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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4화 〉제 01계-챕터 01: 에볼루션 시스템 (44/194)



〈 44화 〉제 01계-챕터 01: 에볼루션 시스템

애초에 이 자리에 있는 50명이 기억을 잃은 것은 사실. 그렇기에 결국 뭐가 되었던지 사정을 아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도움을 줄지도 모르는 이들에게 의심을 사는 것을 현명한 판단이 아니다. 마초남을 그렇게 판단한 것.

물론 눈앞의 이들이 자신들에게 과연 도움을 줄지 확신을 할 수가 없었다. 허나, 어차피 이미 접촉한 상태가 아닌가?

그렇다면 이제는 저들이 자신들을 도와주기를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설령 저들이 챌린저들을 도와줄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고 해도 이미 접촉해버렸고, 챌린저들이 그걸 확인할 수 없는 이상은 무슨 수단이 없는 것.

속여서 이용한다? 아서라, 말하지 않았는가. 챌린저들은 정보가 없었다. 잘못하면 오히려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에 처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접촉했던 사람들이 적어도 자신들을 도와줄 것이라 상정하고 모든 것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편이 상대의 신뢰를 보다 쉽게 얻을 수 있는 방식……일지도 몰랐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기 그걸 그대로 털어놓으면 우리가 너무 수상한 사람들이 되어버리잖아?!”

“수상한 사람들이 되는 게 아니라 이미 수상한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모든 걸 사실대로 털어놓고 도움을 받기를 기대할 수밖에. 쉽게 이야기하자면 그거다. 어차피 이래저래 배팅을 해도 질 경우 파산하는 게 똑같다면 이겼을 때에 더 큰 이득을 볼 수 있도록 배팅을 하는 게 정답이라는 거지.”

“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지만…….”

마초남의 발언에 당황했던 것은 경비병뿐만이 아니었다. 그와 함께 왔던 50명의 기억상실을 지닌 사람들.

그들 역시도 설마 마초남이 저렇게 자신들에게 대해서 순순히 털어놓을 줄은 몰랐기에 당황해 그에게 따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내 마초남의 설명에 설득당한 것일까? 아니, 그것보다는 그들이 소란을 떠는 것에 정신을 되찾은 경비병들이 움직이기 시작해서 더 이상 반발하지 못했다는 게 더 정답에 가까워 보였다.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지. 기억을 잃었다고? 그게 무슨 의미지?”

“말 그대로의 이야기다. 이 자리에 있는 수십 명의 사람들은 전원이 기억을 잃고 어떤 동굴에 방치되어 있었다는 소리.”

“믿기 힘든 이야기인데…….”

까놓고 말해서 이걸 그대로 믿으면 또 그건 그거대로 수상할 것이었다. 그야 처음 보는 사람들이 단체로 몰려와서 저희 기억상실이에요! 라고 주장하는데 그걸 수상하게 여기지 않고 곧바로 ‘아, 그러신가요? 곤란하겠군요! 저희가 도와드리겠습니다!’ 라고 대답해오면 어떻게 봐도 대답해온 쪽이 수상하지 않은가?

일단 당장 기억상실이라는 게 그렇게 자주 있는 일도 아니었다. 하물며 단체로 기억을 잃는다고?

적어도 21세기에서는 있을 수 없었다. 개인이라면 모를까 단체로 기억을 잃었다는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닌 모종의 수단으로 여러 사람들의 기억에 간섭했다는 건데…….

적어도 21세기 지구에서는 상대의 기억에 간섭하는 기술은 ‘표면적’으로는 존재하지 않았다.

공선자에게 실행되었던 각종 실험을 생각하면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표면적으로는 불가능했다는 소리.

그런데 그런 불가능한 일이 발생했다고 주장하며 다가오는 사람을 덥석 믿어버리는 이들이 어디 있겠는가?

있다면 그건 그냥 바보거나 혹은 그들이 기억을 잃은 것과 무엇인가 관련이 있는 이들일 터였다.

관련이 있으니까 ‘있을 수 있지!’ 라고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여하튼 그런 이유로 경비병들이 마초남의 말을 의심하며 덤으로 50명 정도의 일행들을 미심쩍은 눈초리로 쳐다보는 것도 당연하다는 이야기.

“……일단 신분이 될 만한 걸 보여줬으면 좋겠는데. 뭐가 되었던지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그거니깐 말이야. 거기에 정말로 단체로 기억상실에 걸린 거라면 신분을 증명하는 것으로 정황을 파악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말이지.”

“그것참 재미있는 이야기군. 정신을 차려보니 기억을 잃고 전부 같은 차림으로 동굴에 널브러져 있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신분을 증명할 수 있다니! 나는 오히려 그게 가능하다면 그쪽이 더 수상하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지?”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경비병들은 어쨌든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하고자 하였다.

