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화 〉제 01계-챕터 01: 에볼루션 시스템
허나, 지금의 공선자의 인격은 융합을 거부할 정도의 정신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공허한 상태.
그렇기에 형의 인격과 동생의 인격이 융합되어 동생의 인격을 베이스로 다시금 공선자라는 존재로 재탄생되는 과정은 너무나도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리고 그와 같은 현실은 공선자의 정신세계에서도 명백하게 드러나는 것이었다. 가로등이 켜진다.
어둠 밖에 존재하지 않았던 공선자의 정신세계에 정말로 옅은 빛을 뿜어내는 가로등이 켜지며 약간이지만 어둠을 몰아냈다.
저 가로등은 산산이 흩어진 형의 인격의 푸른 입자가 형상화한 가로등. 마치 뭉쳐있던 반딧불이가 갑작스럽게 흩어지는 것처럼 사방으로 흩어지던 푸른 입자들.
그 입장들이 어둠을 밀어내며 가로등을 형상화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었다. 수많은 가로등이 좌우로 하나씩, 일정 간격으로 배치며 마치 하나의 길을 밝히는 것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아니, 마치가 아니라 실제로 가로등들의 희미한 불빛들은 꾸역꾸역 증식해가는 어둠을 아슬아슬하게 밀어내며 단 하나의 길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 길은 공선자의 눈앞에서 이어져갔다. 저 멀리, 끝도 보이지 않게 멀리. 당장에라도 어둠에 잠식되어 사라져버릴 것만 같은 길.
하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는 길이, 방금 전까지만 해도 존재하지 않았던 길이 지금 확실하게 공선자의 눈앞에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것은 양쪽이 낭떠러지인 것도, 길이 가시밭길인 것도, 그렇다고 내딛는 순간 무너져 내릴 정도로 얇은 바닥인 것도 아니었다.
그저 단순히 길. 걷기만 하면 되는 길. 이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필사적으로 걷는 사람을 배려해서 만들어낸 것 같은 그런 길이었다.
이는 상징이었다. 형의 인격이 공선자에게 모든 것을 바쳐 그가 무엇을 이루고자 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
형의 인격은 공선자의 길이 되어주고 싶었다. 그를 위해서 희생했다. 그것을 명확하게 증명하는 상징.
심상과 심상이 뒤섞였다. 두 쪽으로 나누어졌던 영혼은 지금 이 순간 다시금 하나가 되었다.
그를 통해서 공선자는 형의 인격의 모든 것을 계승 받았다. 그리고 그를 통해 자신이 나아갈 길을 만들어냈다.
이제 남은 것은 그 길을 걷는 것뿐. 설령 그 길의 끝에 무엇이 있다고 해도 그 길을 걷는 것뿐.
“아아………………………….”
……하지만 지금의 공선자에게 눈앞의 길을 걷는 것도, 아니, 그 길을 직시하는 것조차 가능케 할 의지가 없었다.
남아있는 것은 공허뿐. 눈앞에 자신이 걸어야 할 길이, 자신의 반신이 만들어준 길이 명확하게 존재함에도 그쪽으로 시선을 향할 의지조차 그에게는 남아있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는 그저 눈앞의 길을 외면한 채 끝없이 눈물을 흘리며 홀로 외롭게 어둠 속에 몸을 맡길 뿐이었다.
그러나,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을 비추는 가로등들은 결코 꺼지지 않았다. 언젠가 반드시 공선자가 자신이 비추는 이 길을 걸어줄 것이라고 굳게 믿는 것처럼.
그러니 결코 이 길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처럼 가로등의 옅은 불빛들은 필사적으로 어둠을 밀어내며 그렇게 그 자리에서 빛나고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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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상대적이기 마련이었다. 어떤 이에게는 1초에 불과한 시간이라도 어떤 이에게는 1년이 될 수도 있었다.
같은 시간 속에 살아가더라도 의식에 따라서 시간은 모습을 변화해 나아갔다. 신체가 같은 시간 속에서 살아가도 정신이 다른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있었다.
반대로 정신이 같은 시간 속에서 살아가도 신체는 다른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있었다.
시간이란 결국 세계를 포함한 흐름의 ‘속도’를 정의하는 개념. 세계마저 포괄하고 있는 ‘거대한 흐름의 속도’라는 이야기.
