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화 〉제 01계-챕터 02: 의도치 않은 인연
유흥 구역처럼 밤에도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구역이라면 모를까 딱 봐도 공선자 외에는 사람이 없는 이런 길가에서 순찰을 도는 사람들과 마주치면 단숨에 수상한 사람 취급을 받을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골목길을 순찰하는 이들을 확인한 뒤 공선자는 더욱 조심스럽게 인기척을 피해 다니며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건 그렇고 그 사람들, 자기들을 치안수호대라고 했는데 이 도시의 치안을 유지하는 집단인가? 말하는 걸 들어보니 이 도시의 영주의 사병인 것 같은데…….’
동시에 자신이 방금 전 엿들었던 정보를 통해서 몇 가지 정보들을 추려내는 작업 역시 병행하였다.
‘영주가 있다는 걸 보면 지금 내가 있는 나라의 정치 체계는 흔한 중세의 귀족과 왕이 존재하는 군주제인가.’
역시라고 해야 할지 중세 시대, 보다 구체적으로는 마법 덕분에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시기에 가까운 문명 수준인 만큼 그 시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군주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인 것 같았다.
‘그 외에도 마법사니, 유저니, 마나니 하는 단어들이 있었는데 마나라는 건 마법사들이 사용하는, 지금 내가 가지 오라라 비슷한 힘을 테고 유저는…….’
방금 전 그 수호대니 하는 사람들이 자기들도 어떻게 보면 유저니 하는 것을 들어보면 아마도 무기를 사용해서 이능을 발휘하는 계열의 사람들을 그렇게 부르는 모양이었다.
유저들도 마법사들처럼 마나를 사용한다는 것을 보면 말이다. 즉, 역시 지금 자신이 있는 세계는 마법뿐 아니라 검과 같은 무기를 통해서 이능을 발휘할 수 있는, 중세풍의 검과 마법 판타지 세계라고 생각하는 게 정확할 것 같았다.
‘검과 마법인가……. 나도 사용할 수 있을까?’
그런 사실을 유추해낸 순간 공선자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스산하게 빛나는 것이었다. 검과 마법. ……요컨대 ‘일인’ 무력이 한계를 초월하게 해주는 요소.
초능력자로서 에이전트로서 활동하던 공선자는 절실하게 알고 있었다. 인간 개인이 강해질 수 있는 한계가 얼마나 낮은지를.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리 각종 수단을 동원해도 결국 개인이 물리적으로 손에 넣을 수 있는 능력에는 한계가 존재했다.
심지어 다른 이들을 휘두를 수 없는 힘을 휘두를 수 있었던 초능력자들조차도 다른 이들과 비교했을 때보다 훨씬 그 한계가 높을 뿐 한계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홀로 도시 하나를 불태울 정도의 능력을 지녔던 자조차도 ‘그 도시 하나’가 한계였다. 심지어 그를 위해서는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 했으니 말 다했다.
……허나, 검과 마법은 달랐다. 아직 정확하게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공선자가 소설이나 다른 매체를 통해서 알고 있는 검과 마법이라는 이능은 적어도 홀로 일인군단, 그 이상이 될 수 있는 무엇인가였다.
‘심지어 죽었던 날 되살리고 다른 세계로 보낼 정도의 존재가 존재해. 그런 존재조차 실존하는 현재, 검과 마법으로 일인의 무력이 내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으로 상승하는 것도 불가능한 건 아니야.’
물론 공선자는 이쪽 세계에 존재하는 검과 마법을 알지 못했다. 그러니 정말로 그것들이 자신이 알고 있는 초능력보다 더욱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게 해주는 것인지도 알 수 없었고 말이다.
허나, 적어도 희망이 생겼다. 개인이 단체를 뛰어넘을 수도 있다는 희망이. 늘 단체로 인해서 개인의 자유를 빼앗겨 왔던 공선자였다.
그런 공선자이기에 더 이상 단체에 굴복하지 않아도 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에 자신도 모르게 두 눈을 빛냈던 것.
‘거기에 이쪽 세계는 멸망이 예정되어 있다고 했어. 그렇다면 그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개인이 강해져서 나쁠 건 없어.’
그러니 수호대가 말했던, 마법사와 유저라는 것이 될 수 있으면 되고 싶었다. 허나, 당장 공선자에게 필요한 것은 유저와 마법사가 되는 것이 아닌 이쪽 세계에 대한 정보.
‘거기에 나한테는 에볼루션 시스템이 있어. 굳이 마법사 같은 게 되지 않아도 일단은 강해질 수단이 존재하지.’
