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1화 〉제 01계-챕터 01: 에볼루션 시스템 (21/194)



〈 21화 〉제 01계-챕터 01: 에볼루션 시스템

자신은 이 영문을 알 수 없는 상황에 최대한 이성적으로 생각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아니었던 것.

아무리 평범한 사람과는 차별화되는 각종 경험을 했다고 해도 이런 상식 외의 상황에 처하게 되면 역시 판단력이 흐트러질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어떻게든 억누르려고 했던 억울함에도 오던 분노. 그 분노 역시 공선자의 형의 인격의 판단력을 흐트러지게 만들었다.

그 결과 이 모양 이 꼴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뭔 짓을 저질러도 결국 죽는다면 죽기 전에 담아둔 감정이라도 쏟아내자고 행했던 행동이 설마하니 죽음보다 더한 결과를 불러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평소였다면 충분히 감안할 수 있었을 테지만 전혀 상상도 못했던 상황에 처했다는 사실과 동시에 죽음을 각오하고 진짜로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누군가의 손에서 놀아날 뿐이라는 사실에 의한 분노가 이성적인 사고를 방해했다.

“결론만 이야기하지? 그래서 날 어쩔 생각이라는 건데?”

상대가 두르고 있던 분위기에 자신도 모르게 나오던 존댓말을 위기감을 통해서 억누르며 공선자가 묻는 것이었다.

그래서 공선자가 했던 선택을 더 이상 배려해줄 필요가 없어진 이 상황에서 댁을 자신을 어떻게 할 생각이냐며 결론만을 묻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에 따른 대답을 곧바로 돌아왔다.

“너는 강제적으로 에볼루션 시스템을 각인 받고 멸망이 예정된 세계에서 살아가 줘야겠다. 그것이 나한테 이를 드러낸 공선자라는 이에게 내리는 내 나름의 대응이라고 할 수 있겠지.”

“캬하! 자신에게 이를 드러낸 이상 더 이상의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당신이 원하는 대로 꼭두각시가 되어야 한다고? 미안하지만 그건 사양이다!!”

더욱 끔찍한 일이 기다리지 않을까 뒤늦게 떠올린 공선자였다. 평생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상태로 고통을 받으며 살아가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예측과 다르게 돌아온 대답을 생각보다 무난한 이야기였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형의 인격이 떠올린 것보다 무난하다는 것이지 결국 공선자에게 있어서 끔찍하기 그지없는 선택지라는 것은 다를 게 없었다.

이미 평생을 누군가의 꼭두각시가 되어서 살아왔다. 자신의 의사조차 가지지 못하고 그저 자유를 갈망하며 살아왔다.

그리고 그 끝에 결국에는 세상의 모든 인간들을 끌어들이는 죽음을 선택한 것이 공선자라는 존재의 인생이었다.

그런데 그랬던 그에게 또다시 꼭두각시가 되라고? 웃기지 마라. 차라리 죽어서 안식에 들어갈지언정 결코 그럴 수는 없었다.

살고 싶다는 욕망이 거대하다고 해도 살기 위해서 누군가의 말이 되라니, 그건 본말전도가 아니지 않은가?

그의 삶의 욕망은 살아서 자유를 쟁취하고 싶다는 의지에서 나오는 것. 그런데 그 자유가 거세된 삶이라니, 그것은 결코 공선자가 바라는 삶이 아니었다.

그러니 차라리 죽음을 선택한다! 그런 의사를 담아 그대로 자신의 혀를 깨물려고 하는 그.

과거 에이전트로 활약했던 그인 만큼 경우에 따라서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방법에 대한 학습 역시 끝난 상황이었다.

그러니 스스로 죽으려고 한다면 얼마든지 죽을 수 있었다. 그 과정이 고통스럽다고 해도 이대로 저 상상도 가지 않는 존재에게 실이 붙잡힌 꼭두각시가 되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런 의미를 담아 자신의 혀를 깨물려고 하는 순간 마치 예상하고 있었다는 것처럼 천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죽을 생각이라면 추천을 하지 않는데 말이야. 한 번도 가능했는데 두 번이라고 죽었던 이를 되살리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나?”

“……빌어 처먹을 신 새끼가.”

“신이 아닙니다. 그분은 신이라는 단어를 결코 좋아하지 않으니깐 주의해주시죠.”

상대의 이야기에 여기서 죽는 것이 결국 고통만 늘어나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결국 자살을 포기하는 형의 인격.

그러면서도 도저히 참지 못해서 그 위대한 존재니 하는 녀석한테 욕지거리를 토해내자 돌연 천사의 표정이 또다시 무표정한 기계처럼 돌아오는 것이었다.

“뭐야? 할 말은 다했으니 빙의를 풀었다, 뭐 그런 거야?”

