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화 〉제 01계-챕터 01: 에볼루션 시스템
그리고 그것은 다른 챌린저들 또한 마찬가지. 애초에 당장 공선자는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일주일인지조차 알 수가 없는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여유롭게 자신에게 맞지 않는 직업을 골랐다고 그 직업을 일단 다시 성장시킨 뒤에 자신에게 맞는 직업을 다시금 선택할 여유 따위 존재하지 않았다.
경우에 따라서는 첫 번째로 선택하는 직업이 현재 자신의 생활에 큰 영향을 끼칠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아니, 생각해보니 당장은 그렇게까지 큰 영향이 있을 것 같지는 않군. 뭐가 되었던지 첫 번째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레벨 10 이후니깐 말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레벨 10 이후에는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처음부터 자신에게 맞는 직업을 골라 단 한 치의 낭비도 없이 스스로의 육성 루트를 밟아온 이와 처음부터 자신에게 맞지 않는 직업을 골라 시간을 낭비해온 이들은 결국 같은 시간 대비의 성장 수준이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게임’이라는 개념에서 한정된 이야기로 아무리 에볼루션 시스템이 게임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고 해도 완전히 똑같이 현실에서도 그 법칙이 적용될지는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아예 영향을 없지는 않겠지. 그러니 일단 직업의 선택을 진중하게.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직업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수집해야 한다. 결국, 결론은 도움말 창이 알려주는 직업이라는 항목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것으로 수렴되었다.
‘……직업에 대해 요약을 하자면 총 8개의 병과에 속하는 직업들이 존재하고, 각 직업을 습득, 해당 직업의 직업 레벨을 성장시키는 것으로 습득할 수 있는 스킬의 폭이 넓어진다. 거기에 직업은 직업 레벨에 따라서 직업 스킬의 숙련도 상승에 영향을 미친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직업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다름 아닌, 직업 레벨을 상승시킬 때마다 ‘스킬 포인트’를 지급한다는 점이었다.
스킬, 보아하니 이 에볼루션 시스템에도 특히나 중요한 개념으로 요컨대 아마 마법이나 초능력과 같은 이능과 비슷한 힘을 다루게 만들어주는 개념으로 보였다.
그런 만큼 이 스킬을 배울 수 있게 해주는 스킬 포인트라는 것을 오로지 직업 레벨을 상승시킬 때만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은 직업이라는 개념이 에볼루션 시스템에서 상당히 중요한 요소에 속한다는 사실을 예상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거기에 직업을 선택하고 직업 레벨을 성장시키는 것으로 습득할 수 있는 스킬의 폭이 넓어진다는 것을 보면 스킬을 습득하는 것과 직업 역시 큰 관련이 있는 것 같고 말이다.
‘하긴, 게임에서도 직업에 따라서 습득할 수 있는 스킬이 각각 다른 것은 자주 있는 경우니까. 여기서도 그런 느낌인 거겠지.’
그 외의 정보를 더 요약하자면 엑스트라 병과인 트릭스터라는 이름으로 분류된 병과에 속한 직업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챌린저의 레벨, 그리고 조건에 맞는 직업의 레벨을 최대치로 올리는 등의 선결 조건을 이루어내면 얻을 수 있는 상위직 등과 같은 정보들도 중요했지만 당장은 이용할 수 있는 정보가 아니었기에 공선자는 일단 이 정보는 기억만 해두는 것이었다.
‘지금의 내 직업은……, 아예 공란인 건 아닌가? 챌린저라는 이름의 직업이 정해져 있군. 하지만 어떤 능력이 있는 직업인 건 아닌가. 챌린저의 레벨과 동조 되는 직업으로 내 레벨이 2가 되면 자동으로 2가 되며 1레벨이 올라갈 때마다 스킬 포인트를 3주는 역할만을 위해서 존재하는 직업.’
즉, 직업이라기보다는 레벨 10까지, 총 30의 스킬 포인트를 지급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시스템에 가깝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이 챌린저의 레벨을 10 찍는 것으로 본격적으로 자신의 직업을 선택할 수 있게 된다는 이야기.
이것으로 일단 공선자는 직업에 대한 이해 역시 마칠 수 있었다. 좀 더 복잡한 개념이 포함되어 있는 것 같기는 했지만 당장은 일단 이 정도 수준의 지식만 가지고 있으면 될 터.
나머지의 좀 더 세밀한 정보들은 앞으로 직업이 무엇인지 직접 경험하며 알아 가면 될 내용이었다.
지금 공선자가 얻은 정보들만 해도 이후 공선자가 첫 번째 직업을 결정하게 되었을 때 충분히 판단에 도움을 주는 정보들이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다음으로 확인할 건 칭호.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칭호는 2가지. 이 도시에 도착해서 정신을 잃기 전에 서브 스트림을 클리어하는 것으로 습득한, 너희는 이런 거 모르지? 라는 이름의 칭호. ……그리고 아마도 내가 에볼루션 시스템을 각인 받은 그 순간부터 가지고 있었을 멸계성이라는 칭호.’
