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화 〉제 01계-챕터 01: 에볼루션 시스템
그리고 그렇게 푹 자고 일어났는데 짧은 시간만 지났을 리가 없었다. 필히, 긴 시간이 소요되었을 터.
그렇기에 공선자는 걱정이 앞설 수밖에 없었다. 만약 자신이 몇 날 며칠을 잠들어 있었더라면?
당장은 살아남기 위해서 1초라도 낭비를 해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반신이 남겨준 이 삶을 이어가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살아남아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아무런 대가도 없이 이 정도 시설의 숙박시설에서 무려 일주일이나 머물 수 있는 것은 천금과 같은 가치가 있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을 터.
고작 일주일이라고는 하지만 그 시간 동안 의식주를 신경 쓰지 않고 앞으로의 계획을 세울 수 있으니깐 말이다.
특히 완전히 별개의 세계에서 거의 버려지다시피 이쪽 세계로 넘어온 공선자에게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이쪽 세계의 정보를 알아낼 수 있는 절호의 시기였다.
그런데 그것을 며칠이나 잠을 자면서 날려버렸다고? 물론 당장의 정신적 피로를 푸는 것도 중요한 일이기는 했지만 어떻게 해도 치명적인 실수를 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일단 지금이 몇 시인지부터 확인해야 해. 아니, 이제 와서 떠올리는 건데 오늘의 날짜는 어떻게 되는 거지?”
자기 전에는 정황이 없어서 생각하지 못한 건데 애초에 이쪽 세계의 달력은 어떤 식으로 구성되어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처럼 양력이나 음력을 사용하나? 1년이 365일이고 1달이 30일 정도이며 하루가 24시간인가?
그 사실조차 공선자는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자신의 안이함을 깨달은 순간 공선자는 혀를 차고 싶어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혀를 차지는 않았다. 괜한 에너지 낭비에 불과하니 말이다. 고작 혀를 차는 것 가지고 무슨 에너지 낭비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할 필요가 없는 일을 해야 할 이유도 없지 않은가?
설령 그것이 별 의미가 없는 극소량의 에너지라고 해도 아낄 수 있으면 아끼는 것이 좋았다.
그런 생각을 무심코 떠올린 공선자는 문득 자신이 뭔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깨달게 되는 것이었다.
……원래 내가 이렇게 극단적이라고 할 정도로 효율을 따지는 녀석이었던가? 하는 자신에 대한 의문이 가볍게 떠오른 것.
허나, 이내 공선자는 그런 의문을 지우는 것이었다. 당장 자아 성찰을 할 정도로 공선자는 여유롭지가 못했다.
정신을 차린 순간부터 머릿속에 떠오르는, 해결해야 할 난제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것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머리를 굴리는 것조차 빡빡한데 굳이 당장 할 필요가 없는 자기 성찰에 시간을 쓸 때가 아니었던 것.
때문에 공선자는 일단 스스로에게서 느끼는 위화감을 뒤로 미루어두었다. 본능적으로 이것은 별일 아니라는 판단에 내린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다.
그렇기에 지금은 그런 것보다 좀 더 급한 일에 대해서 처리하기로 하였다. 일단 떠오르는 것들 중 한 가지는 현재의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를 확인하는 것.
하지만 이것은 당장 확인하고 싶지만 당장 확인하기 어려운 일이기도 하였다. 말했다시피 공선자는 이쪽 세계의 시간개념을 몰랐다.
그렇기에 이쪽 세계에 시계가 존재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 물론 그렇다고 해도 아예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자력으로 확인하기 힘들 뿐이라는 것이지 다른 이들에게 물어본다면 충분히 알 수 있는 내용.
하지만 시간을 알아보려고 당장 방 밖으로 나갈 필요는 없다고 공선자는 판단했다. 보다 정확히는 방 밖으로 나가는 것은 좋지만 나가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고 판단을 내렸다고 해야 할까?
‘공복이 그렇게 심하지 않아. 정말로 몇날 며칠을 잤다면 적어도 공복을 느껴야 할 텐데……. 사실은 시간이 그렇게 많이 지난 게 아닌가?’
거기에 막 정신을 되찾았을 때는 조금 초조해서 생각하지 못했던 것인데 진정하고 차분하게 자신의 몸 상태를 살펴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급한 상황은 아닌 것 같기도 했고 말이다.
무엇보다 혹시라도 일주일 동안 내리 잠만 자느라 어느새 여관에서 머물 수 있는 시간이 전부 지났다면 아마 공선자는 그대로 내쫓겼을 터.
