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화 〉제 01계-챕터 01: 에볼루션 시스템
어떤 이는 이런 정체불명의 지시를 따를 수 있을 것 같으냐며 질색을 하였고, 어떤 이는 뭐가 되었던지 일단은 움직여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어떤 이는 원리를 이해할 수 없는 이 현상을 파고들려고 했으며 또 다른 이는 자신의 상식을 벗어난 이 현상에 공포를 느낀 것인지 아예 눈앞의 반투명한 창을 못 본 것으로 하려고 했다.
그야말로 가지각색의 반응을 보여주는 사람들. 기억을 잃고 거의 경험이라는 것이 거의 백지나 다름없는 상태인 게 분명함에도 그들은 다양하기 그지없는 반응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조용! 다들 가뜩이나 자신들이 어떤 상황에 처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또다시 영문을 알 수 없는 현상을 마주해서 당황한 건 알겠는데, 그렇게 당황하기만 해서는 일이 해결되지 않는다. 그러니 소란을 그만 피우고 우선은 방금 전에 세웠던 방침대로 움직이도록 하지! 이 허공에 떠오른 창에 서 있는 글자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든, 움직이지 않던 결국 우리가 이 동굴에 죽치고 앉아있을 수만은 없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
그러나 그렇게 홀로그램 창의 존재에 대해 각자의 의견을 내놓으며 분란을 일으키려던 사람들은 또다시 나선 마초남의 외침에 합주기가 되어 그에게 시선을 모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계속해서 소란을 피우면 딱 봐도 맨손으로 사람 여럿 잡아봤을 것 같은 저 남자에게 어떤 짓을 당할지 능히 상상이 갔기 때문.
그렇기에 조용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사람들에게 사내는 자신의 의견을 전하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이미 누군가가 이야기했던 대로 어차피 우리들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의식주를 해결해야 한다. 그건 이 창의 지시와의 관계를 때어놓고 생각해도 피할 수 없는 현실. 설령 창의 지시를 따르든 따르지 않든 결국 우리들이 사람들이 사는 장소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지. 그렇다면 차라리 창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것은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그야 적어도 이 창은 우리에게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은가?”
“……확실히 여기에는 가장 가까운 도시인 소나타라는 장소로 이동하라고 이야기하고 있어. 그건 즉 근처에 적어도 도시가 있다는 소리잖아?”
사내의 이야기에 난 여자가 조금 밝아진 목소리로 이야기하자 다른 이들도 그제야 희망을 찾은 것처럼 표정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쯧, 그것도 이 이상한 창이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을 때의 이야기잖아? 거짓말이면 어쩌려고? 그러면 우리는 있지도 않은 도시를 찾느라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그러나 이내 이어진 한 남자의 반론에 또다시 분위기가 어두워지려고 할 때 그 마초남이 그건 아니라는 의미로 고개를 저으며 반론을 펼쳤다.
“아니다. 그렇다고 해도 꼭 우리에게 손해만 있는 건 아니지. 적어도 이 이상한 창의 지시가 우리에게 결코 득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되지 않나? 시간을 소비하게 되기는 하지만 이 정도 사람들이 모여 있다. 아마 서바이벌 지식을 가진 사람도 있을 터. 그들의 도움을 받으면 소비한 시간을 커버해서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의식주를 커버하는 것 정도는 가능하겠지.”
그 남자의 말은 일리가 있어 보였다. 그렇기에 결국 사람들은 잠깐의 시간 동안 근처에 있는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는 것 같더니 이내 그 사내의 말에 따라 움직이기로 하는 것이었다.
“아, 그리고 이제 와서 묻는 말이지만 이 이상한 창, 나한테만 보이는 환상이거나 뭐, 그런 건 아니겠지? 대화의 흐름을 보면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지만 혹시 모를 사태는 대비하고 싶으니깐 말이야.”
그리고 뒤늦게 묻는 마초남의 이야기에 다른 이들이 아니, 그걸 이제 와서 묻는 거야? 라는 표정을 지었다.
동시에 이거 일종의 분위기 환기용 개그인가? 라는 의문도 들었지만……, 사내의 목소리가 워낙 진지했기에 개그는 아닌 것 같았다.
“어, 저기……. 일단 전원 같은 내용을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환상이거나 하는 건 아니지 않을까요? 이 정도 숫자의 집단이 단체로 환각을 보거나 하는 쪽도 이상하고…….”
“흠, 그렇겠지. 미안하군. 괜히 쓸데없는 걱정을 하게 만들었어. 그렇다면 우선은 결정된 대로 이동하도록 하지. 최초의 목표는 이 어두컴컴한 동굴을 벗어나는 것. 그리고 그 뒤 이 창에서 이야기하는 소나타라는 도시를 찾아보도록 하지.”
