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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화 〉제 01계-챕터 01: 에볼루션 시스템 (27/194)



〈 27화 〉제 01계-챕터 01: 에볼루션 시스템

“그러니 일단은 진정하고 내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하는군. 우선은 우리들이 처한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서 몇 가지 질문을, 그리고 그렇게 상황을 파악한 뒤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방침을 세우고 싶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불행이라고 해야 할지 보아 하니 어느 정도 숫자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모양이니깐 말이야.”

힘으로 순식간에 한 명의 남자를 제압한 사내의 이야기였다. 카리스마……, 라고까지 할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당장에라도 단체공황에 빠질 것 같은 상황에서 한 줄기의 이성을 붙잡게 만들 정도의 힘은 존재했다.

……그리고 그 남자의 발언에 공선자 역시 일단은 이성을 되찾을 수 있었다. 애초에 자신을 제외한 다른 이들의 기억이 날아간 것의 원인조차 그는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기억만이 어떻게 남아있는 것인지 그 원인을 생각해봤자 별수 없었다.

일단 지금은 자신만이 기억을 보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자신의 형이 해준 희생, 그 희생이 만들어낸 기적이라 생각하며.

“이, 일단은 저 사람이 하는 말대로 하자. 이대로 우왕좌왕해도 뭐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니까.”

“그렇지만 지금 상황을 해결할 방침이라니……. 그런 게 있는 거야?”

사내의 묵직한 목소리, 그리고 한순간에 제압당한 것으로 보이는 남자의 괴로운 음성에 사람들은 함부로 남자에게 반발을 하는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그 대신 이 영문을 알 수 없는 상황을 해결해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반은 자의, 반은 타의로 사내가 하자는 대로 하겠다는 의사를 조금씩 내비치는 것이었다.

공선자 역시 일단 이성은 되찾았지만 자신이 이제부터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어 일단은 먼저 이 난리 통 속에서 나선 남자를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고 말이다.

“반대하는 사람이 없어 보이니 다행이군. 그럼 슬슬 어느 정도 어둠에 익숙해져서 서로 간의 윤곽 정도는 확인할 수 있을 정도가 된 것 같군. 그러니 내 질문에 대답해줄 수 있는 사람은 손을 들어줬으면 좋겠군. 중구난방으로 떠들면 방금 전과 같은 상황이 반복될 뿐이니 손을 든 사람이 있으면 내가 그 사람에게 다가가 이야기를 들어보겠다. 단, 이야기는 여기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들을 수 있을 정도의 음량으로 하도록 하지. 지금은 정보를 공유하는 게 우선이니 말이야.”

그리고 공선자는 그렇게 사내가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며 솔직하게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 자신은 기억이 존재했다.

그렇기에 이성을 되찾은 지금은 현재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저 사내는 그러지 않을 터. 공선자와 다르게 기억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침착하게 자신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 진정시키고 상황을 정리하는 모습에 과연 감탄을 안 할 수 있겠는가?

자기가 누구인지조차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서 잘도 저 정도로 이성을 유지하는 것을 넘어서 현재의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 직접 나서려고까지 할 수 있었다고 감탄이 나오는 것.

“일단은 자기가 누구인지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손을 들어줬으면 좋겠군. 나는 현재 자신에 대한 기억이 없다. 방금 전 주변에서 이야기하던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대부분이 비슷한 상황인 것 같더군. 기억상실이라는 녀석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여기 있는 전원이 기억상실인 건지, 아니면 일부만 기억상실인 것인지 아직 확정이 안 되어 있으니 기억을 유지하고 있는 이가 있다면 손을 들어줬으면 좋겠다. 적어도 기억을 완전히 잃어버린 사람들보다는 정보를 더 가지고 있을 테니깐 말이지.”

사내의 그와 같은 질문에 사람들은 침묵을 하며 간신히 어느 정도 보이기 시작하는 동굴 내부를 둘러보는 것이었다.

혹시라도 자신과 다르게 기억을 유지하고 있어 지금의 상황을 설명해줄 사람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담고서.

……그러나 사내의 질문에 그 누구도 손을 들지 않았다. 무려 수십 명이 되어 보이는 사람들 중에서 단 한 명도 기억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없는 것.

……실제로 이 내부에서 기억을 유지하고 이는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공선자를 제외하고 말이다.

‘소, 손을 들면 안 되겠지? 그럴 게 나 혼자만 기억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면 의, 의심받을 게 뻔하잖아!’

