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화 〉제 01계-챕터 01: 에볼루션 시스템
모험가 등록 자체에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소지자가 쥐고 있으면 색깔이 변하고 은은하게 빛을 뿜는 증명패는 몇 초 정도 카운터의 아가씨에게 넘겨주기만 하면 되었으니 말이다.
그 뒤 모험가 등록을 마친 사람은 짧게 지금 당장 모험가로서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설명을 전해 듣는 것이었고 말이다.
물론 단체로 기억상실에 걸린 상태인 챌린저들은 그 설명을 전부 이해하기는 힘들었지만 말이다.
공선자는 요컨대 일단은 자신에게 모종의 직장, 그것도 프리랜서로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생겼다고 받아들이고 있었다.
“모험가 등록을 끝낸 사람은 약도를 나누어줄 테니까 이 약도에 적혀 있는 여관으로 가보도록. 일주일 동안 자네들이 지낼 수 있도록 내가 전세를 내둔 숙박시설이니깐 말이야. 일단 시설 자체는 무난한 것으로 선정했으니 일주일 동안은 무리 없이 지낼 수 있을 거다. 단, 확실하게 기억해두도록. 일주일이다. 딱, 일주일 동안만 숙식을 책임져줄 뿐이니 일주일 후에는 더 이상의 지원이 없다는 것을 잊지 말고 살기 위해서는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한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기억해 두도록.”
“그, 그럼 이제부터 저희는 뭘 하면 되는 건가요?”
“알아서 해라. 난 어디까지나 일주일 동안 자네들의 의식주를 해결해줄 뿐인 역할이니 그렇게 내가 만들어준 일주일 동안 무엇을 할지는 자네들의 선택이지. 난 이 이후로는 결코 자네들에게 명분 없이 간섭하는 짓은 하지 않을 테니깐 말이야. 아마 이후로 자네들이 내 얼굴을 보는 일은 거의 없을 걸세. 그럼 난 이만 실례하지.”
그리고 딱 거기까지만 설명해준 뒤 그대로 길드의 위층으로 걸음을 옮기는 하잠. 설마 진짜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끝낸 순간 이렇게 뒤도 안 돌아보고 사라질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렇기에 챌린저들이 아연실색하고 있을 때 챌린저들의 모험가 등록을 진행하고 있던 길드의 간판 아가씨가 입을 여는 것이었다.
“그렇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일단 모험가 등록을 끝마쳤으니깐 말씀드렸다시피 언제든지 모험가로서 의뢰를 맡을 수 있으니 말이에요. 일단 스프라우트 등급의 의뢰라도 하루에 하나씩 진행하면 입에는 풀칠할 수 있으니 정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시는 분은 일단 모험가로서 의뢰를 해결해 나가보시는 건 어떨까요?”
그렇게 친절한 목소리로 자신들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를 하나 이야기해주는 아가씨의 설명 덕분에 챌린저들은 일단 정신을 되찾을 수 있었다.
뭐가 되었던지 굶어 죽을 걱정은 조금 덜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어떤 의미로서는 차라리 잘 된 일일 수도 있었다.
적어도 지금부터는 원한다면 개인적인 시간을 가지고 자신이 현재 어떤 상황에 처한 것인지 파악하고 이후의 행보를 결정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의미하기도 하였으니 말이다.
정신을 되찾은 뒤 기억도 없는 상태에서 챌린저들은 일단 살아남기 위해서 바쁘게 움직여왔다.
당장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그 과정에서 받은 스트레스 때문인지 공선자를 제외한 다른 이들도 상당한 피로감을 느끼고 있는 상태.
그러니 당장 일주일 동안은 안전하게 지낼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그 덕분에 가질 수 있게 된 안정된 시간 속에서 생각하는 것이었다.
일주일이라는 시간 동안 무엇을 할 것인지, 또 일주일이 지난 이후에도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스스로의 행동방향에 대해서 말이다.
물론 당장 의문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럴 것이 자신들을 여기까지 이끌어준 하잠조차 챌린저들이 근본적으로 어떤 존재들인지 전혀 알지 못하는 모양이었으니까.
거기에 단체로 기억상실이다 보니까 자신들이 처한 상황조차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들을 이끌어주던 멘토에 가까웠던 하잠이 사라지자 불안한 것도 사실.
그러나 현실은 현실이었다. 불안해하고 있다고 해도 일이 해결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렇기에 일단 챌린저들은 하잠과 길드의 아가씨가 이야기해준 것을 토대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이, 일단 일주일 동안 머물 수 있다고 했던 숙소를 확인하는 게 우선이겠지? 이 약도를 들고 가면 되나?”
“약도상으로는 그렇게 멀리 떨어진 것 같지는 않은데……. 길을 잃어버리거나 하지는 않겠지?”
“저기 언니 묻고 싶은 게 있는데요…….”
