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화 〉제 01계-챕터 01: 에볼루션 시스템
……그러나 공선자의 예상과 다르게 이번에는 새롭게 눈앞에 떠오르는 홀로그램 창이 존재하지 않았다.
즉, 거래 시스템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 하긴, 현실에서 굳이 이런 시스템을 기반으로 거래를 할 필요가 뭐가 있나?
그냥 서로 주고받으면 되는 것. 인벤토리 창이 있는 이상 상대의 물건을 함부로 빼앗거나 하는 것이 불가능할 터이니 혹시나 했지만 이번에는 그 예상이 빗나갔다는 것이었다.
‘으윽! 이렇게 되면 그냥 떠오르는 대로 막 찍어보는 거야! 제, 제발 하나만이라도 맞기를!’
대충 수치를 보아하니 하나나 둘 정도만 맞으면 서브 스트림을 완료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기에 공선자는 마지막에 와서 운에 맡기기로 하는 것이었다.
스트림이라는 것을 클리어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적어도 메인 스트림이라는 것을 클리어하기 전에 서브 스트림을 클리어해서 알아두고 싶었다.
그렇기에 눈앞의 도시에 도착하기 전에 어떻게든 서브 스트림을 클리어해두려고 하는 것. 단지, 역시나 세상일은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선자로서는 더 이상 에볼루션 시스템에 무엇이 숨겨져 있는 것인지 파악할 정보가 없었다.
때문에 마지막에 와서는 운에 맡기고 그냥 얻어걸리라는 식으로 머릿속에 마구잡이로 이것저것 떠올릴 수밖에 없었던 것.
단, 공선자는 악운이 강했다. 악운이다. 행운이 아니라 악운. 행운이 강했다면 어렸을 적에 초능력를 지녔다는 이유로 납치와 생체실험을 당했겠는가?
그가 강한 것은 악운. 언제가 운이 없어서 최악의 상황에 처하는 주제에 그 순간에만 발휘되는 강운을 의미했다.
그는 운이 나빴다. 그렇기에 언제나 다른 사람들이 겪지 않아도 될 불운을 겪어왔다. 허나, 불행 중 다행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공선자는 늘 그랬다. 불행 중 다행, 그것 하니만큼에는 강했다. 본래라면 죽어도 진작 죽어야 할 상황에서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평범한 운을 지닌 이들은 애초에 ‘죽을 상황 자체에 휘말리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공선자는 아니었다.
운이 나빠도 휘말리기 힘든 최악의 상황에 늘 휘말렸다. 허나, 그러면서도 꼭 그런 최악의 상황에만 처하면 그때 그 순간만 ‘행운이 따라주었다는’ 이야기.
정말이지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였다. 이왕 운이 좋을 거면 처음부터 운이 좋았으면 좋지 않은가?
아니, 어쩌면 이건 악운에 강한 게 아니라 워낙 불운하다 보니까 최악의 상황에 오면 더 떨어질 곳도 없어서 역으로 운이 악운이 따라주는 것처럼 보이는 게 아닐까?
더 떨어질 것도 없는 불행한 상태이기에 더 이상 공선자가 지니고 있던 생존본능을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에는 그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을 틀어막지 못했다.
다르게 이야기하자면 공선자의 살아남고자 하던 의지, 살아남아서 자유를 쟁취하고자 했던 의지는 불운조차 막지 못했다, 라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것.
뭐, 그것도 마지막에 가서는 자유의 쟁취가 아니야 복수의 의지로 바꾸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약해진 것은 아니었고 말이다.
요컨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냐면 공선자는 평소에는 운이 없는 편이지만 몰려버리는 순간만큼은 악운이 넘쳐나는 타입이라는 것. 그렇기에 이런 일도 있을 수 있었다.
띠링!!!
‘어?! 정말로 얻어걸렸어?!’
게임에서 접할 수 있는 개념을 그냥 막무가내로 떠올렸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운 좋게 들어맞았다.
당사자인 공선자 자신도 이게 얻어걸릴 줄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기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허나, 이내 정신을 차렸다. 농담이 아니라 이제는 이쪽 일행이 목소리를 높이면 성문에서 경비를 보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들릴 정도로 거리가 가까워졌다.
실제로 성문에서 경비를 보는 것으로 보이는 경비병이 공선자가 섞여 있는 일행들의 존재를 눈치 채고 잔뜩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게 보였고 말이다.
