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화 〉제 01계-챕터 01: 에볼루션 시스템
……그러나 그럼에도 그가 로그 시스템이 아닌 스킬 시스템을 먼저 조사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는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다름 아닌 스킬 시스템도 상당히 중요한 시스템일 것이라는 추측……, 그리고 스킬 시스템을 먼저 살펴보는 것으로 습득한 사전 정보를 통해서 보다 구체적으로 로그 시스템의 알림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설령 로그 시스템이 공선자가 생각하는 게임에서의 그런 로그 시스템이어서 그에게 일어난 일을 객관적인 정보로서 표시해준다고 해도 그 정보를 이해할 사전지식이 공선자에게 없어서야 해당 로그를 읽지 못하는 것과 다를 게 없었다.
그렇게 된다면 결국 스킬 시스템을 먼저 확인해야 것은 달라질 게 없는 것. 그렇기에 공선자는 괜히 로그 시스템을 먼저 확인했다가 스킬 시스템을 확인한 뒤 다시 확인해야 하는 사태가 올까 걱정하고 있는 것.
고작 해야 몇십 분 정도의 시간 손해겠지만 지금의 공선자는 그 시간 손해조차 가만하고 고민할 정도로 효율을 따지는 이성의 괴물이었다.
‘……아니, 역시 로그 시스템부터 보도록 하자. 지금의 나라면 기억할 수 있어.’
감정이라는 부분이 거세된 영향인지 현재 공선자의 정신 영역은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판단이지만 평소보다 조금은 더 넓혀져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애초에 공선자는 머리가 좋은 편이었다. 아니, 머리가 나빴다면 살아남을 수 없었기에 억지로 뇌를 극한까지 활용하는 훈련을 했다는 편이 올바른 판단일 터.
평소라면 그렇게 극한까지 활용할 수 있도록 훈련된 뇌조차 본래라면 공선자라는 근본 인격만을 집어삼켰을 감정에 의해서 제대로 사용할 수 없는 상태였다는 것.
본래의 공선자는 그의 반신이 활동을 대신해줬다. 공선자는 그저 스스로가 정신세계라고 명명한 정신의 저편 속에서 자신의 반신을 경험을 함께 경험하며 자신의 반신과는 다른 감정을 느껴왔을 거란 이야기.
그야 공선자의 반신이었던 인격과 그의 근본이었던 인격은 인격을 이루는 근본적인 가치관이 다르니 감정을 느끼는 기준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공선자의 근본적인 인격은 평범한 사람에 가까웠다. 공선자의 반신이었던 인격은 그야말로 살육병기에 가까운 감정선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기에 사람을 죽을 때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그렇기에 자신이 죽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공포를 느끼지 않았다. ……그렇기에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전력’을 전부 활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전력에는 지금 이야기한 뇌를 최대한 활용하는 것 역시 포함되어 있는 것.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다.
그러나 공선자의 근본 인격은 달랐다. 평범한 사람의 감정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반신이 대신해서 공선자라는 존재를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렇기에 평범한 사람의 감정선을 가지고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의 반신이 살육병기의 감정선을 지니고 살아남는다는 것은 곧, 그의 근본 인격인 ‘지금의 공선자도’ 살아갈 수 있었다는 이야기였으니까.
때문에 평범한 성격을 유지할 수 있었다. 공포를 느낄 때 공포를 느끼고, 사람을 죽일 때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누군가를 부러워할 수 있는 평범한 감정의 기준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렇지 않은 감정선을 지닌 그의 반신이 그를 대신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활용해’ 살아남기 위한 활로를 열어줬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공선자는 아니었다. 그의 반신은 더 이상 인격으로서 존재하지 않고 그와 융합했기에 더 이상 그를 대신해줄 수 없었다.
여기 있는 것은 살육병기로서의 가치관을 지닌 반신의, 형의 인격이 아닌, 평범한 사람으로서 보호받으며 평범한 사람의 가치관을, 양심을 보호받아온 동생의 인격이었으니까.
사람이 죽는 것을 보면 양심을 가책을 느끼는, 그리고 결국은 참지 못하고 현실에서 눈을 돌렸던 본래의, 동생이었던 공선자다.
자신의 반신이 자신을 위해서 민간인마저 망설이지 않는 광경을 보게 되어 정신이 무너져 내릴 것 같을 때마다 정신세계에 잠이 드는 것으로 비겁하게 현실도피를 해 정신을 보호했던 공선자다.
……그래, 그렇게 비겁하고 비열하게 살기 위해서는 버렸어야 했을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감성’을 여태까지 스스로를 포기하지 못하고 유지해온 바보같이 보호받기만 했던 남자가 지금의 그다.
