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4화 〉제 01계-챕터 01: 에볼루션 시스템 (14/194)



〈 14화 〉제 01계-챕터 01: 에볼루션 시스템

자신들의 행동을 기억을 통해서 제약한다. 그런 의미가 담긴 천사의 이야기에 형의 인격은 당장에라도 뚜껑이 열릴 것 같은 기분을 타고난 자제력으로 억누르는 것이었다.

참는다. ……어떻게 해서든 자유를 찾고 싶었던 그때에도 어떻게든 참아서 복수의 기회를 만들지 않았는데?

그 때와 비교하자면 이 정도 이야기를 참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형의 인격은 자신이 감정적으로 느끼는 것과는 별개로 천사가 제안이, 거래가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성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사람에 따라서는 부조리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이건 결코 부조리한 거래가 아닙니다. 이는 위대한 존재께서 확연을 하신 부분이에요. 자신을 결코 부조리한 제안을 하지 않는다. 기브 앤 테이크. 등가교환. 대가가 있기에 얻는 것도 있는 것. 무려 죽었을 목숨을 구하는 값인 거예요. 기억 정도면 정당한 대가가 아니겠습니까?”

“거기에 덤으로 경에 따라서는 잃어버린 기억도 되찾을 수 있고 말이야? 거참 양심적인 상인 나셨네.”

형의 인격이 비꼬는 어조를 ‘연기’했다. 본심을 비꼬는 게 아니라 당장 저따위 말을 지껄이는 천사의 턱주가리를 날려버리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럴 것이 천사의 이야기도 완전히 틀린 이야기는 아니었으니까. 원래라면 죽었을 목숨을 구해주는 거다.

오히려 아무런 대가가 없었으면 그쪽이 더 의심스러웠으리라. 그러니 이성적으로는 천사와 그 천사의 위에 있는 위대한 존재인지 뭔지 하는 이가 정말로 막돼먹은 존재는 아닌 것 같다고 추측하고 있었다.

그야 정말로 막 되어 먹은 녀석들이었다면 이런 수준의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 이렇게 공선자에게 하나하나 설명해줄 필요 없이 그냥 지금 설명해준 것을 ‘강제로’ 행하면 되었을 테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공선자에게 설명을 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공선자에게 선택지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고 말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당사자인 공선자의 입장에서는 열이 뻗칠 수밖에 없었다. 죽었을 목숨을 소생시켜주는 거다.

그래, 대가가 없으면 그게 이상하지. 하지만 보아 하니까 저 위대한 존재라는 양반은 사람 한 명 정도의 목숨을 되살리는 건 일도 아닌, 말 그대로 신적인 존재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왕 되살려주는 거 그냥 서비스로 좀 이 불쌍한 중생을 구해주면 어디가 덧나나?

여태까지 살아오며 온갖 고생이라는 고생은 다 해왔는데 쫌 쥐구멍에 볕 좀 비춰주면 어디가 덧나는 것이냔 말이다!

그런데 끝까지, 어째 끝까지 세상은 공선자들에게 공짜로 뭐하나 주는 법이 없었다. 뺏어갈 때는 그렇게 얄짤 없이 뺏어갔으면서 뭐 하나 줄 때는 그냥 주질 않는다.

어떻게든 대가를 치르게 하고 있었다. 복수를 위해서 자신의 목숨마저 대가로서 치르게 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살아남기 위해서 자신이 살아왔던 지옥 같은 삶을 증명해주며, 그러면서도 그 삶 속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스스로의 존재 의미를 증명해주는 기억을 포기하라고 하고 있었다.

설령 눈앞의 천사가, 그 위대한 존재이니 하는 녀석이 내미는 제안이 부조리하지 않다고 해도 공선자의 감성은 부조리하다고 외치고 있었다.

“……그래, 살아남기 위한 대가로 기억을 바쳐야 한다면 뭐, 어떤 의미로 싼 대가라고 할 수 있겠지. 단, 살아남은 뒤에 기억을 잃은 사람들이 너희들의 꼭두각시가 되어서 움직일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게 문제지만 말이야.”

“그것도 대가예요. 당신도 이야기하지 않았나요? 죽었을 자가 되살아나기 위해서 치러야 하는 대가치고는 ‘기억은 싼 편’이라고 말이야. 그래요. 기억은 싼 편이에요. 거기에 저희는 기억을 완전히 소거하는 것도 아니죠. 챌린저가 되실 분들을 배려하여 기억을 ‘보관’해둡니다. 굳이 보관해둘 필요가 없는 기억을 말이죠.”

죽었을 목숨을 구해주는 값으로 기억을 치러야 하는 것은 어떻게든 이성으로 납득할 수 있다.

하지만 기억을 잃은 뒤 눈앞의 천사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게 될 것이 훤히 보이는데 그것도 납득할 수 있겠는가?

