그대로 그자의 심상을 보호하여 이 시작의 방으로 강제이동시킵니다. 그 후, 보호한 심상이 지닌 기억을 토대로 최전성기의 육체를 재현하여 그 육체에 보호해둔 심장을 주입, 안착시켜 부활시키는 겁니다.”
천사가 별로 어려울 것도 없다는 것처럼 설명해주는 이야기에 공선자는 자신이 처음 들어보는 고유명사가 꽤 존재하여 그 설명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심상을 보호해서 이쪽 공간으로 강제로 이동시킨다고? ……들어보면 그 심상이라는 거, 영혼이라고 이해하면 되나?”
“아뇨, 챌린저 후보께서 말한 영혼과 개념이 비슷하기는 하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것이 존재합니다. 우선 영혼은 기본적으로 윤회전생과 같이 개념이 존재합니다. 즉, 신체에서 떨어져 나와도 스스로를 유지할 수 있으며, 또 그를 통해서 훗날 같은 영혼을 지닌 다른 사람으로 태어날 수 있다는 개념을 지니고 있죠.”
하지만 심상은 다르다는 모양이었다. 심상은 영혼과 하는 일은 거의 동등한데, 특수한 방법을 쓰지 않는 이상 신체와 따로 떨어져서 존재할 수가 없다는 모양.
그렇기 때문에 신체가 죽으면 심상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서히 소실되어 가고, 이로써 한 생명체는 완전히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모양이었다.
즉, 다시 말해서 사후 세계라는 건 존재하지도 않고, 죽으면 심상이 소실되는 것으로 전부 끝이라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어느 대단하신 분이 그 심상이라는 건 추출해서 이쪽으로 옮긴 뒤에 새롭게 만든 신체에 안착시켜서 날(우릴) 살려냈다?”
공선자가 믿기지 않는다는 어조로 중얼거리자 자칭 NPC인 천사가 이해가 빠르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하지만 공선자는 이 회화를 통해서 다른 가능성을 떠올릴 수 있었다. 다른 이의 심상을 추출한 뒤 새로운 신체에 안착시킬 수 있는 능력자.
그 말은 즉, 마음대로 다른 사람의 신체로 갈아탈 수 있다는 이야기 아닌가? 그 사실에 오싹함을 느끼면서도 공선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들어보니까 지금 내 신체를 만들 정도의 능력자야. 굳이 다른 사람의 신체를 빼앗을 것도 없이 스스로 원하는 대로 신체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소리지.’
-……저기, 그건 거의 신이나 다름없는 게 아닐까?
‘그럼 그 정도도 되지 않는 존재가 우리의 신체를 재현해서 이렇게 아무런 부작용 없이 살려내는 게 가능할 것 같아? 당연한 이야기지만 지금 우리 앞에 서 있는 대리인을 보낸 자는, 우리의 입장에서 명실상부 신이나 다름없는 녀석이라고.’
그야 이렇게 자신들을 살려내는 것이 가능했다면 반대로 죽이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가속된 시간 속에서 그와 같은 판단을 내린 형의 인격이 침을 긴장감에 침을 꿀꺽 삼키면서도, 사나운 미소를 짓는 것이었다.
‘거참, 세계를 멸망시킨다는 것도 이제 와서 생각하면 엄청 거창한 일이었는데, 이제는 이런 판타지나 다름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다니 말이야. 크흐흐, 아주 흥미로워!’
자신이 처한 상황에 실소가 터지려는 것을 참아내는 형의 인격. 그런 형의 인격을 심상의 깊숙한 곳에서 지켜보며 동생의 인격은 두려움에 떨 뿐이었다.
간신히 그 지옥에서 벗어났는데 이번에는 이런 영문도 알 수 없는 상황에 처해진 것이다. 이럴 것이라면 차라리 그대로 안식을 얻는 게 낫지 않았나, 공포에 떠는 그.
그런 동생의 인격의 감정을 전달받은 형의 인격의 분위기가 착 가라앉았다. ……자신이 생각이 얕았다.
이미 현실에서 고통받을 대로 고통받은 동생의 인격이 아닌가? 동생의 인격에게 있어서 소생이란 간신히 되찾은 안식을 방해하는 방해물에 불과했던 것이다.
‘……자신의 죽음에 세계를 끌고 가려고 했던 벌인지도 모르겠군. 정작 세계는 멸망했을 텐데 우리는 이런 영문을 알 수 없는 장소에 살아있으니깐 말이야.’
지구는 멸망했다. 그것은 확신이었다. 그야 Z바이러스를 조사하며 수십, 수백 번 시뮬레이션을 돌려봤기에 장담할 수 있는 결과인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확실하게 지구는 멸망했는데, 그 원인이 되는 자신들은 살아남아 있다는 이 아이러니함에 진짜로 쓴웃음밖에 나오지 않는 상황이었다.
‘파트너, 파트너는 일단 푹 쉬고 있어 봐. 이 상황은 내가 어떻게 해볼 테니깐 말이다.’
설령 광기에 휩싸여도 자신의 ‘동생’만큼은 지키는 것이 바로 공선자의 ‘형’의 인격이었다. 그렇기에 공포에 떨고 있는 동생의 인격을 조용히 다독인 형의 인격이 자신의 사고 가속을 해제한 뒤 천사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심상을 추출해서 살려냈다, 인가. 그건 즉, 다시 말해서 멀쩡한 사람도 납치를 한다, 그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