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화 〉제 01계-챕터 01: 에볼루션 시스템
“날 죽일 존재야. 여자인지, 남자인지조차 알 수 없지만 그것만은 확실해. 그러니 그자가 날 죽이기 전에 먼저 찾아내서 반드시 존재 자체를 지워버려.”
여자가 단언하는 그 발언은 여태까지 남자가 살면서 받아왔던 그 어떤 충격보다 거대한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눈앞의 여자가 누구인가? 남자가 아는 범위에서 이 세상에서 가장 죽이기 어려운 인물을 꼽으라고 한다면 탑 5위 안에 들어가는 인물이었다.
여자 개인의 무력은 초월적이었다. 이미 인간이라고 말하기 힘들 수준에 도달한 상태였다. 중년 남자조차 작정하고 눈앞의 여자에게 덤벼들어도 승률이 1할 미만이라고 판단할 정도로.
하지만 여자 개인의 무력 이상으로 무서운 것은 눈앞의 여자가 일궈놓은 세력이었다. 그 끝을 짐작할 수 없는 세력.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간에는 거의 정체가 밝혀지지 않아 존재조차 뜬소문으로 취급되는 세력.
그 세력의 수장이, 아니, 소유자가 바로 눈앞의 여성이었다. 여성 개인의 무력조차 그녀가 손에 쥐고 있는 조직의 전력과 비교하면 태양 앞의 반딧불에 불과했다.
개인의 무력만 생각해도 저 미모의 여성을 죽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일 터. 이 세상을 전부 뒤져본다고 해도 여자를 죽일 실력을 지닌 존재는 티끌 만큼에 불과할 터.
그렇게 무력마저 최상위권에 도달해 있는 여성이 거대한 세력마저 일구고 있었다. 심지어 저 여성은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라면 투자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는 존재였다.
황제 저리 가라 할 정도의 부를 짊어지고 그 부를 통해서 자신을 꾸미고 보호하는 것에 망설임이 없는 존재.
그렇기에 남자는 차라리 제국의 황제가 암살당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더 믿기 쉬운 이야기라고 느껴질 정도.
때문에 다른 사람이 저런 이야기를 했다면 그저 헛소리라고 치부하고 무시했을 것이다. 아니,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의 주인을 모욕했다는 생각에 무기를 빼 들었을 터.
하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당사자 자신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었다. 스스로의 죽음을, 더없는 확신을 담아서.
그러니 중년 남자가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는 것도 당연한 일. 애초에 그는 지금 눈앞의 여성이 도대체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지조차 이해하기 힘들었다.
설령 이해했다고 해도 그 말을 받아들이는 것 역시 무리이기는 마찬가지였고 말이다. ……그러니 남자는 무의식적으로 또다시 입을 열게 되는 것이었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워낙 유머감각이 없어서 로드의 수준 높은 농담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부디 용서해주십시오.”
“……재미있네. 지금 나한테 있어서 진심을 가득 담아서 한 이야기를 농담으로 취급하는 내 소유물의 행동에 더 열이 받을 것 같은데 말이야. 그건 날 비꼬는 거냐고 묻고 싶을 정도로. 하지만 이해해. 그래, 진심으로 내가 농담을 하고 있다고 넌 생각하고 있겠지. 오히려 입장이 반대였다고 하면 나 역시 같은 반응을 보였을 테니깐 말이야. 하지만 아쉽게도 난 결코 농담을 한 게 아니야. 이건 ‘그것’을 통해서 확인한 ‘예지’다.”
그러나 남자의 생각과 다르게 눈앞의 여성은 지금 자신의 발언이 농담이었다고 되돌리는 일 따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도저히 이야기를 이해할 수 없는 남자에게 그가 이해할 수 있도록 첨언을 붙여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여성의 첨언에 남자는 간신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인지 그 편린을 붙잡을 수 있었다.
“그 물건이라면 설마 로드께서 그렇게 기동시키고자 하셨던?! 설마 기동시키는 것에 성공하신 겁니까?! 감축 드리옵…….”
“그래, 막대한 시간과 자원을 투자해서 찰나이기는 해도 간신히 기동시키는 것에 성공했어. 하지만 결과는 이 모양. 그렇게 원하던 ‘미래’를 손에 넣은 것이 아닌 오히려 ‘미래에 배신’을 당해버린 형국이야. 그래서 말했잖아? 이건 나조차도 과욕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결과였다고.”
남자는 알고 있었다. 눈앞의 여성이 그 물건을 얼마나 탐했으며 그리고 마침내 손에 넣은 끝에 얼마나 절실하게 사용하고자 했는지.
