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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화 〉제 01계-챕터 01: 에볼루션 시스템 (18/194)



〈 18화 〉제 01계-챕터 01: 에볼루션 시스템

시안은 사용할 수 없다고. 시안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소실되었던 수명이 돌아와 신체의 상태는 그야말로 최상의 상태.

그러나 수명이 고갈되는 근원이었던 시안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저 발동되지 않는다. 공선자는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때문에 애초에 이 움직임에 시안을 사용하려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사용할 수 없는 것은 시안뿐.

공선자가 에이전트가 되기 위에서 그 신체에 때려 박았던 최고 효율만을 추구하는 무술은 분명히 신체에 각인되어 있었다.

오히려 신체의 상태가 최상의 컨디션이었기에 그 어느 때보다 완벽하게 펼쳐낼 자신이 있었다.

때문에 공선자의 때를 노리고 들어간 움직임은 결코 실패하지 않았다. 그 어떤 행동도 하지 않을 것처럼 연기했다.

이미 죽음을 받아들인 것과 같은 초연한 모습을 연기했다. 그리고 단 일순간 그것은 뒤집었다.

……아니, 사실 뒤집을 필요도 없었다. 행동하기 직전, 그리고 행동을 하는 그 순간까지 공선자가 두르고 있는 분위기는 바꿀 필요도 없었으니까.

그냥 전부 포기한 상태로 손을 휘둘렀다. 상대를 죽이겠다는 살의조차 품지 않았다. 그야 솔직히 말해서 죽일 수 있을지 확신조차 없었다.

상대는 죽은 사람마저 되살릴 수 있는 능력의 소지자. 그렇기에 모든 ‘분노를 담아낸 일격’을 통해 그 ‘목’을 노리는 그 순간까지도 솔직하게 말해서 공선자는 상대를 죽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감정을 담아서 휘둘렀을 뿐인 공격이었다. 상대를 죽일 수 있을 것이란 확신 따위 안 담긴, 반드시 죽이겠다는 살의 또한 담기지 않은, 그저 투정에 가까운 공격.

……하지만 놀랍게도 그 공격이, 그 어떤 무기도 가지고 있지 않기에 오로지 손톱을 통해서 상대의 목을 꿰뚫는 그 일격이 정확하게 천사의 목을 파고들었다.

때문에 형의 인격은 자신의 손끝이 상대의 울대뼈를 꿰뚫는 그 순간 놀랐다는 반응을 보이며 눈썹을 꿈틀거릴 수밖에 없었다.

결코 성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았던 공격이 성공했다. 그 사실에 형의 인격은 달성감 보다는 의문을 먼저 떠올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촤악!

“……뭐야? 고작 이런 공격에 당한다고?”

“끄륵! 다……, 다시이이…….”

평범한 사람의 손톱으로 목을 꿰뚫는 것은 본래라면 불가능했다. 손톱은 생각보다 무르다. 그런 무른 손톱으로 사람의 목을 뚫고 들어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공선자에게는 그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게 만들 정도의 기술이 존재했다. 그 기술이 무른 손톱을 기점으로 무리하게 상대의 목을 파고들게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말했다시피 사람의 손톱은 무르다. 때문에 사람의 목을 꿰뚫을 정도의 힘이 가해지면 당연히 손톱이 망가질 수밖에 없었다.

형의 인격은 그것을 각오하고 손톱을 휘둘렀다. 그런 이유로 현재 공선자의 손은 천사의 피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손톱이 뜯겨나가며 흐르기 시작한 피로 뒤덮여 있었다.

손톱을 뽑아내는 것은 흔한 고문 방법 중 하나다. 그러나 흔하다고 해서 결코 고통스럽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흔하다는 것은 그만큼 증면된 고문수단이라는 소리. 즉, 그만큼 직관적으로 상대에게 고통을 줄 수 있는 수단이라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현재 공선자의 신체는 비명을 질러도 이상할 게 없는 수준의 고통에 휩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선자의 인격들은 이런 고통에 익숙하다는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을 보여주고 있었다.

고통에는 익숙했다. 고통에는 익숙해질 수 없다고들 이야기하는데 확실히 고통은 익숙해지기 힘든 감각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한계 이상에 도달하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도저히 버티기 힘든 고통. 정신이 무너져내릴 것 같은 고통.

그 정도 수준의 고통에 긴 시간 노출된다면 결국 사람의 ‘정신’은 고통을 차단한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

그것은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라는 이야기보다는 고통을 느끼되 인식하지 못한다, 라는 이야기에 가까울 것이다.

뭐, 어느 쪽이 되었든지 간에 고통에 익숙해진다는 이야기. 고통을 고통으로서 인식하지 못한다는 이야기.

