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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화 〉제 01계-챕터 01: 에볼루션 시스템 (23/194)



〈 23화 〉제 01계-챕터 01: 에볼루션 시스템

설령 그것이 공선자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가짜’라고 해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함이 만들어낸 ‘환상’이라고 해도 공선자 본인에게 있어서 그 ‘빛’은 그 ‘인도’는 분명히 진실이며 현실이었다.

-앞으로 잘 부탁해, 동생! 여태까지 모진 고초를 겪느라 고생했지? 솔직하게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최선을 다해서 이 지옥에서 동생을 지켜주고, 할 수 있다면 구해줄게! 그러니 앞으로 함께 잘 해보자고!

-……누구? ……동생? ……누가? ……여긴?

-하……, 진짜. 어지간히도 고생을 했나 보네, 진짜. 난 지금 막 태어나서 동생이 겪은 일에 대해서는 기억으로조차 가지고 있지 않아. 그러니 차마 동생이 여태까지 어떤 고생을 해왔는지 안다고 이야기하며 위로를 해주고 싶어도 위로를 해줄 수가 없네. ……단지 내가 이야기해줄 수 있는 것은 적어도 혼자서 이 외롭고 괴로우며 미칠 것 같은 인생을 걷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만은 이야기해줄 수 있어.

-……몰라, 모르겠어. 무슨 소리야, 그거? 넌 누구? 그리고 왜 날 동생이라고 불러?

-흠……, 동생이 마음에 안 들면 파트너는 어때? 이제부터는 말 그대로 일심동체니깐 말이야! 아니, 이심동체인가? 뭐가 되었던지 상관없나! 아, 내가 굳이 파트너를 동생으로 불렀던 건 내가 이제부터 무슨 수를 써서든 파트너를 지켜줄 거기 때문이야!

-……어째서?

-어째서냐고? 그야 내가 파트너의 형이니까! 형이란 자고로 동생을 지키는 법. 음……. 이렇게 말하고 보니까 선후 관계가 이상한가? 형이니까 동생을 지킨다고 했으면서 지켜줄 거니까 내가 형이고 파트너가 동생이라는 것처럼 이야기했으니깐 말이야. ……뭐, 아무래도 좋아. 중요한 건 이제부터 파트너는 혼자가 아니라는 거지!

그래, 그것은 결코 단순한 망상도, 환상도 아니었다. 공선자가에게 있어서, 훗날 동생의 인격이 된 소년에게 있어서 그것은 분명한 현실.

자신을 위해서 모든 것을 바쳐줄 수 있는 단 ‘한 명뿐이었던 아군’과의 최초의 만남이었다.

모든 것을 포기했던 공선자가 최후의 최후에 스스로의 목숨을 포기하지 못하게 만들어주었던, 단 하나의 ‘빛’인 것이었다.

“……나!”

“……어?”

“……나라고! 동생! 제발 일어나! 여기서……! 여기서 동생이 일어나지 않으면 난 도대체 여태까지 무엇을 위해서……!!”

“……형?”

머리가 어지러웠다. 정신이 혼미했다.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제대로 떠올리기 힘들 것 같은 혼란 속에서도 공선자의 동생의 인격은 자신의 유일한 빛을 알아봤다.

그 속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의문은 여기가 어디지? 라는 의문. 그리고 뒤이어서 떠오른 것은 어째서 자기가 기억을 보존하고 있지? 에 대한 의문이었다.

혼미한 정신 속에서도 동생의 인격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이 기억을 잃기 전에 들었던 이야기를.

잊고 싶어도 너무나도 충격적인 내용이었기에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이제부터 공선자라는 존재가 기억을 잃고 또다시 누군가의 꼭두각시가 된다는 일을.

억지로 기억을 지우지 않는 이상은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으리라. 그리고 그 내용이 떠오른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분명히 공선자가 아직까지 기억을 잃고 있지 않은 상태라는 이야기.

그 사실을 이해할 수가 없어서 동생의 인격은 의문을 떠올렸다. 형의 인격과 함께 의식을 잃기 전의 절망감을 분명히 기억한다.

자신의 의지를 또 다시 거세당하고 그 지옥 같은 삶을 다시 이어가야 한다는 사실에서 나오는 절망감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혼미한 정신 속에서도 그 절망감을 시점으로 뚜렷하게 자신이 의식을 잃기 전의 일을 동생의 인격은 기억하고 있었다.

때문에 더욱더 지금의 상황이 이해가 되질 않아서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제부터 자신과 형의 인격을 포함한 공선자라는 인물은 멸망이 예정된 세계로 보내지는 것 아니었는가?

거기서 또 다시 목적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존재의 의지에 따라 좋을 대로 이용당하는 것 아니었는가?

그런데 어째서 자신은 기억을 잃지 않은 거지? 그리고 여기는 도대체 어디인가? 당장 시야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아 흐릿하게 밖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지금 동생의 인격의 눈에 들어오는 공간은 결코 세계의 어딘가라고 말하기 힘든 공간이었다.