……그렇기에 본래의 공선자는 자신의 반신이 남겨준 것을 제대로 활용할 수가 없었다. 진작 살아남기 위해서 포기했어야 했을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감성’이라는 녀석이 그가 가진 자신의 뇌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다는 능력마저 제한시켜버리고 있었다.
뇌를 활용하려고 해도 정신의 영역을 쓸데없는 감정들이 차지해서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그가 아닌 그의 반신, 그의 형이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와 다르게 냉철하게 상황을 파악했을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서 모든 것을 이용하고 그것도 모자란 스스로의 역량조차 총동원했을 것이다. 허나, 지금의 공선자는 아니었다.
동생과 형이 합쳐져, 아니, 형이 일방적으로 동생을 위해서 희생하여 이루어진 지금의 공선자는 형이 아닌 동생의 인격에 90%에 가까운 인격.
그렇기에 어처구니없게도 자신의 역량조차 완전히 다루어내질 못했다. 당연했다. 자신밖에 몰라 자신을 위해서 형이 괴물이 되었을 때 스스로만을 생각해 인간으로 남았던 이가 괴물의 역량을 다루어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참으로 꼴좋기 그지없지 않은가? 자신을 위해서 진흙탕에 몸을 던지고 스스로 거대한 죄악을 뒤집어썼던 이를 그저 보호만 받으며 지켜보기만 했던 이에게 어울리는 말로였다. ……말로일 터였다.
‘하지만 지금의 나라면 가능해. 나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하는 게……, 가능해!’
그러나 지금의 공선자는 아니다.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감성이 거세되었다. 이로 인하여 지금의 공선자는 동생의 근본 인격보다 훨씬 ‘형의 인격’에 가까워졌다.
그렇다고 형의 인격이 된 것은 아니었다. 형의 인격과는 명백히 달랐다. 형의 인격은 감정을 느끼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감정을 느끼는 기준이 달랐을 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감정이 거세된 공선자는 적어도 ‘형의 인격의 흉내’를 낼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이길 포기하고 기계가 되었기에 괴물의 역량을 다루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공선자이기에…….
‘로그 시스템을 먼저 확인한다고 해도 문제없어. 기억할 수 있어. 정확히는 말하자면 기억했던 것을 원하는 때에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고 해야 하나?’
자신의 뇌를 최대한 활용하는 게 가능했다. 그러니 로그 시스템을 먼저 살펴본다고 해도 문제는 없었다.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 결과 내용 자체를 잊어버리고 다시금 로그 시스템을 살펴봐야 한다는 시간 낭비는 하지 않을 터였다.
어쩌면 고작 기억력 가지고 거창하게 이야기한다고 할 수 있을지 몰랐다. 그러나 아니다. 기억력은 생존에 매우 중요한 요소다.
그러니 기억력에 관한 이야기는 매우 중요한 분야였다. 거기에 무엇보다 지금의, 감정이 제어되고 있는 공선자가 근본 인격이 아닌 반신 인격에 가깝다는 사실 역시 무엇보다 귀중한 판단이었다.
‘본래의 내가 아닌 형이었던 나에 가까운 나. 고작해야 감정이 제어된다는 것만으로도 이렇게까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는 건가.’
아니, 결국 두 사람 전부 인격이 달라도 근본은 공선자였다. 공선자라는 같은 뿌리를 두고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니 그 다른 가치관을 형성하는 모종의 차이점이 사라지면 사라질수록 서로가 비슷한 인격처럼 느껴지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지금은 본래의 근본 인격이 아닌 반신의 인격에 가까워지는 것은 다시금 이야기하지만 결코 나쁜 일이 아니었다.
인간으로서는 망가져 갈지 모르지만 이런 미지의 상황에서 살아남을 확률이 높은 것은 어떻게 생각해도 반신의 인격 쪽이었으니까.
‘당장 자신의 뇌를 전부 활용할 수 있다, 없다, 와 같은 차이마저 생길 정도니깐 말이야.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이쪽이 정답이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선자의 가슴이 술렁거렸다. 감정제어로 인하여 감정이 억제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알 수 있을 만큼의 동요.
이것은 그만큼 본래라면 거대한 감정의 파도가 휘몰아쳤을 것이라는 이야기. 그야 그의 반신이 희생을 한 것은 오로지 공선자의 근본 인격을 위해서였다.
반신 인격인 자신이 아닌 공선자라는 존재의 근본을 위해서였던 것. 그런데 정작 정신을 차려보니 자신은 점점 반신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가 바랬던 것은 괴물이 되어버린 자신과 다르게 아직까지도 인간이길 포기하지 않은, 아니, 도저히 포기할 수 없었던 공선자를 지켜내는 것이었을 텐데 말이다.
