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화 〉제 01계-챕터 02: 의도치 않은 인연
그 날카로운 시선에 공선자가 땀을 뻘뻘 흘리며(물론 연기다)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을 때 경비병으로 보이는 남자 2명 중 한 명이 다시금 입을 열어 물어보는 것이었다.
“그래, 의뢰를 하러 나간다고 치고 굳이 이 시간에 나가는 이유는? 거기에 어떻게 봐도 장비가 부실해 보이는데?”
“어, 저기……. 개,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급하게 돈이 필요해서……, 마, 말씀드리기가 곤란한데…….”
머릿속에 떠오른 수상하기 그지없는 의문을 직설적으로 물어봐 오는 사내의 질문에 공선자는 그저 이처럼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 대답을 돌려주면서도 더욱더 수상함을 배가시켜주는 대답이라는 것은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진실을 알려줄 수도 없지 않은가? 사실은 제가 에볼루션 시스템이라는 권능을 습득해서 스킬로 밤에 잠을 거의 자지 않아도 되거든요?
그래서 그 시간에 의뢰 좀 달성하고 몬스터 좀 경험해볼 법 이 시간에 밖으로 나가는 겁니다! 라고 설명한다고 해도 눈앞의 남자가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을 테니 말이다.
거기에 장비로 말할 것 같으면 일단 도시 밖으로 나간 뒤에 기초 장비 세트를 꺼낼 생각이었다.
그럴 게 도시 내부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밤임에도 불구하고 큰길을 따라 걷다 보면 가끔씩 공선자와 마찬가지로 밤거리를 배회하는 이들을 만나볼 수 있을 정도로.
그렇기에 공선자는 도시 내부에서 섣불리 인벤토리 내에서 물건을 꺼낼 수가 없었다. 공선자는 아무도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누군가가 보고 있을 확률이 0%가 아니었기 때문.
때문에 일단 도시 밖으로 나간 뒤에 장비를 꺼내볼 생각이었는데 여기서 그것을 곧이곧대로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공선자는 일단 ‘개인적인 사정이니까 질문 자제 좀!’ 이라는 태도를 고수해보는 것이었다.
물론 이런 태도를 고수하면 더욱더 수상해 보인다는 사실이야 알고 있었다. 허나, 어차피 지금도 공선자는 수상한 사람이었다.
그러니 더욱더 수상해져 봤자 뭐가 달라지겠는가? 물론 한계 이상의 수상함에 그대로 쇠고랑을 차고 감옥으로 직행하는 건 사양하고 싶지만 설마 개인적인 사정 좀 숨긴다고 그대로 체포해 가겠는가?
……이쪽 현대 지구가 아니라 다른 세상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럴 경우도 아예 없지는 않겠지.
그러니 말하고 싶지 않다, 라는 게 아니라 말하기 곤란하다, 라는 단어를 사용한 거다. 즉, 정 알고 싶으면 말해줄 수는 있다.
하지만 말하지 않고 넘어가도 된다면 말하지 않고 넘어가고 싶다, 라는 자신의 의사를 은근슬쩍 상대에게 전하는 것.
그리고 그런 공선자의 발언에 보통 상대가 보일 태도는 2가지였다. 이게 어디서 수작을 부리냐며 짜증을 내며 빨리 불라고 멱살을 잡고 흔드는 사람.
혹은 귀찮아서 그냥 상종을 하지 않는 사람. 그리고 공선자에게는 고맙게도 눈앞의 경비병은 후자였다.
“……그래, 그럼 됐어. 하긴, 이 도시에서 사정 하나 없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냐. 가봐라.”
“에? 선배님. 이렇게 보내도 되는 건가요? 아무리 봐도 수상한데요? 조금 더 추궁을 해보는 게…….”
“야, 네가 성문 쪽에 배치된 지 얼마 안 되어서 모르나 본데 이렇게 대놓고 수상한 녀석들은 오히려 추궁을 한다고 해도 뭐가 안 나와. 대부분이 진짜로 복잡한 사정을 가진 사람들이거든. 진짜로 수상한 놈들은 절대로 자기들이 수상하다는 티를 안 내는 놈들이니깐 말이지.”
물론 그런 이유만으로 눈앞의 경비병으로 보이는 사내가 그냥 공선자를 통과시켜준 것은 아니었다.
“하, 하지만 그런 논리여서야 수상한 사람들은 그냥 죄다 통과시켜줘도 된다는 거 아닙니까?”
“야, 그가 말이 되냐? 수상한 사람이 있다면 당연히 붙잡아야지. 단, 신분을 보증할 수 없는 경우에 말이야. 이 녀석은 수상하기는 하지만 여기 확실하게 신분이 보장되어 있잖아?”