“그것도 동굴 밖이 제대로 된 환경이었을 때의 이야기지만 말이야. 나가니까 무슨 정글이나 극지 같은 장소여서 제대로 움직이기도 힘든 건 아니겠지?”
사내가 막 이동하자고 이야기하려는 순간 한 사내가 꺼낸 발언에 순식간에 사람들의 분위기가 날카로워지는 것이었다.
최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피하고 희망적인 관측을 하려는 상황에서 저따위 이야기를 꺼냈으니 분위기가 날이 서는 것도 어쩔 수 없지 않은가?
그렇기에 순식간에 저 발언을 꺼낸 사람에게 신경질적인 눈초리가 모이기 시작했는데 그 눈초리에 그 남자가 찔끔 어깨를 떨며 소리치는 것이었다.
“왜?! 뭐! 현실적으로 있을 수 있는 가능성을 이야기한 것뿐이잖아?!”
“진정해라. 그 남자의 이야기도 허투루 들은 건 아니니깐 말이지. 상당히 부정적인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니 말이야. 당장 고민한다고 해서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기는 하니 그때가 닥치면 그때 방침을 다시 짜도록 하겠지만 마음의 준비는 해두도록.”
그나마 마초남이 나서서 중재를 하자 더 이상 그를 책망하는 눈초리를 보내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한 번 가라앉은 분위기는 수습하는 것이 불가능했지만 결국 사람들은 그렇게 가라앉은 분위기로 자신들이 정신을 되찾았던 장소에서 이동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하긴, 애초에 기억을 잃고 영문도 알 수 없는 장소에 쓰러져 있던 집단인 것이다. 분위기가 화기애애하면 그건 또 그거대로 이상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렇게 그 집단 속에 섞여 있던 공선자 역시 자연스럽게 그들과 함께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공선자는 다른 이들처럼 오로지 동굴을 빠져나가는 것이 아닌 다른 것에 집중하고 있는 상태였다.
‘정보……, 정보가 필요해. 형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무엇보다 저, 정보를 우선해서 수집했을 거야. 그, 그리고 정보를 수습하려면 우선은…….’
-정보란 건 말이지. 언뜻 보면 달라 보이는 정보도 가지를 타고 올라가면 같은 정보에 해당할 때가 있어. 그렇기에 쓸데없는 정보를,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정보를 구분하는 기준을 만드는 게 가장 처음으로 해야 할 일이지. 요컨대 새로운 정보를 수집하기 전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보가 무엇인지 먼저 상기하라는 이야기야. 기초 중의 기초라고 할 수 있지! 캬하하하!
공선자가 어떻게든 현재의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 돌연 형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것이었다.
그것은 공선자가 가지고 있는 기억, 그리고 거기에 채색을 입혀주는 것은 형이 공선자에게 계승한 ‘모든 것’이었다.
그렇기에 더욱 또렷하게 기억을 떠올린 공선자는 이내 당장에라도 울 것 같은 기분이 되었지만 어떻게든 표정을 수습하려고 노력하는 것이었다.
그의 형과는 다르게 공선자는 직접적으로 에이전트 훈련을 받는 게 아니다. 그렇기에 오히려 표정을 수습하려던 행동이 더욱 이상한 표정을 짓게 만드는 요소가 되었지만 다행히도 동굴 내부는 아직까지도 어두웠기에 그 누구도 공선자의 표정을 눈치 채지 못하는 것이었다.
당장 서로 본 적도 없는 사람들에게 시선을 줄 만큼 다른 사람들에게 여유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도 큰 이유 중 하나였을 테지만 말이다.
‘저, 정보……. 우선은 내가 가지고 있는 정보부터 확인을 해봐야 해. 그러니까…….’
어떤 상황에서든지 정보라는 것은 큰 힘을 발휘하기 마련이었다. 특히 지금처럼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에 처했을 때 정보의 필요성은 보다 커지기 마련.
그렇기에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그러나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가 무엇인지부터 분류할 수 있을 줄 알아야 하는 법.
그리고 그를 위한 첫 번째 일환이 바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보의 확인이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보만으로도 새로운 정보를 유추해낼 수 있었다.
또한 새로운 정보를 유추해낼 것도 없이 스스로가 가진 정보만으로 답에 도달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게 존재하는 법.
그러니 괜히 방향도 정하지 못하고 무작정 정보를 수집하는 것보다는 현재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보를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 사실을 공선자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정확히는 자신과 계승 받은 형의 경험을 통해서 파악했다.
