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화 〉제 01계-챕터 01: 에볼루션 시스템
기억을 유지한 채로 에볼루션 시스템을 각인 받기 위해서는 더한 대가를 지불할 필요가 있었다.
세뇌를 풀었을 때와 마찬가지다. 강력한 세뇌를 풀기 위해서 형의 인격은 동생의 인격이 지닌 백업된 기억을 요구했을 뿐 아니라 또 다른 대가로서 자신의 이성 ‘일부’를 지급했다.
그 결과 형의 인격은 ‘제어할 수 있는 광기’를 가지게 되었다. ……설령 제어할 수 있다고 해도 광기는 광기.
설령 자신이 일반인과 다르다는 사실을 자각한다고 해도 자신이 일반인과 다르다는 ‘사실 자체’는 없었던 일이 되는 게 아니다.
그리고 그렇게 세뇌를 풀기 위해서 광기를 대가로서 얻을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에볼루션 시스템을 각인 받으며 기억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제 준하는 대가가 필요했다.
그렇기에 형의 인격은 그 대가로서 기꺼이 자기 자신을……, 자신이라는 자아 자체를 대가로서 지불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지금의 이 광경. 당장에라도 죽어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로 망가져 버린 형의 인격의 모습.
“나, 나는 그런 걸 바라지 않았어! 대가가 필요했으면 차라리 나를……! 나를 바치지 그랬어! 그랬으면……, 그랬으면 안식을 바라던 난 죽고 삶을 바라던 형은 설령 멸망이 예정되었던 세계라고 해도 살아갈 수……!”
“캬하하하! 이것 참! 내가 모르는 사이에 우리 파트너, 농담하는 실력이 많이 늘었는데? 파트너……, 내 동생. 내가 삶을 원했던 건 동생한테 자유를 주고 싶었기 때문이야. 그런데 동생을 제물로 바치고 나만 살아남으라고? 본말전도도 정도가 있다고. 또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나도 동생 이상으로 살아가는 거에 염증을 느끼고 있기도 했고 말이야.”
그러니 이것은 어떤 의미로 형의 인격의 욕심이었다. 동생을 위한 희생이라는 의미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형의 인격이 그렇게 ‘하고 싶었기’에 저지른 일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렇게 슬퍼하지 말라고. 오히려 욕을 해, 욕을.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동생을 또다시 누군가의 꼭두각시로 살아가게 만든 엿 같은 형이라고 말이야. ……난 설령 누군가의 꼭두각시가 된다고 해도 동생이 ‘공선자’로서 살아가 줬으면 바랐어. 그야 내가 아는 동생을 할 때는 할 줄 아는 동생이거든! 살아만 있다면, 그래, 설령 누군가의 꼭두각시라고 해도 살아만 있다면 언젠가는 자유를 쟁취할 수 있을 거라고 난 믿고 있으니깐 말이야!”
그러니 살아줬으면 했다. 뭐가 되었던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지 않고 살아가 줬으면 하고 형의 인격은 바랐던 것이다.
“그러니 후회하지 않아. 설령 동생이 날 나무란다고 해도, 나를 증오하게 되었더라고 해도 난 후회하지 않아. 이건 내가 원했던 결과. 내가 바랐던 소망. 그러니 결코 후회하지 않아. 만족한다, ……라고는 말하기 힘드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그 망할 천사의 뒤에 있을 녀석의 아구창을 확 뭉개버리고 싶었으니깐 말이야. ……그렇지만 후회는 하지 않아.”
“후, 후회해! 후회하라고! 이게 뭔데……! 형은……, 형은 나 이상으로 살아가면서 절망밖에 겪지 못했잖아! 이런 인생……, 이런 인생을 후회하지 않으면 도대체 뭘 후회하라는 건데……!”
모르겠다. 도저히 모르겠다. 어째서 이렇게 된 건지. 어째서 자신은 이런 절망밖에 겪을 수 없는 것인지 도저히 모르겠다.
그러니 제발 누군가 가르쳐줬으면 좋겠다. 자기가 도대체 뭘 어떻게 했어야 했던 것인지 누가 가르쳐줬으면 좋겠다.
“아니, 후회만큼은 하지 않아. 절대로 후회만큼은 하지 않아. 그렇지 않으면 도대체 우리가 살아온 삶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데? 그러니 후회만큼은 하지 않아. 설령 결코 즐거웠다고 이야기할 수 없는 인생이라고 해도 무의미하게 만들지 만큼은 않을 거야. 그러니 동생도 후회만큼은 하지 말라고. 후회만 하지 않는다면 그 인생은 뭐든지 간에 의미가 있는 거야. 나는 그렇게 생각하거든. 캬하하하! 내가 생각해도 꽤나 멋있는 말을 한 것 같은데!”
끝의 끝에 가서도 결코 후회만큼은 하지 않는다. 그렇게 이야기하며 제대로 된 호흡조차 못할 텐데 광기가 어린, 그러면서도 통쾌하기 그지없는 웃음을 토해내는 형의 인격.
