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화 〉제 01계-챕터 01: 에볼루션 시스템
공선자는 떠올렸다.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홀로그램 창이 마치 가상현실게임이 주제인 게임판타지 소설에서나 나올법한 퀘스트 창과 비슷하다고 말이다.
즉, 소설 속에서나 나올법한 퀘스트 창, 요컨대 게임 시스템과 관계된 무엇인가가 현실화된 것이었다.
……그렇다면 퀘스트 창 말고도 다른 게임 시스템들 역시 현실화된 것은 아닐까? 그런 추측을 떠올린 공선자는 한 가지 시험을 해본 것이었다.
사실은 자신들이 눈치 채지 못하고 있을 뿐 어느새 퀘스트 창처럼 생긴 방금 전의 홀로그램 창처럼 다른 게임 시스템에 해당하는 창들도 불러올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에서 시작된 실험.
즉, 공선자는 에볼루션 시스템이라는 것이 일종의 게임 시스템을 모티브로 한 무엇인가가 아닐까 하는 추측을 떠올렸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띠링!!
“나, 나왔다?!”
……그런 공선자의 추측은 정확하게 적중했다. 공선자가 일단 시험 삼아 중얼거린 스테이터스 창이라는 음성에 반응하는 것처럼 또다시 그의 눈앞에 반투명한 홀로그램처럼 생긴 창이 떠올랐다.
혹시라도 음성 반응이 아니라면 특수한 행동을 해본다든가 하는 이런저런 실험을 해볼 생각이었던 그.
그런데 굳이 그럴 필요도 없이 처음부터 적중했다는 사실에 자신도 모르게 당황한 공선자는 그 사실을 입 밖으로 내뱉고 만 것이었다.
“까, 깜짝아?! 뭐야?! 뭐가 나왔다는 건데?!”
“……거기, 무슨 일이지? 뭔가 정보가 될 법한 새로운 요소라도 발견한 건가? 뭔가 나왔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그리고 당연하게도 동굴인 만큼 공선자의 그와 같은 목소리는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공선자의 바로 옆에는 예의 소녀가 함께 걷고 있었다. 공선자가 또다시 낙오하는 게 아닐까 지켜보고 있던 소녀가 말이다.
당연하게도 그 소녀가 공선자가 자신도 모르게 내뱉은 발언에 반응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뿐만 아니라 동굴을 나가기 위해서 10분이 넘게 함께 움직이고 있던 다른 이들도 공선자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기도 했고 말이다.
“아으……?! 죄, 죄송합니다! 버, 벌레가 튀어나와서 저도 모르게 그만……!”
그리고 그 시선에 공선자는 또다시 당황해서 무의식적으로 거짓말을 통해서 만든 변명을 늘어놓는 것이었다.
“벌레? 확실히 동굴인 만큼 전갈과 같은 위험한 벌레가 나올지도 모르겠군. 조심하는 게 좋겠어. 하지만 설령 전갈이 나타났다고 해도 그렇게까지 큰 소란을 일으킬 필요는 없다고 생각되는데 말이지?”
“조, 조심하겠습니다!!!”
돌려서 괜한 소란을 일으킨 자신에게 못마땅함을 마초남의 목소리에 공선자는 그저 겁을 잔뜩 집어삼킨 목소리로 고개를 한껏 숙이며 사과를 할 수밖에 없었다.
허나, 그러면서도 공선자는 자신이 알아낸 정보를 결코 마초남에게 넘기지 않았다. 그것은 본능이 내린 판단이었다.
정보라는 것은 독점할 때 비로소 큰 가치를 발휘하는 경우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많았다. 그러니 공선자는 자신이 알아낸 정보를 숨겼다.
자신이 알아낸 이 정도가 어느 정도의 힘을 발휘할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오히려 알 수 없기에 우선은 숨긴다.
그것은 정보가 곧 생존으로 이어지던 삶을 살아오던 타임 룰러라는 코드 네임의 에이전트의 본능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
때문에 공선자는 자신의 소심한 성격에 맞게 자신을 바짝 낮추어 마초남과 주변 사람들에게 사과를 하면서도 자신이 가진 정보는 결코 공유하지 않는 치밀함을 보이는 것이었다.
소심하면서도 유약한 성격, 허나, 그와는 완전히 상반되는 행동양상. 이것은 과거 이중인격자였으며, 그러면서도 지금은 그 인격이 하나가 된 공선자만이 가질 수 있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었다.
