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8화 〉제 01계-챕터 02: 의도치 않은 인연
‘좋아, 일단 인벤토리를 사용해서 쌈닭의 시체까지 챙긴다고 하면 대충 한 마리당 3만 원씩 벌 수 있는 건가? 상당한 수준이잖아? 한 마리당 3만 원이면 하루에 한 마리씩만 잡아도 월 90만 원은 된다는 건데…….’
90만원이면 정말로 알뜰살뜰 아껴 쓰면 굶어 죽지 않는 수준은 되는 것이었다. 물론 평생 쌈닭만 잡고 살 생각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높은 가격책정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
‘어른 한 명이 방심하지 않으면 충분히 잡을 수 있는 몬스터가 시체만 잘 운반해오면 3만원, 토벌 증표만 가져와도 1만 원인가……. 아니, 오히려 죽을 수 있다는 위험수당을 생각하면 싼 편인가?’
……흐음, 고민을 해봐도 잘 알 수가 없었다. 애초에 공선자가 알고 있는 물가의 시세는 원래 그가 살던 세계의 물가.
그러니 월 90만 원이라고 해도 공선자 자신이 생각하는 것만큼의 돈인 것인지도 확신이 들지 않는…….
‘……아니, 잠깐 기다려 봐. 그전에 뭔가 쫌 이상하잖아? 만원? 그거 저쪽 세계에서 쓰던 화폐 단위 아니야?’
문득 떠오른 생각에 순간적으로 공선자의 미간이 구겨질 뻔했던 것은 간신히 참았다. 여태까지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넘겼던 것.
스프라우트 등급의 의뢰 게시판을 살펴볼 때 보상 항목에서 읽을 수 있었던 화폐 단위. 공선자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단위기에 자신도 모르게 넘겨버렸다.
허나,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결코 당연하게 넘겨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야 이곳은 다른 세계.
지구에서 사용하던 화폐 단위, 하물며 ‘한국’에서만 사용하던 화폐 단위가 존재하는 것은 어떻게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은가?
당장 지구만 해도 나라별로 사용하는 화폐 단위가 다르지 않은가? 한국은 원 단위를 쓰지만 옆 나라인 일본은 엔, 미국은 달러를 사용한다.
화폐란 요컨대 나라의 신용을 담보로 사용되는 무형의 가치인 것이다. 당연히 신용을 담보로 잡힌 나라마다 화폐의 단위가 달라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하물며 다른 세계인 것이다. 나라를 넘어 세계가 다른 상황에서 화폐의 단위가 같다? 아무리 기적이라는 천문학적인 확률을 뚫는 현상이 존재해도 정도가 있는 법.
완전히 다른 차원인 세계에서 같은 화폐 단위를 사용하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이야기.
그런데 그 기적조차 우습게 보는 확률이 뚫렸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사용되고 있어 눈치 채는 게 늦었지만 본래라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이야기.
‘심지어 각 의뢰의 보상을 보니까 화폐의 가치가 내가 알고 있는 가치하고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것 같아…….’
이게 어떻게 가능하지? 하고 혼란스러워진 머리를 공선자는 필사적으로 정리하는 것이었다. 그야 설령 같은 단위의 화폐라고 해도 그 가치는 늘 유동적으로 변하기 마련.
말했다시피 화폐는 그 나라의 신뢰를 담보로 잡는다. 그러니 그 나라의 상황에 따라 신뢰의 정도가 변화하면 화폐의 가치 역시 유동적으로 변화할 수밖에 없는 것.
발전된 나라일수록 화폐의 가치가 높아지는 건 당연한 이야기. 물가의 상승에 따라도 화폐의 가치는 변화한다.
그러니 다른 세계에서 설령 기적적으로 같은 단위의 화폐를 쓴다고 해도 결코 그 가치가 같다고는 이야기할 수 없을 터였다.
그야 당장 한국만 해도 20세기의 원화하고 21세기의 원화의 가치 차이가 크지 않은가? 그런데 다른 나라에서 같은 화폐를 사용한다고 해도 그 가치가 같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비슷해 보였다. 스프라우트 등급은 막 모험가에 들어온, 요컨대 평범한 성인 남성이라면 어렵지 않게 클리어할 수 있는 수준의 의뢰들.
그 의뢰들의 보상을 살펴보면 딱 적당한 수준의 금액을 지불하는 것 같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좀 더 이해하기 쉽게 이야기하자면 스프라우트 등급의 의뢰들에 대한 보상 금액이 공선자가 알고 있는, 지구에서 성인 남성 한 명이 하루 정도 인력소에서 일을 하면 벌 수 있는 금액과 비슷한 수준의 금액이라는 소리.
그 사실을 깨달은 공선자는 그게 가능한가? 라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말했다시피 설령 화폐 단위가 같다고 해도 그 가치가 다른 게 돈이라는 녀석이었으니 말이다.