공선자가 그런 의미를 담아 이야기해오자 천사는 그렇게 이야기할 줄 알았다는 것처럼 반박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당신의, 그리고 다른 챌린저 분들의 입장에서는 기억을 ‘담보’로 잡혀 있다고 느끼실 수 있겠죠. 기억을 통해서 여러분들의 행동을 유도하려고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네, 실제로 저희는 기억을 통해 기억을 잃은 뒤의 여러분들의 행동을 ‘유도’할 계획입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유도’라는 범위에 그칩니다. 결코 강요를 할 생각은 없어요.”

“……………기억을 잃은 녀석들 입장에서 기억을 담보로 유도하는 게 강요와 다를 게 뭐지?”

“다릅니다. 당신의 생각과 다르게 사람들은 심상은, 그 심상에서 나오는 인격을 훨씬 다양해요. 그렇기에 자신의 과거에 연연하지 않는 이들도 생각 이상으로 존재하죠. 그렇기에 ‘강요’가 아닌 유도를 할 경우 당신의 예상하는 것보다 많은 이들이 저희들의 유도대로 움직이지 않을 확률이 높다는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요를 하지 않겠다고? 기억까지 담보로 잡을 주제에?”

“다시금 이야기하지만 기브 앤 테이크. 등가교환, 인과응보. 위대한 존재는 당신이, 인간이 생각하는 신이 아니에요. 그분은 그저 존재는 존재.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세계가 고마워해야 할 이입니다. 그렇기에 그분은 인간들이 원하는, 대가없는 구원을 결코 베풀지 않습니다. 그럴 이유가 없으니까요. 그게 가능하다고 해도 그럴 이유가 없으니 베풀지 않는다. 결코 이상한 일은 아니죠.”

종교를 믿는 이들에게는 어떤 의미로 신성 모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야 종교란 결국 인간이 신에게 믿음으로서 은총을 받고자 하는 생각에서 탄생한 개념이었으니까.

그러나 천사가 말하는 위대한 존재는 말 그대로 전지전능한 힘을 가지고 있음에도 인간이 원하는 은총을 결코 내려주지 않는다.

“한낱 인간의 믿음 따위 그분께 아무런 가치고 없습니다. 그러니 믿는다고 구원을 베풀지 않습니다. 애초에 믿음 따위로 기적이라 불릴 은혜를 베풀다니, 그게 저울추가 맞는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뇨, 결코 맞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공정하지 않은 걸 매우 싫어하시죠. 그것이 타인에게든, 자신에게든 말이죠.”

“그래서 요점이 뭔데?”

천사가 무엇을 이야기하려는 것인지 이해가 갈 것 같으면서도 이해가 가지 않았던 형의 인격이 묻자 천사가 말을 이었다.

“요점, 요점은 간단합니다. 그분께 무엇인가를 얻고 싶으면 그에 상승하는 대가를 내놓으세요. 그러면 그분 역시 그에 상응하는 힘을 베풀어준다는 겁니다.”

“산제물이라도 바치라는 거야?”

“재미있는 농담이군요. 그런 합리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대가가 아닌 합리적인 대가를 내놓으라는 겁니다. 요컨대 이쪽에서 선제시한 대가를 내놓으면 제대로 대가에 맞춰서 주기로 했던 거래 물품을 넘겨주겠다는 이야기죠. 저는 그다지 이렇게 말하고 싶지 않지만 위대한 존재께서는 자신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전지전능하며 공정한 ‘무엇이든지 팔 수 있지만 자기가 팔고 싶은 것만 파는 상인’이라고 말이죠.”

“캬핫! 그거 참 골 때리는 존재네. 즉, 넌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은 거냐? 내 목숨을 구해주는 대가로서 기억, 그리고 기억을 이후 뒤의 내 행동을 ‘유도’할 수 있는 권한을 내놓으라고?”

공선자는 마침내 천사가 저렇게 거창한 설명을 통해서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이 이해한 것이 맞나 묻는 공선자의 질문에 천사가 역시나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그렇습니다. 그런 이야기에요. 그 정도면 당신의 목숨 값으로 적절하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말했다시피 이 거래를 제안하는 위대한 존재는 매우 ‘공정하신 분’입니다. 자신이 줄 수 있는 상품의 가치는 낮게 잡는 일은 있어도 결코 ‘높게 잡는 일은 없다’고 단언할 수 있죠. 그야 그분에게는 자신이 받을 대가도, 자신이 줄 대가도 매우 ‘사소한 것’에 지나지 않으니까요. 굳이 대가를 높게 잡을 이유도 없죠. 기준이 매우 공정하다는 겁니다.”

“그래그래, 그 위대한 어쩌구 하는 사람이 참 공정한 사람이라는 건 알겠어. 다시 말해서 자기는 결코 손해 볼 생각이 없다, 이 말이네. 그래서 합리적이라는 선에서 최대한 뽕을 뽑을 수 있을 만큼 뽑을 거다? 진짜로 양심적인 신님이야. 그러면서도 양심적인 선의 내에서 아주 쪼잔하기 그지없는 신님이고 말이지. 안 그래?”

양심적이다. 그래, 무려 목숨을 살려주는 것이다. 그 목숨을 가지고 무엇이든지 협박을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그런데 굳이 이렇게 제안이라는 형태로서 목숨을 살려줄 테니까 딱 ‘그만큼의 대가’만을 내놓으라고 할 수 있었다.

