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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화 〉제 01계-챕터 01: 에볼루션 시스템 (20/194)



〈 20화 〉제 01계-챕터 01: 에볼루션 시스템

천사가 자신의 공격을 막은 것을 확인하고 즉시 다시 거리를 벌리는 공선자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자 천사가 말을 이어가는 것이었다.

“애초에 소환된 사람에게 대적하기 위해서 부여된 능력이 아니에요. 인간이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다운 지적능력을 갖추는 게 당연한 것과 다를 게 없는 이야기. 그러나 그럼에도 평범한 인간을 몇 배는 뛰어넘는 신체능력이라는 거죠. 때문에 평범한 사람이라면 결코 절 죽일 수 없을 겁니다. 당신처럼 전투에 특출난 기술이라고 가지고 있지 않은 이상은.”

“그리고 나처럼 전투에 특출한 기술을 가진 이들은 그만큼 죽음에 밀접한 삶을 살아왔을 확률이 높지. 그렇기에보다 명확하게 너를 죽이려고 드는 순간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식한다. 때문에 덤벼들지 않는다?”

“그런 겁니다. 이제는 자신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짓을 저지른 것인지 이해를 하실 수 있으신가요?”

천사의 그와 같은 이야기에 형의 인격은 실소를 지을 뿐이었다. 저렇게 이야기해도 형의 인격은 자신이 한 짓이 그렇게 특별한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니 그보다 지금 중요한 것은 다른 것이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이후 ‘일어날 일’에 대한 이야기.

“……그래서? 댁은, 그리고 댁의 뒤에 있는 위대한 존재라는 존재는 이제부터 그 대단한 짓을 저지른 날 어쩔 생각이지? 내 바람이 있다면 그냥 원래 하려던 대로 편안하게 죽여줬으면 하는 바람인데 말이야.”

결과만 놓고 보면 형의 인격이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방식이지만 결국 그가 시도했던 화풀이는 실패해버리고 만 것이었다.

충분히 자신들을 구해줄 힘이 있으면서도 자신들을 구해주지 않았다는 분노를 표출하기 위해서 천사를 죽였다.

본래라면 천사를 죽이는 것조차 실패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천사를 죽이는 것은 성공했다.

단지, 그 죽일 수 있었던 천사에게 있어서 죽임이라는 것 자체가 별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는 것이 예상외였다면 예상외의 이야기.

결국에는 어느 쪽이던 형의 인격이 원하던 화풀이는 달성하지 못했다. 오히려 천사에게 대단하다는 극찬이나 듣고 있었다.

형의 인격이 원했던 것은 그런 극찬이 아니었다. 자신들을 구해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후회시키는 것.

자신들을 구해주지 않았기에 공선자라는 존재가 앙심을 품고 천사를 죽였다. 그로 인하여 뭐라도 좋으니 그 위대한 존재라는 녀석의 계획에 차질이 생겨 자신에게 화를 내는 것이었다.

분노를 표출한다는 것은 그만큼 형의 인격이 한 행동이 위대한 존재의 계획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이야기.

큰 영향을 주면 줄수록 공선자의 화풀이는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니 이런 식으로 일이 꼬이기 전에 자신들을 도와줬으면 좀 좋아? 라는 식으로 상대방을 화가 나게 만들 수 있었으니까.

상대가 화를 내게 하면 화를 내게 할수록 상대가 화가 나게 만들었다는 사실에 역으로 공선자의 화가 풀린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실패했다. 실패할 줄은 예상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저지른 일이다.

그러나 형의 인격이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실패했다. 오히려 상대에게 극찬을 듣기까지 했다.

그 사실에 형의 인격은 더욱 분노가 머리끝까지 차오르는 기분이었다. 자신들이 저지른 일은 결국 뭐가 되었던지 상대의 손바닥 안에서 놀아나는 것이나 다름없는 감각 때문에.

그렇기에 형의 인격도 결국에는 포기해버렸다. 그래, 결국 자신들이 자유로워질 방법은 죽음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납득해버렸다.

생각해보면 이제 와서? 라는 느낌이었다. 애초에 공성자의 두 인격은 이미 자신들의 죽음을 받아들인 뒤 아닌가?

상대의 거래 제안을 거절했을 때부터, 아니, 지구라는 행성 그 자체를 자신들의 길동무로 끌고 가겠다는 계획을 세웠을 때부터 형의 인격과 동생의 인격은 죽음을 받아들인 뒤였다.

그렇기에 이제 자신들에게 남든 선택지가 죽음 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별 감흥이 없었다.

무엇보다 천사를 죽이려 들었던 행동 자체가 이미 자신의 ‘죽음을 상정’하고 행한 행동이었다. 죽는다고 해도 그냥은 못 죽어주겠다는 생각해 움직인 것이었다.

그러니 공선자는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였다. 그렇기에 자신의 행동이 실패했음에도 겉으로는 태연함을 가장할 수 있었다.

