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화 〉제 01계-챕터 01: 에볼루션 시스템
그 게임과 비슷한 구조를 보이는 에볼루션 시스템인 만큼 적어도 이것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인지는 대충 예측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
“일단은 이것부터 조사해본다. 무엇보다 이 에볼루션 시스템이 내 정신에 모종의 영향을 끼쳤을 확률이 낮지는 않아.”
방금 전까지는 결코 원인을 당장 규명할 수 없어서 포기했다고 이야기했지만 사실은 한 가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
다름 아닌 에볼루션 시스템. 무려 각인된 이의 시야에 직접 투영되는 능력이었다. 무엇보다 추측건대 에볼루션 시스템 자체가 각인된 이에게 특별한 힘을 내려주는 것 같기도 했고 말이다.
자신의 신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튼튼하다는 점을 통해서 이미 그 사실을 확인하지 않았는가?
그렇기에 공선자는 이 에볼루션 시스템이 자신의 정신에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아니, 사실은 상당히 가능성은 높게 잡고 있었다. 허나, 이것은 에볼루션 시스템을 조사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밝혀진 사실.
그렇기에 정말로 에볼루션 시스템이 자신의 정신에 영향을 주어서 감정이 움직이지 않는 것인지에 대한 확인은 에볼루션 시스템을 조사할 때 함께 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니 그전에는 에볼루션 시스템의 간섭이 아닌 경우만을 상정하고 고민한 것. 그리고 그렇게 고민한 결과가 에볼루션 시스템의 영향이 아닐 경우 자신의 정신이 무엇 때문에 변화한 것인지 확인할 수 없다, 라고 판단한 것이었다.
때문에 공선자는 자신의 정신 상태에 더 이상 알아보는 것을 포기하고 그대로 에볼루션 시스템의 조사로 넘어온 것이었다.
이 시스템을 조사하면 자신의 정신 상태에 대한 원인을 규명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그리고 그 외에도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정도, 거기에 이후 자신이 무엇을 목표로 해야 하며 그 목표를 향해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좋을지에 대한 정보 역시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을 품고서 말이다.
정확히는 기대감을 품고 있다고는 말하기 힘들었다. 현재의 공선자는 감정을 거의 느낄 수 없는 기계와 같은 상태였으니까.
어디까지나 그럴 가능성이 높다, 라고 그의 이성이 판단을 내리고 있었다는 이야기. 하지만 적어도 그가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상태였다면 분명히 기대감에 부풀었을 것이다.
동시에 긴장을 해서 에볼루션 시스템을 조사하는 것에 자잘한 시간이 걸리기도 했을 테고 말이다.
하지만 지금 공선자에게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저 묵묵히 에볼루션 시스템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파악해 나가기 시작했을 뿐이었다.
‘일단 시작은 스테이터스 시스템.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내 상태를 나타내주는 시스템 창. 나타내는 목록은…….’
게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스테이터스 창과 크게 다를 게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었다.
일단 기본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는 스텟 목록이 존재했으며, 그 외에도 그의 이름(진명), 나이 같은 것이 존재했다.
그 외에 특이한 점이 있다면 우선은 공선자로서는 알 수 없는 단어가 몇 가지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그 중에서도 일단 가장 처음에 눈에 띄는 것은 성향이란 항목에 적혀 있는 공(空)이라는 단어. 정확히는 한자를 제외한 공이라는 단 한 글자만 적혀 있었다.
저 한자는 공선자가 추측한 저 한 글자의 뜻이었는데, 아마 비었다, 라는 의미를 지닌 공자가 맞을 것이었다.
성향, 성향이 무엇인가? 그 사람의 성격이 어느 카테고리에 속해있는지를 알려주는 척도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그 사실을 생각하면 성향, 공이라는 것은 공선자의 성격이 매우 허무하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이 들었다.
실제로 지금 공선자는 감정이 완전히 가라앉아 있는 상태. 이것은 어쩌면 허무라고 표현할 수 있지 않겠는가?
……뭐, 이런 식으로 이야기해봤자 어차피 공선자의 추측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공선자는 일단은 그 부분에 대해서는 넘어가고 다른 부분부터 살펴보았다.
도움말 기능이 있으니 자세하게 살펴보는 것은 그 도움말 기능의 도움을 받으면 되는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
‘그 외에도 직업이나 오라라든가, 공력이라든가, 알지 못하는 단어는 많아. 심지에 스텟 목록도 마찬가지야. 스텟과 추가 스텟은 대충 예상이 가, 아마도 스텟은 말 그대로 스텟, 그리고 추가 스텟은 여기 보이는 스텟 포인트가 아닌 장비나 그 외의 수단으로 일시적으로 상승시킨 스텟, 혹은 모종의 수단으로 손에 넣은 추가적인 스텟 포인트로 상승시킨 스텟을 의미하는 거겠지.’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스텟과 추가 스텟의 뜻을 이해했다는 거지 스텟 목록에 존재하는 영문을 알 수 없는 수치들을 이해했다는 것이 아니었다.