요컨대 저 대가만 내놓으면 되살려준 뒤 그 어떤 터치도 하지 않겠다. 지금 천사는, 천사의 뒤에 있는 위대한 존재라는 녀석은 천사를 통해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대가로서 기억을, 그리고 기억을 잃은 뒤의 자신들을 유도할 기회를 줘라. 만약 대가에 따라 유도를 했음에도 기억을 잃은 뒤의 자신이 그 유도에 따르지 않는다면 그 뒤로는 그 어떤 간섭도 하지 않으마.

……지금 천사는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결코 ‘부조리하지 않다는 사실’에, 자신을 죽음의 저편에서 끌어올린 존재가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그다지 강압적이지 않다는 사실에 공선자라는 소년의 형의 인격은…….

“진짜로 미칠 것처럼 열이 받네. 캬하하하!!!!!! 진짜로……! 진짜로 돌아버릴 것 같아!”

……화가 치밀었다. 정말로 어쩔 수 없을 정도로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이다. 그야 당연하지 않은가?

공선자의 인생은 하나부터 열까지가 부조리로 점철되어 있었다. 공정이라는 단어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공정한 신님이 나타나 공정한 ‘거래를 제시’한다고?! 장난도 작작해라! 그렇게 공정하다면 왜 이제야 나타난단 말인가?!

“……왜 그렇게 화를 내는 건지 이해가 안 되는군요? 지금의 설명에서 논리적으로 당신을 화를 낼 부분을 없었다고 생각하는데요. 거기에……, 방금 전과는 다르게 상당히 소란스러운 분이군요?”

공선자의 그와 같은 반응에 천사는 이해할 수 없다는 것처럼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천사는 여태까지 논리적으로 자신들이 그에게 내민 제안이 결코 불공정하지 않다고 이야기해왔다.

무려 목숨을 살려주는 거다. 사실 뭘 제안해도 결코 불공정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제안이 얼마나 타당한지를 설명해주었다.

그런데 그런 설명을 들었으면서도 어째서 공선자가 ‘분노’를 표현하고 있는 것인지 천사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이봐, 이봐, 이봐! 천사 아가씨! 생각을 해보라고 생각을! 여태까지 그렇게 구원을 원할 때는 그 잘난 ‘공정한 거래’라는 건 티끌만큼도 보여주지 않았던 신님이 다 끝난 지금에 와서 거래를 들이밀며 ‘난 절대로 사기 칠 생각이 없어. 그래서 도장 찍을래? 말래? 안 찍을 거면 이 거래는 없었던 걸로!’ 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거라고! 어떻게 생각해도 화가 나잖아! 그런 거래를 할 거면 좀 더 빨리 찾아왔어야지! 빨리! 어! 뒷북을 쳐도 너무 늦게 쳤잖아?! 나 놀리는 거야? 놀리는 거지?! 캬아!! 과연 신님이어서 그런지 사람 놀리는 것도 아주 수준이 달라! 그야말로 살의가 치솟을 정도의 놀림인데!”

설령 이성적으로 천사가 내미는 거래가 결코 나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해도 감정을 그것을 따라주지 않았다.

공선자는 여태까지 빼앗겨오는 삶만 살아왔다. 그런데 이제 와서 공정? 공정할 거면 처음부터 공정하란 말이다!

이미 다 끝난 지금에 와서 공정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차라리 그냥 내 앞에 나타나질 말던가!

이러면 세상은 부조리한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끝나려고 했던 공선자를 마치 ‘아니, 넌 그냥 운이 나빴을 뿐이고 이렇게 공정하기도 하다고?’ 하며 비웃는 것 같지 않은가?!

“……당신에게 손을 내민 것 신도, 악마도 아닙니다. 공정하기 그지없는 ‘상인’일 뿐이죠. 당신이 원하는 물품을 보여주며 ‘거래’를 제안하는 상인. 여태까지 거래 제안이 없었다? 그건 단순히 여태까지 당신에게는 거래를 제안할 ‘가치’조차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상인이 거래를 할 무엇도 가지고 있지 않은 자에게 거래를 제시하는 것을 본 적이 있나요?”

천사는 공선자가 왜 분노하고 있는지 논리적으로 이해했다. 여태까지 단 한 번도 공정한 대우를 받아본 적이 없는 이의 분노였다.

“애초에 공정한 건 그분이지, 세계가 아니에요. 그분은 자신의 눈에 들 정도의 가치가 있는 이에게 공정할 뿐이니까요. 생판 타인, 아니, 그보다 더한 존재조차 모르고 있었던 이들에게 그분이 공정할 이유가 어디에 존재하죠? 그런 의미로 세상도 공정하다고 할 수 있겠죠. 공정하게 ‘가치’라는 기준을 달성하면 그분에게 거래 제안을 받을 수도 있었을 테니 말이죠.”

“크하하! 이거 진짜로 걸작이네! 그럼 지금까지의 나의, 내 동생이 겪어왔던 인생도 결국 그 공정하신 기준에 의한 결과라는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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