하지만 그렇게 내쫓기지 않은 것은 보면 적어도 당장 내쫓길 정도로 여유가 없는 것은 아닐 터.
그 여유가 하루일지, 아니면 의외로 하루 정도밖에 자지 않아 6일 이상이 남아있을지는 밖으로 나가지 않는 이상은 확인하기 어려울 테지만 말이다.
‘중요한 건 적어도 아직까지는 나한테 여유가 아예 없는 건 아니라는 거야. 그렇다면 굳이 급하게 밖으로 나가서 시간을 확인할 필요는 없어. 지금은 우선 혼자서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하는 게 급선무야.’
그럴 것이 새로운 정보를 얻기 전에는 필히 자신이 가진 정보를 정리하는 것도 중요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가진 정보도 정리되지 않는 상황에서 새로운 정보를 얻었다가는 잘못하면 틀린 해답을 도출하게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공선자는 우선 진정하고 자신이 현재 정리해야 할 정도를 분별했다. 일단은 에볼루션 시스템.
챌린저와 에볼루션 시스템의 큰 틀은 확인했다. 그 완벽하게 파악했다고는 말할 수 없을 터.
챌린저가 어째서 챌린저라고 불리는 것인지 알 수 없었고, 에볼루션 시스템도 어째서 이런 시스템을 챌린저들에게 각인시킨 것인지 그 진위를 알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적어도 에볼루션 시스템이 대략적인 사용법, 그리고 자신처럼 위대한 존재인지 하는 이에게 소생된 이들이 챌린저라 불린다는 사실은 알아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에볼루션 시스템을 보다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것. 챌린저에 관해서는 당장 알아내고 싶어도 알아낼 수 없으니 우선은 에볼루션 시스템이었다.
이것은 파악하면 앞으로 살아남는 것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나아가 어쩌면 천사가 예정되었다고 떠들던 멸망을 막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세계가 멸망하면 아마 공선자도 높은 확률로 죽을 것이다. 그러니 살기 위해서라도 막을 수 있는 멸망은 막을 수 있는 게 좋았다.
물론 굳이 자신이 막을 필요가 없다면 막지 않아도 그만이었지만 말이다. 막을 수 있는 사람이 막는 게 좋지 않은가?
허나, 만약을 대비해서 멸망은 막는 것은 무리라고 해도 멸망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수준의 ‘힘’을 비축해두는 것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공선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 터. 그리고 에볼루션 시스템은 어떻게 생각해도 ‘그를 위해서 존재’하는 능력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자신이 강해져 살아남기 위해서 선택해야 하는 수단 중에서 챌린저들이 가장 접근하기 쉬운 수단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니 에볼루션 시스템을 지금 이상으로 파악하고 이용하는 것을 아마 필수 사항일 터였다.
……설령 그것이 위대한 존재라는 녀석의 노림수이기에 그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는 것에 불과하다고 해도 눈앞에 동아줄이 있으면 어떻게든 붙잡아야 하는 법이었다.
설령 도중에 다른 동아줄로 바꾸어 타는 일이 있어도 당장은 절벽 아래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눈앞의 동아줄을 붙잡아야 한다.
그렇기에 공선자는 에볼루션 시스템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무엇보다 첫 번째 메인 스트림을 클리어한 직후부터 출현한 새로운 메인 스트림.
다른 것은 몰라도 이 메인 스트림이라는 것은 적어도 당장 공선자가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지표가 되어주는 경향이 있으니 당장 무엇을 할지 모르겠다면 메인 스트림을 따르는 것도 그렇게까지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는 판단을 내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보다도 중요한 건 방금 전에 보았던 예지몽이야.’
때문에 공선자는 잠들기 전까지만 해도 일단 정신력을 회복하면 에볼루션 시스템에 대해서 파악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그 뒤로는 일단 일주일 동안 자신이 어떤 세계에 떨어진 것인지 살펴본다. 그 과정에서 먹고 살 수단을 손에 넣고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당장 살아남을 수단을 손에 넣은 뒤에는 이쪽 세계가 어째서 멸망이 예정되어 있다는 것인지 그 정보를 한 번 모아볼 생각이었다.
일단 대략적인 계획을 이랬었다. 구체적인 계획을 아직 미정이었지만 일단 이런 식으로 일을 진행할 예정이었던 것.
물론 어디까지나 계획대로 일이 풀렸을 때의 이야기였다. 애초에 먹고 사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공선자는 최악의 경우 먹고 살 수단조차 손에 넣지 못할 경우도 상정하고 있었다.
