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2화 〉제 01계-챕터 01: 에볼루션 시스템 (22/194)



〈 22화 〉제 01계-챕터 01: 에볼루션 시스템

“이미 결정을 내려졌습니다. 그러니 더 이상의 설명은 불필요. 또한, 더 이상 당신에게 시간을 줄 의미도 없죠. 때문에 당신의 움직임을 구속하고 지금부터 에볼루션 시스템의 각인을 시작. 각인이 끝나는 대로 당신이 앞으로 살아가게 될 ‘첫 번째’ 세계로 이동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웃……, 기……, 지! 마……!!!”

천사가 거래를 제안하는 상대를 억압하지 않은 것은 그 나름대로의 배려였다. 동시에 상대에게 물밑에서 주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들은 당신의 의견을 존중하고 있습니다, 라고 말이다. 상대의 신체를 구속하지 않는 것으로, 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는 것으로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던 것이다.

그러나 공선자에게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었다. 공선자는 이미 더 이상 배려해줄 필요가 없는 자였으니까.

그러니 움직임을 구속했다. 더 이상 공선자에게 그 어떤 저항의 수단도 주지 않기 위해서 그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수단으로 그가 손가락 하나조차 까딱할 수 없게 허공에 그대로 박제시켜 버린 것이었다.

갑작스럽게 굳어버린 몸. 도저히 자신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현상. 무려 초능력자조차 실제 하는 세계에서 살아왔던 그다.

그런 그조차 전혀 알 수 없는 미지의 힘. 그와 같은 미지의 힘에 붙들린 공선자는 미지에 대한 공포보다 무력감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이성으로는 이해하고 있었을 셈이었다. 상대가 자신이 알지 못하는, 또한 그렇기에 저항할 수 없는 능력을 지녔다는 사실을 말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해는 했을지언정 납득을 하지 못했던 것일지도 몰랐다.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어왔던 그조차도 자신의 경험만을 신봉한 나머지 상대에 대해서 잘못 파악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몰랐다.

어떻게든 된다. 포기하지 않으면 어떤 수든 만들어낼 수 있다. 마음 한구석 어딘가에서 그렇게 떠올리고 있었던 안이한 사고가 전신이 박제 당해 버리며 한순간에 부정되어버리는 것이었다.

그 사실에 공선자는 태어나서 최고의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의 인생은 무력함으로 범벅이었던 인생이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공선자는 무력감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었다. 자아를 가진 그 순간부터 일순도 자신의 의지로 살아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런 속박을 벗어날 수 없었던 자신의 힘에 무력감을 느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그렇게 일생을 무력감을 느끼며 살아왔던 그.

허나, 이번에 그가 느끼는 무력감을 그렇게 그가 늘 겪어왔던 무력감 이상으로 지독하기 그지없는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상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무엇을 하는 낌새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어째서 이렇게 허공에 박제가 되어 있는 거지?

이해조차 할 수 없었다. 적어도 여태까지는 자신이 어째서 그런 상황에 처해있었던 것인지 ‘이해’는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해조차 불가능했다. 그렇기에 이 상황을 파악할 방도가 단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여태까지는 설령 그것이 매우 현실성이 희박한 가능성이라고 해도 단 하나의 방도라도 머릿속에서 떠올랐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망상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공선자는 완벽하게 제압당해버린 상황. 그 사실에 과연 그 누가 무력감을 느끼지 않겠는가?

“딱히 당신을 웃길 생각은 없는데요. 저는 처음부터 시종일관 진지하게 당신과 마주하고 오로지 진실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부디 제가 당신을 존중하는 만큼 당신도 저를 존중해주었으면 합니다만……. 뭐, 앞으로 볼일이 없는 사람에게 굳이 그런 부탁을 할 이유도 없겠죠.”

“……누구 멋대로 그따위 일을 결정하는 거지? 내가 그냥 당할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야. 그래, 어디 한 번 해보자고.”

허공에 박제 당한 상태에서 입은 움직였다. 시야 역시 고정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공선자는 단 1미리 미터도 움직이지 못하면서도 광기로 이글거리는 시선만은 천사에게 고정한 채로 으르렁거렸다.

지독하기 그지없는 무력감. 그냥 전부 포기하고 싶어져 버리는 상실감. 하지만 익숙했다. 여태까지 느꼈던 그 어떤 무력감보다 지독했지만 결국에는 같은 무력감이다.

그렇기에 익숙했다. 그리고 익숙하다면 대처 방법은 간단했다. 감정을 불태워라. 무력감에 의해서 파생되는 억울함을 원료로 분노라는 감정을 활성화시켜라.

