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화 〉제 01계-챕터 01: 에볼루션 시스템
……뭐라고 해야 할까? 산전수전 다 겪은 중년이나 노인을 보는 것 같은 기분? 하지만 그것과 동시에 뭔지 잔뜩 겁을 먹고 있는 분위기를 두르고 있다고 해야 할까?
그저 어쨌든 그런 공선자의 분위기가 그가 겉보기보다 더 나이가 먹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어두운 동굴에서는 그 정도까지는 파악할 수 없었기에 자기보다 연하가 아닐까 생각했을 때 이렇게 보니 연상처럼 보였기에 소녀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뭔가 인상이 흐려? 특이한 애네. 아니, 얘가 아닌가? 흐음, 잘 모르겠어. 거기에 저 녀석도 신경 쓰이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아아! 정말! 잘 쫓아오라니까? 계속 뒤처지잖아. 잘못하면 우리만 따로 낙오될 수 있다고.”
“……미안. 잠깐 생각 좀 하느라.”
우연히 확인하게 된 공선자가 신경 쓰이는 소녀였지만 그녀는 당장 공선자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그럴 것이 지금 소녀는 공선자 이상으로 성가신 한 소녀를 상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소녀보다 나이가 더 어려 보이는 소녀.
잘 쳐줘야 고등학생, 경우에 따라서는 중학생으로 보이는 소녀였다. 그리고 그 소녀는 공선자와 대화를 했던 소녀에게 손목을 붙잡힌 채로 반쯤 끌려가는 것에 가깝게 소녀에게 이끌려 이동하고 있었다.
공선자와 대화를 나누었던 소녀는 동굴 밖에서 보니 신기하게도 보랏빛의 머리카락을 하고 있는 소녀였다.
자연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색깔의 머리카락. 그렇다고 염색을 한 것인가 하기에는 매우 자연스러운 색깔이었다.
거기에 그뿐만 아니라 아직 공선자는 눈치 채지 못한 모양이었지만 일행 중에는 자연적으로 있을 수 없는 색깔의 머리카락을 하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은 숫자로 존재했다.
그렇기에 이상한 색깔의 머리카락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함께 움직이는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지적하지 않고 있는 것이기도 했고 말이다.
그리고 보랏빛 머리카락의 소녀에게 이끌려 가는 소녀 역시 특이한 머리카락 색깔을 하고 있었다.
푸른빛의 머리카락의 소녀. 맑은 물을 연상시키는 그런 머리카락이었다. 실제로 맑은 물은 투명했지만 물이라고 하면 푸른빛이라는 인상도 있지 않은가?
그때 연상되는 푸른빛으로 그대로 머리카락을 짠 것 같은 소녀였다. 그렇게 보랏빛의 소녀에게 푸른빛의 소녀가 끌려가고 있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좀 더 걸음걸이를 빠르게 할 수 없어?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뒤처질 수도 있다고…….”
“내 체구를 봐라. 보폭 자체가 좁다. 그런 상황에서 속도를 올리면 체력이 배로 소모된다고.”
다름 아닌 푸른빛의 소녀가 툭하면 함께 이동하는 일행들 사이에서 낙오될 것 같은 상황이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그에 보랏빛의 소녀가 보다 못해서 푸른빛의 소녀를 이끌고 이동하고 있다. 그런 상황인 것.
그에 비해서 공선자는 조금 신경이 쓰였지만 일행 사이에서 잘 따라오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니 보랏빛의 소녀는 공선자는 일단 내버려두고 푸른빛의 소녀에게 집중하고 있던 것이다.
“정말이지. 그냥 나는 내버려두고 가면 될 것을…….”
“네가 낙오하게 되면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잖아!”
“분위기를 보아하니까 딱히 나 한 사람 때문에 행군이 늦추어질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지.”
“큭! 하, 하지만 내가 너 같은 애가 낙오하는 걸 보고 싶지 않으니까 도와주는 거잖아! 잔말 말고 부지런히 걷기나 해!”
“……사람 좋군.”
당장 체구가 작기 때문에 걸음걸이 자체가 느렸다. 그뿐만 아니라 본인 자체가 어딘지 멍하다고 할까, 맹하다는 느낌이었기에 한눈을 팔면 혼자서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을 것 같은 타입이었다.
그렇기에 그것을 보다 못한 보랏빛의 소녀가 나서서 그 푸른빛의 소녀를 이끌고 있다는 느낌의 상황인 것.