이것만 보아도 직업 다음에 존재하는 칭호라는 것이 무엇인지 대충 예상이 갔다. 특정한 조건을 달성한다면 얻을 수 있는 이명 비슷한 것이 아닐까 하고 공선자는 추측하는 것.
당장 칭호라는 단어 자체가 당사자를 대표하는 업적에서 따온 별명을 떠올리는 이미지를 지니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내가 멸계성이라는 칭호를 가지고 있는 것도 결코 이상하지 않지. 그야 난 죽기 전에 확실하게 하나의 세계를 멸망으로 몰아넣었으니깐 말이다.’
감정이 제어되고 있는 지금의 상태라면 보다 객관적으로 자신이 저지른 일을 직시할 수 있었다.
원래의 공선자였다면 쓸데없는 죄책감, 위선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감정을 이겨내지 못하고 제대로 자신이 저지른 짓을 마주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공선자에게 그런 것은 없었다. 지금의 그는 자신이 세계를 멸망시켰다는 사실조차도 냉정하게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 이용할 수 있다면 이용하는 것이 가능했으니깐 말이다.
그렇기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칭호인 멸계성에도 이렇다 할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칭호 자체가 특수한 힘이 있다면 생존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수준의 희미한 기대감을 품고 있을 뿐이었으니 말이다.
‘그걸 확인하기 위해서는 일단 칭호의 기능을 상세하게 살펴볼 필요성이 존재해. 어찌 되었던지 딱 봐도 하나의 세계를 멸망시켰기에 주어지는 칭호로 추정되는 만큼 단순한 멋으로 준 건 아니겠지.’
경우에 따라서는 칭호라는 단어는 딱 보는 순간 감이 오는 그런 단어인 만큼 굳이 칭호라는 항목을 도움말로 살펴보거나 하지 않을지도 몰랐다.
살펴본다고 해도 자신이 얻은 칭호가 어떤 기능이 있는지, 그 정도 수준으로만 살펴볼 수도 있는 것.
하지만 공선자는 굳이 도움말 창을 이용하여 칭호라는 항목 그 자체를 자세하게 확인해보는 것이었다.
시작부터 멸계성이라는, 딱 봐도 심상치 않은 칭호를 가지고 있는 공선자인 만큼 보다 확실하게 칭호에 대해서 알아둘 필요성이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렇게 도움말 창을 통해서 칭호에 대해서 확인해본 공선자는 여태까지의 설명들보다 짧은, 단출하다고까지 느껴지는 설명을 읽은 뒤에 생각하는 것이었다.
‘특정 조건을 만족할 경우 획득할 수 있는 일종의 이명. 칭호를 획득하면 각종 특수 효과를 적용받을 수 있다.’
이것 외에도 칭호에는 총 4개의 희귀도가 존재한다는 것 같았다. 여기에 칭호는 그저 ‘얻어두는 것’만으로도 효과를 발휘한다는 모양.
단, 칭호의 효과와는 무관하게 얻은 뒤에 하나의 칭호를 대표로서 착용해두면 에볼루션 시스템과 연동되는 통찰 계열의 능력을 대상으로 착용한 칭호를 스스로를 대표하는 칭호로 보여준다고 하는데……. 공선자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였다.
희귀도 역시 희귀도가 높을수록 더욱 얻기 힘든 칭호라는 것을 제외한다면 크게 와 닿는 부분은 없었고 말이다.
그렇기에 일단 공선자는 다른 설명들보다도 단 한 가지 설명, 칭호를 획득하면 각종 특수 효과를 적용받을 수 있다는 점에만 집중하는 것이었다.
‘역시 칭호라는 건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라는 이야기군. 일단 여태까지 살펴본 바로는 역시 에볼루션 시스템이라는 건 각인된 이의 성장에 최우선적으로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은 느낌이야.’
공선자가 그렇게 느끼는 이유는 별것 아니었다. 애초에 에볼루션 시스템이 베이스로 잡고 있는 게임 시스템이라는 것은 보다 플레이어가 쉽게 성장하여 게임을 보다 재미있게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야 현실처럼 성장하는 것이 더럽게 어렵다면 보통 사람들은 성장하는 즐거움이라는 것을 맛보기 힘들지 않은가?
그렇기에 게임 시스템은 그 대부분이 사용자가 보다 쉽게 성장의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설계되는 것이 기본 전제였다.
‘물론 고난이도를 지향하는 게임들이라면 또 이야기는 다르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결국 게임 시스템이라는 게 성장을 서포트 해준다는 것은 절대적인 진리야. 설마 게임 시스템이 플레이어의 성장을 방해하는 요소로서 작용되는 게임이 있을 리가 없잖아?’