‘아니, 애초에 말이지. 난 모험가에 대해서 잘 모르니까 스프라우트 등급의 보상 금액의 가치가 정말로 지구의 인력소와 비슷한 수준인 게 맞는지조차 확신을 할 수 없잖아?’
그야 공선자의 예측과 다르게 이쪽 세계의 화폐가 저쪽 지구의 화폐와 단위는 같아도 그 가치가 다를 수도 있는 법.
그런 상황에서 그저 우연히 인력소의 하루 일당과 이쪽 모험가 길드의 의뢰 한 건의 보상 금액의 지불 단위가 비슷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뭔 소리냐면 이쪽 세계에서 1만 원이 저쪽 세계에서 10만 원의 가치를 지닐 수도 있는데 우연히도 이쪽에서 모험가의 의뢰 한건 달성 보상 금액이 5만 원이었던 것.
여기서 저쪽에서 인력소의 하루 일당이 5만 원이라고 한다면 실질적으로는 50만 원과 5만 원인 건데 같은 금액으로 착각하는 일이 발생한 것일 수도 있다는 소리였다.
그런데 그런 우연히 정말로 있을 수 있는 것인가? 당장 화폐 단위가 각각 원으로 공통된 것만 해도 말도 되는 우연인데?
‘이쪽 세계, 설마 한국하고 관련이 있는 건가?’
그렇기 때문에 공선자가 순간적으로 저런 생각을 떠올리는 것도 결코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혹시라도 이쪽 세계가 저쪽 지구의 한국과 관련이 있다면 한국과 화폐 단위가 같은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화폐의 가치가 비슷한 것까지는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 추측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추측임은 확실한 것.
“……저, 저기. 이쪽 나라에서 사용되는 화, 화폐의 가치를 알고 싶은데요. 그 토벌 증표로 마, 만원씩 지급한다고 해도 그게 어느 정도인지 감이 안 와서.”
“뭐? 이제는 하다 하다 화폐의 가치도 모르고 있는 거야? 거기에 이쪽 나라라니……, 전 대륙의 화폐가 통일된 지가 언젠데?”
“에, 에……?”
설마하니 하나의 세계에서 공통된 화폐 단위를 사용할 줄 몰랐던 공선자는 조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당장 운송과 통신이 발달된 지구만 해도 나라마다 사용되는 화페의 단위가 다른데 설마하니 이쪽 세계에서는 통일되어 있었을 줄이야!
“아니지, 이제 와서인가. 그래, 여태까지 네가 던져온 질문들을 생각하면 화폐의 단위랑 가치를 모르는 것도 있을 수는 없는 일이지. ……쯧, 일단 화폐의 단위를 설명하자면 예전에는 쿠퍼니 실버니 골드니 하는 단위를 사용한 것 같지만 몇십 년 전부터 후(원)이라는 하나의 단위를 사용해.”
“네?”
하아, 하는 한숨 소리에 짙게 이런 것도 설명해야 해? 하는 짜증을 담은 뒤에도 일이어서 그런지 그래도 설명을 안 해주는 것은 아닌 험상궂은 인상의 사내.
하지만 사내의 친절하면서도 친절하지 않은 것 같은 설명에 순간 공선자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럴 것이 순간적으로 사내가 입을 통해서 내뱉은 하나의 단어에 해당하는 발음이 어처구니없게도 공선자에게는 ‘2개의 발음’으로 겹쳐서 들렸기 때문이었다.
……아니, 여태까지는 상대가 어떤 언어체계의 발음을 사용하든 상관없이 공선자가 알고 있는 언어체계의 발음으로 귓가에 들리던 발음이 순간적으로 2개로 들렸다고 해야 할까?
그 알 수 없는 현상에 공선자가 무심코 되묻고 말자 사내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야 딱히 이해하는 것이 어려운 설명도 아니었는데 어째서 공선자가 반문을 한 것인지 사내에게는 그쪽이 더 이해가 가지 않았으니 말이다.
“내 설명이 어려웠나? 다시 설명해줘? 아니, 다시 설명할 것도 없이 간단하잖아? 우리가 사는 플라워 차원은 전 대륙이 후(원)라는 하나의 화폐 단위를 사용한다고.”
“……후? 우, 원?”
“그래, 후(원). 아니, 근데 뒤쪽에 붙은 원이라는 건 뭔데?”
……그리고 사내가 공선자가 도대체 왜 이해를 못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을 때 공선자는 뒤늦게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를 깨달았다.
‘……이거, 번역 시스템이 후라는 화폐 단위를 나한테 맞춰서 원으로 번역해주고 있었던 거야?’
그래, 그랬던 것이다! 어째 나라는커녕 세계조차 같지가 않은데 화폐 단위가 같더라니, 사실은 같은 게 아니라 공선자만 동일하게 인식하고 있었다는 이야기!