정말이지, 겉으로는 다른 사람들에게 폐라느니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그저 푸른빛 소녀가 걱정되어서 나서는 것이 푸른빛 여자아이가 이야기한 것처럼 보랏빛의 소녀는 상당히 사람이 좋은 인격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여하튼 이처럼 50명을 넘는 일행이다 보니까 여기저기서 사소한 사건이 일어나면서도 그들인 소나타라는 이름의 도시를 향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공선자는 다른 이들과 엮이는 일 없이 오로지 홀로 에볼루션 시스템에 대해서 파악하고 있었다.
‘일단 예상대로 에볼루션 시스템이라는 것은 게임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에볼루션 시스템을 각인 받은 사람을 강화하기 위한 모종의 수단으로 추정되고 있어. 그리고 게임 시스템을 기반으로 했다는 내 예상대로…….’
서브 스트림이 말한 대로 에볼루션 시스템을 파악하기 위해서 공선자는 우선 게임 시스템에 대해서 떠올렸다.
에볼루션 시스템은 공선자가 아는 한 확실하게 온라인 게임에서나 볼법한 종류의 시스템을 참고 해서 만든 구조를 보이고 있었다.
그렇기에 에볼루션 시스템에 대해서 파악하기 위해서는 일단은 게임 시스템을 떠올리고 그에 맞춰서 하나하나 확인해보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일단 당장은 스테이터스 시스템은 판명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처음 스테이터스 창을 열 때는 무심코 입으로 스테이터스 창이라고 중얼거렸던 공선자.
하지만 이렇게 사람들과 모여 있는 상황에서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스테이터스 창을 열고 닫기 위해서 스테이터스 창! 스테이터스 창! 하고 중얼거리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가?
그렇기에 말이 아닌 마음속으로만 스테이터스 창을 열거나 닫으려는 의사를 보이자 놀랍게도 공선자의 눈앞에서 예의 홀로그램 창이 열렸다가, 닫혔다가 하는 것이었다.
스트림 창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 사실에 공선자는 에볼루션 시스템에 속한 것으로 보이는 시스템 창들을 열고 닫기 위해서 굳이 말을 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렇다면……, 스킬 창, 파티 창, 연락 창, 장비 창, 아이템 창, 설정 창……. 그리고 그 외에…….’
때문에 공선자는 곧바로 게임 시스템 하면 떠오르는 요소를 죄다 속마음 속으로 외쳐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공선자가 예상했던 대로였다.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나, 나왔다…….’
자신이 생각했던 시스템 창들을 마음속을 열거하자 그에 맞는 홀로그램들이 공선자의 눈앞에 차례차례 나타나는 것이었다.
공선자가 떠올리는 대로 외쳤던 모든 창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적어도 중요 골자로 보이는 창들은 나타났다.
‘일단 설정 창 같은 건 안 나왔나. 혹시라도 로그아웃, 뭐, 그런 걸 할 수 있을까 했지만 역시 무리겠지. 그야 이건 현실이니까…….’
애초에 기대도 하지 않았다. 기대를 하지 않았으니까 배신감을 느낄 일은 없었지만 그래도 마음이 착잡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스킬 창……, 이게 장비 창……, 이건……, 프랜들리? 파티 창 비슷한 것 같은데 정식 명칭은 프랜들리라는 건가? 그리고 커뮤니케이션 창. 메시지 창으로 보이네.’
일단 공선자는 자신의 눈앞에 떠오른 창들을 겹치지 않게 시야에서 나열하는 것이었다. 창의 확대, 이동. 모두 창을 오픈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단순히 생각하는 것만으로 실행할 수 있었다.
‘……이건 로그? 시스템 알림 창 같은 게 없을까 했는데 그에 대응하는 건가. 뭔가 로그가 올라와 있는 것 같은데 일단은 나중……, 음? 이건 서브 스트림의 진행도?’
게임에서 뭔가 시스템적인 상호작용이 있었을 때 그것을 알려주는 것과 비슷한 효능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로그 창.
그 로그 창에서 공선자는 뭔가 로그가 떠올라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당장은 에볼루션 시스템의 전체적인 구성을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었기에 확인을 나중으로 미루어두었다.
로그에 떠오른 내용은 에볼루션 시스템의 개요를 파악하는 것과 상관이 없을 확률이 높았기 때문.
보통 게임에서도 시스템 로그에서는 메시지가 왔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뭐, 이런 내용이 올라오지 시스템에 대한 설명이 적혀있거나 하지는 않지 않은가?
