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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화 〉제 01계-챕터 01: 에볼루션 시스템 (36/194)



〈 36화 〉제 01계-챕터 01: 에볼루션 시스템

보통 사람이라면 긴가민가했겠지만 공선자는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신체가, 아니, 정확히는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의 신체가 본래보다 튼튼해져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다고 해도 정말로 눈에 띌 정도로 튼튼해진 것은 아니었다. 그랬다면 공선자뿐 아니라 다른 이들 역시 전부 자신의 신체 변화에 눈치를 챘을…….

‘아, 아니, 기억을 잃고 있으니까 모를 수도 있으려나?’

……생각해보니 크게 변화해도 눈치 채지 못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여하튼, 중요한 것은 그렇게까지 큰 변화는 아니었기에 기억이 있다고 해도 눈치 채지 못했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대충 수치로 이야기하자면 본래의 1.2배에서 1.3배 정도? 거기에 몸이 튼튼해진 영향인지 통증의 강도 역시 100%를 기준으로 보자면 한 80%는 줄어든 것 같았다.

딱, 방금 전의 소녀처럼 단단한 땅바닥에 안면을 처박았을 때 코뼈가 무사할 수 있을 수준의 강화라고 해야 할까?

그렇다고 해도 엄청난 강화는 아니기에 결국 덤프트럭 같은 것에 치이면 골로 가는 것은 매한가지라는 느낌이었지만 말이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골다공증을 앓고 있던 사람이 평범한 사람이 되었다는 수준의 강화? 그런 의미에서 각종 편의 문명에 의해서 약해진 현대인이 과거에 고생하느라 튼튼한 신체를 가졌던 이들로 회귀했다는 느낌과도 비슷했었다.

‘주, 중요한 건 뭐가 되었던지 신체가 강화된 건 명백한 사실이라는 점이야.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퀘스트 창 때와 비슷한 홀로그램과 마찬가지로 지금 공선자의 눈앞에 떠오른 스테이터스 창이라는 이름의 홀로그램 창은 결코 헛것이 아니라는 의미.

분명하게 공선자의 신체에 영향을 미치는 모종의 무엇인가일 확률이 매우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단순한 환상과 같은 헛것이 물리적으로 신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리가 없을 테니깐 말이다.

‘그렇다면 역시 에볼루션 시스템이라는 건 일종의 게임 시스템을 토대로 한, 소유자의 강화능력?’

현대의 21세기에서 살아왔던 공선자에게는 매우 받아들이기 힘든 개념이었다. 아니, 아무리 현실이 막장이어도 그렇지 설마 이제는 하다 하다 게임처럼 현실의 사람을 강화시키는 능력을 얻게 되었다고?

보통이라면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허나, 공선자의 인생이 어디 상식이라는 것을 고집할 수 있을 정도의 인생이던가?

‘……초능력자도 있었고, 천사도 있었고, 이세계도 있었고, 거기에 신으로밖에 생각되지 않는 존재까지 있었는데 이제 와서?’

그렇다. 막장이라고 한다면 공선자의 인생은 막장 중의 막장이라고 할 수 있는 인생이 아니던가? 그런 만큼 공선자는 상당히 손쉽게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단지, 이 에볼루션 시스템을 각인 받기 위해서 자신의 반신이 희생되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당장에라도 울 것 같았기에 최대한 의식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설령 신이 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해도 자신과 거의 평생을 함께 해왔던 반신을 희생한 끝에 얻은 능력은 사양이었다.

문제는 공선자에게는 선택사항이 없는 강매에 가까웠다는 것이고(물론 이 과정에서 공선자의 잘못도 존재했지만) 또한 이렇게 얻는 능력이라고 해도 공선자로서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고 있다는 점이었지만.

‘이, 일단은 이 스테이터스 창에 대해서 보다 자세하게 파악하는 게 최우선순위. ……그 천사가 이야기하길 어떤 종류의 세계인지는 몰라도 지금 내가 있는 세계는 멸망이 예정된 세계라고 이야기했어.’

정말이지, 되살려 준다고 해놓고서 머지않아 멸망할 세계에 사람을 던져 넣다니 이게 무슨 귀축이냐고 따지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그러니 그걸 따지기보다는 여기서는 보다 중요한 요소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뭐가 되었던지 지금 선자가 있는 세계는 멸망한다는 점.

그래, 세계는 멸망한다. 어떤 요소를 통해서, 무엇이 원인으로 멸망할지는 이제 막 이쪽 세계로 넘어온 선자가 알고 있을 리가 없었다.

