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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8화 〉제 01계-챕터 02: 의도치 않은 인연 (88/194)



〈 88화 〉제 01계-챕터 02: 의도치 않은 인연

그 손짓에 주저하는 척 연기를 하며 천천히 그에게 다가가는 공선자. 그리고 그것으로 자기 할 일은 다했다는 것처럼 공선자와 교차해서 길드 회관을 나가는 하잠.

공선자에게 흥미를 느끼고 그를 도와주기는 했지만 말했던 것처럼 깊게 관여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그는 자신이 가진 의문을 공선자에게 묻지 않고 그대로 길드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그런 하잠의 태도에 살짝 의문을 느낀 공선자였지만 이내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일단은 험상궂은 사내한테 다가가 드디어 원하던 정보를 얻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자, 그럼 방금 전에 내가 길드장님하고 나누었던 대화를 들었다면 알 수 있다시피 상황이 달라진 만큼 너한테 모험가에 대한 지식을 알려주게 되었다. 귀찮기는 하지만 일인 만큼 대충하지는 않겠다. 그러니 일단 묻고 싶은 게 있으면 물어봐. 알고 있는 만큼 알려주고 모험가랑 관계된 일이면 어느 정도 조언도 해줄 테니까.”

상대의 그와 같은 이야기에 공선자는 드디어 자신이 어떤 세계에 떨어지게 된 것인지 알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이었다.

“그, 기, 기초 상식 같은 것을 물어봐도 될까요?”

“기초 상식? 어느 정도? 대답해주지 못할 것도 없기는 한데?”

“……지금 저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이, 이름이라던가?”

그리고서 슬쩍 가장 먼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을 묻자 순간적으로 눈앞의 남자는 공선자가 왜 이따위 질문을 하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 그 제가 워낙 산골짜기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살아와서……, 모르는 게 많거든요!”

“……아무리 그래도 정도가 있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해서 모르는 게 말이 되냐? 아니, 됐다. 따지고 들어도 어차피 시간만 소모되니까 그냥 대답을 해주고 말지. 그쪽한테도 무슨 사정이 있는 거겠지. 애초에 길드장님이 직접 스카우트했다는 사실에서부터 평범한 녀석들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으니깐 말이야.”

의문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사내에게 공선자의 질문에 대답해주는 것은 어디까지나 업무. 그러니 굳이 의문을 파고들 생각은 없었다.

그래봤자 그의 입만 아플 뿐이었으니깐 말이야. 호기심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보아하니 공선자가 무슨 사정을 가지고 있는지 순순히 대답해줄 리도 없는 것 같았고 말이다.

“일단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이름의 플라워야. 플라워. 총 7개의 대륙으로 이루어진 세계지.”

“7, 7개……. 상당한 숫자네요.”

“혹시나 해서 묻는데 이 7개의 대륙의 이름도 모르는 건 아니지? 아니, 세계의 이름도 몰랐는데 모를 수도 있나. 그러면 각 대륙이 주기적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은 아냐?”

공선자가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대륙의 숫자에 당황할 때 이어지는 사내의 말에 순간 어벙한 표정을 연기하며 머릿속에 떠오르며 든 의문을 묻는 것이었다.

“우, 움직여요? 그게 무슨…….”

“말 그대로 주기적으로 드넓은 바다 위에서 움직인다는 거지. 그렇기에 7개의 대륙은 시기에 따라서 서로 이어지거나 단절되거나 하는데……. 진짜로 이 사실도 모르고 있었던 모양이네?”

“아, 아니……. 대륙은 고정되어 있으니까 대륙인 거잖아요? 그, 그런데 움직이다니…….”

“거대한 땅덩어리가 대륙이지. 그게 움직이든 말든 뭔 상관이야? 그런 것보다 이러면 각 대륙의 명칭도 모르고 있는 것 같은데 일일이 알려줘야 하나…….”

겉으로 반쯤 패닉 상태에 빠진 연기를 하고 있는 공선자는 속으로도 상당히 곤혹스러워하고 있었다.

설마 하니 대륙이 움직이고 있다는 말을 들을 줄은 몰랐기 때문. ……자신이 알고 있던 세계인 지구와는 완전히 다른 이름을 가진 세계라는 사실을 확인했을 때부터 이곳이 다른 세계라는 사실을 더 이상은 부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대륙이 움직인다는 사실을 듣는 순간 더욱더 그 사실을 부정할 수 없게 된 것이었다.

그야 공선자가 살던 세계에서 대륙은 지구의 맨틀에 딱 달라붙어서 지진이라고 일어나지 않으면 절대로 움직이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런데 지금 눈앞 사내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 플라워라는 이름의 차원은 대륙이 지진 같은 게 없어도 그냥 바다 위를 둥둥 떠다니는 모양이었다.

……결코 지구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 그러니 그 사실만으로도 자신이 완전히 다른 세계에 떨어졌다는 사실을 더 이상은 부정할 수 없게 되는 것.

