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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9화 〉제 01계-챕터 01: 에볼루션 시스템 (59/194)



〈 59화 〉제 01계-챕터 01: 에볼루션 시스템

애초에 빛이 되어 사라진 자신이 정말로 죽은 것인지조차 확신을 할 수가 없었다. 당초 이제부터 살아가게 될 이쪽 세계에서는 무엇이 가능하고 무엇이 불가능한지조차 알지 못하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렇기에 공선자는 일단 미래시에 대한 사고는 접어두었다. 하마터면 이 타이밍에 자신의 죽음을 암시하는 것 같은 미래시를 보게 된 것은 조금 초조해지게 만드는 것이었지만 지금 이것에 대해 고민한다고 해도 해결할 방법은…….

‘조금 초조해져? 기다려 봐. 이건 조금 이상한데?’

……공선자는 문득 또다시 자신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느끼게 되는 것이었다.

결코 조금 초조해질 문제가 아니었다.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이었다면 자신의 죽음을 암시하는 미래시를 보게 된 순간부터 절망감에 사로잡혀도 이상할 게 없었다.

어떻게든 살아가고자 결의했는데 초장부터 그 결의를 잡아 꺾는 절망의 선고가 눈앞에 들이 밀어진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자신은 너무나도 침착했다. 미래시에 의해서 조금이라도 초조해질만 한데 너무나도 냉정하게 지금은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고 그 미래시에 대한 일을 뒤로 밀어버리는 것이었다.

이것은 자신이 알고 있는 스스로가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 그 이유는 냉정하게 파악하려는 자신이 있었기에 공선자는 너무나도 큰 괴리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스스로에 대해서 남들만큼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공선자였다. 그리고 그런 공선자가 생각하기에 자신은 결코 이런 상황에 침착할 수 있는 인간군상이 아니었다.

오히려 울음을 터트리며 공포에 떠는 것이 자신에게 어울린다고 할 수 있다고 공선자는 단언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지금의 공선자는 그 어느 때보다도 냉정하며 침착한 상태였다. 자신의 상태를 매우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전혀 어렵지 않을 정도로.

다시금 말하지만 이건 이상했다. 지금 냉정하게 자신을 파악하는 공선자는 스스로가 지금 상황에서 결코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하는 것이었다.

애초에 이렇게 냉정하게 스스로가 이상하다는 사실조차 본래의 공선자라면 결코 깨달을 수 없었을 터.

그런데 스스로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공선자는 너무나도 간단히 받아들이고 있지 않은가? 너무나도 이상한 상황.

스스로의 변화를 냉정하게 받아들이는 자신에게 이상함을 느낀다. 그리고 그 괴리감의 원인을 또다시 아무런 동요도 없이 자신이 무엇인가 변했기에 느끼는 것이라 판단을 내리는 스스로의 행동에도 위화감을 품었다.

위화감이 위화감을 불러온다. 그 위화감을 원인을 판별하려는 공선자의 행동이 또다시 위화감을 불러오며 그에게 명확한 사실을 시사시켜주고 있었다.

‘……감정이 전혀 요동치고 있지 않아? 자고 있는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지나친 피로감에 의한 일시적으로 감정을 느끼는 기준 같은 게 고장이 난 건가? 그것도 아니면 결국에는 정신에 문제가 생겼다?’

자신에게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지 파악하기 위해서 고민하면 고민할수록 커지는 위화감. 생각을 하면서도 결코 본래의 자신이라면 이렇게 냉정하게 고민을 하고 있을 수 있을 리가 없다고 외치는 이성.

그렇게 점점 부풀어 오른 위화감은 결국 공선자에게 자신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난 것인지 깨닫게 해주는 것이었다.

감정이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본래라면 자신의 미래를 알게 되는 것으로 거대한 해일이 발생하는 것처럼 마구잡이로 날뛰었어야 했을 감정이 잠잠했다.