현재 공선자의 눈앞에 떠올라 있는 스텟 목록은 이상했다. 그가 알고 있는 게임 시스템과 비슷하면서도 달랐기 때문.
보통 게임들은 민첩이나 힘, 마력이나 운 등과 같은 항목들이 늘어서 있고 그 옆에 각 스텟의 수치가 표시되지 않은가?
그 부분은 이 스테이터스 창도 비슷했다. 신체, 사고, 내성, 친화, 라는 이름의 총 4개의 스텟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각각이 10이라는 공통된 숫자가 표시되고 있었고 말이다. 허나, 여기에 그치지 않고 신체 스텟과 사고 스텟에는 이해하기 힘든 추가적인 요소가 존재하는 것.
일단 각 스텟의 수치, 10의 옆에 총합 500%라는 알 수 없는 수치가 표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 각각 신체 스텟에 근력, 체력, 속도, 신속, 재속이라는 5개의 스텟이 더 표시가 되어 있었던 것.
사고 스텟 역시 감각, 지혜, 지능, 사속, 정신, 이라는 총 5개의 스텟들이 세분화되어 표시되어 있었다.
내성과 친화의 경우에는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는데 말이다. 그리고 각각 세분화된 10개의 스텟 옆에는 현재 100%라는 수치가 표시되어 있었는데 이 수치들을 공선자가 슬쩍 터치해보니 놀랍게도 이 100%라는 수치를 조절할 수가 있었던 것.
‘……10%에서부터 400%까지 조절이 가능해. 단, 한쪽 세분화 스텟을 조절하려면 그에 맞춰서 다른 쪽 세부화 스텟의 수치를 조절해줘야 해. 한쪽을 10% 올리려면 다른 쪽은 10% 낮춰야 한다는 건가.’
대충 살펴보니 어떤 방식으로 사용하는 수치인지 예측되기 시작했다. 요컨대 총합 500%라는 것은 세분화된 5개의 수치들의 100%를 합친 수치일 터.
그리고 각 세분화된 5개의 수치들은 이 500%라는 수치를 자유롭게 분해하여 가질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10%에서 400% 내라면.
즉, 하려고 한다면 근력에 400%라는 수치를 몰아주고 나머지 100%의 수치를 4개의 세분화된 스텟이 나누어 가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
……그리고 예상컨대 이 10%에서 400%까지 조절할 수 있는 수치들은 각각 신체와 사고 스텟이 가지고 있는 10이라는 수치를 얼마만큼 나누어 가질 것인지에 대한 수치일 터였다.
다시 말해서 400%라는 것은 세분화 스텟이 가지는 수치가 신체나 사고 스텟이 갖고 있는 수치 10의 4배에 해당하는 40에 해당한다는 이야기.
반대로 10%는 그 10분의 1인 1에 해당하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요컨대 이 에볼루션 시스템은 각각 신체와 사고 스텟을 세분화한 스텟의 비율을 임의로 사용자가 정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고 있다는 소리.
‘사용하기에 따라서는 도핑에 가까운 방식으로 사용할 수도 있겠지. 순간적으로 세분화된 스텟의 분야를 몇 배로 증폭시킬 수 있다는 이야기니까.’
물론 어디까지나 예측이었다. 과연 공선자가 예상한 대로 사용할 수 있을지는 진짜로 사용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었으니 말이다.
‘거기에 신체와 사고는 대충 어떤 스텟인지 예상이 가는데 내성하고 친화는……, 특히 친화는 어디에 쓰는 스텟인지 알 수가 없군.’
내성은 아마 그 내성이겠지. 버티는 것을 더 오래 버티게 해준다는. 하지만 친화는 도대체 뭐에 친해진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 외에는 스텟 포인트……, 없나. 레벨은 1. 시작부터 스텟 포인트를 주거나 하지는 않는다는 거군. 거기에 칭호는 무려 2개. 1개는 정신을 잃기 전에 서브 스트림을 클리어하고 손에 넣은 칭호. 다른 하나는 내가 스테이터스 창을 처음 여는 그 순간부터 있던 칭호. ……멸계성(滅界聖), 세계를 멸망시키는 별이라는 건가. 거참 거창하기도 하군.’