설령 여기서 끝이라고 해도 결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상대에게 머리를 숙이지 말지어다. 이것은 공선자라는 존재의 삶이 가지는 의미였다.

노예로서, 꼭두각시로서 밖에 살아갈 수 없었던 한 소년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를 바랐다는 사실의 증명이다.

설령 가망이 없다고 해도 공선자라는 존재는 결코 굽히지 않을 것이다. ……그럴 게 그렇게라도 하지 않는다면 여태까지 지옥의 용암 위를 걷는 것과 다를 게 없는 삶은 살아온 공선자라는 존재의 인생이 너무나도 무의미해질 것 같았으니까.

그러니 이를 드러냈다. 이성적으로 포기라는 단어를 떠올랐다. 감정 역시 이제는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납득했다.

그저 슬퍼 당장에라도 울 것 같은 동생의 인격뿐만이 아니었다. 광기가 휩싸여 그 어떤 경우에도 결코 물러서지 않았던 형의 인격.

그 형의 인격조차 답이 보이지 않았다. 내심은 자신의 치명적인 판단 미스가 불러온 이 결과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여기서 다시 누군가의 꼭두각시 인형이 될 수 없다는 의지가 불타오르고 있었다.

여태까지 살아오며 느꼈던 모든 부조리한 경험들이 무력감을 상회하여 분노라는 감정에 불을 지피는 것이었다.

그러니 여기서 굽힐 수는 없었다. 설령 이성이 포기한다고 해도, 마음이 포기하기 직전이라고 해도 감정이 꺾이려는 마음을 붙잡았다.

강제로 마음을 올곧게 담금질 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공선자는 그 어떤 해답도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도 천사를 노려보며 반항했다.

그 어떤 상황이 와도 이 마음만큼은, 비극만을 경험하며 울분만이 가득 차 있는 이 마음만큼은 결코 굽히지 않겠다는 의사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쯤 되면 감탄 밖에 나오지 않는군요. 그런 상황에서도 결코 자신의 의사를 굽히지 않고 결코 포기하지 않다니. ……그렇다고 해도 결과가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오로지 의지만으로 해결하기에는 당신은 결코 적대해서는 안 되는 존재를 적대해버렸으니 말이죠. 허나, 적어도 그 의지에는 경의를 표하죠. 그 정도 의지를 지니고 있다면 기억을 잃어도 인격은 거의 변화가 없을 겁니다.”

사실 애초에 기억이 사라진다고 해도 최대한 인격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 쪽으로 조치를 취해뒀다는 식으로 말은 이은 뒤 천사는 더 이상 공선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손을 휘젓는 것이었다.

“안심하시길. 설령 멸망이 예정된 세계라고 해도 꼭 멸망하라는 법은 없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멸망을 막아낼 수도 있죠. 그리고 에볼루션 시스템은 멸망을 막기 위한 최선의 다해서 챌린저 여러분들을 서포트해드릴 겁니다. 설령 기억을 잃었다고 해도 언젠가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을 수 있도록 최선에 해당하는 서포트를 말이죠.”

그 말과 동시에 공선자는 자신의 의식이 갑작스럽게 멀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손과 발의 끝에서부터 날카롭게 다듬어졌던 감각이 사라져간다. 그 느낌에 박제된 상태로 시선을 돌린 공선자는 자신의 손과 발끝이 서서히 투명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죽는 건가? 그렇다면 더할 나위 없었다. 여기까지 온다면 공선자의 형의 인격과 동생의 인격이 바라는 것은 죽음에 의한 안식뿐.

……그러나 천사는 이미 이야기했다. 자신들에게 적대한 대가로서 결코 공선자가 원하는 것을 쥐여줄 생각이 없다고.

그렇다면 이것은 공선자가 죽어가기에 보여주는 현상이 아니었다. 아마 차원이동. 강제로 멸망이 예정되었다는 세계로 이동되며 나타나는 현상이리라.

그 사실에 공선자는 멋대로 멀어지려는 정신을 붙잡고 있는 힘껏 소리쳤다. 자신의 남아있는 모든 의지를 모아서 천사뿐 아니라 이후 기억을 잃어버릴 것이 예정된 자신에게 스스로 최면을 걸겠다는 것처럼 외치는 것이었다.

“기다리고 있어! 반드시 돌아온다! 기억을 되찾고 돌아와서 오늘 이 일의 대가를 치르게 해줄 테니까!!!!”

이대로 끝나지 않을 거다. 기필코 후회하게 만들어주마. 지구에서 자신을 그저 도구로서 취급했던 녀석들이 마지막의 마지막에 가서 멸망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만들었던 것처럼 말이다.