아니, 세상은 넓고 또라이는 많다고 찾아보려고 한다면 없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이 에볼루션 시스템이 그런 계열의 게임 시스템을 베이스로 삼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공선자는 추측하는 것이었다.
그럴 것이 여기는 현실이었다. 즉, 게임과 다르게 하려고 한다면 아마도 에볼루션 시스템의 도움 없이도 성장할 수단을 찾을 수 있을 터.
게임과 다르게 무한에 가까운 선택지가 존재하는 것이었다. 굳이 에볼루션 시스템에 연연하지 않고도 다른 식으로도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소리.
무엇보다 이쪽 세계에서 정신을 되찾은 뒤 공선자는 몇 번이고 마법이라는 단어를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은 다르게 이야기하자면 이쪽 세계는 마법이 있는 게 당연한 세계. 그렇다고 한다면 마법을 ‘직접’ 배우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을지 모르지 않는가?
그런 세계이니 에볼루션 시스템이 사용자의 성장을 방해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으리라.
그야 에볼루션 시스템이 방해라면 에볼루션 시스템을 그냥 무시하면 될 일이니 말이다. 물론 단순히 아무런 대가도 없이 사용자를 성장시켜주기만 하지는 않을 터.
그러니 ‘절대’라고는 이야기할 수 없었다. 허나, 다시금 이야기하지만 공선자는 적어도 ‘지금’은 에볼루션 시스템에 의지하는 것이 보다 쉽고 효율적으로 현 상황을 타파해줄 가능성이 높은 선택지라고 판단을 내린 상황인 것이었다.
‘그리고 사용자의 성장에 초점이 맞춰진 에볼루션 시스템인 만큼 그 내부에 포함된 칭호라는 개념이 단순히 장식의 역할로 끝날 리가 없지. 적어도 사용자에게 도움이 되는 효과를 지니고 있을 터.’
그 예상대로 칭호는 각각 칭호마다 특수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설명란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식의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인지는 설명이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공선자는 시작부터 2개의 칭호를 가지고 시작한 상황. 그런 만큼 자신이 지닌 칭호를 살펴본다면 다른 칭호들이 대충 어떤 식으로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것인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일단은 너희는 이런 거 모르지? 라는 이름의 칭호의 효과부터 확인을 해봐야겠어.’
공선자는 가장 앞에 있는 칭호인 멸계성보다는 일단 뒤에 있는 칭호인 너희는 이런 거 모르지? 라는 조금 장난치는 것 같은 이름의 칭호를 먼저 살펴보는 것이었다.
이 칭호는 서브 스트림을 성공시킨 것으로 획득한 칭호. 이 칭호부터 살펴본 것은 그렇게 그럴듯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이처럼 장난스럽기 그지없게 느껴지는 이름의 칭호에도 제대로 칭호로서의 효과가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
……거기에 멸계성이라는 칭호는 설령 감정이 억제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해도 선뜻 확인하기가 어려웠다.
이것은 공선자의 죄업. 설령 그것 외에는 복수의 방법이 없었다고 해도 그것이 결코 아무런 관련도 없는 전 세계의 사람들을 끌고서 동반자살을 한 것에 대한 변명이 되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공선자는 변명할 생각이 없었다. 할 수 있는 말은 그저 ‘자신이 그렇게 하고 싶었기에 그렇게 한 것’이라는 진실에서 비롯된 주장뿐.
공선자에 의해서 휘말린 아무런 관계도 없는 이들이 증오하며 공선자를 향해 ‘네가 괴로운 인생을 산 게 우리랑 무슨 상관인데 무리를 끌어들인 거냐?!’ 라고 따지고 들 수도 있었다.
공선자 역시 그들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허나, 그것은 단지 옳을 뿐. 설령 그들의 말이 옳다고 해도 당시의 공선자는 그 아무런 연관도 없는 사람들에게조차 ‘분노’를 품고 있었다.
자신을 평화를 위한, 아니, 정확히는 거짓된 평화를 유지하는 나라를 위한 희생양으로 삼고 그 나라 위에서 아무것도 모른 상태로 뻔뻔하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분노를 느꼈다.
그것이 설령 논리적으로 불합리한 분노라고 해도 공선자가 그들에게 분노를 느낀 것은 사실. 애초에 감정은 언제나 논리적으로 발생하는 요소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공선자는 자신의 동반자살에 세계를 아무런 주저도 없이 끌어들인 것이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결코 복수할 수 없는 이들에게 복수를 해낸 것이었다.
때문에 공선자는 자신의 죄를 인정했다. 허나, 후회는 하지 않았다. 70억의 무고한 이들이 공선자를 증오한다면 공선자는, 정확히는 그의 반신이었던 존재는 이렇게 소리쳤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