“네, 저에게 질문을 하고 싶으신 분들은 저기서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남은 분들의 등록을 끝마친 뒤에 한 분식 대답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모험가 등록을 끝마친 사람들은 우선 자신들이 지낼 여관을 확인하러 이동하거나 아니면 정보를 얻기 위해서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공선자 역시 일단 수상하지 않을 정도로 최대한 늦게 모험가 등록을 마친 뒤 생각하는 것이었다. 추가로 모험가 등록을 최대한 늦춘 것은 역시나 그가 의심병 환자였기 때문.
하지만 도중에 문제없다고 판단했기에 그대로 블러드라는 이름으로 모험가 등록을 마치는 것이었다.
‘그 괴물 같은 남자가 떠나준 덕분에 간신히 조금 여유를 가지고 생각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일단 마음 같아서는 좀 더 이쪽 세계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싶지만 당장은 가장 쉽게 접촉할 수 있는 정보원인 저 여자한테 사람이 너무 몰렸어. 게다가…….’
너무 피곤했다. 죽었다고 생각했다가 되살아나 천사를 만난 뒤 너무나도 많은 일이 있었다.
그렇기에 공선자는 솔직하게 일단 자고 일어나서 생각을 하고 싶다는 게 진심이었다. 거기에 당장 이것저것 물어볼 수 있을 것 같은 길드의 간판 아가씨는 바빴다.
남은 챌린저들의 모험가 등록. 그리고 그 뒤로도 여관으로 떠나는 것이 아닌 남아서 길드 아가씨이게 정보를 얻으려고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
그 사람들을 전부 상대해야겠기에 당장은 공선자가 그녀에게 뭘 묻고 싶다고 해도 조금 시간이 걸릴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일단 여관으로 이동해서 한숨 자자. 그리고 난 뒤에 계획을 세워도 계획을 세우고, 정보를 수집해도 정보를 수집하는 거야.’
무엇보다 저 아가씨 외에도 공선자가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 존재했다.
또 당장 에볼루션 시스템에 대해서 완전히 파악하기 위해 도움말 창을 확실하게 확인해보고 싶기도 했고 말이다.
‘……새로운 스트림도 발생한 것 같고 말이지.’
해야 할 일, 그리고 할 수 있는 일은 많았다. 하지만 현재 공선자의 정신상태는 한계까지 몰려 있었다.
이 이상으로 뭔가를 하면 농담이 아니라 길가에서 픽 쓰러져 버릴 것 같은 기분이었던 것. 때문에 공선자는 조용히 약도를 가지고 자신들이 일주일 동안 머물려도 된다고 했던 여관으로 이동하려는 것이었다.
“음? 넌 아까 전의……?”
“어? 아?”
그렇게 공선자가 길드 내부에 배치되어 있던 약도를 들려고 할 때 어쩌다 보니 공선자와 동시에 그가 들려고 했던 약도를 손에 쥔 사람이 발생했다.
거기에 무슨 우연인지 공선자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아까 전 이 도시로 오는 길게 공선자에게 말을 걸어왔던 사람 중 한 사람이었기 때문.
당시에는 상대가 갑작스럽게 말을 걸어왔다는 사실에 놀라 공선자가 비명을 질러 주변 사람들의 주목을 모았다.
거기에 괜한 소란을 피우지 말라는 경고도 함께 듣게 되었는데, 그때 말을 걸어왔던 남자가 무슨 우연인지 지금 공선자와 같은 약도를 손에 쥐려고 했던 것.
“너! 잘 만났다! 아까는 괜한 소란을 일으키기 싫어서 그냥 넘어갔는데 말이야, 다시 만나면 꼭 따지고 싶었거든! 네 눈에는 무슨 내가 괴물로 보이냐?! 왜 사람이 말을 걸었을 뿐인데 비명을 지르는…….”
“아니, 저기……. 그, 그게 그 때는 놀라서…….”
그리고 그렇게 공선자와 다시금 마주친 남자는 방금 전의 일을 마음에 속에 담아두고 있었던 것인지 그를 향해 거칠게 따지고 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하? 놀랐으면 놀란 거지 왜 그렇게 크게 비명을 질러서 사람을 무안하게 만들어! 너 때문에 내가 얼마나 x 팔렸는지 알기나 해?!”
“그, 그렇게 크게 비명을 지르지는 않았는데……, 그, 도, 동굴이어서 운이 나쁘게 울렸을 뿐이고…….”
“뭐야, 그럼 넌 뭐 내가 일을 과장해서 괜한 시비를 건다는 건다고 이야기하고 싶은 거냐? 하! 어이가 없네. 아니, 서로 같은 처지인 주제에 왜 니들은 다른 사람을 모함하는 건데!”
“모, 모함이라니……, 거기에 니들이라니 전 혼자인데…….”