물론 상정만 했을 뿐이지 거기에 따른 대책을 세운 것은 아니었지만. 그야 이쪽 세계에 대한 정보가 있어야지 대책을 세우든 말든 하지 않는가?
거기에 정신력도 한계였기에 설령 정보가 있었어도 계획을 세울 정신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까놓고 말해서 공선자는 어떤 의미로 한계까지 몰린 정신을 핑계로 잠으로 현재의 상황에서 잠깐 도망쳤다고도 할 수 있을 터.
하지만 이제 그것도 여기까지였다. 얼마나 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정신이 뚜렷해질 정도로 잔 것은 틀림없었다.
오랜만에 개운하다, 라고 느낄 정도로 잔 것이겠지. 신체는 소생된 직후부터 최상의 컨디션이었다.
시안을 사용하며 깎여나간 수명이 되돌아온 영향일 터. 하지만 정신이 완전히 바닥을 치고 있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쾌하다는 느낌은 없었다.
그랬던 상황에서 정신이 상쾌해질 정도로 잠을 잤다. 그 영향으로 지금 공선자는 최상의 컨디션이라고 할 수 있었다.
뭐, 정작 정신 자체는 상쾌하게 회복되었을지언정 결코 정상이라고 말하기 힘든 상태였지만 말이다.
정신은 말짱해졌지만 감정상태의 문제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적어도 그것이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는 것을 방해할 것 같지는 않았다.
즉, 요컨대 이제는 현실을 마주 보고 앞으로의 행보를 정해야 할 때, 라는 것이었다. ……잠을 자며 그 ‘자각몽’을 꾸지 않았더라면.
‘그건 분명히 예지몽이었어. 하지만 여태까지 보아왔던 예지몽과는 달라. 보다 뚜렷하게 보았고,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어. ……그렇다고는 해도 전에 봤던 것과 그렇게까지 다르지는 않지만 말이야. 도토리 키 재는 것과 같은 수준의 차이. 하지만 여기서 봐야 할 것은 차이가 존재했다는 그 사실 자체야. ……그리고 예지몽의 내용도 말이지.’
예지몽. 요컨대 미래를 보는 꿈이라는 소리. 공선자가 가지고 있던 초능력, 시안은 눈을 통해서 시간을 보고 간섭하는 능력이었다.
시간이라면 존재의 흐름. 보다 직설적으로 과거, 현재, 미래를 이어주는 흐름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공선자의 눈은 과거를 보고 현재에 간섭하며 나아가 ‘미래’마저 내다볼 수 있었던 것.
……하지만 그런 힘이 인간에게 그냥 허락될 리가 없었다. 그만한 대가가 필요했다. 공선자는 과거를 보고 현재를 간섭하는 것만 해도 막대한 고통을 느꼈고 자신의 수명을 지불해야 했다.
그것이 대가. 등가교환의 법칙. 원인이 있기에 결과가 있다는 절대적인 자연의 윤리. 그리고 그것은 미래를 보는 것 역시 마찬가지.
대가가 존재했다. 그리고 그 대가는 우습게도 어떨 때에는 과거를 보고 현재에 간섭하는 것보다 비쌌으며 어떤 때에는 그것과 비교하지 않을 정도로 우스울 수준이기도 하였다.
……그럴 것이 애초에 미래를 보는 능력은 공선자의 ‘의지대로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 자신의 힘임에도 자신의 의지대로 사용할 수 없다. 그것이 대가. 거기에 그것만으로 그치지 않고 그 이상의 대가를 요구하기도 하였다.
그가 본 미래는 결코 ‘바꿀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즉, 다시 말해서 보고 싶은 미래를 보는 것이 아닌, 멋대로 미래를 보여주는 주제에 그 미래가 무조건적으로 찾아왔기 때문.
미래를 보는 것이 대단한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다름 아닌 그 미래를 ‘바꿀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누군가가 죽는 것을 본다면 그 사람이 죽는 것을 막을 수가 있었다. 훗날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있었기에 그 미래를 바꾸려고 들 수가 있었다.
그렇기에 누구나가 미래를 보고자 하는 것이었다. 자신에게 닥쳐올 불확실성을 확실성으로 바꾸어 그 확실성을 뒤집고자 말이다.
……하지만 불확실성이 확실성으로 바뀌는 순간 그것은 결코 뒤집을 수 없는 고정된 미래가 되어버린다.
공선자는 그것을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었다. 몇 번이고 보고 싶지 않았던 미래를 보고 그 미래를 피하기 위해서 갖은 노력을 다해봤던 공선자는 자신이 미래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을 결코 ‘능력’으로 취급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