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화 〉제 01계-챕터 01: 에볼루션 시스템
거기에 보아 하니까 지금 자신이 있는 세계는 초능력과 비슷한 쪽인 마법이라는 게 실존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공선자는 그 마법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그렇기에 조심할 수밖에 없는 것. 혹시라도 자신의 진명을 썼다가 마법이라는 것에 의해서 속박을 당하거나 하면?
왜 각종 매체에서 자주 나오는 것 아닌가? 마법사들에게 함부로 자신의 진명을 알려주지 말라거나 하는 거 말이다.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면 이름을 매개로 각종 저주를 받는다니 어쩌니 하는 거 말이다. 그렇기에 공선자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결정을 못 내리고 있었다.
‘아니, 하지만 만약 그런 거라면 애초에 가명을 써도 상관없다는 언급 자체는 안 했겠지. 거기에 저 사람이라면 굳이 이런 수단을 사용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이 자리에 있는 이들 전원을 제압할 수 있어.’
그러니 이런 빙빙 돌아가는 수단을 쓸 이유가 없었다. 그래, 이유가 없는 건 알겠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겁을 먹고 걱정하는 것이 공선자 스케일.
‘……생각해보니까 이쪽 세계의 사람들의 이름은 보통 어떻지? 어떤 형태의 이름을 사용하는 거지?’
당장 공선자가 있던 세계에서는 동양이냐, 서양이냐에 따라서 이름의 형태가 달랐다. 그러니 당연히 다른 세계인만큼 이름을 짓는 방식이 달라도 이상할 것은 없는 것.
그렇기에 공선자가 문득 이쪽 세계는 어떤 식으로 이름을 짓는지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그야 괜히 튀는 이름을 지어서 주목받고 싶은 생각은 없었으니까.
거기에 경우에 따라서는 이름이 튄다는 이유만으로 의심을 받는 경우도 생길 수 있지 않은가?
“흠, 증명패에 이름을 뭐로 적을지 고민할 시간은 앞으로 5분 주마. 거기에 선택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모르니 이야기해두겠는데 가명을 쓸 경우 모험가들은 워낙 멋대로 가명을 지어서 각종 특이한 가명들이 넘쳐나니 그쪽으로는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때마침 공선자의 내심을 읽기라도 한 것 마냥 하잠이 저렇게 이야기해주는 것이었다.
그에 공선자는 마침내 결정했다. 진명이 아니라 가명을 쓰기로. 하잠을 완전히 신뢰할 수 없다는 것도 이유기는 했다.
허나,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잊지 않기 위해서. 무엇을? 당연히 자신이 어떻게 해서 이 자리에 서 있게 되었는지를 말이다.
이름이란 늘 자신을 따라다니는 것. 자신의 존재의 증명의 첫걸음이기도 한 것. 경우에 따라서는 개인에게 매우 큰 의미를 부여하는 개념.
그렇기에 공선자는 두 번째 이름을 사용하여 언제나 자신에게 상기시키고 싶은 것이었다. 자신이 누구의 희생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인지를.
가명이라고 해도 모험가로서 활동할 때는 늘 그 이름을 쓰겠지. 아니, 이후로 공선자는 자신의 진명을 함부로 밝힐 생각이 없었다.
즉, 자신의 진짜 이름보다 아마도 지금 결정한 가명을 더 자주 쓰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 그렇게 된다면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가명을 사용할 때마다 어째서 자신이 이 가명을 결정한 것인지 늘 떠오를 테니까. 자신을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치고 사라진 그 사람을.
그와 같은 각오를 하고 가명을 정한 공선자는 자신이 들고 있는 증명패에 막 뇌리에 떠오른 가명을 적어 넣는 것이었다. 그 가명은 다음과 같았다.
-블러드.
공선자가 이것을 가명으로 정한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로 초성. ……공선자의 반신이었던 그의 형의 인격. 가명을 사용하기로 한 가장 큰 이유.
즉, 영어로 하면 브라더. 처음 공선자는 이것을 따서 가명을 만들려고 하였다. 다시금 이야기하지만 자신에게 모든 것을 바치고 사라진 자신의 반쪽을 결코 잊지 않겠다는 의미로.
하지만 머리를 굴려 봐도 브라더에서 파생시킬 수 있는 가명들 중 딱히 확 와 닿는 가명이 떠오르지 않던 것. 그러던 중 브라더와 초성이 같은 블러드라는 단어가 떠오른 것이었다.
그에 공선자는 살아남기 위해서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다는 의미로, 설령 살아남기 위해서 누군가의 피로 만들어진 길을 밟고 가야 한다고 해도 나아가겠다는 의미로 블러드라는 가명을 선택한 것.
아니, 그것은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가까울지 몰랐다. 하겠다, 가 아니라 해야 한다, 라는 강박관념.