애초에 자신이 현재 떨어진 세계가 무슨 세계인지조차 모르는데 왜 멸망하는지 그걸 어떻게 알겠는가?

그렇지만 적어도 멸망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추측할 수 있는 점이 단 하나 존재했다.

그것은 천사와 그 천사의 뒤에 있다던 위대한 존재이니 하는 녀석들이 어째서 공선자와 같이 한 번 죽은 이들을 되살려서 이쪽 세계로 날려 보낸 것인지에 대한 이유였다.

천사는 말했다. 생존본능이 강렬한 이들을 선정해서 에볼루션 시스템을 각인시킬 챌린저로서 선택했다고.

요컨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아마도 이후에 챌린저라고 불릴 이들은 전원이 공선자와 같은 강렬한 생존 욕구를 지니고 있을 것이다.

그런 이들은 멸망이 예정된 세계로 보내버린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냥 멸망에 휩쓸려 죽어줄 리가 없었다.

기준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위대한 존재이니 하는 대단한 존재가 눈을 들일 정도의 삶에 대한 욕망을 지닌 이들이다.

설령 세계가 멸망한다고 해도 어떻게든 살려도 들 터. 그리고 그 사실 정도는 위대한 존재 역시 예상하고 있을 것이다.

예상하고서도 챌린저들은 이쪽 세계로 던졌다. 즉, 아마도 그 위대한 존재라는 녀석은 이렇게 말하고 싶은 것일 터였다.

-죽고 싶지 않으면 세계의 멸망을 막아봐라.

……라고. 그리고 무려 세계의 멸망이다. 막으려면 어떻게든 힘이 필요할 터. 그것이 무력이든, 지력이든, 재력이든, 권력이든 말이다.

그저 몸뚱어리 하나만 던져놓고 세계의 멸망을 막으라고? 그건 양심이 없어도 너무 없는 처사가 아닌가?

그렇기에 공선자는 이 에볼루션 시스템이라는 것이 챌린저들에게 주어진 ‘세계 멸망을 막을 수 있는 가능성’이라고 추측했다.

최소한의 힘을 준다. 보다 정확히는 강해질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해준 것으로 추정되었다.

게임 시스템과 비슷해 보이는 만큼 게임처럼 직관적으로 강해지는 것이 가능할 것으로 추정되었으니까.

‘살아남기 위해서는 세계의 멸망을 막아야 해. 그리고 세계의 멸망을 막기 위해서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해. 이 에볼루션 시스템은 내가 동원할 수 있는 수단 중 가장 강력한 패일 가능성이 높아. ……결론은 한시라도 빨리 에볼루션 시스템이라는 것은 전부 파악해서 최대한 강해진다.’

그리고 그렇게 강해진 힘을 통해서 세계의 멸망을 막는다. ……다른 이들이 그저 동굴을 탈출하기 위해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을 때 홀로 기억을 유지하고 있던 공선자 혼자만이 그와 같은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아, 아니, 꼭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일까?’

허나, 결론이 났다고 해도 공선자는 도저히 그 결론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생존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서든 예정된 멸망을, ……비극을 뒤집어야 했다.

하지만 그럴 자신이 그에게는 없었다. 있을 리가 없었다. 무려 전에 살던 세계를 멸망시켰으니까 이번에는 세계를 구해보라고?

헛소리도 그 정도면 보신탕으로 끓어진 개가 짖는 소리였다. 개소리 중의 개소리라는 이야기다.

공선자가 세계를 멸망으로 이끌 수 있었던 것은 그야말로 기적 중의 기적과 같은 상황이 여러 번 겹쳤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솔직히 말해서 공선자조차도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보고 자기 자신조차 내던지듯이 시도해면서도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기도 했다.

주도면밀하게 계획을 세웠다. 그야말로 자신의 행동을 초 단위로 제한했고 상대의 움직임을 초단위로 추측했다.

첩보, 그리고 암살계에서 전설에 가까운 자신의 모든 능력을 총동원했음에도 불구하고 간신히 불가능을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한계였다.

세계를 멸망시키는 것도 그렇게 힘든 일이었다. 농담이 아니라 모든 계획이 착착 맞물려 돌아가 최종 계획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도 가슴 한편으로는 ‘이게 되네?’ 라는 생각을 떠올리고 있었으니 할 말 다한 거 아닌가?

그런데 세계를 지키라고? 아니, 예정된 멸망을 뒤집으라고? 말이 쉽지 그게 어디 가당키나 한가?

자고로 무엇인가를 부수는 것보다 무엇인가를 지키는 것이 더 어렵기 마련이었다. 물론 그것도 경우에 따라서 다르기는 하지만 결코 세계 멸망보다 세계의 구원이라는 명제의 난이도가 더 낮지는 않을 터.

