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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화 〉제 01계-챕터 01: 에볼루션 시스템 (13/194)



〈 13화 〉제 01계-챕터 01: 에볼루션 시스템

“아닙니다. 말했다시피 챌린저가 되기 위한 조건은 삶에 대한 집착과 성취욕. 후자는 몰라도 전자는 웬만한 집착으로는 안 됩니다. 정말로 강렬한, 그래요, 죽기 직전에나 나올 법한 그 정도로 강렬한 집착이어야 하죠.”

즉, 심상이 추출되어 이 장소에서 되살아나는 이들은 전부 공선자와 마찬가지로 죽어버렸거나, 죽기 직전의 상황에 처했던 인물들이라는 이야기였다.

……뭐, 이 주변에는 공선자, 자신을 제외하면 그 누구도 보이지 않으니 자기 외에 누가 끌려온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당장 공선자 자신은 죽기 직전에 구출 받았다는 형식이라는 이야기.

“……흠, 그럼 살려줘서 고맙다는 이야기라도 해야 하는 건가?”

“아뇨, 그럴 필요 없습니다. 저희는 어디까지나 그 삶에 대한 집착과 성취욕에 의거해서 당신이라는 존재를 선별했을 뿐입니다. 저희 위대한 존재께서 만들어내신, 에볼루션 시스템을 지닐 ‘챌린저’로서 합당한 자로서 말이죠.”

일단 들어본 이야기로는 세계를 멸망시키고 죽을 수밖에 없었던 자신들을 살려낸 것이 저 천사께서 이야기하는 위대한 존재라는 것 같은데……, 역시나 자신들을 살려낸 목적이 존재하는 모양이었다.

하긴, 아무런 목적도 없이 죽어버린 사람을 소생시킨다는 이적을 마음대로 난발하지는 않겠지.

그리고 그 목적이란, 소생시킨 이들에게 에볼루션 시스템이라는 이름 무엇인가를 주입하는 것 같았다.

‘……일종의 인체실험이라는 건가?’

인체실험이라면 이미 한국 정부의 아래에 있을 때 질리도록 당해본 적이 있는 공선자가 처음부터 안 좋은 이미지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 에볼루션 시스템이라는 거, 받지 않는다는 선택지도 존재 하냐?”

그렇기에 혹시나 하는 생각에 공선자가 천사분에게 물어보았다. 그에 공선자는 당연히 안 된다고 할 줄 알았다. 허나…….

“네, 가능합니다. 대신 그 경우에 한정해서는 이 자리에서 죽어주셔야 하겠습니다.”

……어째 안 된다는 대답보다 더한 대답일 돌아오셨다. 뭐?! 그 에볼루션이라는 시스템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이 자리에서 죽으라고?!

‘……하핫! 하긴, 그도 그렇군. 목적이 있어서 살려낸 건데 그 목적을 수행하지 못하는 실험체라면 폐기하는 게 당연하다는 이야기인가!’

그래, 이해하지 못할 이야기도 아니었다. 아니, 당연한 이야기였다. 죽었던 사람을 살려준 것이다. 당연히 저 정도 페널티가 없다면 이야기가 되지 않겠지!

“좋아, 그럼 에볼루션 시스템이라는 걸 받아들인다고 한다면, 뭔가 부작용이라는 건 있냐?”

공선자는 이미 계산이 끝났다. 자신과 저 천사처럼 생긴 녀석을 제외하면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 공간.

이 장소에서 저 천사를 무시한다는 선택지를 선택해도 자신이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이야기다.

완전히 초현실적인 사건에 휘말렸다. 차라리 어딘가의 공간에 감금된 거면 몰라도 완전히 별세계에 격리된 상태여서라 그라고 해도 답이 없었다.

그러니 여기서는 일단 순응한다는 태도를 보여서 틈을 찾는 것이 정답이었다. 그렇기에 눈앞의 천사한테 어울려주었다.

“큰 부작용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단지, 기억이 날아갈 뿐이 이야기니까요.”

……정정한다, 이 년은 천사가 아니라 천사의 탈을 쓴 악마 새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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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기억이란 사람이 살아가는 것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기억은 곧 개인의 역사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었으니까.

사람들은 스스로의 기억을, 역사를 가지고 있기에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었다. 기억이라는 자신이 걸어온 길에 대한 기록.

그 기록을 통해서 인간은 자신이라는 존재가 결코 허상이 아니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거기에 그치지 않고 경험을 통해서 학습할 수 있게 해주며 아직 자아가 완전히 자리 잡지 않아 해당 인물의 인격이 완전히 형성되어 있지 않을 시기에는 그 존재의 인격마저 결정해주는 요소가 바로 기억이었다.

지금의 공선자도 다르지 않았다. 그는 과거 자신이 누구였는지에 대한 기억을 잃었다. 인체실험의 부작용이었다.