그리고 바다가 그렇듯이 흐름이란 지역마다 다를 수밖에 없었다. 바다의 거대한 흐름은 변화하지 않고 일정할지 몰랐다.
그러나 세세한 흐름은 지역마다 달랐다. 지역마다 해류의 속도도 방향도 천차만별인 바다라는 존재.
시간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나의 거대한 흐름 속에 속하는 시간은 그 속도가 천차만별. 거대한 시간의 흐름 속에 그 방향만큼은 일정할지라도 속도만큼은 각종 환경을 영향으로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
애초에 시간은 관측하는 환경 그 자체가 변화하는데 관측되는 시간이 변화하지 않는 것도 이상한 일 아닌가?
그리고 그 사실을 가장 손쉽게 증명하는 것이 사람의 의식이었다. 시간은 관측하는 사람의 의식에 따라서 그 속도가 변화한다.
누군가에게는 눈 깜짝할 사이였던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억겁의 시간이 될 수도 있는 것. 시간을 관측하는 사고 속도에서 차이가 나면 그 차이에 따라서 한 사람이 하나의 일을 할 때 누군가는 두 가지 일을 할 수도 있는 법.
그만큼 시간은 상대적이었다. 동시에 절대적이기도 하였다. 거대한 흐름의 속도에는 그 누구도 간섭할 수 없었으니까.
아니, 인식조차 불가능했다. 자아를 가진 이들이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자신들이 관측하는 기준의 시간뿐이었으니까.
‘……여긴 어디야? 왜 내가 이런 장소에? 아니, 그것보다 난……, 난 누구지?’
‘머리 아파! 아니, 머리만 아픈 게 아니라 전신이 죄다 아픈데?! 케엑?! 난 왜 바닥에서 자고 있는 거야?’
“다, 당신들은 누구세요?! 여긴 어디죠?! 어, 어째서 절 이런 장소로 데려온 건가요?! 무슨 목적인지 모르겠지만 빨리 절 원래 있던 장소로 데려다 주지 않으면 제……, 제……. 어, 어라? 왜 아무것도 안 떠오르는……?”
그리고 그렇게 상대적인 시간이기에 물리적인 의미에서 같은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정신적인 의미에서 완전히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이들도 있을 수 있었다.
예를 들자면 다른 사람들보다 사고 속도가 10배는 빠른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그 사람에게 있어서 세계는 늘 타인보다 10배는 느리게 흘러가는 세계일 것이다.
물론 그런 사람이 어디 자주 널려있지는 않을 것 같지만 말이다. 단, 훈련을 통해서 평범한 사람보다 훨씬 빠른 사고 속도를 지닌 이들은 분명히 존재했다.
……그리고 모종의 이유로 정신 자체가 현실과 격리되어 다른 시간대에 존재하는 경우도 없지는 않았다.
‘……혀, 현실로 돌아왔어? 내가 정신을 되찾았기 때문인가? ……하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건데? 이, 이제 와서 현실로 되돌아온다고 한들 내,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리고 한 소년은 그와 같은 현상은 겪고 있었다. 완전히 현실과 격리된 공간. 스스로 정신세계라고 불렀던 자신의 정신의 깊숙한 내면.
본래라면 어둠 밖에 존재하지 않았던 내면. 그러나 이제는 옅은 가로등의 등불이 길을 비추는 내면.
그 깊은 곳에서 소년은 홀로 긴 시간을 보냈다. 정확히 얼마만큼의 시간을 보냈는지는 알지 못했다.
아니, 애초에 그걸 시간을 보냈다고 이야기해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소년은 그저 배도 고프지 않고 그 외의 생리현상도 존재하지 않는 정신세계에서 ‘존재’하기만 했을 뿐이니까.
어떤 이는 말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라고 말이다. 때문에 철학적인 의미에서 아무런 사고도 떠올리지 못했던 그를 과연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 들 수도 있었다.
그러나 소년은 확실히 그 어둠 속에 존재했다. 옅은 빛이 필사적으로 몰아내려고 했던 그 어둠 속에서 그저 멍하니 아무것도 떠올리지 못하며 드러누워 있었으니까.
홀로 존재하고 사고조차 못하며 그저 그 자리에 우두커니 존재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것을 과연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확실하게 존재했다.
그저 존재하고 있었다. 현실과는 단절된 시간 속에서 소년은 홀로 쭉. 생각하는 것을 포기하고, 자신의 존재조차 포기하고 세상에서 가장 소중했던 존재를 잃어버린 소년은 텅 빈 채로 그저 존재하기만 했었다.
