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화 〉제 01계-챕터 01: 에볼루션 시스템
그 점에서 분명히 스킬 시스템이 이야기하는 권능과 일맥상통 하는 부분이 있었다. 그러니 공선자가 알고 있는 초능력이라는 개념 자체가 권능이라고 봐도 무방할 터.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선자는 초능력에 대해서, 권능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가 알고 있는 것은 그저 희귀한 확률로 사람이 지니게 되는, 과학적으로 해명이 불가능한 재능이라는 것뿐.
그 재능을 갖게 되는 기준도, 원인도 알 수가 없었다. 그저 확률인가? 어쩌면 정말로 그저 확률일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런 확신을 갖게 만드는 요소를 공선자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다시금 이야기하지만 공선자는 결국 권능이란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하고 있고 말이다.
그가 알고 있는 것은 단 한 가지, 그저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힘을 발휘하게 해주는 재능이라는 것뿐이었다.
‘권능이 정확히 무엇인지 확실하게 파악할 수 없는 이상 권능의 일종이라는 에볼루션 시스템이 근본을 확인하는 것은 무리인가.’
에볼루션 시스템의 근본을 파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뭐가 되었던지 결국 에볼루션 시스템은 타인에게서 억지로 떠넘겨지게 된 능력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갖게 되었던 시안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고 해야 할까? 같은 권능이기도 하다는 모양이고.
그리고 그렇기에 공선자는 이 에볼루션 시스템에 대한 의구심을 완전히 접을 수가 없었다.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주어진 힘.
이것이 어떻게 사람의 인생을 크게 뒤틀 수 있는지는 그 누구보다 공선자 자신이 잘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결국 알아낸 것이라고는 에볼루션 시스템이 권능이라는 영역에 속하는 능력이라는 사실. 그리고 본래 시안도 같은 권능이었지만 내가 에볼루션 시스템을 각인 받으며 그 자리에서 밀려나 각성 스킬이라고 불리는 모조권능으로 격하되었다는 것.’
시안뿐만 아니라 공선자가 알고 있는 다른 초능력자들이 지닌 초능력 역시 그 소유자가 챌린저가 된다면 지금의 공선자처럼 각성 스킬로서 해당 초능력을 지니게 될 확률이 높았다.
‘각성 스킬이란 원래 권능이라 불리던, 에볼루션 시스템과 다를 게 없는 개념. 그렇기에 다른 재능들은 철저하게 배제한 에볼루션 시스템조차 본래 그 자치를 차지하고 있던 재능인 권능은 완전히 무시할 수 없었다는 걸까?’
그 결과 본래 그 사람이 지니고 있어야 했을 권능이 각성 스킬로서 격하되어 취급되었다. 어쩌면 공선자의 예상과 다르게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일지도 몰랐다.
‘다른 이유가 있었든 없었든 이제는 어느 쪽이든 상관없나. 중요한 건 지금 내가 지닌 각성 스킬이 시안과 일야몽이라는 사실. 그리고 각성 스킬이 결국 무엇이었는지 알게 되었다는 점이야.’
권능이 무엇인지, 그리고 모조권능이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무슨 원리로 고작 개인이 과학적으로 설명 불가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기는 매한가지였으니까.
허나, 적어도 지금 공선자의 눈앞에 그 미지의 힘들이 권능과 모조권능이라는 이름으로 실재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적어도 받아들이는 것 정도는 가능할 터. 이해는 나중에 기회가 생긴다면 그때 가서 해도 늦지 않았다.
애초에 당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려고 발버둥치는 쪽이 시간 낭비일 테니까. 그러니 지금은 당장 그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기로 하는 것.
‘……그런데 시안은 어찌어찌 이해하겠어. 즉, 내가 본래 가지고 있던 권능이었기에 현재는 각성 스킬이 되었다는 거잖아? 하지만 그렇다면 이 일야몽이라는 스킬은 결국 뭔데?’
권능이 무엇인지, 모조권능이 무엇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모종의 힘이라고만 이해하고 당장은 넘어가는 공선자.
자신이 다루는 힘에 대한 이해가 너무 낮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지만 누차 이야기하지만 당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은 시간 낭비였다.
그렇기에 일단은 각 힘에 대한 정식 명칭을 알게 된 것만으로 만족했다. 허나, 그렇게 된다고 해도 역시나 완전히 의문이 해소되는 것은 아닌 것.
권능이란 무엇인가, 모조권능이란 무엇인가, 라는 의문을 제외하고도 공선자에게는 새로운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다름 아닌 또 하나의 각성 스킬, 일야몽의 정체에 대해서였다.
‘시안과 다르게 난 일야몽이라는 이름의 능력을 지니고 있었던 적이 없어.’