기필코 그 위대한 존재인지 하는 녀석의 손바닥 위에서 탈출해 자신의 말로써 사용하려고 했던 사실을 후회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는 의지를 담아 소리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공선자의 외침을 들은 천사에게 돌아오는 대답은 공선자의 형과 동생의 인격 모두 도저히 ‘당장’은 이해할 수 없는 대답이었다.

“……죄송하지만 그분이 말씀하시길 ‘당신의 동생’이라면 몰라도 ‘당신은 결코 불가능’할 것이라고 이야기하시더군요. 그분이 매우 가능성이 낮은 일이 아닌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한 겁니다. 그것은 말 그대로 0%의 확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직접 경험해보면 알게 될 겁니다.”

이미 흐려질 대로 흐려진 의식. 그리고 이제는 거의 머리밖에 남지 않은 공선자의 신체. 그렇기에 사고 역시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아니, 설령 사고가 제대로 돌아갔다고 해도 과연 천사가 말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까? 그것은 알 수 없었다.

애초에 저 천사와 공선자는 서로가 알고 있는 지식의 영역이 너무나도 동떨어져 있었다. 어쩌면 제대로 된 의식이 있었어도 천사가 하고자 했던 이야기를 공선자는 이해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반드시……, 돌아와서……, 대가를……!”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의 인격은 조각이 나려는 자신의 의식을 붙잡으며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새하얀 공간에서 완전히 모습을 감추기 전까지 꾸역꾸역 복수의 의지를 불태우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이내 공선자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새하얀 공간에는 도저히 인간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외모를 지닌 천사만이 덩그러니 남게 되는 것이었다.

“……정말로 그게 가능한 겁니까? 아무리 심상이 두 개를 지녔다고 해도 에볼루션 시스템을 각인 받는데 기……, 아, 아뇨. 위대한 분의 예지를 의심하는 건 아닙니다. 단지 너무나도 믿기 힘든 이야기여서……. 또한 설령 그처럼 일이 진행이 된다고 해도 역시 형평성이……, 절 죽인 대가……? 화, 확실히 업적이라고 한다면 업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죠. 알겠습니다. 어차피 이 이후의 일은 에볼루션 시스템과 라이브러리 서플라이가 알아서 공정하게 처리하겠죠. 제 할 일은 이걸로 끝이니 다음 분을 맞이하러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홀로 덩그러니 새하얀 공간에 남겨져 있던 천사조차도 홀로 무엇인가를 중얼거린다 싶더니 이내 그 공간에서 모습을 감추는 것이었다.

그렇게 누구도 남지 않게 된 무색의 공간. 그렇게 그 누구도 남지 않아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사라진 공간은 이내 너무나도 허무하게 유리가 부서져 내리는 것처럼 무너져 내리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방금 전까지 한 명의 인간과 한 명의 천사가 대립 아닌 대립을 하던 공간은 이내 그런 공간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것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었다.

+++

그것이 언제부터였는지 공선자는 또렷하게 기억했다. 자신이 자신이라는 자각을 가지게 된 그 순간.

제대로 된 기억은 떠오르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된 것인지 정신이 무너져 내릴 것 같은 고통만큼은 뚜렷하게 떠오르던 그 순간, 공선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존재를 만나게 되었다.

-x발, 개새끼보다 못한 자식들. 자기들 몸이 아니라고 도대체 무슨 짓을 벌이는 거야?! 그것들은 죄다 머리에 우리랑 같은 고통을 겪게 만드는 칩을 박아 넣어야 해! 그래야 자기들이 얼마나 악독한 짓을 했는지 이해할 거라고!

아니, 그것을 만남이라고 할 수 있을까? 깨달아보니 어느새 자신과 완전히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존재가 언제나 자기밖에 없었던 컴컴한 공간에 함께 서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정신이 무너져 내리기 직전이었기에 화조차 내지 못했던 자신을 대신해서 화를 내주고 있었다.

자기와 공선자를 ‘우리’라 칭하며 어둠의 저편에서 보기만 해도 전신이 덜덜 떨리고 경기가 일어날 것 같은 이들을 향해 욕지거리를 토해내고 있었다.

그것은 공선자가 자신이 공선자라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식한 뒤 처음으로 보게 되었던 ‘빛’이었다.

이미 너덜너덜해질 대로 너덜너덜해진 정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외부와 완전히 단절하고 어두컴컴한 스스로의 정신세계에 갇혀 있었던 공선자에게 그것은 분명 더 이상 나갈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외부와의 길을 인도해주는 ‘빛’인 것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