설령 그것이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고 해도 천사를 죽인 것이었다. 그에 따른 아무런 제재가 없을 것이라 생각할 정도로 형의 인격은 태평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제재라는 것도 결국에는 자신들의 죽음으로 귀결될 터. 때문에 태연함을 가장할 수 있었다.

내심 결국 자신들의 행동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는 사실에 분노하면서도 겉으로는 지지든 볶는 마음대로 하라는 태도를 고수할 수 있었던 것.

“그건 제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에요. 그분께서 결정할 문제지요. 저는 결국 그분의 계획을 위해서 제작된 존재. 제 목숨조차 그분의 도구에 불과합니다. 도구가 상처 입으면 도구가 아닌 도구의 주인이 분노하기 마련. 도구는 그저 주인에 사용될 뿐입니다.”

“네, 네. 그래서 그 위대한 존재께서는 뭐라고 하시든? 아니, 아직 여기서 일어난 일도 모르고 있으려나? 원래 높으신 분들의 일 처리가 느려터진 건 알아줘야 하니깐 말이지. 그러니 아랫사람들이 고생하지. 안 그래? 캬하……!”

“아뇨, 그분께서는 이 장소에서 벌어진 일은 이미 일이 벌어진 그 순간부터 알고 계셨습니다. 그분은 전지전능. 평범한 인간과 같은 취급을 하지 말아주셨으면 하는데요?”

공선자의 말을 끊으며 천사가 꽤나 불쾌하다는 어조로 반론해오는 것이었다. 자신이 죽고 자신의 시체가 바닥을 나뒹굴 때도 별 감정의 변화를 보여주지 않았던 그녀.

그런데 자신의 주인이 모욕을 당했다는 사실에는 저렇게 감정변화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 사실에 내심 참 주인님 생각이 깊은 도구가 납셨다고 떠올리는 형의 인격이었다.

“……하하! 그래, 그래. 하긴, 전지전능하신 양반이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평범한 인간들하고 같을 리가 있나. 내가 잘못 했네. 사과하지. 그래서 결국 날 어쩔 생각인데? 엄청 대단한 일은 해냈다며? 그러면 그냥 쫌 평화로운 세계로 아무런 조건 없이 되살려주면 안 되려나?”

물론 저렇게 이야기하면서도 형의 인격은 진짜로 그렇게 해줄 것이라는 기대는 전혀 하지 않고 있었다.

실제로 천사 역시 공선자의 그와 같은 발언은 전혀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것처럼 자신이 해야 할 말만을 이어갔으니 말이다.

“그분께서 당신에게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전달해 드리죠. 그분은 분명히 당신이 해낸 일을 극찬했습니다. 자신의 예측조차 뛰어넘은 그 행동. 분명히 이야기해서 역사에 남아도 이상할 게 없는 업적이라 칭송했습니다.”

“거 참 귀에 딱지가 앉겠다. 그렇게 이야기해도 나는 그다지 실감이 안 되니까 빨리 본론이나 들어가 주세요. 그래서 난 이대로 죽는 건가? 내가 저지른 일이 그렇게 대단한 일이면 그냥 고통 없이 좀 보내주지?”

공선자, 정확히는 공선자의 신체를 장악하고 있는 형의 인격이 질렸다는 얼굴로 자신의 귀를 후미며 이와 같이 이야기하는 순간 갑작스럽게 천사가 두르고 있던 분위기가 달라지는 것이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아무런 감정도 찾아볼 수 없었던 기계나 다름없는 모습을 하고 있었던 그녀.

하지만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그녀의 얼굴에 표정이라고 할 수 있는, 감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담기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명확한 조롱. 그것도 아득히 높은 위치에 도달한 이가 자신의 발아래에서 기어 다니는 이들을 내려다보며 보내는 비웃음이었다.

“……넌 너무 나댔어. 단순히 거래를 거절하는 거라면 모를까, 내가 나한테 이를 드러낸 녀석을 그냥 내버려둘 정도로 착한 녀석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거야? 그러면 크나큰 오산인데 말이야.”

“이런 설마 하니 뭐 빙의인가 하는 그런 건가?”

갑작스러운 천사의 변화. 겉모습은 전혀 변화하지 않았다. 또한, 무슨 엄청난 압박감 같은 게 느껴지거나 하는 것도 아니었다.

허나, 방금 전까지 표정 변화 하나 없던 그녀에게 완전히 타인처럼 느껴지는 표정이 깃든 순간 공선자의 두 인격은 본능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었다.

지금 눈앞의 있는 존재는 결코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되는 존재라고. 도대체 이 감각을 뭐라 설명해야 할지 알 수 없었지만 그저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것이었다.

저 존재는 건드리기는커녕 그냥 일평생 마주하지 않는 쪽이 신상에 좋은 그런 존재라는 감각을.

