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화 〉제 01계-챕터 01: 에볼루션 시스템
그리고 현재 정말 그런 것인지를 확인하려면 이 방에서 나가 다른 챌린저들을 만나 확인할 수밖에 없었는데…….
‘굳이 그럴 필요 없이 로그의 내용을 확인하면 그만이지. ……부디 뭔가 특별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으면 좋겠는데.’
현재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은 대충 이해가 되었다. 허나, 그럼에도 이해가 되지 않는 점들이 아직도 많았다.
그러니 그렇게 의문스러울 수밖에 없는 부분들을 시원하게 설명해줄 정보가 포함되어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로그를 확인해본 공선자의 미간은 직후 좁혀질 수밖에 없었다.
-축하합니다! 위대한 존재의 사도, 천사를 쓰러트린 공적을 인정받아 위대한 존재로부터 1가지 혜택을 받게 되었습니다. 본래라면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챌린저로서 소생되기 전 해당 챌린저가 이루어낸 ‘가장 위대한 업적’ 한 가지가 에볼루션 시스템에 업적으로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 결과 칭호 ‘멸계성’을 습득하게 되었습니다.
-위대한 존재로서의 전언입니다.
-등가교환, 인과응보, 죄는 죄로, 공은 공으로. 공정성에 대한 대가다.
……순간적으로 공선자는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허나, 한 5초 정도 최대한 머리를 굴러본 결과 결국에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즉, 형이 천사를 죽인 것으로 인하여 나는 위대한 존재에게 반발한 것으로 취급되어 그에 따른 ‘대가’로서 챌린저가 된다는 선택지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이것이 죄. ……그러나 천사를 죽였다는 사실 자체는 하나의 업적이기도 하다. 그러니 공정하게 그에 따른 보상을 지급한다. 이것이 ‘공’이라는 건가.”
그 결과가 지금의 공선자였다. 본래라면 에볼루션 시스템을 각인 받기 전이기에 에볼루션 시스템에게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업적, 세계를 멸망시켰던 업적을 인정받아 칭호, 멸계성을 습득하게 되었다.
본래라면 이 칭호를 얻기 위해서는 어디까지나 에볼루션 시스템을 각인 받아 ‘챌린저가 된 뒤’에 하나의 세계를 멸망시켜야 했을 것이다.
허나, 공선자는 천사를 죽였다는 ‘업적’을 인정받아 그가 생애에서 세웠던 가장 ‘위대한 업적 한 가지’를 에볼루션 시스템에 받아들여졌다는 이야기.
그리고 그 위대한 업적은 당연하게도 ‘세계의 멸망’이었다. 설령 그것이 죄에 속하는 업적이라고 해도 공선자의 인생에서 가장 거대한 스케일의 업적이라는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형이 천사를 죽였던 그 선택은 위대한 존재에게 반발했다는 더 없이 실수이자, 동시에 이루어내는 것에 상당한 수고가 드는 업적이기도 하다는 건가.’
아니, 생각해보면 당시 천사는 자신을 죽였음에도 불구하고 공선자에게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불가능했을 터인 일을 가능케 했다는 사실 자체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단순히 찬사만을 한 것이 아닌 찬사를 받을만한 일을 행한 것에 대한 ‘보상’ 역시 까먹지 않았다는 것.
정말이지 빌어먹을 정도로 공정한 신이었다. 이 위대한 존재라는 녀석은 말이다. 요컨대 자신에게 덤벼든 것을 중화시켜줄 정도의 업적은 아니지만 이 정도 보상을 받을 정도의 업적이라는 거겠지, 천사를 살해했다는 사실은.
그렇게 판단하니 도저히 뭐라 설명하기 힘든 감정이 마음속 깊은 속에서 솟아나려고 했다. 허나, 직후 감정 제어라는 뚜껑에 막혀 그 감정은 다시금 밖으로 뛰쳐나오지 못했다.
‘……그래도 한 가지 알게 된 사실이 있어. 결국, 내가 가지고 있던 칭호, 멸계성은 내가 세계를 멸망시킬 예정이기 때문이 아니라 세계를 멸망시켰던 이였기 때문에 얻게 된 칭호라는 점.’
그렇다면 적어도 이제부터 그가 살아가 이 세계를 자신이 스스로 또다시 멸망시킬 것이라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떠올리는 것이었다.
‘……아니,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야. 확실히 내가 세계를 멸망시켰기에 주어진 칭호라는 것은 확실해졌어. 하지만 그게 내가 세계를 멸망시킬 예정인 인간이 아니라는 근거가 되지는 않아.’
물론 한 번 세계를 멸망시켰다고 또다시 세계를 멸망시킬 것이라는 추측 역시 섣불렀다. 당장 공선자에게는 그 정도의 힘이 없었다.