마치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망망대해의 고요한 해수면처럼. 자신에게 닥친 일을 제3자, 아니, 제3자를 넘어서 애초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알지도 못하는 지구 반대편의 인물이 된 것처럼 감정은 전혀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감정의 변화가 없었다. 있는 것은 오로지 이성뿐. 그렇기에 공선자는 냉철하기 그지없는 이성으로 자신의 현재의 상태를 보다 확실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

이것이 생각지도 못했던 이상 사태임을, 그리고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곧바로 공선자의 이성을 하나하나 추측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원래부터 제정신이라고 말하기 힘든 정신이었어. 이중인격, 거기에 세뇌를 받고 그 세뇌에서 벗어나는 과정에서 한쪽 정신은 광기에 잡아먹혔지. 그런 상황에서 한쪽 인격만 타의에 의해서 붕괴된 상황. 정신이 멀쩡하면 오히려 그쪽이 더 기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자신의 정신에 이상이 생겼다. 감정을 못 느끼게 되었다는 것보다 ‘이상’이 생겼다, 라는 사실이 훨씬 중요했다.

한쪽에 이상이 생겼다는 것은 다른 쪽에서 이상이 생길 수 있다는 이야기. 그렇기에 빠르게 이상의 원인을 유추해야 한다.

그래야지 그 원인을 제거함으로써 다른 쪽에 고장이 생기는 것은 막을 수 있었다. 또한, 고장 그 자체를 치료할 수도 있었고 말이다.

그렇기에 공선자의 이성은 무엇보다 자신의 어째서 이런 상태가 된 것인지 빠르게 유추하기 시작했다.

그냥 내버려두기에는 무려 자신의 ‘정신상태’에 관련된 문제. 이런 문제는 그냥 내버려두면 최악의 경우 자신을 위해서 희생했던 반신처럼 광기에 먹혀 지금의 자신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불합리한 행동을 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 불합리한 행동의 끝은 높은 확률로 자신의 파멸로 이어질 터. 마치 타임 룰러라 불렸던 공선자가 자신의 죽음에 지구라는 하나의 행성을 길동무로 삼았던 것처럼 말이다.

“목소리는……, 제대로 나오는군. 일단 감각에도 이상은 없어. 즉, 물리적으로 뇌에 문제가 생긴 것일 확률은 낮다는 건데…….”

물리적으로 뇌에 무엇인가 손실이 온 것이라면 단순히 감정만이 거세되는 것도 이상했다. 뇌는 복잡하며 동시에 사람의 정신을 보존하는 장기이기도 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전신의 신체를 ‘제어’하는 장기이기도 한 것이다. 뇌가 신호를 주기에 심장을 뛴다.

내가 신호를 주기에 소화기관이 소화 활동을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장기에 문제가 생기면 단순히 감정을 잃는 것으로 끝날 리가 없었다.

신체를 제어하는 것 자체에 이상이 생길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일단 자신의 정신상태가 아닌 신체 상태를 살펴보는 공선자.

단순히 목소리를 내고 손을 움직이는 것을 넘어 침대에서 일어나 방 내부에서 가볍게 걸어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판단하기에 공선자는 현재 자신의 신체 상태가 그야말로 최고조라고 할 수 있는 상태라고 확신을 가지는 것이었다.

이것은 단순한 느낌이 아니었다. 객관적으로 내린 판단이었다. 그럴 것이 죽었다며 소생되며 다시 태어난 신체다.

막 태어난 신생아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청정한 신체라는 것. 이 정도 신체를 가지고서도 더욱 컨디션이 좋을 수 있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공선자는 지금 자신의 상태가 물리적으로 뇌에 손상이 발생했기에 생긴 현상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자신의 정신 상태에 대한 문제. ……허나, 이 부분에 대해서는 공선자는 뚜렷한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그럴 것이 말했다시피 애초에 공선자의 정신은 진작 정상이라고 말하기 힘든 수준까지 도달해 있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활동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다, 라는 수준이기는 했지만 그것이 결코 공선자의 정신이 멀쩡하다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사이코패스라고 해도 사람들 사이에 섞여 살아가는 경우도 있었고 말이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정신 상태를 냉정하게 파악하고 있는 현재의 공선자는 지금의 자신이 자신의 정신 상태를 판단하기에는 무리라고 결론을 내리는 것이었다.

애초에 제정신인지 아닌지조차 알 수 없는 이 상황이다. 요컨대 기준점이 되어야 하는 공선자의 정신 그 자체가 이미 망가진 상태라는 것 아닌가?

망가진 정신 상태로 자신의 정신 상태가 멀쩡한지 확인한다? 이건 뭐 고장 난 기계장치의 상태를 확인하는 기계로 기계장치의 상태를 확인하는 기계가 멀쩡한지 자가진단을 해보겠다는 것과 다를 게 없는 이야기 아닌가?