그렇기에 공선자는 자신이 없었다. 동시에 굳이 내가 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말이다.

에볼루션 시스템을 각인 받은 챌린저로 추정되는 인물들이 자신 말고도 이렇게 많았다. 동굴이 어두워서 확실하게 알 수는 없지만 최소 수십 명.

세계를 구하기 위한 인원수 치고는 매우 적어 보이지만 여기 모인 이들은 결코 평범한 이들이 아닐 터.

하나같이 끝장나는 생존본능을 가졌기에 공선자와 마찬가지로 선택된 이들일 것이다. 거기에 공선자와 마찬가지로 퀘스트 창 비슷한 것을 볼 수 있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분명 스테이터스 창과 같이 에볼루션 시스템을 각인 받은 것이 분명했다. 에볼루션 시스템이라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물건인지는 아직 미지수였다.

하지만 최소한 게임 속에서나 보던 강화 시스템이 현실로 구현된 것일 터. 그렇게만 생각해도 충분히 강력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비단 전투뿐만이 아니었다. 공선자의 착각일 수도 있지만 아마도 성장 방향성에 따라서 무력, 지력, 재력, 권력 등과 같이 세계를 움직이는 어느 요소로도 성장할 수 있게 만들어줄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런 능력을 가진 이들이 무려 수십. 그렇다면 공선자 하나쯤 없어도 세계를 구하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지 않을까 하는 추측을 떠올리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지 않은가?

‘그, 그래. 굳이 내가 나서서 세계를 구할 필요는 없어. 아니, 애초에 가능할 것 같지도 않아. 그러니까 세계를 구한다는 거창한 생각은 버리자. 난 일단 살아남기만 하면 돼. 그래, 살아남는 게 최우선 사항이야.’

……결코 죽어서는 안 되었다. 죽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무간지옥.

그것이 자신의 반신을 희생해 이 자리에 서 있는 공선자에게 선고된 벌이었으니깐 말이다. 때문에 공선자는 세계를 구하겠다는 거창한 목표 따위 머릿속에 담지도 않았다.

살아남는 게 우선이었다. 살아만 있으면 세계 따위는 누군가가 구해줄 것이다. 세계멸망은 곧 전 세계의 모든 이들의 죽음을 의미하기도 할 터.

그렇다면 죽기 싫은 누군가가 나서서 반드시 세계를 구해줄 터. 그러니 공선자는 살아남는 것만 생각하면 되었다.

‘……하, 하지만 설령 그렇다고 해도 에볼루션 시스템의 파악은 필수적인 요소야. 생존을 위해 필요한 요소. 무력, 지력, 권력, 재력……. 어느 쪽으로도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가능성이 높아.’

이건 어쩌면 공선자의 희망 사항일 뿐일 수도 있었다. 자신의 반신을, 유일한 아군을 희생해서 손에 넣은 힘이었다.

그런 힘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니……, 그런 비극이 어디 있겠는가? 비극이라면 여태까지 지긋지긋하게 겪어왔다.

그러니 이제는 제발 더 이상의 비극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심정을 숨길 수 없는 공선자의 희망 사항에 불과할지도 몰랐다.

‘아니야. 불길한 생각은 하지 마. 분명히 살아남는 것에 도움이 될 거야. 그렇지 않으면 천사가 그렇게 거창하게 이야기할 리가 없어.’

거기에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모두 자신의 기억을 대가로 에볼루션 시스템을 각인 받은 이들.

그런데 정작 기억을 대가로 바치면서까지 얻은 힘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힘이었다고? 그렇게 공정성을 운운하던 천사의 발언을 생각하면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기억을 빼앗은 주제에 이런 뭔지도 알 수 없는 세계에 던져 놓은 것이다. 적어도 생존에 필요한 무엇인가를 주지 않으면 말이 되질 않았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이곳에 있는 이들에게 ‘죽으라고’ 이야기하는 것과 다를 게 무엇인가? 그렇다면 애초에 죽었던 이들을 소생할 이유가 없을 터이니 말이다.

‘일단은 파악. 파악이 우선이야. 뭐가 되었던지 제대로 써먹으려면 정보가 필요해. 그, 그러니까 어디 보자……. 진명……? 이건 내 이름을 말하는 건가? 그러고 보니까 퀘스트 창처럼 생긴 곳에서도 진명이라는 언급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렇게 중얼거리던 공선자는 예의 퀘스트 창을 다시 한번 살펴보고 싶다는 생각을 뇌리에 떠올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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