그렇기에 공선자는 자신의 손톱이 죄다 뜯겨져 나간 것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보다는 자신이 만들어냈으면서도 이해가 안 되는 눈앞의 광경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캬학! 카학!!”

목에 손날 수준의 구멍이 뚫렸다. 그것도 그냥 뚫린 게 아니라 제대로 동맥을 관통해서 뚫렸다.

당연하게 피가 폭포수처럼 흐르고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상황이겠지. 내버려두면 몇십 초 안에 과다출혈로 사망.

여태까지 수많은 사람을 죽여 왔다. 그러니 이제 와서 한 사람, 아니, 한 ‘존재’를 더 죽인다고 아무렇지도 않았다.

오히려 천사도 사람과 다를 게 없는 피를 흘린다는 사실을 보고 신기한 일이라는 것과 같은 쓸데없는 생각이 떠오를 정도.

“흠, 내가 왜 이런 짓을 벌인 건지 묻고 싶은 눈빛이네? 어떻게 아느냐고? 그야 눈빛으로 사람의 의도를 대충이나마 파악하는 훈련을 한 적이 있으니깐 말이야! 물론 이 기술의 90%는 주변 상황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정보의 통합이라고 할 수 있지만 말이야! 나머지 10%는 상대의 동공의 흔들림을 통해서 정보를 통합해 유추한 정보의 확인? 뭐, 그런 과정을 거치는 거지.”

그리고 그렇게 쓸데없이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지워내며 형의 인격은 자신의 눈앞에서 바닥에 쓰러져 이해할 수 없다는 시선으로 피가 흘러넘치는 자신의 목을 붙잡고 자신을 올려다보는 천사에게 그렇게 말을 꺼내는 것이었다.

“그 기술을 통해서 현재 네 생각을 유추해보자면 그냥 죽겠다고 이야기한 내가 도대체 왜 이런 짓을 벌인 것인지 알 수가 없는 것 같은데 딱히 숨길 일도 아니니까 대답해주도록 할게. 아참!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했지만 방금 전에 이야기해준 기술은 정확도가 절반도 채 안 되니까 혹시라도 묻고 싶었던 게 다르더라도 이해해 달라고? 키히힉! 애초에 내가 그냥 이야기하고 싶어서 이야기하는 것도 가깝기도 하고 말이야!”

그렇게 운을 띄운 형의 인격은 방금 전까지 최대한 감추고 있던 자신의 감정을 더 이상 숨기지 않고 전부 드러내며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천사 아가씨? 아가씨가 말했지? 그 위대한 존재인지 하는 자는 신이나 다를 바 없는 이라고. 하지만 신은 아니다. 공정하게 거래를 제시하는 전지전능한 존재, 뭐, 그런 존재라고 말이야. ……하지만 말이야. 내가 보기에는 전지전능하다는 시점에서 신이나 다름없어.”

물론 형의 인격은 신이 꼭 인류에게 헌신해야 한다는 의무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생각은 없었다.

단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서하기가 힘들었다. 이것이 그저 구해준 사람에게 보따리를 내놓으라고 소리치는 것과 진배없는 이야기라는 것을 알고 있어도 도저히 감정을 그냥 흘려보낼 수 없었다.

“그렇게 전지전능한 존재라면 말이야, 신적인 존재라면 말이야. 그냥 쫌 자비를 베푸는 심정으로 나를……, 우리를……, 동생을 구해줄 수도 있었잖아? 어? 세계를 구원해달라는 이야기는 안 해, 애초에 난 세계 따위 관심 없고……, 생각해보니까 그 세계, 내가 멸망시켜 버렸네? 캬하하하하!!”

“……………………….”

과다출혈로 인하여 점점 정신이 혼미해지는 상황에서 천사는 자신을 내려다보며 즐겁다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공선자를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이 존재는 도대체 뭘 이야기하는 거지? 라고.

“아, 이야기가 탈선했네? 그러니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냐면……. 그렇게 대단하신 양반이라면 적어도 ‘우리’를 구해주는 것 정도는 가능했잖아? 그것도 힘들 일 필요도 없이 얍! 하는 식으로 말이야. 구해줄 이유가 없다니, 구해지고 싶으면 대가를 내놓으라니 뭐니 따지지 말고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적어도 우리를 구해줄 수는 있었던 거잖아? 응?!”

죽어가는 천사의 머리카락을 붙잡고 들어 올려 천사의 얼굴을 자신의 얼굴에 바짝 들이밀며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분노를 드러내는 형의 인격.

그 모습에 죽어가면서도 그저 얼굴을 일그러트릴 뿐 베이스는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예의 무표정한 얼굴을 고수하며 천사가 꾸역꾸역 입을 여는 것이었다.

“케엑……! 그, 그거……, 어으지…….”