그 인격에 공선자는 도저히 어떤 말도 꺼낼 수 없었다. 그저 눈물을 흘렸다. 더 이상 흐를 눈물도 없이 말라버렸다고 생각했던 눈물로 또다시 바짝 말라 충혈되었던 눈을 적시는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난 이대로 그저 사라지는 게 아니야. 확실하게 남아있을 거니깐 말이야. 너의 안에, 너의 일면으로서.”
“……나의 일면?”
이해할 수 없는 그 발언에 공선자가 묻자 형의 인격이 미소 지으며 대답해주는 것이었다. 애초에 자신이 있었던 게 이상했던 일이라면서.
“하나의 신체에 하나의 인격. 이게 당연한 거야. 오히려 여태까지 우리가 이상했던 거지. 그러니 이제야 정상으로 돌아간다. 그것뿐이야. 기억의 소실, 세뇌에서 해방된 대가였던 광기. 그 모든 건 내가 짊어지고 갈게. 우리 동생은 그저 그 외의 나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면 되는 거야. 그렇게 한다면 난 언제나 너의 곁에서 너의 일면으로 함께 살아갈 거니깐 말이야.”
이거 참, 자기가 말해놓고서 오글거리는 대사라고 형의 인격이 첨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공선자는 도저히 그렇게 능청스러운 반응을 돌려줄 수 없었다.
나와 함께 살아간다고? 헛소리였다. 여태까지 형의 인격이 있었던 것이 당연한 일이었던 공선자에게는 헛소리로밖에 취급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형의 인격이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에서도 전혀 흔들림이 없는 눈빛으로 전하는 그 의사를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그저 오열하며 형의 인격을 껴안을 뿐이었다. 그렇게 해서 무언으로 부탁했다. 제발 나를 혼자 두고 떠나지 말아 달라고 오열하며 부탁했다.
……그러나 현실은 잔혹했다. 형의 인격이 이런 모습을 하면서도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남아있을 수 있었던 것은 여기가 정신세계였기 때문.
정신세계 내부에서 형의 인격이 마지막 의지를 붙잡고 어떻게든 동생의, 공선자의 본래의 인격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싶다는 감정을 불태웠기 때문이다.
그것을 달성했으니 이미 망가져 버릴 대로 망가진 형의 인격이 견딜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 증거로 형의 인격은 남은 신체마저 서서히 푸른빛으로 분해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아, 아니야! 이건 아니야! 아아아아아!!! 제발……! 제발 나만 두고 가지 말아줘! 나도……! 차라리 나도 함께……!!!!!!”
“미안하지만 그건 이 형이 허락을 못 하겠다. 동생아. 넌 살아남아야 해. 살아남아서 우리가 만끽하지 못했던 자유를 만끽해야 해. 덤으로 여유가 되면 그 천사의 뒤에 있는 자식한테 한 방 먹여주고 말이야. 아, 어디까지나 여유가 되었을 때의 이야기니까 말이야? 정 귀찮으면 안 해도 되고!”
스스로가 사라지고 있음에도 불과하고 형의 인격은 속이 시원하다는 미소를 지었다. 지금이라면 세뇌의 부작용으로 늘 머리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던 광기조차 사라지고 없었으니까.
“난……!!!! 난……!!!! 나는 형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한단 말이야……!!!!!!!!!!!!”
“아니, 할 수 있어. 난 결국 너야. 넌 결국 나고. 내가 해냈던 일은 네가 못 할 리가 없어. 봐봐. 세계조차 멸망시켰던 우리라고? 멸망할 세계를 구해내고 자유를 쟁취하는 것 정도는 너도 해낼 수 있어. 그러니 포기만 하지 말아줘. 절망해도 돼. 현실에서 눈을 돌려도 돼. 멈춰 서서 몇 날 며칠 쉬어가도 돼. 포기만 하지 말아줘. 자유를……, 살아가는 것을 포기만 하지 말아줘. 그렇다면 언젠가는 분명 도달할 수 있을 테니까. 내 인생은, 나의 의지로 살아온 인생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았다고 가슴을 펴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언젠가는 올 테니까.”
그렇게 말을 이어가던 형의 인격. 더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이미 끝이 다가와 있었다.
뼈밖에 남지 않았던 손조차 무자비하게 분해되어 푸른빛으로 돌아가는 현상은 어느새 그의 얼굴 윤곽마저 희미하게 만들고 있었으니까.
“거기에 형이……, 형이 없으면……!!!!!!!!!!”
“아니, 있어. 분명히 존재해. 나는 너의 일면. 너는 나의 일면. 네가 살아가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나는 언제나 내 곁에 존재해. 날 믿어. 날 믿는 것은 곧 너를 믿는 걸로 이어져. 그러니 날 믿으면 널 믿어. 내가 가능하면 너도 가능해. 그러니 동생, 네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세계에, 우주에, 그 빌어먹을 신에게 보여주자고!”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태어나면서부터 결코 자신의 의지로 살아본 적이 없었던 공선자가 그게 가능할 리가 없었다.
