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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화 〉제 01계-챕터 01: 에볼루션 시스템 (31/194)



〈 31화 〉제 01계-챕터 01: 에볼루션 시스템

소녀의 갑작스러운 발언에 공선자는 어깨를 흠칫 떨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마치 공선자를 책망하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초면에 저런 식으로 이야기하면 격하게는 아니라고 해도 충분히 분노를 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애초에 평범한 성격의 사람이라면 초면의 상대에게 저런 식의 이야기를 듣는 경우는 없으리라.

공선자는 충분히 저런 말을 들을 법한 성격이었기에 저런 말을 들은 것이었다. 그리고 보통 저런 말을 들을 법한 성격의 사람이 저것과 같은 말을 들으면 분노보다는 당황함을 표하기 마련이었다.

공선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평범한 성격의 사람이었다면 초면에 무례하다고 화를 낼 법한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화를 내기보다는 설마 저런 이야기를 들을 줄은 몰랐다는 당혹감에 시선을 이리저리 피하는 것이었다.

현재 그들이 있는 장소는 아직도 어두웠다. 빛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동굴에 아직까지도 머물고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공선자에게 갑작스럽게 말을 걸어온 소녀는 공선자의 동공이 마치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는 못했다.

그러나 상대의 눈동자가 보일 정도로 밝은 상태도 아니었으니까 당연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녀는 공선자가 매우 당황해서 우왕좌왕하고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눈동자가 안 보인다고 해도 공선자와 상당히 가까운 위치까지 다가왔기에 그 외의 공선자의 신체를 반응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

양손을 안전부절 못해서 꼼지락 거리고 있었고 어깨도 미세하고 떨리고 있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고개가 이리저리 돌아가는 게 확연하게 보이고 있었다.

그렇기에 소녀는 공선자가 어째서 자신의 질문에 제대로 된 대답을 돌려주지 못하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자신의 말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뭐라고 대답을 돌려줘야 될지 알 수 없어 한다는 사실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었기 때문.

그렇기에 소녀는 공선자가 어떻게든 힘겹게 입을 열어서 대답을 돌려주려고 하는 것보다 먼저 말을 꺼내는 것이었다.

“……응, 아니, 미안해. 지금 건 말투가 나빴어. 아직 제대로 우리들이 무슨 상황에 처한 건지 모르는 건 나도 마찬가지인데 굳이 지금처럼 이야기할 필요는 없었을지도 모르겠네. 생각했던 것보다 그렇게 심각한 일이 아닐 수도 있으니깐 말이야. 그러니까 그렇게 겁먹지 마. 보는 내가 다 미안해지잖아.”

겁을 먹었다. ……확실히 어떤 의미로 공선자는 현재 겁을 먹은 상태라고 할 수 있었다.

소녀는 그가 자기가 갑작스럽게 다가온 것, 그리고 마치 책망하는 것 같은 발언을 한 것 때문에 겁을 먹었다고 생각하고 조금 미안해하는 반응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공선자가 겁을 먹은 것은 딱히 그녀에게 책망의 말을 들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 부분에는 당황을 했지만 겁을 먹었다고 할 수는 없으리라.

허나, 그럼에도 공선자가 겁을 먹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그녀와 대화를 섞는 것 자체에 공포감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

살아오면서 늘 자신의 정신세계에 처박혀 있던 소년에게 스스로 누군가와 대화한다는 현재의 상황은 거의 생전 처음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모종의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소녀가 자신에게 뭐라고 지껄이든지 그냥 두 귀를 틀어막고 무시하고 싶었다.

하지만 괜히 그와 같은 이상한 반응을 보였다가는 소녀가 어떻게 대응할지 알 수가 없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또다시 소란스러워져 함께 이동하던 사람들의 시선이 다시금 자신에게 모이는 것도 충분히 있을 법한 일.

가뜩이나 한 사람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이렇게 공포스러운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모이는 것을 자신이 견뎌낼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자신이 스스로에게 없는 공선자였다.

당장 방금 전에 한 사내가 자신에게 말을 걸어와 그 결과 소란이 일어나 공선자에게 시선이 모인 순간 그는 자신의 뇌리가 새하얗게 변하는 경험을 한 것이다.

다시금 그와 같은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은 극구 사양하고 싶은 그였다. 더 이상 공선자를 보호해주는 형은 존재하지 않았다.

즉, 이제부터는 평생 공선자 스스로가 몸을 움직이고 직접 세상과 마주해 나아가야 한다는 소리.

