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4화 〉제 01계-챕터 01: 에볼루션 시스템 (64/194)



〈 64화 〉제 01계-챕터 01: 에볼루션 시스템

-그래! 얼마든지 날 증오해라! 증오받을 각오를 하고 행한 일이야! 전 세계가 적이 되어 날 씹어 먹으려고 들 사실 자체를 이미 받아들였다는 이야기야! 아니, 애초에 말이지, 난 이 복수를 하는 도중에 너희들의 그 증오에 제대로 된 결과를 못 내고 비참에 죽을 것이라는 사실조차 받아들이고 이 계획을 실행한 거라고?

그런데 그걸 막아내지 못한 너희들의 잘못도 있는 것 아니냐? 하고 캬하하! 하는 웃음소리와 함께 뻔뻔하기 그지없는 주장을 펼쳤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공선자의 반신은 지금도 공선자의 안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그렇기에 공선자는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정확히는 후회가 허락되지 않았다. 자신이 저지른 짓을 후회하는 순간 그것은 오로지 복수를 위해 세계를 적으로, 그것도 단순한 적이 아닌 철천지원수로 돌릴 결의를 하고 일을 행한 자신의 반신에 대한 모욕이었다.

또한 그런 자신들의 억지에 휘말려 무고하게 목숨을 잃은 자들에 대한 부관참시나 다름없었다.

……허나, 후회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죄업의 무게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의 반신이라면 모르겠지만, 그저 반신에게 보호받기만 했던 공선자에게는 확실하게 양심이라는 게 남아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양심을 감정이 억제되고 있는 지금조차 완전히 그를 자유롭게 만들어주지 않았다.

감정은 어디까지나 억제되고 있을 뿐,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그런 자신의 행동에 공선자는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것이었다.

‘감정의 억제에도 한도가 있다는 거겠지. 감정을 없애는 게 아니라 감정이 흘러나와야 할 구멍을 뚜껑으로 막고 있다는 느낌인가.’

자신의 상태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을 내리면서 공선자는 너희는 이런 거 모르지? 라는 이름의 칭호의 효과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등급은 노멀, 습득 조건은 총 2개로 하나는 에볼루션 시스템을 각인 받은 지 하루 내에 메인 스트림의 도움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에볼루션 시스템을 95% 이상 파악할 경우.’

그리고 두 번째는 공선자처럼 서브 스트림의 보상으로서 습득할 경우였다. 그 뒤 마지막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칭호의 효과.

너희는 이런 거 모르지? 라는 노멀 등급의 칭호는 사고 스텟을 5 상승시켜주는 효과를 지니고 있었다.

‘과연, 그래서 추가 스텟 항목에 사고 스텟만 5가 상승해 있었던 건가.’

어째서 사고 스텟만 상승해 있었던 것인지 사소한 의문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것으로 공선자는 그 의문을 해결할 수 있었다.

그리고 몇 가지 더 칭호에 대한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다름 아닌 칭호를 얻게 되면 그 칭호의 습득 조건을 알 수 있게 된다는 것.

그리고 그 습득 조건이야말로 해당 칭호에 대한 ‘설명’이라고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해당 칭호가 어째서 그런 이름인 것인지, 또 어째서 해당 효과를 소유자에게 주는 것인지 습득조건을 확인하면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는 소리.

너희는 이런 거 모르지? 는 스스로의 힘으로 에볼루션 시스템을 하루 안에 파악하는 것이었다. 이때 메인 스트림의 도움을 받으면 안 된다.

이것은 다르게 이야기하자면 첫 번째 메인 스트림이었던 도시, 소나타에 도착하라는 스트림을 클리어하기 전에 에볼루션 시스템을 95% 이상 파악해야 한다는 소리였다.

그럴 것이 첫 번째 메인 스트림을 클리어하면 에볼루션 시스템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이 주어진다.

그리고 이것은 아마 메인 스트림의 ‘도움’에 해당할 터. 그렇기에 제한기간이 하루라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첫 번째 메인 스트림을 클리어하기 전이라는 소리였다.

그 정도로 빠른 시간 안에 오로지 홀로 에볼루션 시스템의 내용을 파악한다. ……적어도 공선자처럼 기억을 유지하고 있는 자가 아니라면 정말로 어지간히 머리 회전이 빠른 자, 혹은 운이 좋은 자가 아니면 말이 되지 않는 조건.

그리고 이 조건을 성공시킨다는 것은 머리 회전이 빨라 남들이 알지 못하는 정보는 선점하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그렇기에 칭호의 이름이 너희는 이런 거 모르지? 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는 것.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정보를 선점하여 얻은 칭호라는 점에서 말이다.