……각성 스킬이란 처음부터 지니고 있거나 아니면 스킬 포인트를 지불하여 습득하는 것이 습득 방법의 전부였다.
그리고 여기서 처음부터 지니고 있는 계열의 각성 스킬들은 앞서 이야기했던 본래 그 사람이 지니고 있거나, 각성할 가능성이 있었던 ‘권능’이라는 녀석이었다.
공선자는 그 권능으로서 ‘시안’을, 초능력이라 불리던 힘을 지니고 있었던 것. 그것이 지금 각성 스킬로 변화한 것.
……하지만 그가 지니고 있었던 것은 어디까지나 시안뿐이었다. 일야몽이라는 이름의 초능력을 공선자는 지니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시안의 경우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분명 처음부터 지니고 있는 각성 스킬들은 본래 그 사람이 지니고 있었을 초능력(권능)일 터.
그렇다면 공선자는 자신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을 뿐 사실은 일야몽이라는 초능력을 하나 더 지니고 있었다는 이야기인가?
‘아니, 그건 아니야. 내가 알기로 한 사람당 지닐 수 있는 초능력은 단 1개뿐이야. 그리고 그렇기에 에볼루션 시스템이라는 이름의 권능, 내가 초능력이라고 알고 있는 개념의 힘을 지니게 되며 본래 지니고 있던 권능이 밀려난 것이겠지.’
2가지 초능력, 권능을 지닐 수 있었다면 굳이 시안이 각성 스킬이라는 이름의 모조권능으로 밀려날 이유가 없었을 터.
그러니 일야몽이 본래 공선자가 지니고 있던 초능력이라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말했다시피 그가 알기로 초능력은 한 사람당 오로지 1개밖에 지닐 수 없었으니까.
여러 개의 초능력을 지니고 있던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아예 없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 사람들은 매우 희귀한 취급을 받던 초능력자들 중에서도 특히 귀중한 취급을 받던 이들이었다.
하지만 공선자는 그런 그들과 적대해본 결과 그것이 어디까지만 ‘여러 개처럼 보이는 1가지 능력’이라는 사실을 경험해본 바가 있었다.
예를 들자면 공간을 이동하고 염동력처럼 보이는 능력을 갖추고 있던 초능력자는 ‘공간이동’과 ‘염동력’이라는 2가지 능력을 가지고 있던 것이 아닌 어디까지나 ‘공간을 다루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에 불과했다.
이 공간을 다루는 능력을 이용해 공간을 이동하고 공간에 간섭하여 공간이동과 염동력이라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보였을 뿐.
이 외에도 불과 얼음을 다루던 초능력자는 ‘불’과 ‘얼음’이라는 능력을 각각 따로 지닌 것이 아닌 ‘열에너지’를 다룬다는 단 1가지 능력만을 가지고 있었다는 이야기.
타인의 초능력을 복제하여 여러 개의 초능력을 다루어냈던 이도 근본은 결국 타인의 능력을 ‘복제’한다는 단 1개의 능력이었고 말이다.
그렇기에 공선자가 알기로 2가지의 완전히 다른 개념에 속하는 초능력을 다루어내는 이들은 본 적이 없었다.
때문에 그는 본능적으로 초능력, 즉, 권능은 한 사람당 하나밖에 가질 수 없다고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기에 에볼루션 시스템을 각인 받으며 자신이 원래 지니고 있던 초능력(권능)인 시안이 밀려난 것이라고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었고 말이다.
……그러니 공선자에게 숨겨졌던 또 다른 초능력(권능)이 있었다는 것은 말이 되질 않았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일야몽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건가? 원래는 극히 드물지만 한 사람이 여러 개의 초능력, 권능을 가지는 게 가능했던 건가?’
세상에는 무엇이든지 예외가 있는 법. 그렇기에 공선자는 자신의 그 예외 중 하나인가? 하는 추측을 해봤다.
허나, 그렇게 예외를 만들어서야 끝이 없었다. 그 어떤 말도 안 되는 상황도 죄다 예외로서 구분한다면 말이 되는 상황이 되어버리니 말이다.
‘그러니 일단 예외일 경우는 배제한다. 물론 어째서 한 사람당 권능이라는 게 1개밖에 지닐 수 없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하고 예외를 배제하는 건 섣부른 것 같기는 하지만…….’
공선자가 알고 있는 초능력자들은 생각한다면 확률적으로는 그렇게까지 어리석은 판단은 아니었다.
거기에 한 사람이 지닐 수 있는 권능이 1개뿐이라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는 것은 한 사람당 지닐 수 있는 권능이 여러 개일 수 있는 이유 역시 알지 못한다는 것과 마찬가지인 이야기. 그러니 지금은 확률적인 통계를 근거로 판단을 내려도 문제는 없을 터.