그야 뜬금없이 공선자가 속한 일행처럼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들이 50명이나, 그것도 전원 똑같은 복장을 하고 다가오면 누구라도 긴장할 것이다.
옷을 제외한 사람들의 인종이며 생김새, 심지어 나이대로 가지각색이었으니 더욱더 긴장할 수밖에 없는 것.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나마 그들의 안색이 나빠 보이지만은 않는다는 것이었을까? 그것도 개인마다 차이가 있기는 해도 적어도 당장 죽을 것 같은 인상의 사람은 없었다.
만약 그들 전원의 얼굴이 창백하거나 당장 죽을 것 같은 얼굴이었으면 그건 경우에 따라서 호러영화의 한 장면처럼 보일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여하튼 중요한 것은 드디어 천사가 이야기했던 챌린저라는 명칭으로 불릴 것이라 추측되는 이들과 공선자가 예상하기로는 자신이 알던 세계와 전혀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 처음으로 접촉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자세한 판정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저 경비병과 대화를 하는 순간 도시에 도착한 것으로 판정되어 서브 스트림이 실패한 가능성이 컸다.
스트림에 실패할 경우에도 어떤 일이 발생할지는 알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스트림의 성공할 경우를 확인하는 편이 좋았다.
스트림 실패는 아마 얼마든지 기회가 있을 터. 하지만 스트림 성공은 경우에 따라서는 매우 힘들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아마도 난이도가 그렇게 높은 스트림만 나올 것 같지는 않지만, 그거야 어디까지나 공선자의 추측.
그러니 할 수 있을 때에 해둔다. 그렇게 판단한 공선자는 재빨리 자신이 얻어걸려서 열 수 있었던 시스템 창을 확인해보았다.
‘……이건 상점 창? 설마 하니 이런 식으로 현실과는 동떨어진 시스템 창이 존재할 줄은 몰랐어.’
현실에서 무엇인가 사고자 한다면 그냥 가게를 찾아가면 되었다. 아무리 공선자의 예측으로 그렇게 문명이 발전되지 않은 세계로 보인다고 해도 무엇인가를 판다는 개념을 지닌 가게는 존재할 터.
그야 인류 역사상 가게, 즉, 상점이라는 녀석은 매우 오래전부터 존재했으니 말이다. 때문에 설마 에볼루션 시스템이라는 것에 상점조차 포함되어 있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게임 같은 것에야 상점 시스템이 있을지도 몰랐다. 애초에 현실의 상점을 게임에 구현화 시킨 것이 상점 시스템일 테니깐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게임에 구현된 것 같은 상점 시스템을 진짜 상점이 있는 현실에 옮겨놓았을 줄이야. 맹점이었다.
거래 창이 없는 이유가 현실에서 충분히 물리적으로 거래를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현실에서도 충분히 상점을 이용할 수 있는데 굳이 상점 창이 있을 줄은 몰랐던 것.
하지만 거래 창과 달리 상점 창은 무엇인가 차이가 있는 것인지 시스템 창으로 구현되어 있는 상황.
‘마구잡이로 이것저것 시험하다가 상점 창이 얻어걸린 건 진짜로 운이 좋았어. 이걸로 서브 스트림의 달성률은 78% 상점 창의 비중이 상당히 크네. 남은 2%는 상점 창에 대해서 대충 파악하면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아.’
생각나는 게 없어 거래 창에서 파생시켜 이것저것 던져본 것인데 운 좋게 걸려주어서 정말로 다행이었다.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상점 창을 열어본 공선자는 일단 빠르게 상점 창에 대한 대략적인 요소를 훑어보는 것이었다.
‘스킬 상점, 아이템 상점, 경매장, 매각소……. 사용되는 화폐는 T? 무슨 단위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대충 이런 식인가. 설마 스킬도 상점에서 사는 방식이었어?’
공선자는 스킬이라는 것은 직접 수련을 하는 방식으로 습득하는 게 아닐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설마 이런 식으로 상점 창에서 사는 것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 아직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었다. 상점 창에서 살 수도 있지만 공선자의 예상처럼 스스로 직접 해당 스킬을 수련하는 식으로 습득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렇지 않으면 너무 게임 같은 시스템이었다. 그러나 뭐가 되었던지 지금 중요한 것은 상점 창을 통해서 스킬이란 것을 살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렇기에 공선자는 일단 스킬이 무엇인지 더 자세히 확인할 생각으로 스킬 상점을 열람해보려고 했는데…….
