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화 〉제 01계-챕터 01: 에볼루션 시스템
당장 시안에도 습득 영향이 존재했다. 시안을 사용할 때마다 동공에 시곗바늘이 비치게 되며 정신력이 바닥을 찍게 되면 관측하고 싶지 않은 미래를 관측하게 된다는 습득 영향이 말이다.
‘그로 인하여 관측한 미래를 확정시켜 피할 수 없는 미래를 마주하게 된다는 건가. ……그렇다면 역시 방금 전에 봤던 광경은 예지몽인가.’
이것은 희소식이며 동시에 나쁜 소식이기도 했다. 여태까지는 정확하게 그 원인을 알 수 없고 그저 유추만 가능했던 미래시의 발동 조건을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는 것이 희소식.
동시에 방금 전에 보았던, 자신의 몸이 빛으로 화하는 것으로 보이는 광경이 이제는 부정할 수도 없이 피할 수 없는 미래라는 사실이 확정되었다는 것이 나쁜 소식이었다.
‘아니, 예지몽에 대해서는 지금 생각해도 어쩔 수 없어. 그보다는 남은 스킬들을 확인하는 것에 집중하자. ……거울은 없나?’
그 외에도 크게 신경 쓸 것은 없지만 시안을 사용하면 두 눈에 시곗바늘이 떠오른다는 습득 영향에 공선자가 한번 확인해보고자 하는 생각에 거울을 찾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쪽 세계에서는 거울이 귀중한 것인지, 아니면 이 여관은 거울을 가져다가 놓을 정도로 비싼 여관이 아닌 것인지, 어느 쪽인지는 모르겠지만 거울을 찾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일단은 자신의 눈동자를 확인하는 것은 포기하기로 한 공선자. 생각해보니 당장은 오라도 바닥이 나서 시안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이기도 했다.
‘지금은 일단 시안을 사용하면 상대에게 그 사실을 드러날 수 있다는 점만 알아둘까. 내가 각성 스킬로 시안을 가지고 있는 이상 상점 창에서 시안을 습득할 수 있을 터. 그렇다면 챌린저들이 시안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아.’
습득에 의한 페널티를 무시하고 습득할 수도 있고, 단순히 시안에 대한 정보만 확인해봤을 수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챌린저의 경우 시안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그에 맞춰 대응해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두는 것.
거기에 설령 챌린저가 아니라고 해도 공선자의 눈에 생긴 변화를 확인하면 경계를 해오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 시안을 발동시킨다는 건 시안의 다른 응용스킬들을 사용할 때도 포함되는 건가?’
시안에서 파생된 응용스킬들. 시안의 설명을 보니 시안은 처음부터 3개의 응용스킬을 갖게 되는 모양.
각각 과거시, 고유시, 미래시가 그것으로 이 3가지 스킬들은 시안을 응용하는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이었다.
이 3가지 스킬들 역시 전부 액션 패시브로 분류되었는데 이미 시안을 사용할 줄 아는 공선자가 보기에는 그전에도 그가 시안을 통해서 사용했던 기술들이 보다 객관적으로 스킬로 변화된 것으로 보였다.
요컨대 고유시의 경우에는 공선자가 챌린저가 되기 전에도 자주 사용했던, 수명을 대가로 자신의 움직임을 일시적으로 가속하는 능력이었고, 과거시는 사이코메트리와 비슷한 능력이었다.
미래시의 경우에는 종류가 조금 다양했지만 대표적으로 방금 전에 막 공선자가 꾸었던 예지몽을 들 수 있었다.
이것들 모두 결국에는 시안을 통해서 발현되는 능력들이었으며, 공선자가 챌린저가 되어 시안이 모조권능이라고도 불리는 스킬로 변화하여 이렇게 과거시, 고유시, 미래시라는 구체적인 파생 스킬을 얻기 전부터 써오던 스킬들이라는 이야기.
즉, 다시 말해서 3가지 스킬로 나누어지기는 했어도 결국 과거시, 고유시, 미래시는 전부 시안에 속하는 스킬들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니 이 3가지 스킬들을 사용할 때도 시안을 사용할 때처럼 눈에 시곗바늘이 떠오를지가 의문이었는데…….
‘아마 떠오르겠지. 직접 써보지 않는 이상 확신을 가질 수는 없지만 형편 좋게 안 떠오를 것 같지는 않으니 말이야.’
에이전트, 좋게 말하면 에이전트지 결국에는 암살자나 다름없었다. 굳이 다른 게 있다면 암살 외에도 잠입이나 첩보 같은 이것저것 다른 임무도 병행했다는 것 정도?
그리고 주로 암살을 해왔던 공선자이기에 잘 알고 있었다. 생사가 걸린 전투에서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그런 이유로 할 수 있으면 최대한 전조를 알 수 없는 쪽이 좋았다. 그래야지 상대에게 대처할 수 있는 틈을 주지 않을 수 있었으니까.
