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5화 〉제 01계-챕터 02: 의도치 않은 인연
그런 그가 잠깐의 고민 끝에 결정한 것은 후자였다. 이유는 역시나 공선자 자신이 어느 정도 전투 경험이 있다는 것.
그러니 가장 약한 몬스터라면 목숨을 걸 수준으로 고생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추측을 기반으로 잡고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토벌 의뢰부터 할 생각인 거냐? 뭐, 그것도 나쁜 선택은 아니야. 결국 모험가라는 건 좋든, 싫든 몬스터나 에너미와 엮일 수밖에 없는 직업이니깐 말이지. 늦든 빠르든 실전 경험을 해야 할 필요가 있어. 그러니 처음부터 토벌 의뢰를 선택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 ……무기가 있다면 말이지.”
“아……!”
공선자의 질문에 그가 어떤 선택을 내린 것인지 깨달은 사내가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내뱉은 말에 공선자는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보니까 나 딱히 무기도 갖고 있지 않잖아?’
여태까지 너무 많은 일들이 있어서 잊고 있었던 것인데 확실히 공선자는 빈털터리였다. 무일푼이라는 이야기.
돈이 없었다. ……더불어 당연하게도 무기도 없었다. 몬스터와 같은 괴물을 상대하는 것이었다.
사람을 도구를 쓰는 동물. 당연하게도 자신들보다 강한 생명체를 사냥하기 위해서는 ‘무기’가 필요할 수밖에 없는 것.
허나, 공선자는 그 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 사실을 그는 뒤늦게 깨달은 것. 그야 어쩔 수 없지 않은가?
갑자기 다른 세계에 떨어진 것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이 무기를 가지고 있는지, 가지고 있지 않은지를 확인할 겨를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기에 공선자가 당황하고 있을 때 험상궂은 인상의 사내가 살짝 짜증이 담긴 한숨을 푹 내쉬면서 말해오는 것이었다.
“나쁜 말 하지 않으마. 무기도 없으면서 맨손으로 몬스터를 잡겠다고 토벌 의뢰를 받는 미친 짓은 하지 마라. 설령 스프라우트 등급의 토벌 의뢰라고 해도 어디까지나 평범한 성인 남성이 ‘무기’를 들었을 때를 기준으로 잡은 등급이야. 단순한 인간은 무기 없이 그게 아무리 최하 수준의 몬스터라고 해도 이기기 힘들어.”
네가 격투 계열의 무술을 배운 게 아닌 이상에는 말이야, 라고 이야기하는 사내의 이야기에 공선자는 내심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설마하니 무기가 없다는 사실 때문에 이렇게 발목이 잡힐 줄은 몰랐던 것. 아니, 어떻게 그냥 맨몸으로 다른 세계에 던져넣은 주제에 기초 장비도 제대로 챙겨주지 않는단 말인가?
정말로 무슨 목적으로 챌린저들을 이쪽 세계로 던져 넣은 것인지 이해가 가질 않아서 겉으로는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을 연기하면서도 내심 열을 내던 공선자가 문득 떠올리는 것이었다.
‘아니, 그러고 보니까 인벤토리에 일주일치 식량과 물 말고도 뭔가 다른 게 들어가 있던 것 같은데…….’
설마 그게 기초 장비인가? 라는 생각을 공선자가 떠올리고 있을 때 사내가 말을 이어가는 것이었다.
“일단 안전한 의뢰들을 위주로 수주해서 돈부터 모아서 기본적인 무기하고 방어구를 장만해. 토벌 의뢰는 그다음에 받고. 한 푼도 없으면 그게 당장의 최선이다. 괜히 맨손으로 몬스터한테 덤벼봤자 한 끼 식사가 될 뿐이니까.”
공선자가 당황하는 모습을 보며 최대한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조언을 해주는 사내. 허나, 공선자는 그런 사내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그야 무기가 없으면 확실히 사내의 말대로 안전한 의뢰를 해서 돈부터 모으는 게 우선이었다.
그러나 사내도 말하지 않았는가? 스프라우트 등급으로는 해봤자 간신히 입에 풀칠할 수준으로밖에 벌 수 없다고.
그런데 고작 그런 식으로 돈을 벌어서 언제 무기를 장만한단 말인가? 이쪽 세계의 시세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무기가 싼값은 아닐 터.
아무리 안 좋은 무기라고 해도 고작 하루 이틀 일하는 것으로 장만할 수준은 결코 아닐 테니 말이다.
“기본적인 단검 정보는 길어도 이주일 동안 열심히 일하면 장만할 수 있을 거다.”