그리고 칭호의 효과가 사고 스텟을 올려주는 것은 머리 회전이 빠른 만큼 그에 따른 보상으로 좀 더 머리를 좋게 만들어준다……, 라는 느낌이 아닐까 예상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것은 확신이 아닌 예상이었다. 그야 공선자가 확인한 칭호의 정보가 직접 그런 식으로 설명이 쓰여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허나, 높은 확률로 이 추측을 빗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어떻게 봐도 칭호를 습득하는 조건과 칭호의 이름, 그리고 칭호의 효과는 연관성을 찾아볼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확신은 다음 칭호를 확인해보면 알 수 있겠지.’

자신의 숨길 수 없는 죄업을 눈앞에 들이미는 기분을 들게 하는 멸계성이라는 이름의 칭호.

이제는 그 칭호의 상세를 파악하려고 하자 공선자는 감정이 제어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숨길 수 없는 씁쓸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다시금 이야기하지만 결코 후회하는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후회가 허락되지 않았고 말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자신이 저지른 죄업을 눈앞에 두면 마음이 흔들리는 것도 어쩔 수 없는 것.

설령 자신이 아닌 자신의 또 다른 인격이 저지른 짓이라고 해도 그 반신이 지금의 자신에게 흡수된 이상 이것은 공선자가 저지른 짓이라고밖에 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이 이상 뜸을 들여 봤자 내가 저지른 짓이 사라진 것도 아니지. 일단은 이 칭호의 효과부터 확인하자. 적어도 얌전한 효과는 아니겠지.’

오히려 매우 흉흉한 효과를 지니고 있을 터. 이름만 봐도 세계 하나를 멸망시켰기에 얻은 칭호가 아닌가?

그렇기에 공선자는 경우에 따라서 자신에게 매우 안 좋은 쪽으로 작용되는 효과가 있을 경우도 상정하고 칭호의 효과를 살펴보는 것이었다.

무려 세계를 멸망시키고 얻은 것으로 추정되는 칭호였다. 당연하게도 공선자는 상당히 거창한 설명이 나오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었던 것.

허나, 그의 예상과 다르게 멸계성이라는 이름의 칭호의 설명은 생각했던 것보다 짧았다.

앞서 확인한 너희는 이런 거 모르지? 라는 이름의 칭호와 적혀 있는 글의 분량은 그렇게까지 큰 차이가 없어 보일 정도로.

‘습득 조건은 2가지. 하나의 세계가 멸망하고 그 세계의 멸망에 90% 이상의 인과를 지니고 있을 경우 습득할 수 있다.’

즉, 요컨대 그것이었다. 예상대로 세계를 멸망시킨 주역에게 주어지는 칭호. 허나, 이것 외에도 멸계성을 습득하는 조건은 하나 더 존재했다.

‘……거대한 흐름에 의해서 세계를 멸망시킬 것이 예정된 존재 역시 멸계성을 습득할 수 있다고? 이건 무슨 의미지? 그러니까……, 세계를 멸망시킨 자가 아니라 앞으로 세계를 멸망시킬 자 역시도 나와 같은 멸계성이라는 이름의 칭호를 가지고 있다는 건가?’

……과연 세계를 멸망시키고 손에 넣을 수 있는 칭호. 또 다른 습득조건 역시 뒤숭숭하기 그지없는 조건이었다.

‘아니, 잠깐만 기다려 봐. 이건 즉, 나한테도 적용되는 이야기 아니야? 혹시 내가 챌린저가 되기 전에 세계를 멸망시킨 전적이 있어서 이 칭호를 준 게 아니라 앞으로 이 새롭게 살아가야 할 세계를 멸망시킬 예정이기 때문에 이 칭호가 주어진 것이라면?’

순간적으로 떠오른 가설에 공선자는 소름이 돋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그가 있는 이 이름 모를 세계는 천사가 이야기하는 것에 따르면 ‘멸망이 예정된 세계’라고 하였다.

본래라면 기억을 잃었기에 천사가 한 이야기를 잊어버렸어야 했지만 잊지 않은 공선자이기에 기억하고 있는 사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쪽 세계는 머지않은 미래에 ‘멸망’한다. 그리고 공선자는 아마 챌린저의 주된 존재의의가 이 멸망을 막는 것에 존재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던 것.

물론 그런 것치고는 여러 가지 석연치 않은 점이 상당히 존재했다. 때문에 에볼루션 시스템의 목적은 일단 챌린저들이 세계를 구원하는 것을 서포트하는 쪽이 아닌 다른 쪽에 있다고 추측한 공선자.

허나, 그렇다고 해서 멸망할 세계를 구하는 것과도 완전히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던 것.

그렇지 않다면 굳이 멸망할 세계에 챌린저들을 보낼 이유가 없지 않은가? 이왕 되살려 줬으면 멸망 따위 하지 않는 세계가 좋은 것이었다.