그렇기에 지금의 공선자는 깔끔하게 원인을 규명하는 것을 포기했다. 원인을 규명하지 않으면 그 원인으로 인하여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니 할 수 있으면 최대한 자신의 이상에 대한 원인을 규명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할 수 있을 경우’의 이야기.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지금 자신이 가진 수단으로는 현재의 자신의 상태를 규명할 수가 없었다.

만약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이 감정을 잃기 전의 공선자라면 오히려 포기하지 못하고 끈질기게 원인을 규명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럴 게 두려울 테니까. 자신이 알지 못하는 자신의 문제점으로 점점 자기 자신이 망가져 간다는 사실이 말이다.

하지만 지금의 공선자는 그런 두려움이 없었다. 자신의 상태가 이 이상 심각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말의 동요도 느끼지 않고 있었다.

그렇기에 스스로 냉담하다고 느낄 만큼 간단하게 자신의 상태에 대한 원인을 규명하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었다.

그의 이성이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 이상 고민해봐야 답은 나오지 않고 시간만 낭비할 뿐이라고 말이다.

본래 공선자 가지고 있었던, 타임 룰러라는 코드명의 에이전트로 활동한 경험을 간직하고 있던 이성.

하지만 너무나도 풍부하고 섬세한 감정에 의해서 본래라면 제대로 힘을 발휘할 수 없었을 터인 그 이성이 딱 잘라서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해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실제로 행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기에 두려움은 없었다.

그저 해야 할 일은 의무적으로 행할 뿐인 기계에 가까운 상태.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지금의 공선자에게는 이 상태가 정답일 수도 있었다.

여태까지 너무나도 많은 상처를 입어온 공선자의 정신이다. 어떻게든 조각난 정신을 이어 붙이고는 있었지만, 이 이상 정신의 충격을 받으면 그때 가서는 정말로 그의 정신이 어떻게 될 것인지 예상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 그 충격의 근원이 될 감정이 움직이지 않는 것은 어떤 의미로 공선자의 정신을 보호해주는 요소라고 할 수 있을 터.

아니,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 공선자의 상태는 말 그대로 절벽 끝에 몰린 공선자의 정신이 자신의 정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행한 일종의 자기방어라고 추측할 수도 있었다.

그것이 사실인지를 파악할 수단을 지니고 있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여하튼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공선자는 현재의 자신을 이상하다고 판단하고 있으면서도 해결할 수단을 알 수가 없었기에 그냥 내버려두기로 하였다는 것.

평소의 그였다면 자신이 이상해졌다는 두려움에 떨어 어떻게든 원인을 찾아내려고 했을 것이다.

특히 타인에 의한 간섭에 가장 큰 중점을 두고서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서 발악을 했을 것이다.

또다시 누군가의 장기말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특히 간신히 떨쳐낸 세뇌에 또다시 걸려든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공포에 질렸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공포를 떨쳐내기 위해서라도 미친 듯이 원인을 규명하려고 했었을 터. 그리고 그 결과 높은 확률로 아무런 성과도 없이 시간만 날렸을 확률이 매우 높았다.

허나, 지금의 공선자는 달랐다. 공포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기계 같은 이성만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 이성이 말하는 것이었다. 어차피 알아내지 못할 거 그곳에 시간을 쓰는 것보다 좀 더 효율적으로 시간을 써야 한다고.

자신이 잠들고 얼마나 시간이 지난 것인지 아직까지 알 수가 없는 상황. 그러니 그 시간을 알아보러 가기 전에 혼자서 확인할 수 있는 요소를 최대한 빨리 확인한다.

그렇게 판단을 내린 이성이 더 이상은 생각해도 쓸데없는 것에 신경을 쓰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미래시 역시도 마찬가지인 이야기. 지금 공선자가 고민한다고 해서 답이 나오는 게 아니었다.

그렇다면 우선은 고민하면 답이 나올 것 같은 문제부터 해결한다. 시험을 볼 때 모르는 문제는 나중에 풀고 아는 문제를 먼저 푸는 것처럼.

‘그러면 지금부터 고민, 아니, 조사해야 할 것은 이건가. 에볼루션 시스템. ……여태까지는 여유가 없어서 정말로 기초적인 내용만 확인했어.’

그 기초적인 내용만으로도 대충은 에볼루션 시스템이 무엇인지 예측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공선자에게는 지구에서 접했던 게임에 대한 지식이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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