그렇기에 확인을 하면 괜히 머리만 복잡해질 수 있는 내용이 있을지 몰랐기에 공선자는 일단 넘겨둔 것이었다.
우선 빠른 시일 내에 확인을 하겠지만 지금 최우선 사항은 에볼루션 시스템을 파악하는 것이었으니까.
그런데 그런 공선자의 눈에 다른 형태의 로그 창이 눈에 들어왔다. 평범한 로그 창과 꽤 떨어진 위치에 또 다른 로그 창이 존재했는데 거기에는 이런 식의 글자가 적혀 있었던 것이다.
-서브 스트림 진행도: 55%
……확실하게 지금 자신이 수행하고 있는 퀘스트와 관련이 있어 보이는 글자. 그리고 그 문자를 확인하고 공선자는 판단하였다.
‘당장 에볼루션 시스템을 자세히 살펴본 것은 아니야. 그저 내가 열 수 있는 창을 무작위로 열어봤을 뿐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행도가 50% 이상이 된다는 건…….’
굳이 에볼루션 시스템을 완벽하게 파악할 필요는 없었다. 애초에 서브 스트림에서도 80% 이상만 파악하면 된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렇기에 공선자는 일단 각각의 창을 자세하게 파악하는 것은 그만두기로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너무 복잡했기 때문. 동시에 시간도 부족했다. 2km 정도의 거리라면 몇십 분도 안 걸려서 도착할 수 있는 위치.
즉, 공선자에게 존재하는 제한 시간은 1시간은커녕 30분도 되지 못할 수도 있었다. 일단 단체로 이동하는 것만큼 생각보다 속도가 나지 않고는 있지만 분명히 머지않아 소나타라는 이름의 도시에 도착할 터.
그 안에 파악해야 하는 만큼 에볼루션 시스템에 대해서 세세하게 파악하고 있을 틈은 없었다.
애초에 그런 건 좀 더 여유가 있을 때 파악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일단 에볼루션 시스템의 전체적인 개요만을 파악해둔다.
그렇게 결정한 공선자는 일단 자신의 열어둔 창의 역할에 대해서 추측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스테이터스 창은 말 그대로 나의 스테이터스를 표시하는 내용일 거야. ……뭔가 칭호 쪽에 엄청 불길한 느낌의 칭호가 하나 존재하는 것 같은데 지금은 일단 신경 쓰지 말자. 그리고 스킬 창은……, 역시 내가 가지고 있는 스킬을 보여주는 창이겠지. 거기에 SP 같은 표시도 있는 걸 보니 이걸로 스킬 같은 걸 습득하는 걸까. 어디 보자 내가 현재 가지고 있는 스킬은…….’
대충 스테이터스 창을 훑어보니 스텟으로 추정되는 수치는 전부 10으로 일관되어 있었다. 즉, 아마도 이게 초기 스텟.
그 정도만 파악한 공선자는 다음으로 넘어갔다. 전부 10으로 동일한 것으로 보건대 아마 신체의 단련 수준과는 상관없이 이 자리에 있는 모두의 스텟이 10으로 동일할 확률이 높았다.
그러니 자신의 스텟에 아마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닐 터. 시간이 없기에 그 정도만 파악한 공선자는 다음에는 스킬 창을 확인했다.
‘……없네. 초기에 주어지는 스킬 같은 건 없다는 건가? 거기에 이거 뭔가 스킬을 나누는 분류가 엄청나게 많은 것 같은데?’
카테고리가 많다고 해야 할까? 직업, 병과, 일반 등과 같은 여러 가지의 카테고리로 나누어져 있는 스킬 창.
일단 해당 카테고리들을 하나하나 눌러봤지만 죄다 비어있었다. 그렇기에 공선자는 아마도 이 에볼루션 시스템은 소설에서 나오는 가상현실이나 혹은 게임 시스템이 법칙으로서 적용된 판타지 소설처럼 플레이어가 모종의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에 맞는 스킬을 주거나 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시작은 전부 동일하게 무. 공선자가 그렇게 판단하고 있을 때였다. 각성이라는 조금 의미심장한 스킬의 카테고리를 슬쩍 클릭해서 열어본 순간 공선자는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뜰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는 ‘두 가지’ 스킬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의 스킬의 이름은 일야몽(日夜夢). 처음 들어보는, 왜 자신이 이런 스킬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스킬이었다.
스킬, 아마도 공선자는 이것이 현실에서 소지자가 모종의 ‘이적’을 발휘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무엇인가가 아닐까 예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