“거짓말. 난 네 바로 옆에 있었는데 벌레 같은 거 하나도 본 적 없거든? 보통은 벌레 같은 게 갑자기 튀어나오면 비명을 지르니 너처럼 나왔다! 라는 식으로 소리를 지르거나 하지 않는다고.”
그리고 그런 특성 덕분에 더더욱 주변 사람들은 공선자를 그 이상 파고들거나 하지 않았다.
무의식적으로 저렇게 자신을 바짝 낮추는 녀석이 감히 자신들을 속일 생각을 하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식의 인식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공선자와 조금 거리를 두고 있었던 이들에 한정된 이야기였다.
공선자의 바로 옆에 서서 그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요청했지만 끝내 거절당했던, 조금 안쓰러운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던 소녀.
그 소녀는 단숨에 공선자의 거짓말을 꿰뚫어보았다. 그 소녀의 관찰안이 뛰어났다, 라는 것보다는 그 소녀가 어쩌다 보니 공선자의 바로 옆에 서 있었던 것이 원인이었다.
공선자의 바로 옆에 서 있었기에 공선자가 결코 벌레가 튀어나와 놀란 것이 아니라는 사실 정도는 추측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다른 이들과 다르게 공선자가 한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오히려 공선자가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파악한 결과 더욱 그를 수상하다는 눈초리로 쳐다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너 뭔가를 알아낸 거지? 그리고 지금 그 무엇인가를 숨기려고 하고 있고? 그렇지?”
“아, 아니……, 그게……. 딱히 숨기려고 한 건 아닌데요. 그, 그냥 갑작스러운 상황에 저도 모르게 일단 숨겨버렸다는 느낌이어서…….”
그렇게 자신을 의심하는 눈초리를 보내는 소녀의 행동에 공선자는 일단은 결코 일부로 그런 게 아니라는 어필하는 것이었다.
소녀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이미 공선자가 무엇인가를 알아냈다고 확신을 하는 것 같았다. 그런 상황에서 괜히 오리발을 내밀면 더욱 수상한 사람이라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어 소녀가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이 공선자에 대해서 깨달은 이상한 점을 이야기하게 된다면 상황은 매우 골치 아프게 흘러갈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기에 공선자는 우선 결코 고의로 숨긴 것이 아니라고 어필을 하는 것이었다. 실제로도 의식적으로 행한 거짓말은 아니었다.
이야기했다시피 거의 본능적으로 숨긴 것이기에 공선자가 내뱉은 변명은 거의 진실에 가깝기도 했고 말이다.
소녀 역시 공선자의 목소리를 통해서 그가 진짜로 당황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그를 통해서 진심을 느낀 것인지 더 이상 의심의 시선을 보내오지 않는 것이었다.
방금 전까지의 의심의 시선은 공선자가 다른 이들을 속였다는 사실에서 의심을 보냈다기보다는 이런 상황에서도 무엇인가 정보를 얻었으면서도 타인에게 공유하지 않는 것에 대한 행동의 의심에 가까웠으니까.
그야 이렇게 전원이 기억상실에 걸린 상황에서 일단은 아군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알아냈음에도 숨긴다?
상당히 수상하다고밖에 이야기할 수 없지 않은가? 알아내고 숨기는 것의 내용은 둘째 치고 아군에게도 그것은 숨긴다는 행위 그 자체가 말이다.
또한 전원이 기억상실인 이 집단에서 혼자만 새로운 정보를 알고 있다는 사실은 또 다른 쪽의 의심을 살 수 있었다.
……혹시 이 녀석이 지금 자신들이 겪고 있는 사건의 전말, 즉, 흑막에 해당하는 녀석이 아니야? 라는 의심을 말이다.
하지만 그 의심을 공선자는 자신도 모르게 그랬다는 식으로 불식시킨 것이었다. 소녀 역시 공선자가 얼마나 소심한 사람인지 짧은 시간 동안의 대화였지만 약간은 파악한 상황.
그렇기에 이 정도로 소심한 사람이면 자신에게 시선이 모인 것에 당황해서 빨리 시선을 흐트러지게 만들려고 충분히 무의식적으로 거짓말을 했을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에 납득을 표하는 것이었고 말이다.
‘겉으로는 소심한 척하면서 거짓말을 자연스럽게 하며 다른 사람을 이용하려고 드는 타입인가 했는데 역시 내가 너무 지나치게 생각한 거려나?’
공선자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거짓말을 해서 무심코 그가 천연덕스러운 거짓말쟁이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었던 소녀.