“애초에 처음부터 그분은 저따위에게 빙의 따위 하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어디까지나 그분께서 전하고자 했던 말을 전하는 메신저. 즉, 방금 전까지 당신에게 전달되던 이야기는 제가 그분이 원하는 대로 연기를 하며 그분의 말을 전했을 뿐이 내용이라는 겁니다.”

“……하, 요컨대 비디오 편지 비슷한 거였다? 그런 것치고는 꽤나 대화가 성립되었던 기분이 드는데?”

“그야 그분이 행하신 일인 만큼 당신이 어떤 대답을 해올 것인지 예지 수준으로 예측할 수 있으니 말이죠. 그러니 굳이 저따위에게 빙의를 해 당신과 대화를 할 필요도 없이 자신이 할 말만 담아서 저에게 전달해주시면 되는 겁니다. 그분도 나쁘신 분이니 당신에게 직접 시간을 쓸 이유가 없었다는 거겠죠.”

마치 공선자 자신은 상대할 가치고 없다는 이야기처럼 느껴졌기에 그는 피가 날 정도로 주먹을 쥘 수밖에 없었다.

손톱이 뜯겨져나갔기에 피가 흘러넘치던 손에 더욱 새로운 피가 더해진다. 그러나 그런 고통조차 아무래도 좋을 정도로 현재의 공선자는 뚜껑이 열릴 정도의 분노에 휩싸여 있었다.

정말이지 부조리한 세계라는 생각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최후의 최후마저 공선자라는 존재의 자의식마저 빼앗아야지 속이 후련하냐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도저히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낼 수는 없었다. 형의 인격도 알고 있었다. 이번 결과는 자신의 안이한 판단이 대부분의 원인을 차지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또한 그 위대한 존재인지 하는 자의 행동에 이가 갈리기도 했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 그 위대한 존재라는 자의 판단은 전혀 틀릴 게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더 이상 따지지도 못했고 말이다.

사실대로 이야기하자면 이 이상 상대에게 따지고 든다면 어떤 후폭풍이 몰려올지 알 수가 없어서 겁이 났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사실일 것이다.

스스로의 죽음을 각오하고 세계마저 자신의 길동무로 삼았던 테러리스트 타임 룰러. 그랬던 자신이 겁을 먹었다는 사실에 쓴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상대는 자신이 각오했던 죽음에 대한 각오마저 우습게 만들 정도의 힘을 지닌 존재.

오히려 겁을 먹는 게 당연했다. 역으로 겁을 상실하고 덤벼들어서는 안 되었었다. 그 결과를 봐라.

결국 마지막의 마지막 선택지였던 안락한 죽음마저도 자신의 손을 떠나지 않았는가? 공포란 결코 겁쟁이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공포란 결국 생존본능의 일종. 공포를 뛰어넘어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움직일 수 있는 것을 용기라 부르며 역으로 공포보다 더한 감정에 의해서 공포를 상실하고 그저 감정에 맡겨 움직이는 것을 무모라고 부르는 법.

그 사실을 형의 인격은 물론 동생의 인격도 잘 알고 있었다. 겁쟁이란 공포를 극복해야 하는 순간에 공포를 극복하지 못한 이들을 이야기하는 것이며, 무모한 자란 지금의 공선자와 같은 상황에 처한 이들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결코 공포를 느끼는 것을 창피해해서는 안 되었다. 공포는 생존본능. 본능을 창피해해서야 그 무엇도 시작할 수 없으니까.

오히려 공포를 느끼는 것을 창피해하고 자신의 공포를 인정하지 않고 움직이게 된다면 지금의 공선자의 꼴이 나는 것이었다.

‘……미안해, 파트너. 마지막의 마지막에 와서 실수를 해버렸어. 이건 내 판단 미스야. 그로 인해서 파트너가 원했던 안락한 안식마저 달성할 수 없게 되어버렸어!’

-아, 아니야. 이건 형의 잘못이 아니야. 형과 나는 감정을 공유해. 그, 그러니까 형의 감정은 내 감정이기도 해! 즉, 나, 나 역시 어딘가에서 생각하고 있었던 거야. 왜 나만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느냐고……, 그렇게 생각하며 누군가에 화풀이를 하고 싶어 했던 거야. 혀, 형은 단지 그런 나의 바람을 행동으로 옮겨준 것에 불과해……!

‘설령 파트너의 말대로 라고 해도 나는 파트너를 존재하고 있어. 파트너 잘못된 길을 가려고 한다면 말려야 할 의무가 있다고! 그런데 말리기는커녕 오히려 내가 나서서 그 길로 끌고 간 것이나 다름없게 되어버린 거지. 캬하하! 한심하기도 해라!’

-혀, 형…….

이제 와서 공포를 자각해서 어쩌자는 건가? 할 것이라면 좀 더 일찍 했어야 했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 처하기 전에 상대에게 압도적인 위기감을 느꼈어야 했었단 말이다.