그러기 때문에 나중을 생각한다면 미리 극복해두기는 해야 하는 일이었다. 언제까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며 살 수는 없을 테니까.

아니, 공선자의 출신이 출신인 만큼 하려고 한다면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살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세상일이 어디 마음대로 되던가? 공선자가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사람들의 앞에 서야 할 날이 올지도 몰랐다. 때문에 본래라면 극복을 해야 하겠지만…….

다시금 말하지만 세상일은 결코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통용되는 이야기. 아직 공선자는 타인과 커뮤니케이션을 취할 만한 각오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이었다.

아니, 애초에 굳이 당장 극복해야 하는 것도 아닌 사항을 위해서 일부러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는 것도 조금 아니지 않은가?

그러니 어떻게든 소녀와의 대화를 무난하게 이어가야 했다. 그렇기에 공선자는 타인과 말을 주고받는다는 사실에 대한 공포를 어떻게든 이겨내고 대답을 돌려주는 것이었다.

“나, 날씨가 참 좋네요!”

“……??????”

물론 당연한 이야기인 것이 공선자는 누군가와 대화를 해보는 게 거의 처음이나 다름없는 상황인 만큼 어떻게 해야 제대로 된 대화가 성립되는 것인지에 대한 경험이 없었다.

형의 인격에게 계승 받은 경험이 있었지만 그 경험을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침착한 상황인 것도 아니었고 말이다.

그런 만큼 공서자의 생애 첫 대답이 헛방이 터져버리는 것도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그 대답을 전해 들은 소녀로서는 이게 뭔 자신을 생각하기는 그만두었다고 주장하는 것 같은 헛소리로밖에 느껴지지 않았을 테지만 말이다.

실제로도 헛소리 맞았다. 도대체 뭐라고 대답을 해줘야 할지 몰라서 그냥 아무 말이나 막 던진 것과 다를 게 없었으니까.

그래도 칭찬해줬으면 했다. 그야 본심을 이야기하자면 스스로의 의도로 대답을 돌려주는 행위는 공선자에게 엄청나게 힘든 행위였으니까.

몇 번이고 도망치고 싶은 것을 참고 헛소리라고 해도 대답을 돌려주지 않았나? 이것만으로도 공선자는 선전했다고 할 수 있었다!

……돌려준 대답이 대답이라는 개념에 속한 것인지조차 의문이 드는 헛소리였다는 점이 문제이기는 했지만!

“아, 미안. 혹시 지금 거 무슨 개그? 나 웃어야 할 타이밍을 놓친 건가? 흐음……, 난 그렇게 눈치가 없는 편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설마 상대한테 이런 식으로 무안을 주게 될 줄은 몰랐어.”

심지어 공선자를 이와 같은 식으로 말을 꺼내오니 공선자는 더욱더 죽고 싶어지는 심정이 되는 것이었다.

날씨는커녕 하늘도 안 보이는 동굴 내부에서 기억상실로 눈을 뜬 주제에 무슨 날씨 타령인가?!

어떻게 봐도 미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화제 선택이 아닌가? 애초에 대화의 문맥부터가 전혀 이어지지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이제는 상대가 공선자를 배려해주는 것 같은 발언을 해오니 평범한 사람이라고 해도 쥐구멍이 있으면 숨고 싶은 심정일 터.

특히 본래부터 유약하고 소심한 성격의 공선자로서는 그냥 차라리 혀 깨물고 죽고 싶은 심정인 것이었다.

“다, 당황해서 말이 헛나온 겁니다! 시, 신경 쓰지 말아 주세요!”

형의 인격이 살려준 목숨이라는 책임감이 없었다면 정말로 혀 깨물고 죽었을지도 몰랐다.

그래도 어떻게든 대답을 돌려줬다는 경험을 쌓을 수 있었던 공선자는 이번에는 그나마 무난한 말을 소녀에게 전하는 것에 성공했다.

“그, 그래? 하긴, 유머치고는 어느 부분에서 웃어야 할지 전혀 감이 안 잡히기는 했어. 그런데 존댓말……? 아니, 초면이고 얼굴이 제대로 보이는 상황도 아니니 존댓말을 쓰는 게 문제인 건 아닐까? 하, 하지만 그러면 처음부터 반말을 쓴 내 첫인상이……. 나도 존댓말을 써야 하나?”

그리고 그렇게 돌려준 공선자의 대답에 소녀는 혼잣말과 공선자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섞인 듯한 목소리를 흘리는 것이었다.