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중요하지 않다. 자신의 능력에 상관없이 자신은 그렇게 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스스로를 몰아넣는 것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지금 네가 서 있는 장소는, 그리고 앞으로 네가 걸어갈 길은 자신의 형제의 피와 살로 만들어진 길이다. 그것을 잊지 말고 걸어라.
……그렇게 스스로를 몰아넣는 것에 가까운 의미로 지은 가명일 것이다. 블러드는. 그리고 공선자는 정했다.
이제부터 다른 이들에게 자신에 대해 이야기할 때 결코 진명인 공선자를 쓰지 않겠다고. 애초에 뭐가 선한 인간인가?
누군가의 희생 없이는 제대로 살아갈 수도 없는 자신에게 그런 이름은 어울리지 않는다. 여기에는 처음 말했던, 진명을 밝히면 위험하다는 이유도 물론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역시 그 이상으로 공선자는 자신의 이름이 자신에게 매우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 역시 인정하고 있는 것.
그러나 그렇다고 자신의 이름을 버릴 수는 없었다. 인체실험을 당하며 무너져 내렸던 공선자의 정신.
그 정신 안에 유일하게 남아있던, 지금의 공선자가 기억을 잃기 전의 공선자와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유일한 연결이었으니깐 말이다.
그렇기에 도저히 버릴 수가 없었다. 그저 이름만 기억할 뿐이었다. 이름과 그 이름의 유래만 기억나고 그 이름을 지어주었던, 아마도 자신의 가족이었던 이들은 도저히 기억나지 않았다.
너무 어렸을 때여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인체실험의 부작용 때문인지조차 확신이 서지 않는 상황.
아마도 인체실험의 부작용이 맞을 것이다. 흐릿하게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렇기에 공선자는 자신의 이름을 봉인해둘지언정 버릴 수는 없었다. 기억조차 나지 않는 가족을 그리워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이름마저 버리게 된다면 공선자는 스스로를 도대체 뭐라 정의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고 느껴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여태까지 그가 살아온 모든 삶. 그 삶은 공선자로서의 삶이었다. 이름의 담긴 유래와는 상관없이 공선자란 이름으로 불렸던 단언컨대 세상의 밑바닥을 전전했다고 자신할 수 있는 인물의 삶인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이름을 버리면 마치 그 삶은 부정하는 것 같았던 것이다. 설령 지우고 싶은 기억이라도 지워서는 안 되었다.
그 삶이 악의로 넘쳐왔던 삶이라고 해도 그 삶이 있었기에 지금의 공선자가 있는 것이었다.
과거를 부정하는 것은 지금의 자신을, 그리고 자신이 여기에 있기 위해서 치러왔던 모든 희생을 부정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공선자는 자신의 이름을 버리지 못했다. 그저 깊숙이……, 언젠가 준비가 되었다고 느껴지면 그 순간 꺼낼 수 있도록 봉인해둘 뿐.
“보아하니 대충 절반 이상은 증명패에 이름을 각인한 모양이군. 그러면 그 증명패에 피를 한 방울 떨어트리도록 하게. 그를 통해서 증명패를 자네들에게 귀속시킬 수 있으니 말일세.”
그렇게 자신의 가명으로 블러드라고 공선자가 결정했을 때 때마침 그와 마찬가지로 증명패에 자신이 사용할 이름들을 각인시킨 이들이 어느 정도 나타난 모양.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하잠이 아직 결정하지 못한 이들에게는 남은 시간 동안 더 고민하라고 이야기한 뒤 결정을 끝낸 이들에게는 그 뒤에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이야기해주는 것이었다.
“피?!”
“그, 그렇게 놀란 건 없네. 해봤자 한 방울 정도 떨어트리라는 거잖아? 으음……, 하지만 자기가 직접 상처를 내는 건 쫌 그런데…….”
설마 자신의 피까지 떨어트려야 하는 줄은 몰랐던 이들이 당황하는 것이었다. 피 한 방울이라고 한다면 그렇게 큰일인 것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럴 것이 당사자들 역시 좀 당황할지언정 거부감을 표하거나 하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단지, 피를 한 방울이라도 흘리려면 자신에게 작더라도 상처를 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어찌해야 할지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말이다.
“걱정할 필요 없다. 증명패 중앙에 20초 정도 엄지손가락만 대고 있어라. 그러면 증명패가 알아서 소량의 피를 흡수할 테니깐 말이지. 단, 주의할 것은 해당 기능은 증명패 당 단 1번밖에 사용할 수 없으니 혹시라도 장난삼아 다른 사람의 피를 적시거나 하는 짓은 하지 말도록 그렇게 된다면 해당 증명패는 그 사람에게 귀속되고 말 테니 말이야.”