때문에 확률적으로 생각해도 한없이 0에 가까운 확률일 터.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0%는 아니었다.
그러나 본래라면 한없이 0%에 가까운 이상 심각하게 경계할 요소는 아닐 터. 불가능하다, 라고 단정하는 것은 안이한 판단이었지만 그렇다고 너무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도 바보 같은 이야기였다.
혹시 모르니 자신이 할 수 있는 대비는 해둔다. 허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여유가 있을 때의 이야기.
당장 눈앞의 일을 해결하기도 벅찬데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거의 불가능한 것에 가까운 확률의 일까지 대비한다는 것은 준비가 철저한 것이 아닌, 단순한 바보였다.
자신의 역량을 제대로 파악할 줄도 모르는 바보. 그러니 설령 걱정된다고 해도 정확하게 자신의 역량을 측정하고 우선 자신의 역량으로 할 수 있는 수준에서 최대한의 대비에 집중하는 것이 현명한 처세하는 소리.
그렇기에 본래라면 아무리 걱정된다고 해도 자신이 세계를 멸망시킬 것이라는 가능성에 그렇게까지 신경 쓰는 것은 단순한 정신력 낭비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선자는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럴 것이 그 한없이 0%에 수렴하는 가능성을 뚫고 그는 결국 세계를 멸망시킨 장본인이었으니까.
즉, 그는 스스로 이미 한 번 증명을 해버린 것이었다.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이라고 해도 기적이 몇 번이고 겹치면 가능해진다는 사실.
그리고 한 번 벌어진 일은 두 번 벌어질 수도 있는 것. 그렇기에 그는 도저히 자신이 ‘또다시’ 세계를 멸망시킬지 모른다는 가능성을 단순한 가능성으로 치부할 수 없는 것이었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 자체가 멸망으로 치닫는 원인이 될 수도 있으니깐 말이야.’
허나, 그렇다고 해서 죽어줄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이미 공선자의 목숨은 단순히 그 한 명의 목숨이 아니었다.
자신을 위해서 짓밟았던, 그리고 자신을 위해서 희생했던 이들의 모든 것을 짊어지고 있는 목숨이었다. 이제는 그저 지쳤다는 이유만으로는 도저히 죽을 수가 없어진 것이다.
그에게 삶이란 이제는 책무였다. 도망치고 싶어도 도저히 도망칠 수 없는 책무. 그러니 지금으로서 공선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저 자신으로 인해서 또다시 세계가 멸망한다는 그런 어처구니없는 가능성만은 부디 실현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으니까.
‘……그럼 이제 남은 것 스킬 시스템에 대한 파악뿐이군.’
그 외에 다른 시스템들 역시 파악해두어야 하는 것은 매한가지기는 했다. 허나, 공선자는 고민 끝에 일단 스킬 시스템까지만 파악하고 우선은 움직이기로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일단 로그 시스템을 살펴보며 어떤 시스템이 존재하나 대충 살펴본 결과 일단 굳이 도움말로 확인하지 않아도 이름과 시스템 창의 형태만으로 어떤 시스템들인지 파악할 수 있는 녀석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
물론 그렇다고 해도 도움말 창을 통해서 상세 정보를 파악하지 않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공선자의 추측이 정확하게 전부 맞아떨어지는 것도 아니지 않을 것 아닌가? 그러니 그가 예측하지 못했던 모종의 정보가 존재해, 그 정보를 모르는 것이 훗날 치명적으로 적용할 가능성을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소리.
그럼에도 일단 다른 시스템들을 자세하게 살피는 것은 뒤로 미루고 뜻은 알겠지만 그럼에도 그 형태를 상상하기 힘든 스킬 시스템만 파악하고 방 밖으로 나가 상황을 파악하려고 하는 것은 효율을 따졌기 때문이었다.
스테이터스 시스템과 스킬 시스템과 다르게 다른 시스템들은 ‘짧은 시간 안에 파악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현재의 공선자는 판단을 내린 것.
그 이유는 간단했다. 스테이터스 시스템과 스킬 시스템은 대충 보아하니 하위 항목이 장난 아니게 많았다.
당장 스테이터스 시스템만 해도 진명이니 레벨이니 직업이니 하는 각종 항목들이 존재했으며 이 항목에 대한 자세한 설명들이 존재했던 것.
……그리고 스킬도 마찬가지였다. 스킬 종류를 비롯해서 스킬의 등급이나 희귀도 등등. 로그 시스템의 확인을 끝낸 뒤 잠깐 도움말을 켜보는 것만으로도 그야말로 수많은 하위 항목 즐비한 것이었다.