그에 공선자는 대답을 돌려줘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알 수가 없어 다시금 당황하게 되었는데 그로 인해서 잠깐 동안 두 사람 사이에는 상당히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흠흠! 어차피 처음에 반말을 쓴 거, 이제 와서 존댓말 쓰는 쪽이 어색해. 그러니까 그냥 반말 쓸 게. 자세히는 어두워서 안 보이지만 대충 보니까 나이 차이도 그렇게 심하게 나는 것 같지도 않으니까.”

“아, 네……. 조, 좋으실 대로.”

“그리고 너도 반말을 써. 그쪽이 연상일지도 모르는데 나만 말을 놓는 건 이상하잖아?”

“아, 아뇨! 저, 저는 보다시피 이런 성격이라 말을 놓으시라고 해도 곤란해서.”

“끄응. 이렇게 되면 그쪽이 진짜로 연상이면 내 인상이 초면에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한테 다짜고짜 반말을 쓰는 여자가 되어버리는데……. 그래도 불편하다고 하는데 강요하는 것도 아니고. 알았어. 좋을 대로 해. 나도 좋을 대로 할 테니까. 그게 서로 편하겠지. 그래도 나중에 말을 놓을 정도로 편해지면 말을 놓기다? 나도 성격상 남한테 존댓말을 들으며 불편한 성격이니깐 말이야!”

소녀의 그와 같은 발언에 공선자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딱히 반대를 할 이유가 없는 타협점이기도 했고, 또 소녀의 목소리에 은근, 이 이상은 양보할 수 없다는 의사가 담겨 있었으니까.

굳이 저렇게까지 이야기할 필요가 있나? 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일단은 공선자도 수긍할 수 있는 내용이니 반대할 필요는 없었던 것.

“자, 그러면 다시금 사과할 게. 방금 전에는 말이 조금 지나쳤어. 아무래도 기억에는 없지만 난 너 같은 성격의 사람을 보면 자기도 모르게 한마디 하게 되는 성격이었나 봐. 그렇다고 해도 역시 말이 조금 심했다는 자각은 있으니까 다시 한 번 사과할 게. 나도 사돈 남 말 할 상황이 아니었는데 듣는 사람에 따라서는 충분히 기분 나쁠 수 있는 발언이었으니깐 말이야.”

그렇게 이야기하며 돌연 손을 내밀어 오는 소녀. 그에 공선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라 그저 고개를 흔들며 입을 여는 것이었다.

“아, 아뇨……. 트, 틀린 이야기라고도 할 수 없었으니까 딱히 사과하실 것까지는…….”

“그래? 흠. 그럼 나도 2번 사과하기도 했으니까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로 할까. ……그런데 손 무안하게 언제까지 이렇게 방치하고 있을 거야?”

소녀가 앞으로 내민 손을 흔들며 악수를 하자는 의사를 다시금 표현을 해왔다. 공선자 역시 소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파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섣불리 소녀의 손을 붙잡을 수 없었다. 타인과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게 이유이기는 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큰 이유가 있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경계심’이었다. ……다시금 이야기하지만 공선자는 과거는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그 지옥 같은 과거가 본능적으로 사람을 경계하고 만들고 또한 사람과의 접촉 자체에 거부감을 들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가 살아온 인생을 생각하면 당연한 것이었다. 같은 사람에게 도구로써 사용되었고, 또 도구로서 무구한 사람들을 수없이 죽여 왔다.

거기에 끝에 가서는 사람들이 살아가던 터전을, 세계 그 자체를 살해한 것이었다. 공선자는 자신의 죄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자신이 타인과 어울릴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 역시 인식하고 있었다. 동시에 스스로 역시 사람이라는 존재 그 자체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공선자의 성격이 성격인 만큼 대놓고 사람 따위 전부 죽었으면 좋을 텐데! 라는 식으로 말하거나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무의식적으로 거부감을 표하고 상대를 경계하는 것도 당연한 이야기. 그렇기에 공선자는 끝내 소녀의 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으윽. 여, 역시 방금 전의 발언에 화가 난 거야? 아니면 반말을 하는 게 마음에 안 드는 거려나?”

그리고 공선자가 그처럼 자신의 손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자 소녀는 역시 자신이 뭔가 공선자의 마음을 상하게 한 건 아니지 당황해 하며 말을 이어가는 것이었다.

“그래도 너무 화를 내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전자는 일단 나도 모르게 날이 선 말투를 취하기도 했지만 걱정이 되어서 꺼낸 이야기이기도 하니까……. 후, 후자는 성격이라고 생각하며 넘어가 주면 안 될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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