그리고 유일하게 기억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인 공선자. 그는 당연하게도 손을 들을 생각이 없었다.

당장 자신들이 어째서 이 장소에 모여 있는 것인지, 어째서 기억을 잃은 것인지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

그들에게 공선자가 지닌 정보는 그야말로 값진 정보일 것이다.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나 다름없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들에게 사막에서 물을 베푸는 것처럼 정보를 공유할 수는 없었다.

그럴 것이 이 자리에 복수의 사람이 아닌 오로지 공선자‘만’이 기억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당연하게도 어째서 공선자‘만’이 기억을 유지하고 있는 것인지 의심을 할 것이었다.

그리고 인간이 조직한 단체에 개인인 공선자가 의심을 사게 된다면 그 뒤에 어떻게 될지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뭐가 되었던지 좋은 꼴 보기는 힘들 것이다. 그렇기에 공선자는 결코 손을 들지 않았다. 애초에 전생……, 이라고 해야 할지도 애매하기는 했다.

죽기는 했어도 환생을 했다기보다는 소생을 한 것이니까. ……하지만 한 번 죽은 것은 확실하니 전생이라고 해야 할까?

여하튼 전생에서도 남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능력을 혼자만 가졌다는 이유로 지옥도를 걸어야 했던 그다.

그러니 결코 함부로 남들과 다르다는 점을 부각할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유일하게 기억을 유지한 공선자가 손을 들지 않으니 당연히 동굴 내부에서는 그 누구도 손을 들지 않는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었다.

“……아무도 없는가. 그렇다면 이 자리에 있는 이 수많은 사람들이 죄다 기억상실이라는 건가. 허참, 이런 일이 있을 수도 있는 건가?”

“어디 마법사한테 단체로 실험이라도 당한 거 아니야? 그런 게 아니면 설명이 되지 않는데?”

“하? 마법사?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세상에 그런 게 어디 있다고!”

“없기는 왜 없어? 세상에서 버젓이 존재해서 문명의 근간을 이루는 게 마법사고 그들의 마법이구먼!”

“헛소리도 그만하시지? 문명을 유지하는 건 과학이잖아? 과학문명이야말로 세계의 근간이라고!”

“과학? 그건 또 뭐하는 거야?”

“과학이 뭔지 몰라요? 그쪽은 의무교육도 제대로 안 받은 건가요?”

“의무교육? 그건 또 뭔…….”

사내가 직접 나선 덕분에 이 자리에 있는 자신들이 전원 기억상실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이들.

그리고 어째서 그런 상황에 처한 것인지 한 여자가 내뱉은 추측을 시점으로 다시금 사람들이 소란스럽게 떠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한쪽은 자신들이 마법사에게 실험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했고, 한쪽은 실험을 당한 거면 어디 거대 기업에 인체실험 같은 걸 당했다는 게 더 현실적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요컨대 마법이 존재한다, 하지 않는다, 와 같은 이야기로 충돌하기 시작한 것. 이상한 것은 한쪽은 당연히 마법 같은 것이 존재한다고 하는데 다른 한쪽은 역으로 당연하게도 마법 따위 존재할 수 없다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마치 인식 그 자체가 다른 것처럼 말이다.

짝! 짝!!

“조용!!!!! ……보아하니 우리들은 서로가 가지고 있는 상식이 무언가 치명적으로 다른 것처럼 느껴지는군. 그러니 그 이상의 분쟁은 그만하도록. 상식이 다른 사람끼리 싸워봤자 평행선을 달리 뿐이다.”

‘……마법은 모르겠고, 초능력은 실존하던데. 아, 아니, 초능력도 있으니까 마법 같은 것도 있을 수 있으려나?’

또다시 웅성거리며 소란스러워지던 이들을 진정시키며 사내가 이야기할 때 공선자는 홀로 생각하는 것이었다.

물론 생각한 것은 입 밖으로 내는 우행을 범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공선자라는 인물 자체가 워낙 조심스럽고 소심한 타입이기도 했고 말이다.

“그러니 일단 지금은 현재의 상황을 파악, 그리고 이후의 방침을 결정하기 위해서 다시금 몇 가지 질문을 하고 싶다. 그러니 따라주기 바란다. 경우에 따라서는 생존에 직결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본래라면 다수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만큼 이쯤 되면 네가 뭔데 이래라저래라 하냐고 반발을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며 서로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을 만큼 어둠에 익숙해지자 도저히 지금 나서고 있는 사내에게 반발하기란 힘들었다.