“네, 네…….”
그것 봐라. 무려 이주일이나 열심히 노가다를 뛰어야 한다고 하지 않는다? 그 기간이면……, 그 기간이면…….
‘……까놓고 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짧은 시간은 아니지.“
역시나 아직 정보가 부족하기에 이주일이면 뭘 할 수 있다고 말하기는 힘들었지만 하나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게 있었다.
어떻게 생각해도 단검 하나 마련하겠다고 소모해도 좋을 수준의 시간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런 만큼 공선자는 미안하지만 사내의 조언을 흘려듣고 일단 스프라우트 등급의 게시판으로 이동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기절하기 전에 확인해보았던 인벤토리 시스템을 열어보고, 그 내부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래, 그래도 양심은 있어서 정말로 맨몸으로 내던져버린 건 아니라는 거네. 기초 장비, 확실히 존재했어.’
스프라우트 등급의 게시판을 확인하는 척하면서 인벤토리 시스템 내부를 확인해본 공선자는 자신의 예상대로 일주일 치 식량과 물, 거기에 기초 장비가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처음 인벤토리를 확인했을 때는 눈치 채지 못했던 것이냐고 하냐면 그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형태로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
처음 인벤토리 내부를 확인했을 때 살펴볼 수 있었던 물품은 한 가지였다. 정체불명의 검은색 박스와 일주일 치 물과 식량.
……정확히는 세 가지인데 왜 한가지냐고 하냐면 이 세 가지가 한 묶음이라는 느낌으로 묶여 있었기 때문.
즉, 검은색 박스와 일주일 치 식량과 물이 반투명한 상자 내부에 다시금 포장되어 있다는 느낌?
그렇기에 공선자는 인벤토리에 한 가지 물품만 들어있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색 박스와 일주일치 식량과 물이 포장되어 있는 박스 하나가.
그리고 이때 이 정체불명의 검은색 박스, 이것이 다름 아닌 기초 장비가 들어가 있는 박스였던 것.
그러나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박스로 보였기에 공선자가 보다 세심하게 살펴보지 않았던 상황에서는 이게 기초 장비가 들어가 있는 상자였다는 사실을 알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여기서 꺼내면……, 이상하겠지?’
일단 기초 장비에 무기가 포함되어 있는지부터 확인하고 싶었지만 게시판 앞으로 왔다고 해도 간판 아저씨(?)라고 주장하는 사내의 시야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이 아니었다.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허공에서 이상한 물건을 꺼내면 상대가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판타지 소설을 통해서 아공간 주머니니 하는 물건이 있을지 모른다는 추측을 하고는 있지만 그 추측이 사실인지조차 확인하지 못한 상황.
어쩌면 이쪽 세계에는 공선자는 예측과 다르게 아공간 주머니 같은 물건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몰랐고 말이다.
아니, 설령 그런 물건이 존재한다고 해도 문제였다. 그야 공선자는 딱 봐도 빈털터리인 복장이었는데 어떻게 생각해도 상당한 가격일 것이 분명한 아공간 주머니 같은 물건을 가지고 있다는 게 이상하지 않은가?
그런 이유로 당장 인벤토리에 잠들어 있는 검은색 박스를 꺼내는 것은 어떻게 생각해도 현재 함께 길드 회관 내부에 있는 사내의 눈길을 끌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공선자는 일단 스프라우트 등급의 게시판을 살펴보는 척 연기하며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는 것.
‘……그냥 배 째라는 식으로 토벌 의뢰를 받아야 하나? 아니면 길드 회관 밖으로 나가서 장비를 갖춘 다음에 다시 와서 의뢰를 받아야 하나?’
어느 쪽을 선택하든지 이상하게 보이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야 그렇게까지 조언을 해줬는데 그 조언을 그냥 씹고 맨몸으로 몬스터와 싸우러 가는 것은 어떻게 봐도 병신 외에 그 무엇도 아니지 않은가?
심지어 일단 지금 그는 겉으로 겁이 많은 소심한 성격을, 보다 구체적으로 감정이 제어되지 않을 때의 자신을 연기하고 있었다.
그렇게 겁이 많은 사람이 아무리 돈이 급하다고 해도 아무런 준비도 없이 토벌 의뢰를 받고 몬스터와 싸우러 가는 것은 이상해 보이지 않겠는가?
또한 후자를 선택한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장비가 있으면 처음부터 입고 올 것이지 빈털터리의 모습으로 왔다가 잠깐 나갔다 보니 장비를 가지고 있는 것도 괴리감이 넘쳤다.