또 어쩌면 에볼루션 시스템을 통해서 강해지다 보면 그를 통해서 마법사니 유저니 하는 게 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러니 공선자는 일단 그런 존재들이 있다는 사실만 기억해둔 뒤 다시금 자신의 목적지, 모험가 길드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말했다시피 애초에 여관에서 그렇게 먼 장소가 아니었기에 머지않아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공선자는 조금 놀란 표정으로 자신이 도착한 길드 회관을 올려다보는 것.
……일단 당장은 생각나는 곳이 없어서 모험가 길드 회관을 찾아온 공선자이기는 했다. 허나, 그렇다고 해도 모험가 길드가 이런 한밤중까지 운영 중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정말로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일단 모험가 길드를 찾아온 것이었는데……, 놀랍게도 공선자의 예상과 다르게 모험가 길드는 아직까지도 운영 중이었다.
‘몇몇 층은 불빛이 들어오지 않고 있지만 1층은 확실하게 불빛이 켜져 있어. 문도 안 잠겨 있는 것 같고.’
당장은 무슨 원리인지 알 수 없는 등에서 뿌려지는 불빛이 길드 회관 밖까지 은은하게 비추고 있는 그 모습에 공선자가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이었다.
기대는 하고 있지 않았기에 당장 이 장소로 오면서 길드 회관이 닫혀 있으면 그다음에는 어디로 가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던 공선자였다.
허나, 이 장소에 도착할 때까지 마땅히 생각나는 장소가 없었다. 도서관 같은 장소는 당연히 이런 밤이라면 문을 닫았을 것이다.
거기에 아까 전에 숙박 시설의 주인으로 보이는 노인이 설명해준 것에 따르면 공선자가 살던 세계와 다르게 이쪽 세계에서 종이는 꽤나 비싼 물품에 속한다고 했다.
마법이 있기에 그가 알고 있는 중세 수준은 아니지만 적어도 현대보다 몇 배는 비싼 물건인 것.
그런 만큼 그런 종이들로 만들어진 책들을 보관하는 도서관 역시 상당히 철저하게 관리되고 있을 터.
무엇보다 도서관에서 보관하고 있는 책들은 일종에 정보의 집합이었다. 그리고 문명에 따라서 정보라는 것은 현대 이상으로 귀중한 취급을 받았고 말이다.
그렇기에 공선자가 알고 있는 중세 시대에서는 경우에 따라서 평민은 애초에 도서관 같은 장소에는 들어갈 수조차 없는 경우도 존재했다.
그러니 아침이라고 해도 과연 자신이 도서관에 들어갈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던 상황. 그런데 하물며 밤인데 가당키나 하겠는가?
그렇기에 도서관 같은 장소는 애초에 제외. 그렇다면 사람들을 통해서 직접 알아보거나 혹은 신문 같은 게 존재한다면 그쪽으로 알아보는 것도 방법인데…….
밤에 그런 것이 가능할 리가 없지 않은가? 그렇기에 공선자는 고민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머리를 굴러보아도 이런 한밤중에 그가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던 것.
아이러니하게도 무슨 방법이 없을까 떠올리기에는 이쪽 세계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다. 이쪽 세계가 어떤 세계인지 알기 위한 방식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이쪽 세계가 어떤 세계인지 알고 있어야 한다는, 말했던 것처럼 아이러니한 상황인 것.
아침이라면 모를까 밤이기에 더욱더 곤란한 상황이었던 것인데……, 설마하니 공선자는 그다지 기대도 하지 않았던 모험가 길드의 회관이 아직까지도 영업 중일 줄은 생각도 못 했다.
‘……모험가라는 직업. 밤에도 운영해야 할 정도의 극한 직업인 건가?’
모험가라는, 정확하게 무슨 일을 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공선자가 알고 있는 판타지 상식에 대입하자면 대충 칼밥 먹고 사는 것으로 추정되는 직업은 공선자가 상상하던 것보다 극한 직업인 것 같았다.
그야 모험가들이 이용하는 모험가 길드 회관이 24시간 운영한다는 것은 그러할 ‘필요성’이 있어서라는 이야기.
즉, 모험가들이 그만큼 길드를 밤낮 가리지 않고 찾아온다는 것 아닌가? 그리고 공선자는 현재 모험가였다.
자신이 의도한 것이 아니라고 해도 일단 아무것도 모른 채로 이쪽 세계에 떨어진 만큼 거부할 수도 없었고 말이다.
그러니 아무것도 없고 아무것도 모른다고 해도 현재 공선자는 모험가였다. 그리고 그것은 다르게 이야기하자면 이제부터 공선자는 이 모험가라는 직업을 최대한 이용해야 한다는 소리.
그야 의도하지는 않았다고 해도 당장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없는 공선자에게 ‘공짜’로 주어진 혜택인 만큼 최대한 이용할 수 있을 만큼 이용해야 하는 것.