여기에 대한 해결책 역시 하잠이 제시해주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하나둘씩 증명패의 중앙에 하잠이 말한 대로 엄지손가락을 대어서 자신의 피를 적시는 것이었다.
공선자 역시 하잠이 시키는 대로 하려고 했다가 혹시나 하는 생각에 슬쩍 주변을 살펴보는 것이었다.
역시 여기까지 와서 의심하는 것도 그렇지만 무려 자신의 피를 제공해야 한다는 사실에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일단 상황을 지켜보려고 하는 것.
그리고 하잠은 그렇게 그들이 증명패를 귀속시키는 동안에 카운터를 맡고 있던 여성과 다시금 짧게 이야기는 나누는 것이었다.
“증명패의 여분은 준비되어 있겠지?”
“네, 대충 10개 정도 준비되어 있어요. 하지만 보아하니까 다들 가르쳐준 대로 잘 따라 하는 것 같으니 사용할 일은 없지 않을까요?”
“그거야 모르는 일이지. 일단 내가 데려온 녀석들이지만 나도 자세히는 모르는 녀석들이니깐 말이야. 혹시라도 하지 말라고 했는데 하는 이들이 있으면 곤란하니 일단은 준비해주게.”
그리고 두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슬쩍 청각을 집중해서 엿들어본 공선자였지만 그렇게 중요한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았다.
“저기……, 그 귀속이란 걸 하니까 이게 이렇게 빛을 내기 시작하는데요?”
“정상이라네. 모험가증명패는 귀속된 자의 손에 있을 때 은은한 빛을 띠게 되지. 거기에 해당 모험가의 등급에 따라서 빛의 색깔이 달라지고 말이야. 녹색으로 빛나고 있지? 자네의 등급은 스프라우트. 요컨대 막 모험가가 된 신입이라는 이야기지. 아니, 견습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모험가 등급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나중에 개인적으로 이 사람에게 물어보게. 일주일 정도는 친절하게 설명해줄 테니 말이야.”
“정말……. 일단 길드장님의 명령이니 따르기는 하겠지만 이렇게 많은 인원수를 저 한 명한테만 맡기시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래서 일주일 동안 자네의 업무를 빼주지 않았나? 일주일 동안만은 이들의 전담이라고 생각하면 되네. 보너스도 얹어줄 생각이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충성, 충성.”
……역시 어느 세계나 사람은 돈에 약한 모양이었다. 처음에는 툴툴거리며 불만을 토해내던 꽤 괜찮은 미모를 하고 있는 아가씨가 곧바로 애교(?)를 부리는 것은 보면 말이다.
“그리고 자……, 증명패의 귀속이 끝났으면 끝난 사람들부터 순서대로 우리 길드의 간판 아가씨 앞에 서서 증명패의 등록을 실행하게. 증명패는 피를 통해서 자네들의 정보가 저장되어 있고 그를 통해서 증명패를 귀속시킨 소지자가 들고 있을 때만 증명패의 색깔을 변화시키고 희미하게 해당 색깔로 빛내게 되지. 그 원리에 사용된 자네들의 정보를 모험가 길드의 데이터베이스에 기록시킬 걸세.”
“데이터베이스?”
“마법적으로 모험가 길드에 관련된 중요 기록들을 기록해주는 형태 없는 도서관이라고 생각하면 될 거야. 이를 통해서 증명패의 도난이나 불법 복제를 막기도 하지. 증명패를 귀속시킨다고 해도 모험가 등록이 된 건 아니니깐 말이야. 증명패를 귀속시키고 그 증명패에 기록된 자신의 정보를 모험가 길드에 등록하는 것으로 비로소 한 명의 모험가가 되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으니 말이야.”
하잠의 이어진 설명에 일단 증명패를 귀속시키는 것을 끝낸 이들이 순서대로 카운터에 앉아 있는 아가씨의 앞에 서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우선 공선자 역시 증명패에 피를 각인시킨다고 해도 당장은 큰일이 일어나지는 않는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확인한 뒤 조금 늦게 증명패를 각인시키고 증명패를 등록시키기 위한 줄의 맨 뒤에 서는 것이었다.
“네, 등록을 마쳤습니다. 그럼 앞으로 모험가로서의 활약을 기대하도록 하겠습니다. 원하신다면 지금 당장에라도 의뢰를 받으실 수 있으니 만약 의뢰를 하길 원한다면 저쪽의 게시판이나 의뢰를 담당자에게 찾아가면 됩니다. 단, 의뢰담당자는 현재 점심식사를 하러 갔기에 조금 뒤 식사를 끝내고 돌아온 뒤 찾아가시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공선자가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카운터의 아가씨는 친절한 미소(공선자가 보기에는 딱 봐도 만든 미소였지만)를 지으며 챌린저들의 모험가 등록을 도와주고 있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