실제로 이쪽 세계의 화폐 단위는 원이 아니라 후라는 발음의 화폐 단위였다. 저 발음이 어떤 어원을 갖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공선자의 예상이 빗나간 것.
이쪽 세계가 한국과 모종의 연관이 있어서 화폐 단위가 같은 게 아닐까 했는데 그게 아니라 아마도 번역 시스템의 효능으로 이쪽 세계의 화폐 단위가 공선자에게 알맞은 형태로 번역된 것이겠지.
‘잠깐만 그러면 화폐의 가치도 내가 이쪽 세계로 넘어오기 전에 알고 있던 시세에 맞춰서 자동으로 번역되어 보이는 건가?’
같은 줄 알았던 것이 사실은 같은 게 아니라 ‘같도록 보이고 있었다는 사실’에 순간적으로 공선자의 머릿속에 떠오른 추측.
이쪽에서 이런 공식으로 해답을 도출하면 비슷한 문제인 이쪽 역시 똑같은 공식을 사용하면 해답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조금 안일한 논리에서 파생된 추측.
허나, 그 추측이 시발점이 되어 순간적으로 시선을 돌린 공선자의 시야에서 달라지는 부분이 있었다.
‘……역시 생각대로네. 화폐의 가치 역시 우연히 동일했던 게 아니라 번역 시스템이 동일하게 보이도록 계산해줬다는 건가.’
순간적으로 떠오른 추측에 공선자가 시선을 돌린 방향에는 예의 스프라우트 등급의 게시판이 존재했다.
그곳에 적혀 있는 의뢰 달성에 맞춰 지급되는 보상 금액. 그 금액이 공선자의 시선에서 변화하는 것이었다.
공선자가 알지 못하는, 이쪽 세계의 언어 체계로 이루어진 숫자로 말이다. 그러나 설령 공선자가 알지 못한다고 해도 번역 시스템은 그 숫자가 어떤 의미를 지닌 것인지 번역해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번역된 숫자는 방금 전까지 공선자가 알고 있던 숫자들이 아니었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그래, 지구에서의 상황에서 비교하자면 자동으로 달러의 가치를 원으로 환전시켜주던 시스템이 off로 전환되어 버렸다는 느낌?
요컨대 방금 전까지는 대충 1만 원으로 번역되어 보이던 가치가 지금은 23후로 ‘직역’되어 보이고 있다는 느낌.
하, 그렇다고 진짜로 1만원이 이쪽 세계의 23후라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비유인 것.
‘……내가 의식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나한테 맞춤으로 적용된 의역이 적용되고 내가 의식해서 원할 경우에는 직역으로도 번역해준다, 라는 건가. 번역 시스템. 이거 얼마나 만능인 거야?’
생각해보면 몬스터의 이름 역시 어떻게 보면 직역이 아닌 ‘의역’을 해주었다는 느낌. 현대 지구에서 AI를 통한 의역을 구현하는 것은 정말이지 어렵지 그지없는 일이었다.
그야 단순히 직역을 하는 것보다 적절한 의역을 가미하는 쪽이 훨씬 경우의 수가 많아지기 때문.
그런데 이놈의 번역 시스템은 그런 어려운 의역 기능을 아무렇지도 않게 구현해내고 있는 것이었다.
거기에 자신의 의지에 따라서 알아서 꺼졌다가 켜졌다가 하니 그야말로 대단하다는 말 외에는 표현할 방법이 없던 것.
“야, 이봐? 갑자기 설명 듣다 말고 어디에 한눈을 파는 거야?”
“네, 네? 아, 죄, 죄송합니다. 잠깐 떠오른 게 있어서…….”
“딱히 강압할 생각은 없지만 물어봤으면 대답을 제대로 들어줬으면 좋겠는걸? 혼잣말을 하는 취향을 없으니 말이지.”
거기에 질문을 해놓고 무시하다니 괘씸하지 그지없지 않은가? 그런 의미를 담아 눈앞의 사내가 말을 걸어오자 공선자가 번뜩 정신을 차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뒤 사내의 설명에 집중하는 공선자. 그가 번역 시스템의 의역 기능을 깨달은 영향인지 의식을 하게 된다면 사내의 설명하는 이쪽 세계의 화폐 가치가 직역되어 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차피 저절로 공선자가 알고 있는 화폐 단위가 화폐 가치로 의역되어 들리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직역을 해서 들을 필요가 없었기에 자신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만 확인한 뒤 그냥 직역되는 요소는 꺼버렸다.
그야 이쪽 세계에서 1만 원의 가치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만 알 수 있으면 되지 그것을 굳이 후라는 영문을 알 수 없는 화폐 가치로 바꾸어 들을 필요가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