“억지라고 이야기하고 싶어? 알고 있어. 그래, 억지지. 나도 잘 알고 있다고. 세계는 등가교환. 인과응보. 원인이 없는 결과 따위 없고, 대가가 없는 보상 따위 없다는 걸 말이야. 하지만 말이야……. 나는……, 우리는……, 내 동생은 말이지! 그 어떤 원인도, 대가도 치르지 않았는데 지옥에서 살아왔다고! 지옥조차 미지근할 정도의 어둠 속에서 늘 고통받아왔단 말이야! 그렇다면 그렇게 살아온 삶 그 자체를 대가로서 마지막 정도는 쫌 도와줄 수 있는 거잖아?! 앙?!”

말을 하면서도 공선자 역시 깨닫고 있었다. 이것은 단순히 화풀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확실히 형의 인격과 동생의 인격을 포함한 공선자라는 존재 자체는 이미 깨닫고 있었다.

그야 그 신이나 다름없는 위대한 존재에게 공선자가 살아온 삶은 결코 대가가 될 수 없었다.

그것은 그저 공선자라는 존재가 운이 나쁘게도 너무나도 부조리한 삶을 살아왔을 뿐인 이야기.

그로 인하여 그 위대한 존재가 공선자에게 동정심을 느끼고 도움의 손길을 뻗는 경우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현실은 역시나 그렇게 노록치 않았다.

그 위대한 존재는 공선자의 삶에 결코 동정하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공선자의 삶을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았을지 몰랐다.

그렇기에 공선자에게 도움의 손길이 아닌, 거래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 사실이 공선자는 너무나도 화가 났다.

설령 자신의 그 지옥 같던 삶이 그 위대한 존재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그저 운이 나빴던 부조리의 산물이라고 해도 화가 났다.

신적인 존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에 마치 자신의 삶이 전부 그 존재에 의해서 구렁텅이로 빠진 느낌이었다.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공선자라는 자가 그렇게 느꼈다. 그렇기에 감정이 주체가 되지 않았다.

그런 지옥에 자신을 쑤셔 넣었으면 적어도 마지막 정도는 아무런 대가도 없이 구해줄 수 있는 거 아니냐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아니, 대가는 이미 자신이 살아왔던 것으로 치르지 않았냐고 따지고 싶었다. 그것이 설령 이성적으로는 억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아도.

그저 화풀이라는 사실을 알아도, 물에 빠진 뒤 구해졌음에도 보따리를 내놓으라고 이야기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아도 따지지 않고 참을 수 없었다.

“보따리라고 해도 상대에게 있어서 그 보따리가 별 의미가 없지만 구해진 사람에게 있어서 목숨과 다를 바 없을 수도 있어. 그렇다면 그냥 줄 수 있는 거잖아? 안 그래? ……킥! 킥! 킥! 아니, 안 그렇지. 그래, 알고 있어.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나조차도 이게 억지라는 건 알고 있어.”

설령 보따리가 구해준 사람에게 별 의미가 없는 물건이고 구해진 사람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물건이라고 해도 내놓으라고 말하며 강탈하는 것은 잘못이었다.

구해준 사람이 구해진 사람을 불쌍히 여겨 그냥 넘겨주는 거라면 몰라도. 하지만 구해진 사람의 입장에서는 정말로 구해진 사람에는 별 의미도 없는 보따리를 절대로 넘겨주지 않겠다고 이야기하는 광경을 보면 열이 터질 수도 있었다.

저 보따리만 있다면, 저 보따리만 있다면 살아남을 수 있다. 드디어 긴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다.

그런데 그냥 줄 수도 있으면서 결코 넘겨주려고 하지 않는다. 이성적으로 그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도 감정에서 북받쳐 오르는 분노는 어떻게 할 수 없는 것.

그렇기에 눈앞의 천사를 죽이려고 들었다. 그 위대한 존재인지 하는 녀석한테 보여주는 화풀이로서 눈앞의 천사를, 녀석의 심부름꾼인 천사를 죽이려고 한 것이다. 그리고…….

“성공할 줄은 나도 예상하지 못했다니까? 이것 참 걸작이네? 난 당연히 실패할 줄 알고 죽기 전의 최후의 화풀이로 행한 행동이 이런 결과를 만들어 내다니. 네 뒤에 있는 사람은 이런 상황은 전혀 상정하지 않은 거야? 어떻게 천사라는 녀석이 인간의 손에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수가 있냐? 여보세요? 대답 좀 해주세요.”

……놀랍게도 거의 자포자기에 가까운 감정으로 시도했던 행동은 성공했다. 공선자 스스로조차 이게 어떻게 성공한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아 기쁨 보다는 의아한 감정이 먼저 들 정도로 허무하게.

그렇기에 공선자는 진짜로 성공한 건가? 하는 의문을 숨기지 않고 이미 ‘숨이 끊어진 천사’의 시체에 대고 대답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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