그럴 것이 현재 다른 사람들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나선 사내는 공선자가 생각한 것처럼 맨손으로 수박도 손쉽게 으깰 것 같은 피지컬을 지닌 남자였으니까. 요컨대 딱 봐도 마초였다는 소리.

그렇기에 남자든 여자든 함부로 반발하지 못하고 일단은 남자가 하자는 대로 하는 것이었다.

“그럼 다들 수긍해준 것 같으니 다음 질문을 하마. 보아하니 우리들이 잃어버린 기억은 뭐라고 해야 할까……, ‘상식’이라고 해야 할지, ‘지식’이라고 해야 할 것을 건들지 않고 그 외의 기억만을 지워버린 것 같은 느낌인 것 같다. 그러니 아마도 ‘지식’에 대해서는 잊어버리지 않을 것 같으니 그것을 전제로 물어보마. ……사람마다 지니고 있는 상식이 다른 것 같기는 하지만 말이지. 혹,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 중에서 현재 이 장소가 어딘지 정확하게 구분하고 빠져나갈 만한 지식을 지닌 사람이 있으면 손을 들어주기 바란다. 일단은 뭐가 되었던지 빛이 있는 장소로 나아가고 싶으니 말이야.”

사내는 말을 한 뒤 손을 드는 이들이 없나 확인하기 위해서 주변을 둘러보는 것이었다. 그러니 때마침 몇몇이 손을 드는 것을 확인하였다.

“흠, 잠깐만 기다리도록. ……됐군. 그래, 일단은 당신부터 이야기해줬으면 좋겠군. 여기가 어디인지 아는 건가? 아니면 여기서 빠져나갈 방법을 아는 건가?”

“여기가 어디인지는 구체적으로 몰라요. 동굴이라는 사실 정도밖에 말이죠. 하지만 동굴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빠져나갈 수단을 몇 가지 떠올릴 수는 있어요.”

“나도 마찬가지야.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동굴에 대한 경험은 있거든. ……아니, 기억이 없으니 있는 것 같다고 해야 하나? 동굴에 대해서는 상세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의…….”

“이쪽도 이하동문. 일단 여기서 벗어나려고 한다면 안내 정도는 해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아, 그렇다고 무조건적인 신뢰는 말아줘. 내가 가진 지식에 따르면 어디까지나 이 장소에 그렇게까지 깊지 않은 경우, 그리고 출구가 확실하게 존재할 경우에만 해당하는 사항이니까.”

남자의 말에 손을 들었던 이들이 하나둘씩 말을 꺼내는 것이었다. 남자가 한 여자의 앞에 선 것은 그 여자만 발언을 해달라는 의미였다.

괜히 자기들 이야기만 하다가 이야기가 진척되지 않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 그런데 그것을 무시하고 자기들 마음대로 말을 꺼내는 것이었다.

그것을 통해서 현재 이들이 확실하게 통솔된다고 이야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일단은 협력한다는 분위기였기에 서로의 말을 끊거나 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라고 해야 할까?

“흐음……. 여기가 어디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일단은 빛이 있는 장소로 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인가. 여기에 머문다고 해서 뭔가 해결될 것 같지도 않으니 일단은 나갈 수 있으면 나가도록 할까?”

당장은 위험이 느껴지는 장소는 아니었지만 이 장소가 언제까지 안전하다고 단언할 수는 없었다.

자신들이 어디에 있는 것인지 확실하게 알지 못하는 이상은 이 장소에서 무엇이 튀어나올지 확신을 할 수 없었으니까.

그러니까 우선은 움직이자. 적어도 빛이 존재하는 장소로 이동하자는 사내의 의견에 반발을 표하는 이들은 없었다.

까놓고 말해서 자신들이 어디에 있는 것인지 확신을 할 수 없는 이상 움직이나 움직이지 않으나 다를 것도 없었다.

애초에 이 동굴에 정말로 출입구가 존재하는지조차 그들은 확신할 수 없었다. 이 장소는커녕 자신들에 대해서도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는 이들이었으니까.

그 증거로 일단은 함께 쓰러져 있던 만큼 같이 행동하게 되었음에도 그 누구도 다른 이들에게 자기소개를 하지 않고 있지 않은가?

이름이라도 서로 밝히고 싶었지만 소개하고자 할 이름조차 기억에 떠오르지 않고 있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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