하지만 자신조차 억누르기 위한 분노에 몸을 맡겨 공포마저 상실한 상태로 무모하게 행동한 결과가 지금의 이 상황이었다.

마지막 한 줌의 자유조차 박탈당해 상대가 원하는 대로 꼭두각시가 될 수밖에 없는 이 상황이야말로 자신의 무모함이 초래한 결과.

그 사실에 이제는 스스로의 한심함에 분노가 솟구쳐 치를 떨던 공선자의 형의 이를 악물며 눈앞의 천사를 노려보았다.

“그래……. 인정하지. 내 판단미스였어. 처음부터 너무 안이하게 생각하고 있었어. 좀 더 이성적으로 행동하며 자신의 공포에 귀를 기울여야 했었어. 그걸 하지 못했던 시점에서 뭐라 변명할 수도 없는 내 실수가 맞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끝낼 수는 없었다. 잘못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면 어떻게 해서든지 수습을 해야 했으니까!

때문에 공선자의 형의 인격은 움직이려고 했었다. 어떻게든 이 엿 같은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시도를 다 할 생각이었다.

휘익!

‘우선은 다시 한 번 눈앞의 저 빌어먹은 천사 계집애를 죽인다! 그 뒤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자살한다. 절대로 날, 동생을 되살려 써먹을 수 없는 수준으로 신체를 너덜너덜하게 만들어서!’

상대는 말했다. 자살해봤자 소용이 없다고. 자신들은 얼마든지 공선자라는 존재들을 되살릴 수 있다고.

……공선자 역시 그 말을 거짓이라 생각하며 현실도피를 할 생각은 없었다. 자신과 동생의 인격이 이렇게 살아서 존재하고 있었다.

그것이야 말로 부정할 수 없는 천사의 말을 사실이라 증명하는 근거. 그렇기에 그 위대한 어쩌고 하는 자식한테 시비를 건 공선자라는 존재에게 더 이상 선택지가 없다는 사실을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대로 상대의 꼭두각시가 될 생각도 없었다. 차라리 죽고 말겠다. 더 이상 누군가의 손에 놀아나는 것은 절대로 사양이다.

그러니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시도를 해본다. 몇백 번이라도, 몇천 번이라도, 몇만 번이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시도해볼 것이다!

절대로 불가능한 자유를 향해 날갯짓 했던 과거와 같이, 설령 그 결과가 자유가 아닌 복수만을 달성할 뿐이었다고 해도 포기하지 않겠다. 기필코 답을 찾아내 보겠다.

형의 인격이 자신의 광기를 통해서 그렇게 도저히 답을 찾을 수 없을 것만 같았던 각오를 하고 움직이는 순간…….

휘이이익! 툭!!!

“몸이……?!”

“말했을 텐데요. 당신은 이미 선택지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분께서는 더 이상 당신에게 그 어떤 선택지도 주지 않을 겁니다. 당신에게 남은 선택지는 하나. 그분의 의사에 따라서 에볼루션 시스템의 소지자로서 살아가는 것뿐. 더 이상 선택지가 없는 당신에게 제가 최대한 간섭을 자제할 이유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겠죠.”

……일단 눈앞의 천사를 죽여서 최대한 자신을 되살릴 수 없을 것이라 생각될 정도로 심각한 몰골로 자살할 방법을 떠올리려고 행동에 들어간 공선자의 몸이 멈췄다.

이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도대체 어떻게 최대한 심각한 방식으로 자살을 할 것인지 그 방법을 떠올리지 못했다.

할 수 있다면 분신자살을 하고 싶었지만 그것이 가능하게 만드는 도구가 존재하지 않았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기에 최선의 방법을 떠올릴 시간을 벌기 위해서라도 천사를 죽이려고 했었다. 그녀를 죽이는데 방금 전처럼 일격으로 죽이는 것은 무리라는 것은 다시 한 번 그녀를 공격하며 깨달았다.

그러나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덤벼들면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자살할 몸. 굳이 뒷일을 생각할 필요는 없다.

조금이라도 시간이 필요했다. 천사가 죽은 뒤 다시 살아나는 그 짧은 시간. 그 시간이라도 있어야 자신이 누군가의 방해를 받지 않고 자살을 시도할 수 있었다.

그러니 곧바로 천사에게 달려들었지만……, 공선자의, 형의 인격의 판단은 또다시 빗나갔다.

기습적으로 천사의 관자놀이를 꿰뚫으려고 휘둘러졌던 그의 팔꿈치는 제대로 휘둘러지기도 전에 멈춰버렸다.

아니, 팔꿈치뿐만 아니라 전신이 마치 돌로 굳어버린 것처럼 움직이지 않고 멈춰버렸다. 그 미지의 감각에 공선자의 안색이 하얗게 질리자 그런 공선자를 보며 천사는 말을 이어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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