감정을 잃은 지금의 공선자이기에 제대로 마주 볼 수 있는 칭호. 처음 공선자가 스테이터스 창을 열 때부터 눈에 들어왔지만 도저히 마주 볼 용기가 나지 않아 모른 척했던 칭호.
그것이 바로 멸계성. 추측건대 소생되기 전에 무려 ‘세계를 멸망시킨 장본인’이기에 주어지는 칭호인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사실을 통해서 지금의 공선자는 2가지 사실을 알 수가 있었다. 퀘스트라고 할 수 있는 스트림을 클리어하는 것으로 칭호를 얻을 수 있다.
……또한 칭호를 습득하기 ‘적합한 자격이나 행동을 할 경우’에 조건에 맞는 칭호를 습득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일단 두 가지 칭호가 어떤 효과를 지니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아니, 애초에 칭호가 어떤 효과도 지니지 않는 단순한 장식 요소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하지만 뭐라고 해도 거창하게 세계를 멸망시킨 별이니 하는 칭호인 것이었다. 적어도 모종의 능력이 있다면 평범한 능력은 아닐 터.
‘여기에 공력이라는 추가 단어가 붙은 오라. 내 레벨과는 다른 레벨이 붙어 있는 직업. 현재 내 상태를 알려주는 체력. 마지막으로 정신 상태를 알려주는 피로도가 존재하는데…….’
여기서 공선자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에볼루션 시스템을 살피다보면 현재 자신이 감정을 잃은 것 같은 상황에 대한 이유를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예상을 했었다.
에볼루션 시스템이 자신에게 모종의 영향을 끼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기 때문. 허나, 설마하니 이런 식으로 알게 될 줄은 상상도 못하고 있었던 것.
“……세부사항, 각성스킬 일야몽에 의한 감정제어상태?”
아마도 지금 자신의 정신이 얼마나 지쳐있는지를, 혹은 얼마나 큰 데미지를 입고 있는 것인지 수치로서 알려주는 것 같은 피로도 수치.
막 자고 일어나서인지 0%에 해당하는 그 수치 아래에는 공선자의 정신 상태를 세부적으로 알려주는 것 같은 세부사항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적혀 있는 문자를 공선자는 자신도 모르게 입으로 소리를 내어서 읽는 것.
감정제어상태. ……현재 자신의 상태를 명확하게 설명하는 그 한 단어에 공선자의 눈이 날카롭게 빛나는 것이었다.
‘과연……, 지금 내 상태는 그 영문을 알 수 없는 스킬의 영향이라는 건가?’
공선자가 스킬 창을 열었을 때 확인할 수 있었던 2가지 각성스킬, 시안과 일야몽. 공선자는 그중 시안이라는 스킬에만 집중했다.
그야 일야몽은 완전히 뜬금없이 등장한 스킬이었으니 신경 쓸 여유가 없다고 해야 할까, 신경 쓸 계기가 없었던 것.
하지만 설마하니 그 스킬이 이런 식으로 자신에게 영향을 주게 될 줄은 몰랐다. 또 그 영향을 스테이터스 창이 이렇게 명확하게 표시해줄 줄은 더욱 예상하지 못했고 말이다.
이것은 기쁜 오산이라고 말해야 할까? 설마하니 그저 정말로 약간의 기대만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었는데 이렇게 자신의 상태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스테이터스 창의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믿을 수도 없지만, 이 세부사항을 부정할 근거도 없으니까 일단은 진실이라고 생각해도 문제없겠지.’
설마 조금만 조사해도 뻔히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거짓말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야 각성스킬인 일야몽의 영향이라고 대놓고 설명되고 있는 시점에서 조금 뒤에 그 일야몽을 살펴보면 그 스킬에 자신이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알게 될 터이니 말이다.
그리고 거기에서 거짓이라고 밝혀지면 스테이터스 창은 신뢰성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설마하니 위대한 존재이니 뭐니 하는 존재가 그렇게 어설프게 일을 처리했을 것 같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적어도 챌린저들에게 에볼루션 시스템을 각인시킨 목적 중 하나는 분명히 챌린저들이 에볼루션 시스템을 이용하게 만드는 것일 터.
그렇다면 당연히 그들에게 에볼루션 시스템에 대한 신뢰성을 증명해야 하기도 한다는 이야기.
그런 만큼 섣불리 에볼루션 시스템의 신뢰성을 깎아내릴 만한 거짓말을 시스템에 포함시켜 두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이었다.
물론 이것도 어디까지나 추측이었지만 이상 스테이터스 창을 의심하게 된다면 그야말로 끝도 없이 의심해야 하지 않는가?
그렇기에 공선자는 일단 완전히 의심을 떨쳐낸 것은 아니었지만 당장은 스테이터스 창을 믿고 행동을 정하기로 결정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