여하튼 할 수 있으면 세계가 멸망하는 것을 막는다, 라는 목적도 챌린저들이 존재하는 의의와 어느 정도 연관이 있다고 예상하고 있던 공선자다.

그런데 지금 그가 떠올린 가설이 사실이라면 이쪽 세계가 멸망하게 되는 이유는 자신 때문이라는 것이 아닌가?!

‘……냉정하게 생각해서 굳이 더 이상 내가 세계를 멸망시킬 이유가 없어. 저쪽에서는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자유는커녕 복수조차 이룰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이쪽은 아니니까. 더구나 보아하니 마법이니 뭐니 하는 이능도 존재하는 모양인데 초능력자라고 무조건 저쪽 세계와 같은 취급을 당하지는 않을 확률이 높지.’

거기에 공선자의 능력으로 세계의 멸망이라니 가당키나 한가? ……이렇게 말하기에는 한 번 저질러버린 전적이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것도 정말로 어지간히 운이 좋았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기적과 기적이 그야말로 잭팟 터지듯이 연속해서 터져줬기에 가능했던 이야기.

이쪽 세계에서 그것을 또다시 재현하려고 하면 절대적으로 무리일 것이 뻔하지 않은가? 하지만 공선자는 불길한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럴 것이 공선자가 챌린저가 되기 전의 다른 업적들은 전혀 적용된 것 같지 않은데 하마터면 멸계성이라는, 세계를 멸망시킨 업적만이 적용되어 저런 칭호를 얻은 것이다.

그러니 가능성을 따진다면 공선자가 세계를 멸망시켰기에 칭호를 얻은 게 아닌 세계를 앞으로 멸망시킬 것이기에 칭호를 얻었다는 경우도 배제할 수는 없는 것.

챌린저로서 얻는 칭호는 챌린저가 된 뒤의 업적만을 계산한다, 라는 조건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 만큼 공선자가 세계를 멸망시킨 것을 칭호를 습득하기 위한 조건으로서 카운트했을지 자체가 미지수인 것.

‘……아니,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야. 애초에 습득 조건에 존재하는 거대한 흐름이라는 묘사 자체가 애매하기 그지없어.’

자신이 세계를 멸망시킬지도 모른다. 그 가능성에 공선자는 골이 아파지는 느낌이었지만 일단은 진정하는 것이었다.

애초에 무엇인가 판단을 내리기에는 에볼루션 시스템을 완전히 파악했다고 이야기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정말로 에볼루션 시스템이 에볼루션 시스템을 각인 받기 전에 당사자가 쌓아왔던 업은 계산하지 않는 것인지 확실하지도 않은 상황이었으니까.

‘그것보다는 칭호의 효과야. ……멸업 스킬을 습득할 수 있게 된다고? ……흠, 이렇게 하면 되나.’

공선자가 자신의 눈앞에 떠오른 홀로그램 창을 터치해보는 것이었다. 보아하니 굳이 터치하지 않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작동시킬 수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럼에도 굳이 손을 이용해서 조작해보는 것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사고를 통해서 조작할 경우에는 조금 애매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 예를 들자면 가볍게 사라져라, 떠올라라, 라고 생각하는 수준으로는 눈앞에 반투명한 시스템 창이 떠오르지 않았다.

보다 강력한 의지를 담아야지만 시스템 창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그리고 조작하는 것도 마찬가지.

단순히 생각하는 것이 아닌 기준치 이상의 의지를 담아야 한다고 해야 할까? 이게 조금 미미하지만 피로한 감이 있었다.

그렇기에 손으로 조작할 수 있을 때는 역으로 손으로 조작하는 쪽이 편하다는 이야기. 아마도 잡생각에 의해서 실수로 시스템을 조작하는 것을 막기 위한 기능 같았지만 편의성 면에서 보자면 불편한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그냥 뭔가를 잠깐 떠올리는 것만으로 스텟 포인트나 스킬 포인트를 잘못 소모하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말이다. 무엇보다 정신을 조작하는 것도 정말로 그렇게까지 불편한 건 아니고 말이지.’

오히려 어느 정도 의지를 담아야 시스템이 조작되는 것인지 그 기준을 알 수가 없어 그 애매함에 쫌 다루기 귀찮다는 느낌이 더 강하다고 해야 할 것이었다.

‘……일단 칭호를 통해서 스킬을 배우려고 한다면 당장 배울 수 있지만 일단은 미루어둘까. 이름 자체가 뒤숭숭하기 그지없는 이름의 스킬이니깐 말이지. 배우기 전에 효과 같은 건 볼 수 없나?’

무엇보다 공선자는 현재 스킬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다. 그렇기에 일단은 멸업이라는 스킬은 나중에 배우기로 한 공선자. 멸계성은 멸업이라는 스킬을 배울 수 있게 해주는 것 외의 효과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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