하지만 다른 시스템들은 달랐다. 하위 항목이라고 말한 만한 요소가 없었던 것. 굳이 있다고 한다면 상점 시스템 정도였는데 이것은 하위 항목이라기보다는 상점에서 파는 물건의 분야가 더 많은 것이었다.
시스템 자체의 역할은 무엇인가를 파는 요소 밖에 지니고 있지 않은 것. 그 외에는 상점의 화폐에 관한 설명 정도?
그러니 굳이 당장 시간을 들여서 살펴볼 필요성은 거의 없었다. 애초에 당장 상점에서 요구되는 화폐가 존재하지 않아 뭘 사지도 못하니 말이다.
물론 아예 살펴보지 않을 생각인 것은 다시금 이야기하지만 아니었다. 단지, 스킬 시스템을 확인한 뒤 방 밖으로 나가 밖의 상황을 확인하면서 시간이 날 때마다 해당 시스템들에 파악해도 문제는 없을 것 같다, 라고 공선자는 판단을 내린 것이었다.
‘스테이터스나 스킬 시스템이라면 모를까 다른 시스템들은 파악하는데 몇 분도 안 걸릴 것 같으니…….’
밖의 상황을 확인해보니 쉴 새 없이 움직여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해도 나머지 시스템을 파악할 찰나의 여유 정도는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뭐, 사실대로 이야기하자면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이쪽 세계에 대해서 조사하고 싶다는 게 가장 큰 이유지만 말이야.’
지금 공선자가 되살아난 세계는 그가 살던 세계가 아니다. 믿기 힘들지만 결코 부정할 수 없는 현실.
그리고 다른 세계이기에 그가 살던 세계와 상식도, 문화도, 문명도 다른 세계인 것이다. 그런 만큼 공선자는 이쪽 세계에 대한 정보를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공선자에게 상식이었던 것이 이쪽 세계에서는 상식이 아닐 수도 있었다. 그리고 역으로 이쪽에서는 상식이었던 것이 공선자에게는 상식이 아닐 수도 있었다.
그래, 마치 마법이라는 것의 존재처럼. 그렇기에 공선자는 자신이 각인 받은 에볼루션 시스템 이상으로 이쪽 세계에 대한 정보 역시 원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쪽 세계의 정보를 알게 된다면 어째서 이쪽 세계가 멸망하게 될지 예측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이쪽 세계의 정보를 알게 되면 자신이 이쪽 세계에서 소생하게 된 이유를 알게 될지도 모른다.
이쪽 세계의 정보를 알게 되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결정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에볼루션 시스템의 파악이 현재 자신의 가지고 있는 패에 대한, 살아남기 위한 수단의 파악에 해당한다면 이쪽 세계에 대한 파악은 앞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상대해야 할 각종 요소에 대한, 그리고 살아가기 위한 수단의 파악에 해당했다.
어느 쪽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었다. 에볼루션 시스템에 대한 정보도, 이쪽 세계에 대한 정보도 갖춰져야 공선자는 살아남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이쪽 세계의 정보를 우선시 한 결과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패에 대한 파악이 어설퍼서는 안 되겠지만…….’
그렇기에 고민되었다. 역시 이 방 안에서 확실하게 에볼루션 시스템에 대해서 파악하고 움직일 것인지, 아니면 과감하게 행동을 해야 할지 말이다.
……그러나 그런 공선자의 고민도 직후, 그가 스트림 시스템 창에 떠올라 있는 스트림, 퀘스트에 가까운 개념의, 에볼루션 시스템이 내려주는 의뢰를 확인하는 순간 결정되었다.
‘레벨 10을 달성해서 직업을 습득해라.’
공선자가 스트림 창을 확인한 것은 별다른 이유가 없었다. 스킬 시스템을 확인하기 전에 혹시 스테이터스 시스템과 스킬 시스템처럼 하위 항목이 많이 존재하는 시스템이 더 있는 게 아닌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렇게 이것저것을 확인하던 중 공선자는 스트림 시스템에 존재하는 갱신된 메인 스트림을 확인하게 된 것.
공선자가 확인한 바로는 이 스트림이라는 것은 챌린저가 행동할 방향을 알려주는 요소이기도 했다.
……특히 메인 스트림에 대한 도움말을 확인해보면 메인 스트림이란 ‘예정된 멸망을 회피하기 위한 최적의 경로를 알려주는 형태의 퀘스트(의뢰)’라는 모양.
꼭 억지로 클리어할 필요는 없었다. 허나, 클리어하게 된다면 보상이 존재했다. 그리고 동시에 메인 스트림의 경우에는 클리어하지 못한다면 결국 언제가 ‘피할 수 없는 멸망과 마주하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챌린저들도 이 메인 스트림에 대한 설정을 확인했을 거야. 그렇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