그렇기에 어떻게든 이성을 곤두세우며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정보를 파악해나가기 시작했다.
보통 이런 일은 역시나 공선자 자신이 아니라 형의 인격이 대신해주던 일. 그것은 이제 와서 스스로의 힘으로 하려고 하니 당연하게도 곤란할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공선자의 가장 기본적인 인격은 상당히 소심한 성격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각종 지옥 같은 경험을 해오며 더 심해진 상황.
형의 인격이 없었더라면 공선자는 진작 시체가 되어버렸을 것이다. 즉, 그는 극심하게 소심한 성격 때문에 원래 스스로 나서서 무엇인가를 하는 타입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그가 스스로 나서서 행동하려고 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처음부터 잘 될 리가 없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선자는 마치 무엇인가에 홀린 것처럼 사고를 이어갔다.
생존본능.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강박관념. 자신의 반신이 자신에게 뭐든 것을 맡기고 떠나갔다는 짐.
그 모든 것이 종합적으로 합쳐져 무의식적으로 공선자가 스스로를 포기할 수 없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렇기에 공선자는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필사적으로 회전시켰다. 그렇게 해서 일단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보를 취합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어려웠다. 해본 적이 없는 작업이어서 도중에 몇 번이고 포기하고 싶어졌다. 그러나 끈질기게 붙잡고 매달린 결과 어떻게든 해낼 수 있었다.
이것은 그가 해본 적이 없지만 동시에 해본 적이 있는 작업. 자신의 반신이 자신을 대신해서 해주었던 일.
그 경험을 공선자가 계승하고 있는 이상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어떻게든 빠르게 답을 찾아낼 수 있는 일이라는 소리였다.
그렇기에 소심하기 그지없는 공선자가 난생처음으로 스스로의 의지를 가지고 행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좋았다.
……뭐, 까놓고 말해서 이것조차 공선자가 스스로의 의지를 가지고 행했다고 말하기 힘들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의 이성이 해냈다기보다는 그가 무의식중에 짊어지고 있는 반신에 대한 부채감이 포기하는 것을 결코 허용하지 않았다는 것에 가까웠으니깐 말이다.
무의식 역시 공선자의 의지라고 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그렇게 말하기는 조금 어폐가 있었고 말이다.
‘이, 일단 난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기억을 잃지 않았어. 그것만으로도 정보라는 분야에서 시작지점이 다르다고 이야기할 수 있어. 그럼 그렇게 기억을 잃지 않은 내가 그, 그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여하튼 중요한 것은 공선자가 스스로 가지고 있는 정보를 정리할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를 통해서 그가 떠올릴 수 있었던 정보는 다음과 같았다.
‘첫 번째……, 지금 나는 내가 살던 세계와는 다른 세계에 있어. 완전히 새로운 세계에 말이야. 이는 천사가 알려줬던 이야기를 통해서 추론할 수 있는 사실. ……그리고 지금 내가 있는 이 세계는 언제인지는 콕 집어서 이야기할 수 없지만 멸망이 예정되어 있는 세계.’
또한 이를 통해서 공선자는 자신이 정신을 되찾은 이쪽 세계가 어떤 세계인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이 살던 지구와 비슷한 세계인지, 아니면 완전히 차별화된 세계인지조차 구분이 가지 않는다.
알고 있는 것은 아마도 빠른 시일 내에 멸망한다는 사실 뿐. 또한, 어째서 멸망하는 것인지 그 원인 역시 알지 못한다.
그러나 동시에 알게 된 것도 있었다. 다름 아닌 자신이 이쪽 세계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요컨대 스스로에게 필요한 정보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것으로 공선자는 차후 자신이 얻어야 할 정보 중 하나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두 번째, 난 이 퀘스트 창 비슷한 게 보상으로 주겠다고 하는 챌린저와 에볼루션 시스템에 대해서 약간의 정보를 가지고 있어. 그것에 대한 정보는 챌린저는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나와 같이 죽었을 터임에도 불구하고 천사와 위대한 존재라는 자와 거래를 해 소생한 이들을 의미하는 것. 그리고 에볼루션 시스템은 우리 챌린저들이 위대한 존재라는 자에게 소생의 대가로 각인 당한 모종의 개념. ……아마도 이 퀘스트 창 비슷한 게 갑자기 눈앞에 떠오르기 시작한 것과 무슨 관계가 있을 텐데.’
현재 자신이 있는 세계에 대한 정보는 당장은 얻을 수 없었다. 주변에 있는 사람이라고는 자신처럼 이제 막 이쪽 세계에게 떨어진 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