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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화 〉제 01계-챕터 01: 에볼루션 시스템 (26/194)



〈 26화 〉제 01계-챕터 01: 에볼루션 시스템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동굴.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선자가 자신이 있는 장소에 대해서 알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어둠에 익숙해지는 훈련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훈련을 받은 것은 공선자의 신체를 대신 움직여주던 형의 인격이었지만 어쨌든 공선자의 신체인 것은 변함이 없었다.

형의 인격이 단련해왔던 공선자의 신체는 그의 본래의 인격에게 계승되었다. 암살자에 가까운 요원으로서 활동하던 공선자의 신체다.

이런 어둠 속에서도 누구보다 빠르게 어둠에 적응되게 만들어주는 훈련이 각인되어 있다는 이야기.

그렇기에 공선자는 주변의 사물조차 분간하지 힘든 어둠 속에서도 자신이……, 아니, 자신뿐만이 아니라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 여럿이 함께 널브러져 있는 장소가 어디인지 제대로 인식할 수 있었다.

“젠장……! 여기는 도대체 어디야?! 어떤 자식이 이따위 짓을 벌이고 있는 거야?! 걸리기만 해봐! 아주 작살을 내버릴 테니까!”

“아악! 벼, 벽인가? 제대로 앞이 안 보이니까 어디가 어디인지 알 수가 있어야지……. 저기요? 보아 하니까 저 말고도 다른 분들도 계시는 모양인데 여기가 어디인지 알고 계시나요?”

“보면 몰라? 하나같이 그런 거 모른다는 반응이잖아! 아니, 여기가 어디인지 이전에 자기에 대한 것조차 떠올리지 못하고 있다고? 네 녀석은 자기가 누구인지는 떠오르냐?!”

“……이게 말로만 듣던 기억상실이라는 건가? 설마 내가 겪게 될 줄은 몰랐는데. 아니, 그런데 난 어떻게 기억상실이라는 단어랑 그 뜻을 이해하고 있는 거지?”

대충 새어 봐도 수십은 되어 보일 것 같은 사람들이 자신과 마찬가지로 동굴 내부에서 막 정신을 되찾고 있는 장면을 공선자는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정신을 되찾은 뒤에 보이는 반응들을 확인하며 공선자는 저들과 자신의 가장 치명적인 차이점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전원 기억을 잃어버린 건가? 그 천사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하, 하지만 그렇다면 어째서 나만?’

그것은 다름 아닌 정신을 차린 이들이 자신들이 어째서 이 장소에 있는지는 고사하고 자신들이 누군지 조차 모르고 있다는 점이었다.

처음부터 자기가 누구인지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 아니었다. 알 수 없는 장소에서 깨어났다는 사실에 대부분이 처음에는 자신이 어디 있는 것인지 확인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기억이 완전히 날아가 버린 상황에서 그 사실을 장시간 인식하지 못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당연히 이 자리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들이 가지게 된 위화감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아니, 설령 10명 중 9명이 자신들이 기억을 잃었다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하고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는 것에만 집중한다고 해도 그 중 1명이라도 자신이 기억을 잃었다는 사실을 눈치 채면 다른 이들도 당연하게 눈치 챌 수밖에 없었다.

그 한 사람이 자기가 누구인지 떠올리지 못해서 반쯤 패닉에 빠져서 자기가 누구인지 모르겠다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면 다른 이들 역시 한 번은 자신에 대해서 떠올리려고 할 것이었다.

그리고 깨달게 되는 것이다. 자신 역시 자기가 누구인지 제대로 떠올릴 수 없다는 사실. 그렇게 연쇄적으로 이 장소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기억상실이라는 사실을 깨달게 된다.

그것은 크나 큰 정신적 충격으로밖에 다가올 수 없었다. 자신들이 어째서 이 장소에 모여 있는 것인지, 어째서 이런 영문을 알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인지 이해를 하지 못하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 설상가상으로 자기가 누구인지조차 모른다? 하긴, 자기가 누구인지조차 모르니 여기에 자기들이 왜 모여 있는 것인지 모르는 게 당연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자기가 처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보다 자기가 누구인지조차 모르는 기억상실이라는 상황이 더욱더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는 점이었다.

단 1%의 미지보다 100%의 미지가 더욱 더 무섭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거기에 여기에는 개인이 아니라 다수가 존재하는 상황.