그렇기에 공선자의 형의 인격은 무의식적으로 식은땀을 흘리며 여태까지와는 다른 미소를 지은 것이었다.

그야말로 길가다가 지뢰라도 밟았을 때 지을 것 같은 섞은 미소를. 일이 뭔가 안 좋게 돌아가기 시작했다는 것을 날카롭게 다듬어진 감각으로 느끼며 맹렬하게 머리를 굴리는 것이었다.

“그렇게 머리를 굴린다고 해서 이 상황을 타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그렇다면 그것 역시 오산이라고 말해주고 싶군. 난 나한테 적대적인 녀석한테 오냐오냐해줄 정도로 무르지 않아서 말이지. 이 이상 무엇인가를 하려고 한다면 약속하지. 네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지옥을 보여주겠다고 말이야.”

“캬하하! 그것참 무서운 이야기네요. 하지만 그래 봤자 결국에는…….”

“너희들의 죽음으로 귀결될 뿐이다, 너는 아마 그렇게 이야기하겠지. 하지만 그건 무른 생각이야. 세상에는 너희들이 모르는 미지는 얼마든지 있어. 요컨대 네가 상상하는 것 그 이상으로 난 너희들에게 고통을 주고 정신을 붕괴시킬 방법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지. 그러니까 어차피 죽을 거 막 나가자는 생각은 버리는 게 좋을 거야. 더 이상 떨어질 밑바닥이 없다는 게 착각이라는 사실을 난 얼마든지 증명해줄 수 있거든.”

“……………….”

자신이 꺼낼 이야기를 예측했다는 것처럼 천사의 입을 통해 나오는 발언에 형의 인격은 썩어들어가는 표정으로 입을 다물고 동생의 인격은 그저 두려움에 떨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본능이 외치고 있는 것이었다. 저 천사의 입을 빌려 이야기하고 있는 존재가 하는 발언은 결코 거짓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렇기에 방금 전까지만 해도 무서울 것이 없었던 형의 인격도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동생의 인격이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동생의 두려움을 모른 체하고 함부로 입을 놀리는 게 불가능한 상황인 것.

“자, 그럼 현재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을 이해했을 것 같으니 내가 너에게 내릴 판결을 전하도록 하지. 다시금 이야기하지만 난 나한테 이빨을 드러낸 녀석들을 그냥 내버려둘 정도로 무른 인간이 아니야. 그런 이유로 내 심부름꾼인 이 아가씨를 죽인 너희들이 원하는 대로 편하게 죽여줄 생각도 없어.”

자신의 심부름꾼을 공격했다는 것은 결국 자신에게 공격의 의사를 드러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냥 넘어줄 생각이 없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상대에게 형의 인격이 최대한 평정을 가정하며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거참, 공정함을 이야기하던 사람이 저같이 아무런 힘도 없는 약자를 괴롭힐 생각인 겁니까?”

“대의명분. 이건 매우 중요하지. 다른 존재들의 시선을 신경 쓴다는 의미에서 중요하다는 게 아니라 대의명분에 따라서 내가 가진 신념에 반하는지, 반하지 않는지가 결정되기 때문이야. 그렇기에 난 최대한 공정하게 행동을 하려고 하지. 하지만 말이야. 그건 다르게 이야기하자면 대의명분만 있다면 얼마든지 공정함 따위 던져버릴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고? 그리고 내 부하가 공격받았다는 건 상대에게 더 이상 공정한 잣대를 들이밀지 않아도 되는 좋은 대의명분이지, 안 그래?”

공격당했기에 반격한다. 그건 당연했다. 그냥 죽어주는 쪽이 이상했다. 그리고 아군이 살해당했기에 복수한다. 그것은 결코 잘못된 일이 아니었다.

그런 인과처럼 공선자는 천사를 죽였다. 위대한 존재라는 이의 부하를 살해했다. 그것은 위대한 존재가 공선자에게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다는 ‘명분’을 주는 행위였다.

“……쪼잔하게. 보니까 죽지도 않던데.”

“무엇보다 나는 일단 죽음밖에 남지 않는 녀석을 살려주는 ‘선의’를 보이며 거래를 요청한 건데 구해진 상대가 보따리까지 내놓으라고 이야기하는 상황이지. 그러니 화가 나서 상대를 끔찍한 모습으로 죽여도 전혀 이상할 건 없잖아? 인과라는 거지. 선택을 했으면 그에 따른 책임을 지라고. 한 세계를 멸망시킨 ‘공선자’라는 존재의 표면의 인격이여.”

정말이지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알고 있다는 것과 같은 상대의 말투에 형의 인격은 이를 악물 수밖에 없었다.

설마하니 일이 아무리 수틀려도 죽는 것보다 더할까 생각했는데 더 한 게 있는 것 같았으니 산전수전 다 겪은 형의 인격이라고 해도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던 것. 그리고 뒤늦게 너무 섣부른 행동이었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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