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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9화 〉제 01계-챕터 02: 의도치 않은 인연 (99/194)



〈 99화 〉제 01계-챕터 02: 의도치 않은 인연

‘아니, 생각해보니까 이렇게 되면 그냥 이쪽 세계의 화폐 단위랑 화폐 가치를 알 필요가 없지 않아?’

그야 이쪽 세계의 화폐 단위와 가치가 어느 정도가 되던 알아서 공선자의 눈과 귀는 그에게 익숙한 화폐 가치와 단위로 의역을 해서 들려주고 보여주는데 알고 있을 이유가 없는 것.

굳이 익숙한 것을 버릴 필요가 없는데 익숙하지 않은 것을 새롭게 배울 이유가 없지 않은가?

‘……물리적인 형태의 화폐 역시 알아서 머릿속으로 환전해주네.’

심지어 사내에게 부탁해서 약간의 화폐를 꺼내서 보여 달라고 했을 때 저 그 화폐들의 가치가 어느 정도 수준인 것인지 자동으로 머릿속에서 환전해주기까지 하였다.

그야말로 번역 시스템에 만세 삼창을 하고 싶을 정도로 만능에 가까운 의역 기능을 가지고 있는 것!

이런 상황에서 굳이 직역을 통해 이쪽 세계의 화폐 가치를 알아둘 필요는 없는 것. ……하지만 이미 물어본 뒤였기에 공선자는 얌전히 사내의 설명을 듣는 것이었다.

사내가 설명해주는 화폐의 가치가 의역 기능 덕분에 죄다 공선자가 알고 있는 기준의 화폐 가치로 변환되어 들렸기에 별 의미는 없었지만.

‘그래도 대충 물가는 알 수 있네. 설령 화폐 단위가 변동되지 않아도 물가는 변동되니깐 말이지.’

그렇다고 아예 소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공선자가 생각하는 것처럼 화폐 가치가 같다고 해도 물가에 따라서 적은 금액으로 살 수 있었던 물건을 나중에는 더 큰 금액으로 사야 하는 경우도 발생했으니까.

그러니 지금의 물가를 알아둘 수 있다는 점에서 사내의 설명 역시 아예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던 것.

‘하지만 무슨 검 한 자루가 아무리 싸도 수십만 원, 비싸면 수백에서 수천을 하냐.’

이 정도라면 명검 소리 듣는 검들은 죄다 하나당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 단위에 도달할 것 같았다. 거의 현대 지구의 자동차 값이나 다름없는 수준.

‘방어구도 더럽게 비싸고……. 이거 안전하게 장비를 장만하려고 했으면 몇 주는커녕 몇 달이 들었을 수도 있겠어.’

그렇게 사내에게서 대충 이쪽 세계의 물가(죄다 주로 모험가에게 필요한 물품들이 기준이었지만)를 들은 공선자는 내심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역시 뭐가 되어도 돈을 모을 필요성이 존재했다. 살아남든, 멸망을 막든지 돈이 있어야 뭘 해보든 하지 않겠는가?

‘일단 모험가로서 활동하며 생활을 안정시켜야겠어. 활동 방향을 정하는 건 그다음이어도 충분해.’

생활, 즉, 돈을 버는 것이 안정되어야지 그 후의 활동 방향을 정할 수 있는 것이었다. 아무리 세계의 멸망을 막으니, 아니면 살아남느니 해도 돈이 없으면 성립할 수 없는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화폐 단위에 대한 설명은 이 정도로 하고. 그래서 저 자유 의뢰를 하러 갈 생각인 거지?”

“네, 네……. 자, 장비가 없다고 해도 지금부터라도 도시 밖에서 활동하는 것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전 장비가 생긴 뒤에도 그……, 모, 몬스터랑 싸울 수 없을 것 같아서요.”

공선자가 그렇게 생각하고 사고를 회전시키고 있을 때 마침 사내의 화폐에 대한 설명이 마무리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사내의 의문에 지금 자신이 연기하고 있는 공선자라는 인물에게 적절한 변명을 입에 담는 그.

“스스로가 겁쟁이인 걸 인지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복하려고 노력한다. 아주 좋은 자세야. 애초에 공포라는 걸 모르는 바보들하고, 단순히 겁만 많아 아무것도 못 하는 녀석들하고 비교조차 하는 게 미안한 자세다. 전자는 빨리 죽어버리고 후자는 서서히 죽어버리는 녀석들이 대부분이니깐 말이지.”

그러니 차라리 겁쟁이면서도 조금씩이지만 안전하게 앞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하는 녀석들이 쉽게 죽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는 사내.

“그런 의미에서 오히려 모험가는 너 같은 성격의 녀석들이 더 오래 살아남는 법이지. 그러니 괜히 초조해하지 말고 잘 해보라고. 모험가는 모험가라고 불리지만 모험을 하지 않는 게 철칙이나 다름없으니 말이야.”

그렇게 이야기한 뒤 사내는 더 이상 자신이 해줄 일이 없다는 것처럼 공선자에게 손짓을 하는 것이었다.