하지만 그 뒤 공선자가 겪어왔던 경험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공선자를, 형과 동생이라는 이름의 두 가지 인격을 지닌 한 소년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었던 생체실험이, 죽이고 싶지 않아도 죽일 수밖에 없었던 살육의 경험이, 지옥 밑바닥조차 뚫고 떨어져 심연까지 떨어져 겪었던 절망이……, 마지막으로 그 절망에서 어떻게든 기어 올라가려고 했던 발버둥이 지금의 공선자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모든 경험은 그에게 있어서 ‘기억’이라는 형태로서 보존되고 있었다. 차라리 없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처참한 기억이라고 해도 공선자에게 있어서 그 기억은 자신이 살아왔다는 것을 ‘자기 자신’에게 증명해주는 자아의 일부였다.

그래, 자아의 일부인 것이다. 기억이 자아의 전부라고는 할 수 없지만 기억은 분명하게 생명체의 자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터.

무엇보다 공선자의 기억은 하나같이 끔찍하기 그지없는 기억들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선자라는 존재가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명’이기도 하였다.

또한 모든 기억이 최악의 기억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처참한 기억들 속에서도 분명히 극소량이지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억이라는 게 존재했다.

잠입 임무 중에 잠깐 동안 겪을 수 있었던 평범한 일상. 늘 보급받는 비상식량들과 비교도 할 수 없는 맛을 지니고 있었던 각종 음식들.

맛의 ㅁ자도 찾을 수 없었던 돌덩어리들과는 비교를 불허하는 미각의 폭풍을 공선자의 형의 인격과 동생의 인격을 결코 있을 수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그게 어떻게 소중한 기억일 수 있냐고 물을 수도 있을 정도로 사소한 기억들.

길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쓰다듬을 수 있었던 강아지들의 감촉, 임무 차 파견된 장소에서 볼 수 있었던 바다의 웅장한 광경.

비행기를 탔을 때 목격할 수 있었던 푸르게 드넓은 하늘의 풍경. 그것은 그저 정부의 꼭두각시로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공선자에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풍경들이었다.

다른 이들에게 사소할지 모르지만 공선자에게는 너무나도 커다란 경험이었다. 빛조차 들어오지 않는 시설에서 실험체로서 다루어지던 공선자가 처음으로 바깥으로 나와 경험했던 모든 풍경들이 그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값진 경험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공선자가 자신이 살던 세계에서 죽음을 맞이했을 때의 그 순간의 기억.

자신을 그저 쓰고 버리는 도구로만 보고 있었던 세계 그 자체에 통쾌하게 복수를 성공시킬 수 있었던 그 기억.

그 기억은 그 어떤 기억들과 비교해도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값어치가 있는 기억이었다.

공선자라는 존재가, 정부가 키운 토사구팽당할 사냥개가 아닌 공선자라는 ‘개인’이 확실하게 존재하고 있었다는 증명.

사냥개로 부려지다가 언젠가 소리소문없이 사라져 존재조차 있었는지 알 수 없게 잊혔을 이가 아닌, 공선자라는 이름을 지닌 이가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확실한 증거 세계에 들이밀 수 있었던 기억.

그것이 바로 공선자가 죽음을 맞이할 때의 기억이었다.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뿐 아니라 세계에 증명해냈다.

덤으로 그렇게 바랐던 복수마저 달성할 수 있었다. 이 기억은 다른 어떤 기억들과도 결코 맞바꿀 수 없는, 공선자라는 개인이 살아왔던 인생의 ‘의미’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는 기억이었다.

공선자가 살았던 세계는 멸망했을 것이다. 99.999%의 확률로 멸망했을 것이다. 그러니 공선자가 세계를 멸망시켰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이들도 언젠가 사라지겠지.

그렇기에 공선자 본인의 기억은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자신이 한 세계에 스스로의 존재를 증명했다는 증거가 되어주는 더없이 소중한 기억이었으니까.

“……기, 기억이 날아가? 즉, 사라진다고?”

그런데 그런 소중한 기억이 소거된다는 이야기는 눈앞의 천사는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었다.

표정의 변화 하나 없이 마치 당연하기 그지없는, 중력과 같은 현상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었다.

“당황하시는 것도 이해합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에요. 에볼루션 시스템은 권능입니다. 즉, 쉽게 이야기하자면 본래라면 선천적인 잠재력을 통해서 밖에 각성할 수 없는 권능을 인위적으로 심상에 각인시킨다는 이야기죠. 그러니 그 부작용으로 기억이 날라가는 건 어쩔 수 없는 이야기 아닌가요?”

“그렇게 이야기해도 이해가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권능? 그게 뭐냐? 먹는 거냐? 애초에 에볼루션 시스템이 뭔지 그가 어떻게 알겠는가? 그 에볼루션 시스템이라는 게 권능인지 뭔지라는 것도 지금 처음 전해 들었다.