그럴 것이 이곳은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공간.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동생의 인격의 눈에는 모든 게 보이는 그런 공간이었기 때문.

물리법칙을 완벽하게 무시하는 이런 공간이 세계의 어딘가에 있다면 그건 그거대로 놀라운 일 아닌가?

어쩌면 공선자가 지닌 지식으로만 알지 못하는 그런 장소일지 몰랐다. 그러나 적어도 이런 공간이 세계 어딘가에 있다는 이야기는 전혀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동생의 인격이 자신이 있는 장소가 어디인지 알지 못해 당황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는 이야기.

……그리고 무엇보다 동생의 인격이 패닉에 빠질 수 없는 광경이 그가 정신을 차리고 눈을 뜨는 순간 눈앞에 펼쳐져 있는 상황이기도 했고 말이야.

“카하하……. 눈을 뜨는 게 늦잖아. 동생. 이 형이 요 근래 가장 뛰어난 활약을 보여줬는데 그 활약상을 제대로 지켜봐 줘야지 파트너라고 할 수 있지 않겠어?”

“……어? 히익?! 혀, 형?!”

그것은 매우 잔혹하기 그지없는 광경이었다. 공선자의 모습을 하고 있는 존재. ……자신과 전혀 다를 게 없는 모습을 하고 있는 존재가 눈앞에 있었다.

그 사실 자체가 잔혹하다는 것은 아니었다. 어째서 자기 자신이 눈앞에 있는 건지 알 수 없다는 의문을 떠올리기 전에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그렇게 눈앞에 있는 자신과 똑같은 존재의 차마 두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의 상처투성이의 광경이었으니까.

아니, 이걸 과연 상처투성이라는 표현으로 표현하는 게 올바른 것일까? 이것은 이미 상처의 범주에서 벗어났다.

겉으로 보이는 잔혹하기 그지없는 참상만으로도 이미 눈앞에 서 있는 자를 시체라고 해도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것이었다.

한쪽 팔은 사라져 없었다. 팔이 붙어 있던 단면에서는 피가 폭포처럼 흐르고 있었으며 반대쪽 팔은 도대체 어떻게 하면 저게 가능한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살과 근육이 죄다 뜯겨져 나가 뼈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상태.

……거기에 사지에 속하는 다리는 애초에 언급을 할 수조차 없었다. 그야 하반신이 통째로 보이지 않는 상황인데 뭔 다리를 언급하는가?

그렇다면 상반신은 또 멀쩡하냐면 그런 것도 아니었다. 뱃가죽은 벌려져 내장을 질질 흘리고 있었고, 가슴 부위는 움푹 들어간 것이 딱 봐도 갈비뼈가 대여섯 개는 부서져 있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또한 얼굴의 한쪽은 강한 산성 물질에 노출이라도 된 것인지 완전히 눌어붙어 있었다. 까놓고 말해서 전체적으로 결코 살아있는 사람이라도 생각할 수 없는 비주얼이라는 것.

오히려 죽은 뒤 몇 주는 방치되었던 시체라고 하는 쪽이 훨씬 설득력이 있었다. ……그 정도로 동생의 인격의 눈앞의 굴러다니고 있는 생명체의 상태는 심각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심각했던 것은 동생의 인격은 눈앞의 멀쩡했더라면 자신과 다를 게 없는 반 시체를 보는 순간 깨달을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저 반시체가 본래는 어떤 자였는지. ……그래, 보는 순간 깨달을 수 있었다. 당연한 것 아닌가?

자신의 유일한 빛이었던 존재다. 자신의 유일한 아군이었던 존재이며……, 자기 자신이라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자신의 하나뿐인 가족이었던 자다.

그런 존재가 당장 죽지 않는 게 오히려 신기한 외견으로 바닥을 굴러다니고 있는 것이었다.

공선자에게, 동생의 인격에게 이보다 심각한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렇기에 당연히 동생의 인격은 즉시 눈앞의 시체나 다름없는 자에게 달려갔다.

어째서 자신의 형인 인격이 이 모양 이 꼴인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아니, 애초에 자신은 여기에 이렇게 존재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자신의 또 다른 인격인 형의 인격이 이렇게 자신의 앞에 서있는 거지? 이미 패닉 상태나 다름없는 동생의 인격.

……아니, 공선자의 머릿속에 각종 의문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의문들조차 전부 밀어내며 공선자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감정은 단 두 가지. 공포와 슬픔이었다.

“혀, 형……! 형! 뭐, 뭐야 이게?! 대체 이게 뭐야?! 어째서?! 어째서 형이 이런 꼴이……?! 아, 안 돼! 안 돼, 형!”

“킥킥! 안 되긴 뭐가 안 돼. 이미 벌어진 일을 그렇게 부정해봤자 달라지는 건 없다고 몇 번이고 가르쳐줬잖아?”