때문에 마침내 여성이 염원을 이루었다는 생각에 자연스럽게 축하의 말을 건네려던 그의 말을 여자 측에서 잘라버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남자는 평생 살면서 들어본 적 없고, 또 앞으로도 들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여자의 회한이 담긴 목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었다.
“미래에서 배신당하셨다니, 그게 무슨……. 아니, 설마 방금 전의 그 말씀은……?!”
순간적으로 여자가 어째서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던 남자. 하지만 이내 눈앞의 여성이 자신에게 내린 명령, 그리고 여자의 태도를 보고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지 유추해낼 수 있었다.
그러나 남자는 자신이 유추해낸 것을 도저히 입에 담을 수가 없었다. 너무나도 불경하며 결코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라는 생각에 차마 그것을 말로 표현하는 것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찰나의 순간, 확실하지는 않지만 나는 확실하게 보았어. 내가 죽는 미래를. 누군가에게 살해당하는 미래를 말이지. 결코, 그런 날이 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고 그렇기에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미래가 눈앞에 들이 밀어진 거야. 후, 후후후후후! 그런 미래를 보려고 난 여태까지 몇십 년 동안 달려온 게 아닌데 말이야!”
“그, 그럴 수가?! 도대체 누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것은 결코 있을 수 없을 일이었다. 다시금 말하지만 남자는 눈앞의 여자가 누군가에게 살해당한다는 것을 결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당사자의 이야기조차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믿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부정을 할 수 없었다.
눈앞의 여성이……, 자신의 종말을 확인한 여성이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
“서, 설마……, 그 자가?”
“몰라, 말했잖아? 확실히 봤지만 확실히 보지 못했어. 그래, 흐릿하게 모자이크가 그려진 명화를 명확하게 바라보는 느낌이었어. 그림을 바라보는 내 정신을 또렷해. 그렇기에 그림이 어떤 그림이지 확실하게 알 수 있었지. 아, 이건 내 죽음이구나, 하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었어. ……하지만 모자이크가 그려진 그림을 결코 나에게 그 자세한 속살을 보여주지 않았지. 누군가에게 죽는 것인지, 어쩌다 죽는 것인지, 그것이 언제인지조차 나한테 결코 보여주지 않았어. 그래서 난 그 계집애가 내 죽음에 관련이 있는 건지, 아니면 아예 무관계한 것인지조차 알 수 없어. 그저 내가 확실하게 볼 수 있었던 것은 단 하나야. 날 죽인 자의 이름으로 추정되는 단어, ……그리고 그 자가 어디서 날 찾아왔는지.”
그 외에는 그 무엇도 알 수가 없었다. 자신을 죽인 자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어린애인지, 노인인지, 그 무엇도 알 수 없었다.
그저 그자에게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그리고 필사적으로 제대로 된 그림을 보여주지 않는 명화를 파헤친 끝에 손에 넣을 수 있었던, 단서라고 말하기도 힘든 단서뿐만이 여자의 뇌리에 남아있었다.
“뭐가 잘못된 걸까? 아니, 어쩌면 전부 잘못된 것일 수도 있겠네. 애초에 어떻게 기동하게 된 것인지조차 알 수가 없었어. 그저 우연히 기적처럼 기동 되었지. 내가 연구한 바로는 아직까지는 도저히 기동시킬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연히, 마치 무엇인가가 트리거가 된 것처럼 기동해버렸지.”
그리고서 그녀에게 그녀의 끝을 보여주고 또 다시 침묵했다. 마치 이 이상 신의 영역에 손을 뻗으려고 한다면 결코 두고 보지만은 않겠다고 그녀에게 신이 경고하는 것처럼.
우연한 작동. 아니, 어쩌면 그녀가 알지 못하는 무엇인가가 매개가 된 것일 수도 있었다. 본래라면 존재하지 않았을,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존재하게 되었을 ‘인연 끈’ 같은 것이…….
중요한 것은 결코 이것이 제대로 된 작동은 아니었을 터라는 사실. 그저 여러 가지 요소가 겹쳐지는 것으로 기적적으로 일어난 현상이라는 것.
그렇기에 제대로 된 광경을 보여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얄궂게도 그녀의 ‘죽음’만큼은 확실하게 그녀에게 인식시켜주었다. 그래, ‘관측’시켜준 것이었다.
이것은 신의 벌이 아니라고 한다면 도대체 무엇이 신의 벌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런 생각이 짙게 묻어나는 여자의 목소리에 남자가 말하는 것이었다.
“그,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다시 어떻게든 작동시켜 그 미래를 다시금 명확하게 확인하시고 대처하는 것은? 애초에 그 물건을 그처럼 사용하기 위해서 로드께서 그렇게 갖고자 하셨던 물건…….”