갑작스럽게 자신에게 적의를 드러내는 상대의 행동에 공선자는 쩔쩔 맬 수밖에 없었다. 방금 전과 다르게 챌린저들은 단체로 움직이고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서로 각자 이후의 일에 대비해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공선자와 눈앞의 남자가 트러블을 일으켜도 방금 전 수준의 주목을 모으지는 않는 것.
눈앞의 남자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이때가 기회다 싶어서 공선자에게 따지고 드는 것일지도 몰랐다.
“아, 진짜! 재수가 없으려니!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내가 누구인지도, 거기에 여기가 어디인지도 알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왜 매번 나만 병신 같은 녀석들하고 엮기는…….”
“저기? 당신, 거기까지 하지? 들어보니까 괜한 트집을 잡는 것으로밖에 느껴지지 않던데 말이야. 더 들어주고 있기 힘들군. 거기에 당신들이 거기에서 떡하니 버티고 서있으니까 내가 약도를 들고 갈 수가 없잖아?”
그러던 도중 공선자와 사내의 사이에 누군가가 끼어드는 것이었다. 그자는 공선자가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말하는 것을 보아하니 그 역시 여관으로 가는 약도를 가지고 가려던 상황이었던 모양. 그러던 도중 공선자와 눈앞의 남자가 비키지 않고 자기들끼리 설전(일방적으로 공선자가 얻어맞았지만)을 벌이자 참지 못하고 나선 모양이었다.
“하아?! 넌 또 뭐야? 지금 싸움 거는 거냐? 응?! 너도 내가 우습게 보인다는 거지?!”
“겉모습에 대한 이야기라면 우스운 게 아니라 오히려 괜히 건들면 똥물이 튈 것 같은 외견이라고 단언하고 싶은데 말이지. 더러워서 피해야 할 것 같은 타입 말이야.”
“하핫!! 오냐! 말 한번 잘했다! 그 더러운 똥물로 제대로 한 번 튀겨버려 주마! 이렇게 된 거 이 영문을 알 수 없는 상황에 쌓인 스트레스를 너한테 제대로 풀어주마!”
“쯧, 일이 더 귀찮게 되었잖아. 거기……. 뭐야? 어디 갔지? 어느새?”
시비를 거는 남자에게 당하고 있는 공선자가 안타까워 보여서 나섰다……, 라는 것은 아니었다.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든 남자는 어디까지나 이대로 내버려뒀다가는 한도 끝도 없이 길을 가로막고 있을 것 같아서 끼어든 것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의 입장에서는 두 사람 다 오늘 처음 본 사이였기에 서로 지지고 볶든지 신경 쓸 바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그로 인해서 자기한테 피해가 온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렇게 생각했기에 나선 것이었다.
무엇보다 신경 쓸 일 아니라고는 생각했지만 자신의 눈앞에서 누군가가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괴롭히고 괴롭혀지고 있는 장면을 보는 것도 그렇게 좋은 기분은 아니었고 말이다.
그런데 상대는 시비를 걸 수 있으면 누구라도 좋았다는 것인지 이번에는 자신에게 시비를 걸어오는 것이 아닌가?
그에 남자는 이 이상 이 인간하고 상종하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판단하고 재빨리 약도만 챙겨서 이 자리를 떠나자……, 라고 판단했다.
그렇기에 일단 자신이 구해준 것에 가까운 상태인 공선자한테 약도를 2개 챙겨서 달아나라고 이야기한 뒤에 자신도 재빨리 모험가 길드에서 빠져나갈 생각이었는데…….
“이 녀석, 언제 도망친 거야?!”
“모른다. 거참, 설마하니 내가 끼어든 그 순간에 그대로 줄행랑을 쳤다는 건가? 이건 이거대로 참 대단한 인간이라는 생각이 드는군.”
……어느새 공선자가 사라져 있는 상황이었다. 뒤늦게 그 사실을 끼어든 남자가 그 사실을 깨달았고, 시비를 걸던 남자도 그를 통해서 공선자의 존재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눈치 챘다.
그리고서는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설마하니 일단은 겉으로 보기에는 자신을 도와주려고 끼어든 남자를 그냥 내버려두고 어느새 자기 혼자서 도망쳤을(!) 줄은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보니 끼어든 남자는 물론이요, 시비를 걸고 있는 사내조차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냐는 반응을 보여줄 수밖에 없는 것.
“……젠장, 진짜로 재수 옴 붙었네. 어째 오늘은 엮이는 인간들마다 다 이런 놈들뿐이야?”
“애초에 기억이 없기에 평소에 어떤지도 모른 주제에 평소에는 이렇지 않았다는 것처럼 이야기하는군. ‘오늘은’이 아니라 ‘오늘도’일 가능성도 있을 텐데 말이야?”
“웃기지 마! 한 번 더 그런 재수 없는 소리를 하면 진짜로 그 아가리를 뽑아 버려줄 테니깐 말이야!”
그렇게 소리친 뒤에 시비를 걸던 남자는 김이 샜다는 것인지 더 이상 싸움을 걸 마음이 사라진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