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화 〉제 01계-챕터 01: 에볼루션 시스템
모순 속에서 살아가는 동물. 애초에 인간들 중에서 모순을 안고 살아가지 않는 사람이 훨씬 드물 터.
그리고 특히 공선자라는 존재는 이중인격이었다. 모순되는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게 당연하다면 당연한 타입.
물론 이 경우에는 동생의 인격이 죽고 싶어 하고, 형의 인격이 살고 싶어 한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두 공선자의 인격 모두 삶과 죽음을 동시에 갈망하고 있었다. 살 수 있다면 살고 싶다. 죽고 싶지 않아.
하지만 동시에 이대로 죽으면 편해지지 않을까 하는 감상을 두 인격 모두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이렇게 에볼루션 시스템을 각인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기 위해서는 삶에 대한 강한 갈망이 필요합니다. 그것도 죽기 직전에서야 보여줄 수 있을 정도의 강한 욕망이. 그런데 그런 욕망을 지니고 있음에도 죽음을 선택하겠다니……, 제정신인가요?”
목숨에 대한 미칠 것 같은 갈망, 삶에 대한 정신이 아득해질 것 같은 욕망. 행복해지고 싶다는 분에 넘치는 욕심.
공선자는 분명히 그것은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죽음에서 소생되어 이 장소에서 저 천사와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선자는 죽고자 했다. 그 이해할 수 없는 모순에 천사는 여태까지 전혀 변화가 없던 표정에 처음으로 변화를 보여주었다.
그것은 당황. 분명히 살고자 하는 욕망이 다른 사람들의 수십 배가 강할 터인 존재가 죽음을 선택하다니 완전히 상정 외가 아닌가?
그렇기에 공선자가 어떤 질문을 하고 어떻게 의표를 찌르고 들어와도 무표정하게 기계적으로 대답을 돌려주던 천사는 처음으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완전히 상정 외였으니까.
“캬하하! 이것 참! 그건 다시 말해서 너희들이 거래를 할 대상으로서 고르는 녀석들은 대부분이 거래를 받아들일 녀석들뿐이라는 거잖아? 거래를 위해 걸어둔 조건 그 자체가 거래를 결코 거절하지 않을 것 같은 녀석들이라니……. 그러고서는 마치 거절할 거면 거절할 수 있다는 것처럼 이야기한다고?”
삶에 집착하고 있다. 그런 사람들을 대상으로 목숨을 살려줄 테니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내놓으라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된다면 삶에 다른 이들보다 수십 배는 강하게 집착하는 이들이 과연 거래를 거절할까?
설령 거절할 수 있는 선택지가 있다고 해도 과연 누가 그 선택지를 선택하겠는가? 그리고 천사와 그 뒤의 위대한 존재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을 터.
즉, 실질적으로 거래를 제안을 받아들일 이들의 욕망을 생각한다면 결국 선택지는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마치 선택지가 있다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어떻게 봐도 강매로밖에 보이지 않는 이 상황에서!
실제로 봐라! 천사는 역시 공선자가 자신의 제안을 거절했다는 사실에 미친놈처럼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실제로 이 제안을 거절하는 것 자체가 상정되어 있지 않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그런데 마치 자신들은 강요를 하지 않는다는 것처럼 이야기하다니!
“……거절하려고 한다면 거절할 수 있습니다. 확실히 저희는 저희의 제안을 받아들일 것 같은 이들에게만 손을 뻗습니다. 하지만 그건 당연한 일 아닌가요? 저희는 상인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그런 상인이 물건을 사지고 않을 것 같은 사람한테 물건을 파는 모습을 보신 적 있으신가요?”
상인은 자신들의 물건을 살 것 같은 사람들한테 찾아가 물건을 파는 법이었다. 이것은 결코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물건을 살 것 같지도 않은 사람을 찾아가서 물건을 팔려고 하는 것이 한참 잘못된 이야기였으니까.
강매라고? 강매는 물건을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의도적으로 만들어 내거나, 혹은 그런 상황이 아님에도 무력과 같은 수단을 동반하여 상품을 억지로 파는 행동이다.
그렇다면 그 위대한 존재는 상대에게 과연 물건을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을 억지로 만들어내는가? 또 힘으로 물건을 파는가?
아니, 둘 다 아니었다. 공선자가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목숨을 상품으로서 제안한 상대는 그 어떤 간섭도 하지 않았다.