“하하핫! 날 웃기려는 거야? 방금 내가 분명히 말했지? 의도치 않게 작동한 거라고. 그런 물건은 다시금 작동시키는 게 쉬울 리가 없잖아? 거기에 이건 일로 잘 알았어. 그래, 저건 아직까지 나에게 ‘과욕’에 해당하는 물건이야.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괜히 억지를 부리다가 지금보다 상황이 심각해지면 그 때야말로 수습할 수 없게 될 테니까.”
남자는 설마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저 여자에게서 포기의 의미가 담긴 말이 나올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욕망의 화신이라는 표현조차 부족한,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하며 결코 멈추는 일이 없었던 저 여자에게서만큼은 결코 들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발언인 것이다!
“로, 로드시여…….”
“아아, 그렇게 볼 것 없어. 결코 포기한 건 아니니까. 그래, 지금은 무리라고 해도 나중에도 무리라는 법은 없잖아? 그러니 저 물건은 한동안 ‘봉인’해둘 거야. 적어도 감당이 된다고 생각되는 그날까지. 하지만 그전에 어떻게 해서든 내가 살아남아야겠지? ……그러니까 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윈터 대륙 전역을 뒤져서 그 녀석을 찾아내. 날 죽일 운명을 지닌 ‘피’라고 불리는 것을 추정되는 자를 찾아내서 설령 네 목숨을 던져야 한다고 해도 죽이도록 해.”
“……알겠습니다. 저는 당신의 도구. 주인이 휘두른다면 그저 휘둘릴 뿐. 그러니 전력으로 절 사용해주시길.”
자신이 맡은 임무가 얼마나 막중한 임무인지 그는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새삼 각오를 다지고 여성에게서 명령을 내려받은 뒤 그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었다.
그렇게 남자가 물러나고 홀로 방에 남게 된 여인. 그녀는 남자가 사라진 순간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과거와 현재는 거의 손에 넣었어. 그래서 미래를 손에 넣으면 이 채워지지 않는 항아리가 채워지지 않을까 생각했어. ……그런데 설마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과욕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게 될 줄이야. ……후, 후후후후! 꺄하하하하하하!!”
중얼거리던 직후 미친 듯이 웃음을 토하기 시작하는 여성. 그리고서는 그녀는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래, 포기가 아니었다. 이것은 이보 전진을 위한 한보 후퇴.
‘더더욱 가지고 싶어졌어. 그래, 반드시, 얼마가 걸리더라고 내 손에 넣고 말겠어! 그 누구도 가지지 못했던 미래를!’
그것은 욕망이었다. 오로지 갖고자 하는 욕망을 담은 광기 어린 폭소. 그렇게 한껏 폭소를 토해내어 자신의 광기를 진정시키는 여성.
그리고 그 직후, 놀랍게도 여성은 방금 전까지 웃던 것이 거짓말이었다는 것 마냥 멈추더니 그대로 천장이 아닌 또 다른 허공에 눈을 주며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그래, 난 포기하지 않아. 내 힘으로, 내가 가진 것으로 욕망을 채워나가겠어. 그러니 헛짓거리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정체불명의 ‘신’씨.”
……그렇게 중얼거리는 그녀의 시야 끝에는 마치 챌린저들의 시야에 떠오르던 에볼루션 시스템의 시스템 창처럼 반투명한 홀로그램 창이 깜빡이며 다음과 같은 단어를 빛내고 있는 것이었다.
-죄악의 고독에 참가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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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21세기였던 지구에서는 꿈에 대한 많은 가설들이 존재했다. 하지만 이것들은 어디까지나 가설.
사람의 뇌에 대한 수많은 연구가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자신들의 근본이라고 할 수 있는 뇌에 대해서 전부 밝혀냈다고 결코 단언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과거보다는 확실히 뇌라는 유기물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을 것이다. 허나, 그럼에도 아직 수많은 미지가 남아있는 상황.
그리고 꿈 역시 그 미지 중 하나로서 존재했다. 그럴듯한 가설은 존재했지만 그 가설이 명확하다는 확정을 못 얻은 현상.
그것이 바로 꿈. 사람들이 살아가며 누구나 늘 꾸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현상.
늘 인생을 따라다님에도 불구하고 꿈을 정말 신비롭다고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가장 자주 접할 수 있는 미지 중 하나일 것이었다.
그리고 공선자는 자신이 그런 미지를 겪고 있다는 사실을 절찬리에 인식할 수 있었다. 보통 꿈은 꿈을 꾸고 있는 동안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고 인식할 수 없기 마련.
설령 인식한다고 해도 그 순간 꿈에서 깨어나 현실로 되돌아오기 마련이었다. 허나, 공선자는 현재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상태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깨어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