공포는 쉽게 주변으로 전염되기 마련. 한 사람이 패닉에 빠지는 순간 이 장소에 있는 다른 이들 역시 손쉽게 그 공포에 전염되어 패닉에 빠지기 마련이었다.

“너, 너희들 전부 날 여기에 가둔 녀석들하고 한 패인 거 아니야?! 으악?! 누, 누구야?! 가까이 오지 마!”

“가까이 오지 말라고 해도 이제야 간신히 뭐가 좀 보이기 시작하는 상황에서 실수로 좀 다가갈 수도 있지!”

“어, 엄마? 아빠? 안 떠올라……. 난 누구?! 애초에 부모님이 있기는 한 거야?! 어, 어째서 난 이런 장소에 있는 건데?!”

“일단은 당황하지 말고 그 자리에 가만히 있는 게 어떠할지 생각하는데……. 뭐가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이해는 안 되지만 적어도 어둠에 익숙해져서 주변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정도로…….”

“그렇게 느긋하게 있을 수 있을 것 같아?! 여기가 어디인지도 모르는데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는 거면 어쩔 생각인데?! 일단 움직여서…….”

“자, 잠깐 오히려 함부로 움직이는 게 더 위험할 수도 있잖아?! 꺄악! 누, 누구야?! 누가 나를 치고 간 거야?!”

거기에 당장 어두워서 제대로 사물을 분간하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 처한 인간이 하나도 아니고 무려 수십에 가까울 정도로 뭉쳐 있었다.

오히려 난리가 나지 않으면 이상했다. 자신의 기억이 날아갔다는 사실에 망연자실한 사람, 일단 뭐가 되었던지 빛이 있는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서 막무가내로 움직이려는 사람.

그리고 그렇게 막 움직이는 사람에게 치여서 그 사실에 분노를 표하는 사람. 어떻게든 이성적으로 생각하려고 하지만 목소리에 공포를 숨길 수 없는 사람.

……무엇보다 자신과 같은 상황에 처해있다고 해도 생판 모르는 남과 함께 있다는 사실 그 자체에 공포를 느끼는 사람.

그야말로 가지각색의 반응을 보이는 이들이 한 자리에 뭉쳐 있는 것이었다. 아마 누군가가 흉기라도 가지고 있다면 그대로 피를 봐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단체공황상태에 빠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공선자는 다시금 그들과 자신의 결정적인 차이인 ‘기억 유무’의 차이를 인지할 수 있었다.

……저들과 달랐다. 공선자는 확실하게 기억했다. 스스로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저들과 다르게 공선자는 모든 기억을 지니고 있었다.

자신의 이름을 기억했다. 자신의 일생을 기억했다. 잊고 싶었던 지옥을 떠올렸다. ……자신이 어째서 이 장소에 있는 것인지도 기억하고 이해하고 있었다.

아마 이 장소가 바로 그 천사가 이야기했던 ‘멸망이 예정된 세계’인 것이겠지. 형의 인격이, 아니, 이제는 자신이 된 자신의 또 다른 일면이 천사를 죽인 결과인 것이다.

신이나 다를 바 없는 존재에게 대적했다. 그 결과 자신이 원했던 안식을 얻지 못하고 결국에는 소생되어 멸망이 예정되었다는, 꿈도 희망도 없는 세계에 떨어진 것이었다.

그리고 주변에 있는 이들 역시 공선자, 자신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들 역시 공선자처럼 원래라면 죽었을 이들.

하지만 삶을 갈망하고 그 갈망을 눈 겨워 본 그 위대한 존재라고 하는 존재에게 거래를 제안받은 이들.

그리고 공선자와 다르게 그 거래를 받아들인 이들. ……대가로서 자신의 모든 기억을 잃고 이 멸망이 예정된 세계에 소생된 위대한 존재의 ‘말’이라는 소리였다.

‘……어째서 나만 기억을 유지하고 있는 거지? 정말로 형의 희생으로 난 기억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거야?’

그리고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현재의 상황을 이해하고 있는 공선자는 주변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의 주인들과는 다른 의미로 공황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자신만 기억을 유지하고 있다. 그 사실 그 자체가 공선자에게 공황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한 이유였다.

다른 이들과 다르다. ……공선자는 과거 그것을 이유로 정부에 끌려가 지독한 생체실험을 당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본능적으로 타인과 자신이 다르다는 사실에 거부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잘못이라는 게 아니라 그것만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고 이야기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단순히 그런 위협 때문에 공황상태에 빠진 게 아니었다.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형의 인격의 희생으로 기억을 유지했다. 기억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이해가 가질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 거지? 공선자의 냉정한 부분이 생각했다. 그 위대한 존재라는 이는 말 그대로 신이나 다름없는 존재 같았다.