물론 괴리감이 있다고 해도 얼굴에 철면피를 깔면 문제가 없는 사항이기도 했다. 그야 공선자에게 방금 전까지 이것저것 알려주던 사내의 태도를 본다면 공선자의 행동양식이 이상하다고는 해도 크게 간섭하지 않을 것 같았으니 말이다.
그러니 뭐가 되었던지 장비만 챙겨오면 아무리 이상하게 보여도 그냥 넘어간 뒤 의뢰를 수주해줄 확률이 높았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은 공선자가 내키지 않았다. 현재 그가 감정이 제어되지 않았을 때의 자신을 일부러 연기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비수를 감추기 위해서였다. 평소에도 공선자라는 인물은 겁이 많고 소심하다는 인식을 주변에 심어주기 위해서였다.
혹시 모를 정보전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를 이야기. 그와 같은 이유로 소심하고 우유부단한 사람을 연기하고 있는데 전혀 자연스럽지 않은 행동양식이 나중에 척을 지게 될지도 모를 이들의 귀에 들어간다?
그런 사소한 정보 하나가 공선자가 평소에 공을 들여서 만들어놓은 자신의 ‘이미지’를, 상대를 방심하게 만들 비수에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었다.
‘물론 정말로 사소한 정보 하나가 일을 망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니까, 평소에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그렇기에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공선자로써는 당장 머릿속에 떠오르는 두 가지 선택지 중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 것.
하지만 그 외의 다른 선택지가 떠오르지 않는다면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도 둘 중 하나를 고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훗날 정말로 만에 하나, 억의 하나라도 공선자에게 좋지 않은 쪽으로 작용하게 될 정보를 만들게 된다고 해도 지금의 공선자가 떠올릴 수 있는 최선의 선택지는 당장 그 두 개가 전부였을 뿐이니 말이다.
‘……흠? 이 의뢰는? 쌈닭? 채집 의뢰인데, 채집해야 하는 나뭇가지를 가진 나무가 서식하는 장소가 쌈닭이라는 이름의 몬스터가 서식하는 장소인 건가?’
때문에 자연스럽게 기초 장비를 확인하고 착용하고 올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고 있던 공선자의 눈에 문뜩 스프라우트 등급의 게시판 한쪽에 위치한 ‘자유’ 의뢰가 눈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수주 방식은 자유, 의뢰의 형태는 채집. 채집해야 하는 물건은 나뭇가지인데 이 평범한 나뭇가지가 아닌 모양.
장작으로 쓰기 좋은 품종의 나뭇가지로 대장간 같은 곳에서 주로 사용되기에 꾸준히 수요가 존재하는 물건이었다.
그렇기에 기회가 될 때마다 해당 품종의 나뭇가지를 길드에 공급해달라는 내용의 자유 의뢰.
여기까지만 보면 평범한 채집형의 자유 의뢰였다. 허나, 특이한 점이 있다면 이 품종의 나뭇가지가 자라는 장소가 쌈닭이라는 이름의 몬스터의 서식지 내부라는 점.
즉, 경우에 따라서는 쌈닭이라는 이름의 몬스터와 조우할 확률이 높다는 이야기. 그렇기에 위험했다.
‘다른 스프라우트 등급의 채집 의뢰보다 몬스터와 마주치게 될 확률이 월등히 높다는 건가. 이거라면 자연스럽게 나뭇가지를 채집한다는 명분으로 쌈닭이라는 몬스터랑 마주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단,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프라우트 등급이었다. 요컨대 쌈닭이라는 이름의 몬스터는 스프라우트 등급의 모험가라고 해도 어렵지 않게 잡을 수 있을 정도의 무력만을 지닌 몬스터라는 이야기.
‘당장 이름이 닭이기도 하고. ……아니, 이게 발음이 쌈닭인 거야, 아니면 내가 생각하는 그 닭에 쌈을 붙인, 닭의 형태를 하고 있는 몬스터라는 거야?’
현재 공선자가 있는 장소는 자신이 살던 지구와는 다른 세계였다. 당연히 언어도 달랐다. 에볼루션 시스템 덕분에 의사소통은 되지만 고유명사에 들어가게 된다면 당연하게도 해당 고유명사에 사용되는 발음은 공선자가 알고 있는 세계가 아니라 이쪽 세계의 발음이 된다.
즉, 공선자에게 쌈닭이라는 발음은 싸우는 닭이라는 이미지를 연상시킬지 모르지만 이쪽 세계에서는 전혀 다른 이미지를 떠올리게 만드는 발음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
당장 나라가 다르면 같은 발음이라고 해도 다른 의미를 지니는 단어들이 많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