그냥 지나가다 보니까 자신의 물건을 어떻게 해서든지 구입할 수밖에 없을 것 같은 사람이 있기에 그 사람한테 가서 내 물건 살래? 하고 물어보는 것과 다를 게 없는 상황이라는 소리.
사막에서 목이 말라 죽어가는 사람을 우연히 찾아내서 물을 파는 게 결코 강매가 될 수는 없지 않은가?
설령 어떤 이가 물을 대량으로 비축한 뒤 사막을 돌아다니며 목말라 죽어가는 사람이 있으면 물을 비싸게 팔아먹어야지! 라는 식으로 생각하고 실제로 사막에서 그렇게 꽤나 큰 이익을 보았다고 해도 결코 그것은 강매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물건을 팔려고 했던 상인이 의도적으로 사막에서 목이 말라 죽어가는 사람을 만들어내지는 않았으니까.
그저 자신의 물품을 비싸게 사줄 것 같은 사람이 있는 장소로 자신이 찾아갔을 뿐이다. 그러니 결코 강매가 아니었다.
또한 힘으로 강제적으로 ‘대가를 내놓고 내 상품을 사라!’ 라고 이야기하고 있지도 않았다. 실제로 천사는 공선자에게 ‘선택지’를 주었으니까.
단지 그 선택지가 너무 극단적이기에 강매처럼 보이는 것뿐 실질적으로는 결코 강매가 아니라는 이야기.
그렇기에 천사는 공선자가 자신들의 제안을 거절했다는 사실에는 당황했어도 그 직후 공선자의 일침에는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천사로서는 자신들이 결코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공선자도 자신의 발언이 그렇게 뛰어난 근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더 이상 따지고 들 생각은 없었다.
애초에 자신은 을이었다. 상황이 그를 을로 만들었다. 그러니 갑한테 아무리 따진다고 해도 그가 을인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
“그래, 그래. 상인으로서는 당연한 행동이다. 나도 딱히 그 사실을 부정할 생각은 없어. 단지, 너희들은 실수를 했을 뿐이야. 상황만 봐서는 결코 거래를 거절할 것 같지 않은 사람이 실제로 네가 의심했던 것처럼 완전히 헤까닥 해버린 사람이었다는 게 문제지. 캬하하하! 이거 참 골 때리는 상황이지?!”
천사는 공선자가 ‘난 죽음을 택하겠다!’ 라고 외쳤을 때 그가 미친 게 아닌가 의심했다. 그야 공선자 수준의 삶에 대한 갈망을 가지고 있으면서 죽겠다고 이야기하다니 도저히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였으니까.
……그리고 실제로 공선자의 하나의 인격은 95% 이상이 광기에 잠식되어 있었다. 요컨대 천사가 의심한 것처럼 미쳐있다는 이야기.
그야 미치지 않았으면 자신의 길동무로 무려 지구 그 자체를 끌고 가겠다는 발상 따위 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리고 공선자의 형의 인격은 그렇게 자신이 미쳐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생각이 없었다. 그렇기에 천사를 비웃으며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상황만 보고 판단하면 거래를 받아들일 것 같은 상대라고 해도 이성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상대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난 미친놈이어서 말이야. 너희들이 추측한 대로 행동하는 게 매우 아니 꼬아서 그 거래, 허나, 거절한다!”
“……상정 외의 상황이군요. 다른 후보들에 비해서 비교적 침착한 모습을 보여주며 최대한 정보를 얻으려는 모습을 보였던 당신이 스스로를 정신이상자라 주장하며 이해 불가능의 선택을 하실 줄은 몰랐어요. 그 선택 후회는 없으신가요?”
“나 걍 죽을래!!!”
자신의 선택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그런 의지가 담긴 공선자의 외침에 천사는 당황으로 일그러졌던 자신의 표정을 수습하며 한숨을 내쉬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천사의 물음에 공선자의 형의 인격은 내심 콧방귀를 뀌는 것이었다. ……확실히 공선자의 형의 인격은 미쳐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성적인 판단이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공선자의 형의 인격은 동생의 인격을 지키기 위해서 탄생했다.
그렇기에 동생을 지키는 것이 지상 제일의 과제. 때문에 그의 광기마저 동생의 인격을 지키는 쪽으로 움직인다.
그런 형의 인격이 자신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를 발로 걷어찬 것은 이성적인 판단을 근거로 두고 있기도 하다는 이야기.