그러나 공선자의 성격이 소심한 것은 결코 연기가 아닌 진심이었다. 단지, 그 진심 속에 괴리되는 또 다른 진심이 숨겨져 있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소녀가 그 사실을 알 리가 없으니 이내 그저 공선자 같은 사람도 있을 법하다는 생각에 납득을 표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와 같은 판단이 더 이상 공선자를 의심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과거 이중인격이었기에 나오는 공선자의 특징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공선자의 의심하지 못하게 만들어주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결국, 넌 뭘 알아낸 건데? 뭔가 잊고 있던 기억 같은 게 떠오르기라도 한 거야?”
그렇지만 공선자에 대한 의심이 곧바로 사라졌다고 해도 그가 알아낸 것으로 추정되는 정보까지 그냥 넘기는 일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단순히 개인적인 호기심을 넘어서 자신들이 무슨 상황에 처해있는 것인지 알지 못하는 소녀를 포함한 이 자리에 있는 이들에게 정보는 하나하나가 귀중하게 작용할 수 있으니까.
그나마 공선자에게 다행인 것은 소녀가 곧바로 다른 이들에게 공선자가 무엇인가를 알아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아마도 이것은 그녀 나름대로 공선자를 배려하는 행위였을 것이다. 그럴 것이 방금 전까지 그저 벌레가 튀어나와 놀랐다고 둘러댄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사실은 알아낸 정보가 있는데 그것을 자신도 모르게 숨겼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면 어떤 눈초리로 보겠는가?
당연히 의심의 시선을 향해올 것이다. 소녀 역시 그 사실을 이해하고 있을 터. 때문에 그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곧바로 다른 이들에게 알리기보다는 일단 자신이 먼저 전해 들으려고 하는 것이었다.
“그, 그게…….”
그리고 공선자는 그런 소녀의 배려를 간단하게 간파할 수 있었다. 아직까지 익숙하지는 않지만 그를 대신해서 그의 신체를 단련해준 형 덕분에 발달된 그의 신체감각이 이 어둠 속에서도 소녀의 반응을 하나하나 알려주고 있었다.
때문에 그것을 총합해서 그녀의 의도를 파악한 공선자는 그녀가 결코 나쁜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섣불리 자신이 알아낸 정보를 알려줄 수 없었다. 이유는 두 가지. 첫 번째로 정보는 대부분이 독점하는 것으로 큰 가치를 발휘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 역시 정보의 종류에 따라서 달라지기는 했다. 어느 정보는 오히려 공유를 해야지 비로소 그 가치를 발휘하는 경우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공선자는 자신이 알아낸 정보가 적어도 꼭 공유해야 하는 계열의 정보가 아니라는 사실 정도는 파악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공유를 안 하고 독점하고 있어야 제대로 된 가치를 발휘하는 정보인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애매했다.
당장 공선자가 알아낸 사실 자체가 적었으니 말이다. 그는 어디까지나 자신이 유추한 사실을 통해서 스테이터스 창으로 추측되는 새로운 홀로그램 창을 불러왔으니 뿐이었으니 말이다.
이 창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아직 실험해보지 못한 상황. 그렇기에 공선자로서는 판단할 기준이 적은 상태라고밖에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눈앞의 소녀에 대한 경계심 때문이었다. 다시금 이야기하지만 공선자는 과거의 경험으로 사람을 믿지 못했다.
그렇기에 눈앞의 소녀 역시 믿지 못했다. 그런 사람한테 자신이 알아낸 정보를 곧이곧대로 전해도 되는가? 그런 사실을 공선자는 판단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정보라는 건 말이지. 재미있게도 같은 정보라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서 다른 정보가 될 때도 있어.
때문에 공선자가 이걸 이야기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문득 또다시 그의 뇌리에 형이 해주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본래라면 뭐가 되었던지 잡아 때는 게 좋았다. 하지만 공선자는 이미 자신의 의심을 불식시키기 위해서 자신이 무엇인가를 알아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말았다.
그렇기에 여기서 말해주지 않으면 오히려 의심을 살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말할지, 말하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을 때 그 판단을 도와주는 목소리로 그의 뇌리에 울린 것이었다.
“게, 게임……, 같다고 생각하지 않으셨나요? 저희들의 눈앞에 떠오른 창이 말이죠.”
그리고 그 뇌리에 울린 목소리에 공선자는 결정을 내렸다. 일단은 자신이 알아낸 사실을 전달하자.
여기에도 이유는 있었다. 일단 두 가지. ……첫 번째는 추측이지만 자신이 알아낸 이 정보는 머지않아 다른 이들도 알아낸 정보에 해당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