상대가 진짜로 기억상실이든 아니면 그냥 미친놈들이 모인 단체이던 신분을 통해서 자신들이 위험하지 않다는 사실만 증명할 수 있다면 성문을 통해 도시 안으로 들여다 보내준다.

그것이 경비병들의 일. 그렇기에 우선은 이 자리에 있는 50명의 신분을 증명하려고 했지만 당연히 일이 그렇게 쉽게 풀릴 리가 없었다.

마초남이 당당하게 자신들에게는 그런 것이 없다는 의미를 담은 말을 건네 왔기 때문. 그리고 경비병들 역시 마초남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었다.

허나, 그렇다고 해도 순순히 도시 내부로 들어다 보내줄 수도 없는 법. 아니, 애초에 경비병들은 그들의 목적이 무엇인지조차 확인이 안 된 상황이었다.

일단 성문 쪽으로 온 걸 보면 성벽을 넘어 도시 내부로 들어가고 싶어 한다는 것은 대충 눈치 채고 있기는 한데…….

“쯧, 그렇다면 우리보고 뭐 어쩌라는 거지? 우리는 신분이 제대로 증명되지 않은 사람들을 성벽 내로 진입하게 내버려둘 수 없다. 기억상실이든 뭐든지 신분을 증명할 수 없다면 이야기가 되질 않아.”

“그러니 그 부분을 어떻게든 좀 도와줬으면 하는데 말이지. 말했다시피 우리들은 전원이 기억상실이어서 자신들의 이름조차 기억하고 있지 않다. 그렇기에 신분을 증명하는 건 불가능해. 하지만 이대로 도시 안에 못 들어가면 이제부터 어떻게 될지 우리도 알 수 없다.”

“그건 협박인가?”

“아니, 그런 중의적인 의미가 아니라 말 그대로 기억이 없기에 이 주변에 어떤 위협이 있는지도 알지 못해 말 그대로 자신들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라는 이야기지. 그러니 무엇이라도 좋으니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도움을 줬으면 하는데 말이야.”

그렇게 이야기해서 경비병들로서는 눈앞의 이들에게 어떤 도움을 줘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야 애초에 기억을 잃고 있는 만큼 당사자들조차 자신들이 어떤 도움을 필요로 하는지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

“……단체로 기억을 잃었다니 너무 수상한데요? 그런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도 되나요? 이거 어디 산속 마을에서 단체로 허가 없이 저희 도시로 이주하려고 수작 부리는 거 아닌가요?”

“아니, 산속에서 왔다는 것치고는 행색이 꽤 말끔하잖아? 입고 있는 옷의 옷감은 평범하지만 그렇게까지 해지지도 않은 것 같아. 즉, 이 근처에서 저 옷을 입고 단체로 이동하기 시작한 건 사실이겠지. 거기에 최근 도시 근처에서 이 정도 숫자의 사람들이 이동해온다는 소식도 못 들었잖아?”

“확실히 그렇기는 하지만 그럼 더더욱 수상하잖아요? 이 사람들, 정말로 땅에서 솟아나기라도 한 건가요?”

“글쎄……. 수상한 건 확실하지만 또 그렇다고 있을 수 없는 일도 아니어서 말이지. 단체로 도망친 노예들……, 이라기에는 말했던 것처럼 행색이 말끔하고……. 혹시 흑마법사가 몰래 납치해서 실험을 하던 경우일 수도 있어. 단체로 기억상실에 걸린 것도 그런 실험의 부작용일 수도 있고.”

“흑마법사라니……, 그게 그렇게 자주 볼 수 있는 존재도 아니잖아요? 거기에 진짜로 실험체였다고 해도 어떻게 마법사의 손에서 탈출할 수 있었던 건데요?”

“내가 그걸 어떻게 아냐? 하여간 뭐가 되었던지 앵간한 일은 아닌 것 같으니까 니가 가서 대장님 좀 불러와 봐. 난 일단 애들 시켜서 이 녀석들 좀 붙잡아 둘 테니깐 말이야.”

경비병들 중 뒤쪽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이들이 서로 뭔가를 속닥거리더니 이내 한 명이 그 자리를 뜨는 것이었다.

갑작스럽게 성문 앞에 모습을 드러낸 50명의 사람들. 평화롭게 경비 일을 보던 이들의 입장에서는 갑작스럽게 일감이 몰려온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그들이 맡은 일은 일인 만큼 그들이 할 수 있는 대응을 하려고 하는 것이었다.

일단 상황에 어떻게 된 것인지 정확하게 파악이 되지는 않지만 자신들의 선에서 처리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기에 상급자를 불렀다.

“일단 붙잡아 봐. 애초에 신분이 확실하지 않은 녀석들이고, 거기에 진짜로 기억상실이라고 한다면 더더욱 수상해.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에 마법 같은 거에 세뇌당했을 가능성이 있으니까 우선은 잡아서 그쪽으로 조사 좀 해봐야겠어.”