“그래서 7개의 대륙에 대한 이름도 설명해줘?”

“부, 부탁드릴게요.”

하지만 아무리 다른 세계여도 그렇지 설마 대륙이 무슨 배처럼 둥둥 떠다니는 세계일 줄은 몰랐던 공선자가 자신이 받은 충격을 숨기지 못하고 대답하자 사내가 공선자의 반응이 어떻든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겠다는 것처럼 말을 이어가는 것이었다.

“일단 현재 우리들이 살고 있는 대륙의 이름부터 이야기해주지. 이름은 윈터. 보다시피 겨울이라는 의미를 가진 나라로 도깨비족이라고 불리는 아인종들이 원주민으로서 살아가고 있는 대륙이기도 해. 대륙 자체가 북극과 가까운 위치에서 바다를 떠돌기에 1년 중 절반 이상의 계절이 눈으로 뒤덮이는 눈의 대륙.”

그리고 그 윈터라는 이름의 대륙 안에 존재하는 스테노, 에우리알레, 메두사라는 이름을 지닌 3개의 나라 중 현재 이 소나타라는 이름의 도시는 메두사라는 이름의 나라에 속해있는 모양이었다.

즉, 공선자는 윈터라는 이름의 대륙 안의, 메두사라는 이름의 나라의, 소나타라는 이름의 도시 인근의 모종의 장소에서 새로운 세계에서의 삶을 시작했다는 이야기.

“그 외에도 7개의 대륙 중 가장 던전의 출현이 많은 대륙이기에 마나석과 마정석의 산지라든가 하는 특징, 각 대륙에 하나씩 존재하는 마경 중 놀랍게도 거대한 계곡 자체가 던전으로 구분되어 유일한 던전 마경으로 분류된다는 특징 등등. 꽤 다양한 특징을 가진 대륙이지만 그게 지금 너한테 중요한 건 아닐 테고…….”

그야 겉으로 보기에는 그다지 강해 보이지 않는 공선자가 마경이니 뭐니 하는 정보를 전해 들어도 별 의미 없다고 느끼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이야기이기는 했다.

“……그렇게 우리가 살고 있는 윈터 대륙을 제외하고도 총 6개의 대륙이 존재하지. 스프링, 서머, 아덜. 각각 4계절을 의미하는 이름이 붙은 대륙이 윈터를 포함해 4개. 그 외 씨, 정글, 디셀트로 바다, 수림, 사막을 의미하는 이름을 가진 대륙이 3개. 이렇게 총 7개의 대륙이 말이야. 우리가 살고 있는 윈터를 제외한 나머지 대륙에 대한 정보는 당장은 필요 없지?”

그야 말했다시피 겉으로는 비리비리 해 보이는 공선자가 당장 현재 자신이 있는 대륙을 벗어나 다른 대륙으로 넘어갈 일은 없을 것 같았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무려 대륙이, 정확히는 해선(海船) 대륙이라 불려야 할 거대한 대륙이 실시간으로 움직이는 세계인 것이다.

그런 세계에서 다른 대륙으로 넘어가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설령 공선자가 다른 대륙으로 넘어가고자 한다고 해도 겉으로 보이는 그의 실력으로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길드 회관의 간판 아저씨를 생각한 것이었다.

“예, 예……. 뭐…….”

그리고 당장은 일부로 약점투성이의 모습을 연기하고 있는 공선자의 입장에서는 아쉬웠지만 다른 대륙에 대한 정보는 실제로도 지금 자신에게는 필요 없다고 판단하는 그였다.

거기에 어떻게 봐도 이쪽 세계에서 살아가는 대부분 사람들이 알고 있는 기초 상식 수준의 지식으로 보였기에 급하게 얻을 필요가 없어 보이기도 했고 말이다.

당장 얻지 않아도 되는, 그러면서도 언제든지 얻을 수 있는 지식을 굳이 급하게 얻고자 억지로 눈앞의 험상궂은 인상의 사내를 독촉할 필요는 없었다.

그렇게 판단한 공선자가 우선은 자신이 현재 살고 있는 대륙과 나라의 이름을 알게 된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그다음으로 궁금한 건? 보아하니 이유를 캐물을 생각은 없지만 기초 상식이 부족해 보이는데 모험가에 대해서도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쳐줘야 하나?”

“그, 그래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만……. 그전에 역시 따로 묻고 싶은 게 몇 가지 더 있어서…….”

물론 공선자가 묻고 싶다는 것은 이쪽 세계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당연하다고 느껴질 수 있는 기초 상식과 관련된 물음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그런 질문을 받게 되는 험상궂은 인상의 사내로서는 애도 아니고 그런 것도 몰라? 와 같은 반응이 나올 수도 있었기에 조심스러운 태도로 묻는 공선자.