그런 존재인 만큼 공선자가 기억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선자의 기억을 내버려두었다.

……어째서? 설령 형의 인격의 희생으로 기억을 유지할 수 있더라도 그 위대한 존재의 입장에서는 얼마든지 공선자의 기억을 삭제할 수 있었을 터.

그런데 어째서 내버려두는 거지? 도대체 그 위대한 존재라는 존재의 목적은 무엇인가? 사실을 딱히 기억을 없애지 않아도 상관이 없었던 건가?

……그것도 아니면 공선자 따위가 기억을 유지하던 말던 신경을 쓸 필요도 없다는 뜻인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아니, 애초에 어째서 형의 인격이 희생하는 것으로 자신의 기억이 유지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거기에 방금 전에 이야기했던, 타인과 다르다는 사실에서 발생하는 불안감이 더해져 공선자는 주변의 다른 이들과는 다른 의미로 생각을 정리할 수 없어서 패닉상태에 빠지는 것이었다.

쿠웅!!!!!!

“끄아악!!”

“조용!!!!!!!!! 이제부터 시끄럽게 떠들거나 함부로 움직이는 자는 즉시 이와 같이 제재를 가하겠다.”

그리고 공선자를 비롯해 이 장소에 있는 모든 이들이 그대로 공황상태에 빠져서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을 상황으로 진행되려는 순간이었다.

갑작스러운 비명소리. 그리고 비명소리가 들려오기 전에 동굴을 채웠던 묵직한 가격음. 평범한 장소에서 들렸다면 그렇게까지 큰 소리는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장소는 동굴. 아직까지 공선자처럼 확실하게 그 사실을 인지한 이들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현실이 그랬다.

그리고 그렇기에 소리는 울려 퍼졌고 그 결과 단순히 사람을 바닥을 향해 내리꽂아 버리며 발생한 둔탁한 소리에 불과했지만 동굴을 가득 채울 정도로 큰 소리처럼 들리는 효과를 만들어낸 것이었다.

“………뭐야? 누, 누구야?”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그리고 그 소리에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끼며 순식간에 소란을 잠잠하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

아직까지 웅성거리는 소리는 들려왔지만 방금 전처럼 당장이라도 자기들 멋대로 움직이며 이 어두운 장소에서 서로에게 들이박으며 바닥을 뒹구는 난장판을 만들 것 같은 기색을 사라졌다.

지금은 그저 간신히 앞이 보이기 시작한 이 상황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알 수가 없어서 전전긍긍하기 시작했을 뿐이었다.

어떻게든 주변이 진정이 된 것을 확인한 것인지 자신에게 달려들려던 한 사람을 그대로 바닥에 처박은 한 남자가 다시금 입을 열어 진중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이대로 단체로 패닉에 빠져봤자 뭐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아니, 오히려 일이 더 복잡하게만 될 뿐. 그러니 일단은 진정해라. 괜히 이 녀석처럼 아무 생각 없이 뛰어다니다가 다른 사람한테 상처를 입히거나 하지 말고.”

그렇게 이야기하며 남자는 자신이 한쪽 손으로 바닥에 처박았던 사람을 그대로 자신의 정면으로 집어 던지는 것이었다.

뭐, 집어던진다고 해도 그대로 허공으로 들어서 집어던졌다기보다는 바닥에 쓸리듯이 밀쳐냈다는 것에 가까웠지만 말이었다.

“끄으윽! 뒤, 뒤통수가……!”

“괜한 소란을 부리는 녀석들은 망설이지 않고 제압하겠다. 기억에는 없지만 적어도 내 신체능력이 다른 사람들보다는 뛰어난 것 같으니 말이야. 웬만해서는 어렵지 않게 제압할 수 있겠지.”

인간의 범주에서 벗어나거나 한 수준의 힘은 아니었다. 그러나 일반인들 기준에서는 충분히 상위권에 들어갈 수준의 힘이었다.

건장한 남자 한 명의 목을 한손으로 붙잡고 허공으로 휙휙 던지는 수준은 아니어도 자유롭게 들었다가 놨다가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것을 증명했다.

당장 윤곽이 흐릿하게 보이지 않았지만 필시 제대로 식별할 수 있는 장소에서 확인했다면 전신이 근육으로 우락부락한 마초남일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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