띠링!
또 다시 공선자의 뇌리에만 울리는 묘한 효과음과 함께 이번에는 제멋대로 로그 창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내 로그 창이 멋대로 떠오른 이유를 확인하고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요컨대 공선자가 받았던 서브 스트림. 그것이 클리어 된 상황인 것.
상점 창을 열면서 75%를 넘던 달성률이 공선자가 상점 창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하게 이해하는 순간에 80%를 넘으면서 스트림 자체가 달성한 것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멈춰라. 네 녀석들 뭐하는 녀석들이냐?”
……때마침 공선자를 포함한 챌린저들 50여명이 성문을 지키고 있던 경비병과 접촉하는 것이었다.
몇몇 사람들은 경비병은 신경도 안 쓰고 거대하기 그지없는 성벽의 크기에 압도된 것인지 감탄사만 토해내고 있을 뿐이었다.
그에 그들을 대신해서 여태까지 일행의 리더와 같은 역할을 맡았던 마초남이 앞으로 나서 입을 여는 것이었다.
“……….”
아니, 입을 열려고 하였다. 허나, 일단 도시로 보이는 곳에 도착하기는 했지만 마초남이라고 해도 자세한 사정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섣부르게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일단은 자신들의 상황을 설명하고 도움을 구하고 싶기는 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처음 보는 이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하책이 될 수도 있었다.
때문에 일단 앞으로 나서 자신이 50명에 달하는 사람을 이끌고 있다고 어필을 하면서도 일단은 잠깐 침묵하는 것으로 무게를 잡는 것이었다.
보다 정확히는 무게를 잡는 척하면서 최종적으로 꺼내야 할 말을 판별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 그런 마초남의 시도가 먹힌 것인지 성문을 지키고 있던 소수의 경비병들 얼굴이 긴장감에 사로잡히는 것이었다.
당장 갑자기 5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몰려온 것도 수상한데 이번에는 근육이 우락부락한 남자가 나와서 무게를 잡는 것이었다.
긴장을 하지 않으면 그건 경비병으로 업무태만일 터. 하지만 그렇다고 마초남에게 겁을 먹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마초남의 신체가 우락부락해도 경비병들은 현재 질 좋아 보이는 갑옷과 창으로 무장한 상태.
거기에 경비 업무를 맡을 만큼의 실력은 있는 것인지 마초남 수준은 아니어도 몸도 좋아 보였고 말이다.
숫자 면에서도 꿇릴 것은 없었다. 당장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의 숫자는 5명이 안 되었지만 그들이 당하는 순간 달려올 사람들의 숫자는 성 안에 차고도 넘쳤다.
그렇기에 혹시라도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가 없어 긴장을 했지만 겁을 먹지는 않았다. 마초남 역시 그 정도 사실은 파악할 수 있었다.
뭐, 애초에 마초남이 상대한테 겁을 주려고 무게를 잡은 것은 아니었으니 상대가 무서워하지 않는다고 아쉬워할 필요는 없었지만 말이다.
“……우리는 기억을 잃고 여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동굴에 단체로 정신을 잃고 있었던 집단이다.”
“……하?”
그렇기에 상대의 반응에도 당황하지 않고 마초남은 차분하게 자신이 선별한 문장을 입에 담는 것이었다.
그리고 혹시라도 50명의 불신자들이 덤벼드는 게 아닐까 잔뜩 긴장하고 있던 경비병(정확히는 공선자들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추정될 뿐이지)들은 그 발언에 곤혹스러워할 수밖에 없었다.
이상할 것은 없었다. 정체를 밝히라는 투였기에 정체를 밝혔을 뿐이었으니까. 단지, 그거야 겉포장만 그렇다는 것이고 그 속을 들여다보며 이야기는 달라졌다.
확실히 자신들의 정체를 밝히기는 했는데 그 정체가 워낙 터무니없는, 이게 뭔 개소리인가? 하는 생각부터 떠오르는 이야기였기에 순간적으로 경비병들은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자, 잠깐?! 그런 걸 막 함부로 이야기해도 괜찮은 거야?!”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다. 애초에 우리들이 뭘 숨기려고 해도 정보가 너무 부족해. 상대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상대를 섣불리 속이려고 들었다가는 역으로 우리가 당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섣부른 거짓말은 간파당하는 순간 더욱 큰 의심을 낳기 마련이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