“보아 하니까 그것도 역시나 기초 상식 관련된 의문인 것 같은데……. 좋아. 일단은 내가 아는 선에서 대답해줄 테니까 모르는 건 전부 물어봐라. 애초에 기본적인 지식도 없는 녀석한테 모험가에 대해 설명해주는 것도 어려울 테니까.”

그야 모험가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아는 고유명사를 몰라 ‘그건 뭐에요? 저건 뭐에요?’ 라고 물어본다면 그건 그거대로 짜증일 날 터.

그러니 차라리 공선자의 눈앞의 사내는 의문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일단은 공선자에게 기초적인 지식을 주입해줄 생각인 모양이었다.

도대체 이 녀석은 이렇게 클 때까지 뭘 하고 지냈기에 이런 기초적인 것도 모르지? 라고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우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사내는 이래 보여도 모험가 길드 회관의 밤 중 카운터를 맡은 지 상당한 시간이 지난, 일종의 프로라고 할 수 있는 남자.

그러니 길드장에게 보너스를 받고 하는 일인 만큼 크게 관계하지 않고 자기 할 일만을 하려고 하는 것.

원래 모험가라는 족속들이 신분은 보장되었다고 해도 이것저것 숨겨두는 일이 많은 이들인 만큼 호기심에 개인의 과거를 들추어 보는 것은 실례되는 행동이었으니 말이다.

말했다시피 프로로서의 의식이 있는 사내는 그런 실례되는 행동을 할 생각이 없었다. 그러니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집중할 생각인 것.

“그, 그런 우선 메, 메두사라는 나라에서 사용하는 역법에 대해서 알고 싶은 데요…….”

“메두사를 포함한 모든 나라, 아니, 모든 대륙에서 같은 역법을 쓰고 있으니까 다른 나라에서 왔다고 해도 역법을 모르는 건 이상한데……. 아니지, 대륙에 대해서도 모르고 있었으니까 모르고 있어도 이상하지는 않나. 도대체 길드장님은 뭔 정체 모를 녀석들은 스카우트해온 거야? 뭐, 좋아.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겠지.”

물론 그렇다고 해도 공선자가 너무나도 당연한 걸 모르고 있어서 다시금 당혹스러워하는 반응을 보이는 사내였다.

그렇다고 해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착실하게 행하는 사내. 그는 일단 공선자가 물어본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이쪽 세계에서 전 대륙이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역법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일단 1년은 12개월, 365일로 구분되고 있어. 그리고 1달은 최소 29일에서 최대 31일까지 나누어지지. 계절은 각 대륙별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4계절로 나누어져.”

그 외에 일주일 단위로 요일이 나누어진다든가, 하루가 24시간이라든가 등등, 그가 살고 있던 지구와 거의 다를 것 없는 역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 사실에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조금 놀란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던 공선자. 그야 다른 세계인 것이다.

당연히 역법도 다르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가 알고 있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허나, 공선자는 곧이어 납득을 표하기도 하였다. 그야 드넓은 우주에서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는 행성은 그렇게 많지 않을 터.

그러니 각 행성들의 환경이 비슷하여 역법 역시 비슷해졌다고 한다면 납득이 가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라는 것은 결국 지구와 비슷한 환경이라는 건데, 그렇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지구와 비슷한 역법을 써야 하는 환경이 되는 것도 납득이 아예 안 가는 것은 아니라는 소리.

‘원래 살던 곳과 역법이 똑같으면 나야 편하지만 말이야. 완전히 납득이 가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이상한 부분이 있는 것도 아니니…….’

그렇기에 공선자는 일단 역법에 대해서는 받아들이기로 하는 것이었다. 자세하게 파고들어 본다면 역시 이상한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당장은 그 이상한 부분까지 따지고들 정도의 정보가 없었으니 말이다.

“설마 하루가 뭐고, 한 달이 뭔지도 모르는 건 아니지? 내가 그런 정말로 기초 중의 기초까지 설명해줘야 하는 건 아니지?”

그렇게 공선자 속으로 이쪽 세계의 역법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을 때 길드장이 불안감이 드러난 표정으로 설마 하며 물어 오는 것이었다. 그에 공선자가 잽싸게 고개를 내저으며 입을 열었다.

“아, 아뇨……. 그 정도도 모르지는 않아요.”

“휴우. 그럼 다행이고. 아무리 보너스를 받고 하는 일이라고 해도 그런 사소한 부분까지 설명하려면 내 인내심이 한계였을 거라고.”

그야 아무리 일이라고 해도 기본 중의 기본도 모르는 사람을 앉혀놓고 이것저것 가르쳐야 하게 된다면 경우에 따라서는 충분히 짜증이 날 수도 있는 것이었다.

자기 자식이라면 모를까 생판 타인이라면 귀찮다고 느낄 수도 있지 않은가? 그렇기에 공선자의 대답에 안도의 한숨을 쉬는 사내의 반응에 공선자가 어색한 미소를 연기하고 있을 때 사내가 다시금 물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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