눈에 시곗바늘의 형상이 떠오른다. 사소하기 그지없는 현상이었지만 전조를 알 수 있어 상대가 그에 맞춰 대응을 할 수 있다는 점이 공선자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본래 그가 시안을 사용할 때 이런 현상을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아니, 어쩌면 일어났을지도 몰랐다.
공선자는 시안을 사용할 때마다 자신의 수명을 지불했다. 그런 만큼 시안을 사용하는 동안에는 늘 지불한 수명 이상의 성과를 내기 위해서 바쁘게 움직였던 것.
그러니 거울을 통해서 자신의 눈을 확인할 여유가 있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20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오면서 쭉.
‘하지만 적어도 내가 시안을 사용할 때마다 그렇게 특이한 현상이 일어났다면 여태까지 상대했던 이들 중 누군가가 언급을 했을 만도 하잖아?’
그렇게 생각하던 중 다시 한 번 생각해보니까 여태까지 공선자가 상대해왔던 이들 중 그렇게 친절하게 눈에 시곗바늘이 비친다는 사실을 설명해줄 만한 이들이 없었던 것 같기도 했다.
그야 하나같이 전부 무언 속에서 서로의 목숨을 노리고 싸우던 이들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굳이 공선자의 변화를 언급할 이유가 없는 것.
거기에 목숨을 걸고 싸우는데 그런 잡담을 할 여유가 있을 정도의 상대는 공선자의 길었던 에이전트 생활에서도 몇 안 되었고 말이다.
‘이렇게 따지고 보니까 여태까지 내가 시안을 사용할 때도 시곗바늘이 떠올랐는지 안 떠올랐는지 구분이 안 가잖아?’
만약 떠올랐다면 잘도 인체실험을 당한 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에이전트 일을 해오며 그 사실을 몰랐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이었다.
‘……지금 와서 과거에 내 눈에 시곗바늘이 떠올랐든 안 떠올랐든 더 이상은 중요하지 않아. 이제부터 중요한 건 앞으로 떠오를 것인가 안 떠오를 것인가.’
그리고 높은 확률로 시안을 사용할 때뿐 아니라 시안의 응용기술들을 사용할 때도 떠오를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그에 따른 대비책을 세워두는 편이 좋을 터. 그래, 예를 들자면 또 다른 눈을 매개로 발동하는 스킬을 익혀서 상대가 자신의 눈을 쳐다보면 악영향을 받게 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렇게 한다면 함부로 공선자의 눈을 쳐다볼 수 없으니 그가 시안을 발동시킨다고 해도 그 사실을 눈을 통해서 미리 확인하는 게 어렵지 않겠는가?
‘그건 나중에 스킬을 습득할 때 생각해보기로 하고. 일단 지금은 3가지 파생스킬에 대해서 확인해보도록 할까.’
나중을 생각하기 위해서는 역시 현재에 있는 것을 보다 확실하게 구사할 줄 알아야 하는 법.
그렇기에 공선자는 그를 위해서라도 과거시, 고유시, 미래시에 대한 스킬 설명을 확인해보는 것이었다.
‘과거시는 말 그대로 과거를 보는 눈. 눈을 매개로 과거를 직시하는 능력. 사용하기에 따라서 보고 있는 장소의 과거, 어떤 물건의 과거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공선자가 챌린저가 되기 전에도 몇 번 정도 이용한 적이 있는 능력이었다. 자신이 모르는 타겟의 정보를 확인할 때 상당한 도움이 되었던 것.
‘그 외에도 내가 잊어버리고 있던 과거의 기억을 떠올릴 수도 있지만……. 과거에는 잘 사용하지 않았지.’
공선자도 사람이었기에 무엇인가를 까먹거나 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때 이 과거시를 사용하면 까먹고 있는 것을 기억해낼 수 있는데……, 정작 공선자는 잘 사용하지 않았다.
그야 이 역시 시안의 능력 중 일부인 것이다. 즉, 다시 말해서 사용할 때마다 수명이 줄어든다는 이야기.
그러니 고작 잊어버리고 있던 것을 기억하기 위해서 자신의 수명을 사용할 수는 없지 않은가?
물론 그 잊어버린 것 때문에 큰 사고를 저지를 수도 있었지만 적어도 공선자에 한에서는 그런 경우는 없었다.
애초에 최대한 자신의 지적능력을 활용하는 훈련을 받는 그가 무엇인가 잊어버리는 경우는 잘 없었고 말이다.
‘현재에 와서는 수명 대신 오라를 소모하니 사용하려고 한다면 문제없이 사용할 수 있을 테지만…….’
일단 사용할지 안 할지는 가봐야 알 것 같았다. 굳이 과거시를 사용할 것 없이 다른 스킬들이 그의 기억력을 상시 보조하는 경우도 생길지 모르고 말이다.