……그런데 그렇게 이용해야 할 직업이 자신이 상상하던 것보다 극한 직업으로 추정되니 솔직하게 말해서 인상이 구겨지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차라리 모험가를 하지 말까? 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모험가를 안 하면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다른 일을 찾으려고 해도 일단은 이쪽 세계에 대해서 뭐 쫌 알고 어느 정도 능력을 키운 뒤의 이야기였다.
그러니 결국 당장은 그냥 주어진 혜택인 모험가로서 열심히 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인데 설마 24시간 연중근무를 해야 하는 직업일 줄이야!
‘아니, 아직 그렇게 정해진 건 아니야. 그냥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이유가 있는 걸지도 모르잖아? 거기에 뭐가 되었던지 당장 지금의 상황은 나한테는 호기야. 그러니 이용한다.’
그렇게 생각한 공선자는 일단은 꽤 좋게 흘러가는 이 상황을 이용하기 위해서 문을 밀고 길드 회관 내부로 진입하는 것이었다.
“……엉? 이런 시간에 무슨 용건이냐, 꼬맹이? 꽤 특이한 차림을 하고 있잖아? 의뢰냐?”
“……………….”
그리고 그렇게 보무도 당당하게 길드 회관 내부로 진입한 공선자는 순간적으로 굳을 수밖에 없었다.
그야 해가 지기 전에 왔을 때만 해도 상당한 미모의 여인이 앉아 있던 자리에 지금은 당장에라도 들판에 나가 소라도 한 마리 생으로 뜯어먹을 것 같은 짐승같이 험상궂은 인상의 남자가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
그런 사람이 다짜고짜 자신에게 날카로운 눈빛을 보내면 순간적으로 굳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뭐야? 용건 있어서 찾아온 거 아니야?”
그렇기에 순간적으로 굳어서 상대가 말을 걸어왔음에도 곧바로 공선자가 대답하지 못하고 있을 때 남자가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묻는 것이었다.
그 대답에 공선자는 빠르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어린아이가 보면 첫 대면에 곧바로 울음을 터트려버릴 것 같은 인상의 남자.
허나, 공선자는 겁을 먹거나 하지는 않았다. 자신이 예상하고 있던 사람이 아니라, 저렇게 조금 안 좋은 의미로 존재감이 철철 흘러넘치는 사람이 대신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기는 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공포를 느끼는 것은 아니었다. 감정이 제어되고 있지 않으면 모를까 감정이 제어되고 있는 상태의 공선자에게 공포란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곧바로 대답을 돌려주는 것도 아니었다. 그럴 것이 현재의 공선자는 철저했다. 그리고 그런 만큼 사람을 상대할 때의 태도 역시 생각하기 시작하는 것.
‘지금의 내가 지금의 나인 상태로 대화를 하게 된다면 상당히 무미건조한 말투가 될 거야.’
감정의 고저도 제대로 느낄 수 없고 듣는 이에 따라서는 자신을 무시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말투였다.
당장 다른 사람에게서 정보를 얻어내야 하는 상황에서 그런 말투를 사용해 다른 사람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것은 좋지 않은 선택지.
‘……그렇다면 친근한 말투를 연기하는 쪽이 좋은가?’
에이전트로서 활동하던 시절에 잠입임무를 위해서 친근함을 연기하던 경험이 있었다. 그것도 단순한 경험을 넘어서 제대로 훈련받은 뒤 실전에서 써먹었던 그런 경험.
그렇기에 지금의 공선자라면 어렵지 않게 친화력을 발휘하는 계열의 사람을 연기할 수 있을 터.
하지만 곧이어 공선자는 친근함이 아닌 다른 쪽의 연기를 하기로 결정했다. 그가 연기하기로 한 것은 다름 아닌…….
“요, 용건이 있어서 찾아온 건 마, 맞는데 말이죠…….”
“흐음……. 뭘 그렇게 주눅까지 들어? 딱히 잡아먹을 생각은 없으니까 일단 이쪽으로 와봐. 지금 시각에 회관에서 업무를 보는 건 나밖에 없으니깐 말이야.”
……감정이 제어되지 않을 때의 자기 자신이었다. 겁이 많고 사소한 일에도 흠칫흠칫 경계심을 보이는, 겉으로만 보이게는 나약하기 그지없는 자신.
아니, 겉만이 아니라 본래의 공선자는 확실하게 나약했다. 신체나 전력적인 의미가 아니라 정신적인 의미에서 말이다.
하지만 당장은 감정이 제어되어 그렇지 않은 공선자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정이 제어되지 않을 때의 자신을 연기하는 것은……, 말했다시피 나약하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