그러니 천사가 마치 하늘에서 비가 떨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라는 것처럼 이야기해도 공선자는 도저히 당연한 일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요점을 알겠어. 너희들도 일부로 우리들의 기억을 지우려는 게 아니다. 에볼루션 시스템이라는 걸 나한테 각인하기 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기억이 소실되게 된다. 그런 이야기? 거기에 일부만 날라가거나 하는 게 아니라 깡그리 사라지는 거고?”

“그런 겁니다. 하지만 걱정 마시길. 소실된 기억을 저희 측에서 제대로 라이브러리 서플라이에 보관하여 차후 챌린저의 성과에 따라서 되돌려줄 생각이니깐 말이죠. 즉, 기억을 완전히 소실하는 게 아니라는 소리입니다.”

기억이 사라지기는 할 거다. 하지만 백업 본을 만들 생각이니 완전히 기억이 사라지는 건 아니라는 소리.

예를 들자면 컴퓨터로 설명할 수 있었다. 내장하드에 문제가 생겼을 때 일단 외장 하드를 통해서 백업 본을 만든 뒤 내장하드를 교체한다.

그리고 그 뒤 교체한 내장하드에 백업 본을 그대로 덮어씌우면 컴퓨터는 전과 다를 게 없이 작용하는 것.

그와 같은 원리로 심상을, 천사의 설명으로는 영혼에 가까운 무엇인가를 건드는 방식으로 권능인지 뭔지 하는 에볼루션 시스템을 각인한다.

이 과정에서 본래라면 각인하는 게 불가능한 에볼루션 시스템을 각인한 부작용으로 기억이 깡그리 날아가게 되는 것.

하지만 에볼루션 시스템을 각인 받는 존재가 가지고 있던 기억은 라이브러리 서플라이인지 하는 곳에 복사하여 봉인한 뒤 나중에 다시 당사자에게 복사 붙여 넣기를 한다는 소리.

그렇게 되면 에볼루션 시스템을 각인 받으면서도 사실상 기억이 날아가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인 상태가 되는 것이었다.

“그게 가능하다면 그냥 에볼루션 시스템을 각인한 뒤에 백업한 기억을 그대로 복제해주면 되잖아? 왜 성과를 보고 돌려준다는 거……. 호오. 과연 그런 건가. 기억을 잃고 자신들이 누구인지조차 모르게 된 이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과거를 알려고 하겠지. 그리고 그렇게 발생한 스스로에 대해 알고 싶다는 욕구를 통해서 너희들이 원하는 ‘성과’라는 걸 우리들한테 달성하게 만들려는 거다?”

“예리하시군요. 그런 이야기에요. 챌린저 여러분이 잊어버리게 될 기억은 여러분들이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 중 하나가 되겠죠.”

공선자가 빠르게 머리를 회전시켜 천사, 정확히는 에볼루션 시스템을 만든 이의 노림수가 무엇인지 파악하자 눈앞의 천사는 그 사실을 긍정했다.

그리고 그 긍정에 공선자의 형의 인격을 겉으로는 흥미롭다는 표정을 유지하면서도 속으로는 이를 가는 것이었다.

‘캬핫! 이거 참 걸작이네! 설마하니 기억을 인질로 잡을 줄이야! 어떤 자식이 떠올린 발상인지는 몰라도 아주 꿩도 먹고 알도 먹으려고 드는데?!’

-기억을 잃으면 자기가 누군지 조차 알 수 없어. 자신이 왜 기억을 잃었는지조차 알지 못해. 자신들이 어째서 그 에볼루션 시스템이라는 이상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지조차 이해할 수 없어. 그런 상황에서 기억을 되찾을 수 있다고 한다면 설령 기억을 잃기 전에는 멋대로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한 사람들조차, 그저 살아날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조차 과거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기억을 되찾기 위해 시스템이 시키는 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어. 그런 거……, 그런 거 너무해…….

기억이 사라지는 것에 의해서 그 인물은 과거의 자신을 모르게 된다. 과거의 자신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조차 이해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과거 자신의 목적조차 알 수 없게 된다. 그것은 치명적이었다. ……치명적으로 자신이 하고자 했던 결정을 뒤트는 쪽으로 작용하는 것이었다.

‘킥킥! 본의 아니라고 이야기하지만 정말로 본의가 아닌지는 알 수 없지. 그야 이 천사님들 입장에서는 우리가 기억을 잃는 편이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기 편할 테니깐 말이야!’

-형……. 이건 아니야. 간신히……, 간신히 그 지옥에서 빠져나왔는데 이건 어떻게 봐도 수상해.

‘열이 치솟아. 당장에라도 저년의 모가지를 잡아서 꺾어버리고 싶어. 하지만 아직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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