그리고 동시에 일단 상황을 보류할 겸 눈앞의 수상한 자들을 붙잡아두기로 하는 명령을 경비병들 중에서도 현재의 현장에서 리더로 보이는 이가 내리는 것이었다.

타다다닥!!

그 병사의 명령에 10명이 안 되는 경비병들이 잽싸게 움직이더니 순식간에 50명에 가까운 사람들을 포위하는 것이었다.

숫자가 적은 만큼 그렇게까지 대단한 포위망은 아니었다. 그러나 저들은 창과 갑옷으로 무장하고 있었기에 괜히 포위망을 돌파하려고 하다가는 분명히 여럿 죽어갈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죽은 사람이 자신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생각에 사람들은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고 그저 잔뜩 긴장한 얼굴로 그 자리에 굳을 수밖에 없었던 것.

“……음. 다짜고짜 우리들을 구속한다는 건가? 무슨 명분으로?”

“신분을 증명할 수 없다는 점에서부터 구속할 명분은 충분해. 이 도시에는 워낙 다양한 인종이 모이니까 평소라면 신분을 증명하지 못해서 경우에 따라서는 들여보내 주는 경우가 아예 없는 건 아닌데……, 댁들은 너무 지나치게 수상하잖아?”

경우에 따라서 들여보내 준다는 것은 아마도 뇌물 같은 것을 준비할 경우를 의미하는 것 같았다.

거기에 다른 도시에서 통하는 수단이 아닌, 특이한 지금 눈앞에 있는 도시에서만 통하는 수단으로 보였다.

서브 스트림을 클리어했다. 그를 통해서 정보를 얻으려고 했던 공선자. 하지만 동시에 일행들이 경비병과 접촉을 해버렸기에 그에 관한 일은 뒤로 미루어두었다.

그리고서는 잠시 상황을 지켜보던 그. 그러던 때에 경비병들이 포위망을 구축하자 순간적으로 본능에 따라 언제라도 빠져나갈 수 있도록 뇌리에 퇴각 경로를 짜는 것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상대의 말을 통해서 도시에 진입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으로 추정되는 정보를 습득한 것.

‘……하려고 한다면 나 혼자서 빠져나가서 나중에 돈을 모아 이 도시 내부로 들어가는 것도 불가능은 아닐 것 같은데.’

진짜로 가능할까? 하는 불안감을 있었지만 그가 겪은 경험이 경험이었다. 적어도 ‘불가능하다’라는 느낌은 없었다.

그렇다면 해야 할 때는 해야 하는 법. 그렇기에 공선자가 언제라도 움직일 수 있게 각오하고 기회를 보려고 할 때였다.

“뭐, 그렇다고 너무 걱정하지 마. 너희들이 정말로 결백하다면 딱히 겁박하거나 할 생각은 없으니까. 진짜로 어디 흑마법사한테 당한 피해자일 수도 있고……. 그러니까 일단 신변은 구속할 테지만 조사가 끝난 뒤에는 제대로 풀어줄 테니깐 말이야. 상황에 따라서는 각자의 신분을 되찾는데 협력할 수도 있고 말이야. 그야 진짜로 어디 흑마법사한테 납치된 사람이라면 귀족이 있을 수도…….”

“아마 그런 일은 없을 거다. 그 사람들은 내 손님인 것 같으니깐 말이지.”

경비병들과 공선자가 속한 일행 사이의 긴장감이 치솟고 이내 경비병들이 그들을 구속하려고 할 때였다.

갑작스럽게 그 장소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가 끼어든 것은 말이다. 그렇게 큰 목소리로 말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 옆에서 말하는 것 같은 목소리에 순간 공선자는 자신도 모르게 흠칫 놀라 어깨를 떨고 말았다.

‘뭐, 뭐야? 지금 이 감각은……?!’

언제라도 움직일 수 있도록 준비를 해두었다. 까놓고 말해서 머릿속에서는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에 대한 이미지가 그려지지 않았지만 적어도 신체는 이미 준비를 끝마쳤던 상황.

그러나 갑작스럽게 등장한 남자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공선자의 신체는 즉시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은 것이었다.

탈출은 불가능. 그래, 불가능. 저 남자가 등장하는 순간 자신이 현재 쓸 수 있는 그 어떤 수단을 사용해도 이 장소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암살자로서 단련된 공선자의 신체가 본능적으로 판단을 내렸다.

그리고 동시에 공선자는 남자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기묘하기 그지없는 감각을 느꼈다. 거기에 신체의 반응까지 겹쳐지기 매우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던 것.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압박감. 힘을 준 것 같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모종의 힘을 느끼게 하는 목소리. 거기에 공선자는 놀랍게도 ‘실체’를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밖에 설명할 수 없는 무엇인가를 그는 상대의 목소리에서 감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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