솔직히 공선자로서는 후자가 더 괜찮게 느껴졌다. 그야 까먹고 있는 것을 떠올리기 위해서는 자신이 까먹었다는 사실 자체를 상기해야 했다.
그런데 보통 무엇인가를 까먹은 사람이 제때 자신이 무엇인가를 까먹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는가?
그런 만큼 애초에 무엇인가를 까먹지 않도록 상시 자신의 기억을 보조해주는 스킬 쪽이 더 낫다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것.
‘그것도 그런 종류의 스킬을 익힐 경우의 이야기지만 말이야. 구체적으로는 숙련 등급에 1시간을 곱하는 방식으로 해당 시간에 해당하는 만큼의 과거를 확인할 수 있다는 건가.’
예를 들어 과거시의 랭크가 C-랭크일 경우에는 1시간, C랭크일 경우에는 2시간, C+랭크라면 3시간, CX랭크라면 4시간인 식이었다.
동시에 과거시라는 응용스킬은 그 랭크과 시안의 랭크와 동조 되어 자연스럽게 상승하는 방식이었다.
즉, 시안의 랭크가 높아지면 과거시의 랭크 역시 함께 높아진다는 이야기. 그러니 시안의 숙련 등급이 높아지면 과거시로 볼 수 있는 과거의 시간도 점점 길어지는 것이었다.
‘과거시는 이걸로 전부 확인했고. 그럼……. 그다음은 고유시. 이건 간섭 계열로 분류되어 있는 건가.’
시안이 구현 계열인 만큼 파생스킬인 고유시가 간섭 계열인 것도 이상할 수 있지만 시안이 간섭 계열의 기술을 ‘구현’했다, 라고 이야기한다면 아예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을 것 같았다.
스킬 설명에도 각성 스킬의 응용스킬만큼은 각성 스킬에서 파생되는 스킬임에도 각성 스킬의 성질과 상관없이 응용스킬의 원리에 따라 성질을 갖게 된다는 설명도 있었고 말이다.
‘간섭 계열로 분류된 고유시는 자신의 시간에 간섭할 수 있는 능력. 사용자의 역량에 따라서 스스로의 시간, 보다 구체적으로 자신의 공간의 흐름에 간섭하여 자신만의 시간을 가속시키거나 감속시키는 게 가능.’
결과만보자면 자신의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계열의 능력이었다. 공간의 흐름이라는 조금 이해하기 힘든 단어가 나왔지만 요점은 결국 공선자 개인의 움직임을 빠르게 하거나 느리게 하거나 하게 만드는 능력이라는 소리.
사용자의 역량에 따라 그 출력의 수준이 정해진다고 하는데 여기서 역량이란 아마도 해당 스킬의 랭크, 즉, 숙련 등급을 의미할 터.
고유시 역시 과거시처럼 시안의 랭크에 동조되니 시안의 랭크가 높아지면 자연스럽게 고유시를 통해서 조작할 수 있는 자신의 시간에 대한 출력 역시 상승할 터였다.
‘……지구에서는 이 능력을 가장 많이 이용했는데 말이지. 찰나의 판단이 생사를 가르는 전장에서는 무엇보다 강력한 능력이었으니까.’
물론 개인이 도시 하나를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었던 능력을 지닌 초능력자들과 비교하면 상당히 수수한 능력이었다.
그는 혼자서 그 어떤 도구의 힘도 빌리지 않고 도시 하나를 그대로 불태우거나 수장시켜버리는 짓을 할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공선자가 살던 세계는 21세기 지구였다. 도구의 힘을 빌리면 굳이 초능력이 아니라고 해도 비슷한 짓을 충분히 할 수 있었던 세계인 것이다.
당장 공선자가 바이러스라는 도구를 통해서 세계를 멸망으로 몰아넣은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바이러스가 아니라 미사일만 해도 도시 하나 쑥대밭으로 만드는 건 일도 아닐 터. 핵폭탄에 가서는 어디 감히 초능력자 따위가 주제 파악 못하고 나서는 것이냐고 이야기할 수 있을 수준이었다.
‘거기에 사람을 죽이는 것에 굳이 그렇게 거창한 능력은 필요 없지. 총 한 정, 아니, 바늘 하나만 급소에 박아넣으면 사람은 죽어.’
그런 의미에서 공선자가 수명을 대가로 지불하여 사용하던 가속과 감속은 충분히 강력한 능력이었다.
개인이 개인을 상대하는 것에 이만한 능력은 없으니까. 거기에 무엇보다 도구의 힘을 빌린다면 충분히 다수의 병력을 학살하는 것도 가능하며 더 나아가 능력만 있다면 대량 학살을 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에이전트로서 훈련받은 공선자는 경우에 따라서는 잠입과 같은 수단을 통해서 미사일 통제 시스템 같은 것을 크래킹할 수도 있었으니까. 물론 공선자 혼자서는 불가능하고 국가의 백업이 있을 경우의 이야기였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