‘……아니, 이것저것 전부 때어놓고 생각해도 일야몽이라는 스킬에 관해서는 역시나 짚이는 점이 없어.’
설령 공선자의 예측이 틀려 한 사람당 지닐 수 있는 초능력이 여러 개였다고 해도 그에 따른 전조 같은 것이 있어야 했을 터였다.
허나, 공선자에게는 그런 게 없었다. 이 일야몽이라는 각성 스킬은 말 그대로 너무나도 뜬금없이 등장했으면서 지금은 시안 이상으로 공선자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었다.
‘……이 부분은 각성 스킬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본다면 알 수 있을지도 모르지.’
일단 당장 공선자가 알게 된 것은 각성 스킬이라는 것의 기원뿐이었다. 그를 통해서 권능이라는 개념의 존재도 알게 되었지만 어디까지나 존재만 알게 되었을 뿐 그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 권능이, 그리고 모조권능인 스킬에 속하는 각성 스킬, 아니, 각성 스킬뿐 아니라 모조권능이라 불리는 스킬이라는 개념 그 자체를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일단은 스킬 시스템에 대한 설명에 집중할 필요성이 있었다.
‘일단 남은 부분을 보자면……. 각성 스킬의 경우에는 단순히 스킬 포인트만을 소모해서 익힐 수 있는 게 아닌 모양이군. 각성 스킬을 익히기 위한 습득 전제 조건이 존재하며 이 전제 조건을 달성해야지 각성 스킬을 아무런 영향 없이 습득할 수 있다……. 즉, 다르게 이야기하자면 전제 조건을 달성하지 않아도 영향을 각오하면 각성 스킬을 습득하지 못할 것도 없다는 이야기로군.’
그리고 이 영향이라는 녀석은 페널티라는 형태로서 각성 스킬을 습득한 이들에게 그 영향을 끼친다는 모양.
페널티의 형태는 각성 스킬에 따라 다르며 페널티가 별것 아닌 각성 스킬도 있는 반명 페널티가 도저히 무시하지 못할 수준일 때도 있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페널티의 영향으로 각성 스킬을 습득하는 것만으로도 자멸해버리는 수준일 때도 존재하는 것.
이 외에도 습득 전제 조건과 상관없이 그저 각성 스킬을 습득하는 것만으로도 반드시 받게 되는 영향에 해당하는 습득 영향이 존재했다.
‘각성 스킬은 본래 권능이었기 때문에 습득에 따라 심상 그 자체에 영향을 미친다……? 심상이라는 게 뭔데?’
또 다시 이해할 수 없는 고유명사가 튀어나왔다. 거기에 이번에는 이 고유명사에 대한 설명조차 없어 그저 공선자가 자신이 가진 정보로 추측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일단 직역을 하면 마음의 형태라는 건데……, 정신과 뭔가 큰 관련이 있다는 사실밖에 모르겠군.’
때문에 공선자는 일단 각성 스킬이라는 게 다른 스킬들과 다르게 습득만으로 정신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계열의 스킬로 이해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기에 습득 전제 조건을 충족하지 않으면 페널티라는 것을 받고, 설령 습득 전제 조건을 만족해도 습득 영향에서는 벗어날 수 없는 종류의 스킬이라는 사실 역시 파악해두는 것이었고 말이다.
‘습득 제한 숫자 같은 게 없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스킬들처럼 무분별하게 익힐 수 있는 계열의 스킬인 것도 아닌가.’
다른 스킬들은 익힌다고 해서 페널티를 받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스킬 포인트만 무한하다면 익힐 수 있는 대로 익혀도 별문제가 없는 것.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있지만 적어도 이것은 스킬에 적용되지 않았다. 스킬을 많이 익히면 익힐수록 ‘만능’에 가까워져 갔으니 말이다. 그러니 이 경우에는 과유불급이 아닌 다다익선이라고 말하는 게 올바를 터.
허나, 각성 스킬의 경우에는 과유불급이었다. 무분별하게 익히면 잘못하다가는 페널티가 습득 영향으로 자멸하는 경우도 존재하는 것.
‘하지만 난 이미 시안과 일야몽을 습득해버린 상태지만 말이야.’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마치 운명이라는 것처럼 따라붙어 왔다. 시안이야 이제는 그러려니 하고 포기하는 수준이었다.
허나, 설마하니 시안 외에도 자신에게 끈덕지게 달라붙는 녀석이 또 하나 있었을 줄은 상상도 못하고 있었다.
‘……일단 이걸로 스킬의 종류, 성질, 분류에 대한 설명은 끝인가. 전부 알게 된 것은 아니었지만 당장 스킬을 습득하고 써먹는 것에는 문제없을 정도의 정보는 얻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