사내의 그와 같은 손짓에 공선자가 이 이상 그에게서 전해 들은 정보는 없다고 판단하고 길드 회관에서 나서 일단 한 번 쌈닭이라는 몬스터를 사냥해보러 가려고 할 때였다.

“아……, 저, 저기 오늘이 몇 년도, 몇 월, 며칠인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마지막으로 뇌리를 스쳐 지나간 의문을 입으로 꺼낸 공선자의 질문에 사내가 자신도 잊고 있었다는 어투로 알려주는 것.

“아, 그러고 보니 역법을 알려줬으면서 오늘이 며칠인지는 안 알려줬나? 그런데 넌 어떻게 된 게 그런 것도 모르고 있냐? ……됐다. 더 말하면 입만 아프지. 년도까지 전부 알려줘야 하냐?”

“네, ……부탁드릴게요. 하는 김에 어떤 역법을 사용하는지도 알려주세요.”

여기서 이야기하는 역법은 날짜를 세는 방식이 아닌 년도의 기준 단위를 의미하는 역법이었다.

요컨대 기원전, 기원후, 무슨 왕 1년식과 같은 역법들 말이다. 사내 역시 그 의미를 알아듣고 마지막으로 한숨을 내쉰 뒤에 대답을 돌려주는 것이었다.

“오늘은 개화년(開花年) 1300년, 8월 13일이다. 요일은 수요일. ……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 날이지. 아니, 이 도시에 한정해서 너희‘들’같이 이상한 녀석들이 등장했으니 나름대로 특별한 날이라고 해야 할까?”

개화년 1300년, 8월 13일 수요일. ……이 날짜를 기준으로 하나의 세계를 멸망시킨 사내는 아이러니하게도 멸망이 예정된 세계에서의 삶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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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되면 몬스터들의 활동이 더 활발해진다는 건가. 물론 각 종족마다 차이가 있다는 모양이지만 대체적으로 몬스터는 밤에 더 흉포하게 변한다는 모양이네.’

이 정보는 공선자가 대충 볼일을 마치고 길드 회관에서 나올 때 사내가 설마 하는 생각에 경고를 주었을 대 얻을 수 있었던 정보였다.

길드 회관에서 자신이 할 만한 자유 의뢰를 확인하다가 결과적으로 쌈닭의 서식지에서 큰 화력을 낼 수 있는 나뭇가지를 수집해오는 의뢰를 수주하기로 한 공선자.

자유 의뢰기에 따로 절차를 걸친 것은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의뢰 자체가 핑계고 실제로는 쌈닭이라는 몬스터를 사냥해볼 생각인 것이었지만 말이다.

여하튼 그렇게 쌈닭이라는 몬스터를 목표로 잡은 공선자가 길드 회관에서 나가자 공선자에게 이것저것 설명해주던 사내가 현재 시각을 깨닫고 말을 해왔던 것.

몬스터는 밤에 더 흉포하게 변하는데 설마 지금 이 시간에 의뢰를 하러 갈 거냐? 라는 말을 전해온 것이었다.

그에 공선자는 어색하지 않게 ‘아, 아뇨?! 그럴 생각 없는데요?!’ 라는 대답을 돌려주었다. 여기서 어색하지 않게, 라는 건 연기에 어색함이 없다는 이야기.

즉, 전혀 생각하지도 못해본 발상을 전해 들었을 때와 전혀 차이가 없는 자연스러운 연기를 했다는 소리였다.

그렇기에 사내는 공선자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의 눈에는 공선자가 밤에 자유 의뢰를 하러 갈 만큼 용감……하다고 해야 할지, 머릿속이 텅 빈 깡통 같은 녀석으로는 보이지 않았으니 말이다.

실제로 공선자는 ‘일단 묵고 있는 여관으로 돌아갔다가 아침에 다시 알려주신 쌈닭의 서식지로 갈 생각’이라는 의사가 담긴 발언을 했고 말이다.

그렇기에 별 반발 없이 길드 회관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아마 공선자가 지금 당장 쌈닭의 서식지로 갈 생각이었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했다면 그 사내는 공선자를 미친 사람처럼 바라보거나 심할 경우에는 힘으로 말리려고 할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지금의 난 밤에도 활동할 수 있는 상태다. 그런 상황에서 조금 더 위험해졌다고 밤에 움직이지 않는 건 낭비지.’

그러니 앞으로도 밤에 몬스터를 사냥해야 할 일은 거의 매번 생길 터. 그런 상황에서 아무리 위험하다고 해도 밤에 그저 여관에 처박혀 있는 것은 낭비였다.

‘물론 아침보다 더 신중하게 움직여야 하는 건 사실이지만 말이지. 몬스터가 흉폭해지는 것 외에도 애초에 밤은 아침보다 위험한 시간이니깐 말이다.’

때문에 사내의 경고 어린 말을 그저 무시해서는 안 되었다. 분명하게 위험을 인식하고 더욱 치밀하게 움직여야 하는 것.