이대로는 자신의 유일한 빛을, 아군을, 가족을 잃게 된다. 그 사실에 슬픔을 느꼈다. 동시에 또 다시 어렸을 때처럼 홀로 남게 된다는 사실을 공포를 느꼈다.

그렇기에 공선자는 눈앞의 형의 인격을 껴안으며 현실을 부정했다. 평소라면 얼굴을 새하얗게 질리게 만들었을 내장과 피의 감촉마저 깨닫지 못하며 그저 현실을 부정했다.

그리고 그런 공선자에게 안긴 상태로 이제는 입 외에는 그 어느 신체 부위도 움직이지 않는 것을 느끼며 형의 인격은 쓰게 웃는 것이었다.

알고 있었다. 동생의, 공선자의 ‘본래’의 인격이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그렇기에 안타까웠다.

이렇게 약한 아이다. 세계를 멸망시킨 것은 자신이지 자아를 자각했을 때부터 그저 부조리하게 세계에게 괴롭힘 당해온 이 아이가 아니었다.

이 아이는 그저 자신을 지키는 것에 필사적인, 그저 약하고 여린 아이에 불과했다. 자신의 유일한 아군을 잃게 된다는 공포만으로도 패닉에 빠질 정도로 정신력이 약한 그런 아이.

그런 여린 아이를 이제는 홀로 남겨둘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형의 인격은 안타까웠다. 그리고 동시에 화가 났다.

스스로에게 화가 나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태어난 의미를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어떤 짓을 해서든지 이 여린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기에 자신을 형이라 칭하고 이 아이를 동생이라 이야기한 것 아닌가? 그런데 자신은 스스로의 탄생 의미조차 제대로 달성하지 못하고 이 여린 아이를 내버려두고 떠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그러니 스스로의 의무조차 제대로 달성하지 못한 자신에게 화가 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러나 그는 그런 감정을 숨기고 자신을 껴안은 채로 현실을 부정하는 공선자를 향해 입을 열었다.

“보면 알잖아? 나는 이미 늦었어. 애초에 지금의 난 살아있는 상태라고도 할 수 없어. 아마 여기가 현실이 아니기에 사라지기 전에 이렇게 너랑 대화라도 나눌 기회가 있는 거겠지.”

“어째서……? 어째서 이렇게 된 거야……? 모르겠어. 난 도저히 모르겠어. 왜?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건데?!”

“……기억이야. 너와 나의 기억. 우리가 살아왔다는 기억. 우리가 증명해낸 가치.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난 노력했어. 결코 그 빌어먹을 자식이 원하는 대로 흘러갈 수 없다는 일념하에 내 모든 걸 받쳤어. 그 결과가 이거야. 지켜냈다, 라고 말해야 할까? 솔직히 말해서 그저 운이 좋았다고 이야기하는 게 정답이겠지. 킥킥! 상대가 어지간히도 대단한 존재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내 생각보다 더 대단한 존재였다는 거지.”

자신의 형이 하는 이야기를 공선자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도대체 기억이 뭐라고 자신의 하나 뿐인 인도자가 이런 꼴이 되어버려야 했단 말인가?

그에게 있어서 기억보다 그가 더 중요했다. 자신의 하나뿐인 이해자가 더 중요했단 말이다! 그런데 어째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렇게 되었단 말인가?!

“여기는 네 정신세계야. ……그리고 방금 전까지만 해도 너와 나, 우리 두 사람이 가지고 있던 기억을 노리고 정체불명의 존재가 침입했어. 아마도 그 천사 녀석이 이야기했던 에볼루션 시스템인지 하는 것은 각인시킨다는 행위가 우리들의 정신세계에서 그와 같은 괴물로서 형상화 된 거겠지. 요컨대 에볼루션 시스템이 우리들의 기억을 지워버린다는 현상이 우리들의 정신세계에서 우리들의 기억을 노리는 괴물로서 형상화되었다는 이야기야.”

그리고 이 정신세계에서 그는 싸웠다. 자신과 동생의 기억을 위해서. ……설령 그것이 비극으로 점철되어 있었다고 해도 자신들이 삶이 결코 무의미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

“그리고 날 바쳤어. 결코 이긴 게 아니야. 애초에 그건 싸운다고 해서 이길 수 있는 존재가 아니야. 그렇기에 난 내 기억을 바쳤어. ……‘나만’의 기억을 바쳤어. 애초에 난 동생에게서, 파트너에게서 비롯된 존재야. 동생의 기억만 멀쩡하다면 세뇌를 풀었던 그때처럼 일을 해결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날 바쳤어. ……하지만 역시 세상일은 생각대로 되지 않는 모양이야.”

그래, 애초에 언제 이 빌어 처먹을 세상이 그의 편이 되어준 적이 있단 말인가? 언제나 부조리함만을 자신에게 강요하며 정작 자신이 무엇인가를 할 때는 칼같이 대가를 요구하는 게 이 세상이었다.

그리고 세상은 또 다시 대가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단순히 형의 인격이 지닌 기억만으로는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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