심지어 누군가의 명령에 따라서 움직일 때조차 자신의 또 다른 인격에게 전부 떠맡겨버렸던 그가 아닌가?
그런데 이제 와서 자신의 의지로 뭘 어떻게 하란 말인가? 바라왔던 자유를 얻은 것도 아니었다.
결국에는 누군가의 의지에 따라 그 자의 손바닥 위에서 춤을 춰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공선자에게 지금에 와서 뭘 어떻게 하란 말인가?
모르겠다. 도저히 모르겠다. 아니, 알고 싶지도 않았다. 지금은 그저 죽고 싶었다. 눈앞의 형의 인격을 대신에 자신이 죽고 싶었다.
살아야 할 사람은 자신이 아니었다. 어째서 그저 죽음으로 안식을 바랐던 자신이 살고 그런 살아갈 가치도 없는 자신을 위해서 헌신해주었던 형이 죽어야 한단 말인가?
이건 잘못되었다. 이런 현실 결코 알고 싶지 않았다. 제발 부탁이다. 누구라도 좋으니까 이 결과는 바꿔라.
이건 아니다. 이것만큼은 잘못되었다. 죽어야 될 사람은 자신이다. 그러니 부디 ‘신’이시여 제발…….
“아, 아아아아아……!!!!!!”
……그와 같은 생각을 떠올리는 순간 공선자는 깨달았다. 지금 이 상황은 그 ‘신’ 만들어낸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런 신이 자신들을 돕겠는가? 그럴 리가. 애초에 지금 상황이 신이 의도한 상황인데 도대체 어째서 지금 여기서 신을 찾는단 말인가?
남은 것은 절망. 절망뿐. 사고 그 자체를 멈추고 싶은 절망뿐. 이미 가라앉을 곳도 없다고 생각했던 절망의 밑바닥에서 더한 심연으로 가라앉으며 공선자는 그저 자신의 반신이 소멸하는 것을 무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나는 너의 일면……. 너에게서 태어난 일면. 그러니 할 수 있어. 분명히 해낼 수 있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살아가는 것을. 그리고 그 너머에서 진정한 자유를 쟁취하는 것을…….”
“아아아악!!!!!!!!!!!!!”
형의 인격이 원하는 대답을 공선자에게서 듣는 일은 없었다. 이런 경우를 상상도 못해봤던 공선자는 그저 무력하게 비명을 지르는 것 외에는 할 수 없었으니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의 인격은 걱정하지 않았다. 진심으로 믿고 있었으니까. 공선자라면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그저 죽기 전의 소망일 뿐일지도 몰랐다. 그야 그 어떤 근거도 없었으니까. 공선자가 자유를 쟁취할 수 있을 것이란 근거는 어디에도 없었으니까.
오히려 그것을 논파하는 근거만 존재할 뿐. 확률로 보자면 공선자가 진정한 의미의 자유를 쟁취하는 일은 결코 없을지도 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의 인격은 끝까지 자신의 동생이라면 해낼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리고 맡겼다. 자신의 모든 것을.
사아아악! 지지지직!!
“……형?”
때가 되었다. 서서히 사라져 가던 형 인격의 형상이 마침내 완전히 푸른빛의 입자가 되어서 흩어져갔다.
산산이, 그것이 사람의 형상을 유지했다는 사실조차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무참하게 흩어져갔다.
그리고 이내 자신이 안고 있던 존재가 완전히 사라져 공허만을 그 품에 안게 된 공선자는 그저 눈물을 흘리고 피를 토하도록 울부짖던 것을 멈추고 멍하니 허공만을 내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것처럼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품에 안겨 있던 존재가 완전히 소멸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처럼.
번쩍! 번쩍! 번쩍!!
……그러나 형의 인격은 그저 사라지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공선자에게 바친다.
그러기 위해서 탄생했고, 또 그렇게 존재했던 존재. 그렇기에 그는 사라질 때조차 동생에게 모든 것을 바치는 것이었다.
가로등이 켜진다. 어둠으로 뒤덮여 평생 빛이 들 일이 없을 것 같았던 공선자의 정신세계에 빛이 드리워졌다.
형의 인격은 사라졌다. 정확히는 통합되었다. 더 이상 인격을 유지할 수 없었던 심상은 그대로 공선자의 심상과 융합되었다.
본래의 모습으로, 애초에 그의 심상에서 나누어졌던 심상이다. 설령 갈라져 오랜 기간을 지내왔다고 해도 융합은 안 될 이유가 없었다.
그것도 단순히 심상과 심상이, 인격과 인격이 섞이는 융합이 아니었다. 이미 소멸 직전을 맞이한 심상이 자신의 모든 것을 한 쪽에게 바치는 융합.
만약 실패한다면 그것은 동생의 인격이, 이제는 홀로 공선자라는 존재로서 재탄생되는 인격이 거부할 경우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