……다행이라면 공선자에게 있어서 아침보다 밤이 더 익숙한 시간이라는 점도 있었고 말이다.

‘그건 그렇고 번역 시스템. ……역시 내 생각대로 상당히 정밀하기 그지없는 의역 기능이 존재하는구나.’

스테이터스 시스템하고 스킬 시스템만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뇌 용량을 상당 수준 사용했기에 나중에 살펴보려고 미루어두었던 에볼루션 시스템의 각종 시스템들.

그 중에서 공선자가 번역 시스템에 대해 살펴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예상대로 그에게 맞춰서 화폐 단위와 가치가 환전되어 들리고 보이게 만들어주는 기능이 첨부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거기에 화폐뿐만 아니라 길이나 무게도 마찬가지로 나한테 맞춰서 의역해준다는 건가. ……이런 시스템을 구성할 수 있는 그 위대한 존재라는 존재는 도대체 어떤 존재인 거야?’

새삼스럽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에볼루션 시스템을 만든 존재에게 경이와 공포가 떠오르는 공선자.

허나, 감정 제어가 그 경이와 공포를 억눌렀기에 그는 곧바로 다른 사고로 신경을 돌릴 수 있었다.

‘……일단 도시 밖으로 나가서 쌈닭의 서식지로 갈까. 가는 길에 사람이 없는 장소에 도착하면 인벤토리의 기초 장비부터 확인하자.’

기초 장비 외에도 일주일 치의 식량이 있었지만 공선자는 그것은 건들지 않기로 하였다. 당장 여관에서 일주일 정도 식사를 공짜로 주는데 굳이 건들 이유가 없는 것.

이 일주일 치 식량은 비상식량으로 남겨두도록 하는 것이었다. 공선자는 아낄 수 있을 때 뭐든지 아껴두는 타입이었다.

이런 타입은 게임 같은 것을 할 때 꼭 최종 보스까지 깬 뒤에도 사용하지 않는 아이템이 남는 타입이라고 하는데 까놓고 말해서 이건 공선자에게 해당하지 않는 이야기였다.

적절한 타이밍에 아껴두었던 아이템을 사용하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아낀다고 해서 아이템이 남지 않는다, 라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공선자의 인생 자체가 워낙 하드 난이도였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아낄 수 있을 때 아끼려고 해도 결국에는 사용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 와버리는 그런 인생.

뭐? 최종 보스까지 아이템을 아낀 결과 아낀 아이템을 사용할 기회도 없이 최종 보스를 클리어했다고?

그런 이야기 공선자에 한해서는 결코 존재하지 않았다. 최종 보스까지 아이템을 아끼고 아껴 전부 투자해야지 간신히 클리어할 수 있을 수준의 난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종 보스까지 도달하는 과정에서 꼭 필요한 아이템을 살아남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사용해서 결과적으로 열심히 아이템을 아끼고 아꼈음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아이템이 없어 최종 보스를 공략하지 못하고 막혀버리는 타입.

그것이 바로 공선자의 인생인 것이다. 그러니 정말로 아낄 수 있을 때는 뭐든지 아껴둬야 했다.

이렇게 아낀다고 해도 최종적으로 꼭 필요할 때 필요한 물건이 있을 확률이 매우 낮은 것이 공선자가 살아온 인생이라는 녀석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아낄 수 있을 때 뭐든지 아껴두는 습관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지 않은가? 그런 이유로 일단 일주일치 식량은 내버려두기로 한 공선자.

단, 인벤토리에 들어가 있는 기초 장비 상자와 일주일치 식량이 하나의 물건……이라고 해야 할까, 하나의 상자에 보관되어 있는 것으로 취급되고 있기에 일단 인벤토리에서 꺼낸 뒤 분리한 뒤에 다시 인벤토리에 넣어둘 필요가 존재했다.

‘남쪽으로 쭉 가면 된다고 했지. ……아니, 잠깐만 기다려 봐. 그런데 남쪽이 어디야?’

그렇게 잠깐 동안 인벤토리 창을 살펴보던 공선자는 도시 밖으로 이동하려다가 떠오른 생각에 인상을 구길 수밖에 없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까 오늘 막 이 플라워라는 이름의 차원에 떨어진 공선자가 어느 쪽이 북쪽이고 어느 쪽이 남쪽인지 어찌 알겠는가?

이쪽 세계에서 살아온 시간이 어느 정도 된다면 북쪽과 남쪽을 구분할 기준을 알고 있을 수도 있었다.

예를 들어서 어느 곳에 섰을 때 저쪽에 보이는 건물이 있는 방향이 북쪽이고 반대쪽의 방향이 남쪽이다, 라는 식으로 말이다.

허나, 공선자에게는 그런 지식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남쪽과 북쪽을 구분할 수 있을 리가 없는 것.

‘……이렇게 된 거 일단 이 소나타라는 이름의 도시를 조금 둘러보다가 갈까.’

도시를 전체적으로 둘러보다 보면 대충 남쪽 성문이 어디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도시 자체가 넓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무지막지하게 넓은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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