그것 마치 그의 희생이 의미가 없었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공선자의 동요를 만들어냈다. 허나, 이내 공선자는 고개를 흔들어 그 감정을 털어냈다.
지금은 그런 감정에 하나하나 휘둘릴 때가 아니다. 그것보다는 정보. 로그 시스템에 대해 파악하고, 거기에 도대체 언제부터 있었던 것인지 알 수 없는 알림의 내용을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챌린저가 인식하는 범위 내에서 에볼루션 시스템과 상호작용하는 현상을 로그 창에 로그로서 표시해주는 시스템. ……역시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게임의 그 로그 창과 그다지 다를 건 없나.’
있다면 게임처럼 모든 현상을 객관적인 정보의 기록, 로그로서 보여주는 것이 아니었다. 그럴 것이 말했다시피 게임과 현실은 그 무엇보다 ‘정보’의 양이 비교 불가할 정도로 달랐다.
그러니 게임처럼 현실의 정보를 죄다 기록하는 것은 그야말로 전설 속의 아카식 레코드와 같은 게 아니면 불가능할 터.
그러니 이 로그 시스템은 어디까지나 현실 중에서도 ‘에볼루션 시스템과 상호작용하는 현상’이라는 제한이 걸려 있는 것.
즉, 게임이 어디까지나 ‘게임 내에서의 정보’를 표시해주는 것처럼 에볼루션 시스템의 로그 시스템은 어디까지나 에볼루션 시스템에 대한 변화를 정보로서 기록해줄 뿐이라는 소리였다.
허나, 그것만으로도 공선자는 충분히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그런 사기적인 성능 따위 기대도 하지 않았으니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만족하는 것.
‘……하지만 그렇다면 결국 이 알림은 에볼루션 시스템에 모종의 상호작용이 있었기에 발생했다는 건데, 도대체 뭐지?’
일단 예측하기에는 공선자 이쪽 세계에서 정신을 되찾은 뒤에 에볼루션 시스템에 변화를 일으킬 만한 것은 단 한 가지였다.
메인 스트림과 서브 스트림의 클리어. ……그리고 이 두 가지 변화 역시 당연하게도 에볼루션 시스템에 속한 변화이기에 로그 창에 표시가 되었다.
그것은 공선자는 ‘이미’ 확인을 한 뒤였다. 정신을 잃기 전 메인 스트림과 서브 스트림을 클리어했을 때 자연스럽게 그의 눈앞에 스트림 창이 떠올랐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당시의 공선자는 시야 한쪽에 로그 시스템을 통해 새로운 로그가 발생하면 해당 로그가 잠깐 출현했다가 조금 뒤 사라지는 반투명한 로그 창을 출현시켜둔 상태였다.
이는 서브 스트림을 통해서 에볼루션 시스템에 대해서 파악하던 과정에서 로그 시스템에 대해 파악할 때 해둔 설정이었다.
딱히 큰 의미는 없었다. 반투명한 로그 창을 출현시킨다는 게 정확하게 무슨 의미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해둔 설정이었다.
하지만 정작 설정을 건드려도 별 변화가 없었기에 신경 쓰지 않고 있다가 서브 스트림과 메인 스트림을 클리어할 때 시야 한쪽에 반투명한 창이 떠오르며 메인 스트림과 서브 스트림을 클리어했다는 사실을 알려줬는데 그때 정확하게 이 로그 창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시야 한구석에서 멋대로 떠오르는 로그 창이 거슬려서 곧바로 해당 설정을 꺼두었다.
그럴 것이 하려고 한다면 일주일 분의 로그를 언제든지 확인할 수 있는 것 같았으니 굳이 거슬리는 반투명한 창을 상시 전개시켜둘 필요가 없었다.
물론 늘 반투명한 창이 떠오르는 게 아니라 로그가 떠오를 때만 떠올랐지만 당시에 매우 피곤했던 공선자는 그것도 거슬렸다.
그렇기에 로그 창을 치워두었다. 오죽했으면 아직 확인하지 않았다는 알림이 떠오르는 로그의 확인도 미루어뒀을까?
하지만 그 결과 공선자는 확실하게 메인 스트림과 서브 스트림을 클리어했다는 로그‘만’은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니 현재 확인하지 못했다고 뜨는 저 로그가 그가 클리어한 메인 스트림과 서브 스트림과는 관계가 없다는 이야기. 그렇다면 결국…….
‘무엇 때문에 저 로그가 발생한 건지 알 수가 없는데……. 에볼루션 시스템을 각인 받았다는 것을 알리는 알림창인가?’
그렇다면 공선자 외의 다른 챌린저들에게도 로그가 떠올랐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