우선 첫 번째로 천사의 이야기를 하나부터 열까지 ‘믿을 근거’가 없다는 점이었다. 죽었을 터인 자신들이 살아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죽었던 장소와는 완전히 별개의 공간에, 그것도 정체불명의 공간에 서 있는 지금의 상황.
공선자는 자신이 인지를 벗어난 상황에 처해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허나, 그 사실만으로 지금 눈앞 천사의 이야기를 전부 믿는다?
일단 상황만 보자면 천사가 거짓말을 칠 가능성 자체는 낮았다. 그것은 굳이 천사가 거짓말을 칠 ‘근거’가 없기 때문.
하지만 어디까지나 가능성 자체가 ‘낮을’ 뿐이지 결코 거짓말을 치지 않는다고 확정된 것은 아니었다.
그저 공선자가 천사가 거짓말을 쳐야 할 ‘이유’를 모르고 있을 뿐인 것일 수도 있었으니까.
굳이 죽었을 터인 공선자를 살려낼 수 있을 정도의 힘을 지닌 이들이 자신에게 거짓말을 치려고 할까?
그럴 바에는 그냥 목숨가지고 협박하는 게 더 빠른데? 라는 것이 천사의 이야기가 거짓말이 아닐 확률이 높다는 근거였다.
……하지만 이 근거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다. 다름 아닌 상대가 ‘목숨을 가지고 협박을 할 수 없는 이유’가 있을 경우.
예를 들자면……, 그들이 공선자를 살려주는 것으로 얻을 수 있는 대가에 공선자 자신의 ‘자의’가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면?
즉, 공선자의 자의가 존재하지 않으면 자신들이 원하는 대가를 얻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공선자의 ‘자의’를 말살하지 않는 선에서 자신을 이용하려는 것일 수도 있지 않나?
물론 그렇게까지 할까? 라고 생각할 수 있었고, 또 그럴 가능성이 낮은 것도 사실. 하지만 0%는 아니다.
그렇기에 천사의 말을 완전히 신용하지 않는다. 일단 ‘정보’로서는 들어두지만 신용 자체는 보류해둔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선자의 형의 인격은 최대한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서 천사에게 이것저것 정보를 깨물었다.
그렇게 얻어낸 정보를 통해서 공선자는 일단 천사의 제안에 대해서 어떻게 대답할 것인지 생각해봤자.
천사가 이야기한 정보가 거짓이라고 했을 때, 천사가 이야기한 정보가 사실이라고 했을 때를 가정하여 생각했다.
그리고 나온 대답이 전부 제안을 거절한다, 라는 것. 그 이유는 간단했다. 정보가 거짓이라면 애초에 상대의 뭘 믿고 제안을 받아들이는가?
제안을 받아들이는 순간 과거보다 끔찍한,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지 몰랐다.
상대의 이야기가 진실이라면? 그래도 거절하겠다. 보통이라면 삶에 대한 집착이 강한 만큼 기억을 잃는 것과 앞으로 멸망이 예정된 세계에서 살아가야 한다고 해도 받아들일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공선자의 경우에는 삶에 대한 갈망만큼 죽음을 통해서 안식을 얻고자 하는 마음 또한 컸다.
그렇기에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모를까 기억을 잃고 멸망이 예정된 세계에서까지 구차하게 목숨을 연명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즉, 천사의 제안이 사실이든, 거짓이든 결국 공선자가 선택할 선택지는 단 1개. 이제는 사는 것 자체가 고통 외에는 그 무엇도 아닌 동생의 인격을 위해서 겸허하게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뿐이었다.
“……이건 정말로 상정 외의 상황이군요. 설마하니 정말로 거절하는 경우가 있을 줄이야.”
“당황하셨어요? 키키키킥! 그야 절대로 거절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거절하면 당황할 만도 하지! 그래서? 이제 어쩔 거야? 강제로라도 제안을 받아들이도록 만들게?”
죽었던 이를 되살려 이용하려고 하였다. 그럴 필요가 있는 목적을 지니고 있을 터. 그러니 공선자의 거절은 천사와 그 위대한 존재에게 있어서 상정 외의 상황임과 동시에 목적 달성의 적신호이기도 하였다.
그러니 그럴 힘이 있다면 강제로라도 공선자를 자신들의 뜻대로 움직이기에 할지도 몰랐다. 선자는 거절을 하면서도 그럴 경우가 발생할 것을 각오하고 있었다. 그러나…….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확실히 상정 외의 상황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저한테나 그렇다는 이야기지 그분마저 상정을 하지 않았다는 건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