그러나 그런 긴 시간에도 끝은 있기 마련. 세계에 영원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생각조차 포기하고 스스로의 존재조차 내던져 버려 끝에 가서 소멸을 바랐던 소년.
하지만 도저히 죽을 수가 없었다. 소년이 있던 장소가 현실이 아닌 정신세계이기 때문에 죽을 수가 없었다, 라는 식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설령 죽을 수 있더라도 소년은 도저히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가 없었다. 무서웠다. 죽는 게 무서웠다.
죽어 안식을 취하고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생명체로서의 본능이 죽음을 두려워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허나, 죽음의 공포를 뛰어넘는 허무함이 소년을 잠식하고 있었다. 때문에 죽으려고 한다면 공포를 극복하고, 아니, 정확히는 공포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었으리라.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년은 죽을 수가 없었다. 최후의 최후에, 자신을 위해서 모든 것은 내던진 존재에 의해서,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쇠사슬로 인생이 묶여 버리고 말았다.
자신의 가장 소중한 존재는 죽었다. 완전히 소멸했다. 하지만 동시에 살아있었다. 자신의 안에서, 확실하게 자신의 또 다른 일면으로.
그것은 비유가 아니었다. 확실한 현실이었다. 인격이 완전히 소멸되어 사라졌다고 해도 본래는 하나였던 심상이 융합하며 ‘형의 인격’은 확실하게 소년의 심상에 그 흔적은 남겼다.
정신세계에 존재하는 가로등이 그 증거였다. 본래 소년이 가진 정신세계는 두 개였다. 하나의 형의 인격의 정신세계, 또 하나는 동생의, ‘공선자’의 인격이 지닌 정신세계.
그러나 지금 소년, 공선자에게 남아있는 정신세계는 이 세계 하나뿐. 하지만 그것이 보다 명확하게 형의 인격의 죽음을, 동시에 형의 인격이 공선자의 안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때문에 죽고 싶어도 죽을 수가 없었다. 자신이 죽으면 자신의 안에 남아있는 형의 인격도 죽을 테니까.
그렇기에 그저 텅 빈 채로 존재할 뿐이었다. 죽고 싶지만 죽을 수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그저 그 자리에서 누군가 자신을 죽여주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그저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자신의 정신세계 누군가가 자신을 죽인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그렇기에 공선자는 결국 끝을 맞이했다.
언제까지 텅 빈 채로 있을 수는 없었다. 긴 시간 끝에 사고하는 것을 포기하고 있었던 공선자는 결국 다시금 사고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본능이었다. 이대로는 정말로 정신이 죽어버린다는 본능이 공선자의 의식을 다시금 일깨웠다.
생각하기 싫어도 생각하게 만들었다. 자신이 형이라는 소중한 존재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시켰다.
그 절망감에 또다시 생각을 포기하고 싶었다. 그 역시 생존본능. 이대로 있으면 정신이 붕괴한다는 사실에 정신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 행한 생존본능.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생각조차 포기하고 있어봤자 기다리는 것 역시 서서히 정신이 말라 소멸하는 것뿐.
그렇기에 홀로 남은 공선자의 정신은 기다렸다. 긴 시간 끝에 어떻게든 무너지기 직전이었던 정신을 회복시켰다.
그리고 아슬아슬하게 회복한 정신을 각성시켜 다시금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들었다.
……허나, 부족했다. 한 번으로는 부족했다. 한 번의 회복으로는 공선자의 정신이 자신의 유일한 아군이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공선자는 자신의 정신세계에서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사고를 포기했다, 다시금 사고를 붙잡았다.
그 과정을 몇 번이고 반복하는 과정에서 정신세계에서는 현실과 괴리된 시간이 끝없이 흘러갔다.
그리고 마침내 공선자는 간신히, 정말로 간신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아니, 억지로 받아들이게 만들었다는 것에 가까울 것이다.
자신이 홀로 남았다는 사실을, 자신의 가장 소중한 반신이 소멸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게 그가 아슬아슬하게 정신적 충격을 견뎌낼 수 있게 된 그 순간……, 공선자는 마침내 현실에서 각성했다.
“동굴……?”
그리고 자신이 현실에서 처해있는 상황을 확인하고 멍하니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분명히 지구에서 죽었을 터인 자신이 거대한 동굴 한가운데에 누워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