그렇게 말하며 경비병으로 보이는 사내는 공선자에게서 건네받았던 증명패를 한 번 자신의 동료에게 흔들어 보여준 뒤에 다시 공선자에게 돌려주며 말을 이어가는 것이었다.
“넌 모르나 본데 모험가 증명패는 상당히 신뢰도가 높은 증명패야. 원래라면 증명패만 보고 그냥 통과시켜주는 게 가능할 정도로 말이지. 용병의 경우에는 조금 이것저것 추가로 조사할 게 있지만 말이야.”
……모험가의 증명패라는 것은 공선자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신용도가 있는 물건이었던 모양이었다.
하긴, 당장 증명패를 등록할 때 자신의 혈액 같은 것을 요구하거나 하지 않았는가? 그랬던 것을 생각하면 도용 같은 것도 힘들 테니 믿음이 가도 이상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런 이유로 통과. 증명패가 있는 이상은 범죄자는 아닐 테니깐 말이지. 범죄자가 아니라면 우리한테 딱히 조사 권한 같은 게 있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은 알고 있지? 그러니까 그냥 통과시켜줘.”
“……선배 솔직히 이야기하시죠? 그냥 조사하는 게 귀찮아서 그러는 거죠? 그래서 이것저것 있어 보이는 논리로 그냥 넘어가려는 거 아닙니까?”
“이런! 그게 그렇게 티가 났나?”
문지기 중 한 명이 낄낄거리면서 긍정하는 목소리에 다른 문지기가 깊은 한숨 소리를 내쉬는 것이었다.
그리고서는 어쩔 수 없다는 의미가 담긴 시선을 공선자에게 향하더니 성문을 막고 있던 몸을 옆으로 치우며 입을 여는 것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선배의 논리 자체가 완전히 파탄 난 것은 아니니깐 말이죠. 좋아요. 일단 통과시키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면 전부 선배 책임이니깐 말이죠?”
“허어! 그건 아니지! 같이 문지기를 하고 있는데 책임 소재를 나한테만 돌려서야 쓰겠나! 솔직히 너도 이런 늦은 밤에 사람 붙잡고 꼬치꼬치 캐묻거나 하는 거 귀찮잖아? 그러니까 우리 좋게좋게 넘어가자고.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겨도 우리 두 사람이 입만 싹 닫고 있으면 누가 알겠어?”
“하, 진짜로 선배는……. 아, 진짜! 저는 정말로 뭔 일이 생겨도 모르니깐 말이죠?!”
잠깐 동안 서로 실랑이를 하는 것 같던 경비병들이었지만 이내 결론을 내린 것인지 선배라고 불리던 문지기가 공선자에게 슬쩍 시선을 주며 말을 걸어왔다.
“뭐해? 비켜줬는데 지나가지 않고? 아, 혹시라도 사고에 휘말려도 의리가 있으니까 우리가 통과시켜줬다니 하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 거다?”
문지기의 그와 같은 발언에 공선자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운이 좋게도 의심을 받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문제 없이 성벽을 통과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이 이상 굳이 문지기의 신경을 건드릴 생각은 없었던 것. 그렇기에 공선자는 아무 말도 없이 돌려받은 증명패를 다시 주머니에 넣고 조심스럽게 성문을 지나가는 것이었다.
……성문이라고 해도 거대한 성벽에 맞춰서 거대하게 만들어진 성문이 아니라 거대한 성문 안에 따로 구축된 작은 성문이었지만 말이다.
거대한 문 안쪽에 작은 문을 달아놓은 방식으로 거대한 문은 한 번 열려고 한다면 상당한 인력을 사용해야 하고 거기에 여러 가지 절차를 걸쳐야 하는 것으로 보였다.
반대로 작은 문은 평소에 성문을 통과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문인 것인지 크게 인력이 들지 않고 특별한 절차 같은 것이 필요한 것으로 보이지도 않은 것.
아마 거대한 성문은 전쟁이나 무슨 행사 같은 것이 할 때 많은 인력이 들락날락할 때나 사용하는 것 같았다.
아니면 거대한 공성 무기 같은 것, 혹은 귀족들의 마차가 지나갈 때나 열리지 않을까 추측하는 공선자.
‘아니, 생각해보면 아침에 올 때는 저 거대한 성문이 열어져 있었던 것 같은데…….’
그랬던 것을 떠올리면 거대한 성문을 낮에 주로 이용하는 성문이고, 작은 성문은 현재의 공선자와 같이 밤에 성문을 들락날락 거리는 이들이 주로 이용하는 성문 같았다.
하긴, 굳이 귀족이 아니라고 해도 마차를 타고 오는 이들도 있고, 거기에 상단 같은 경우에는 대규모적으로 인력이 움직이는 만큼 밤은 모를까 아침에는 거대한 성문을 열어두는 쪽이 효율적이기는 할 것이다.
그런 추측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조심스럽게 경비병으로 보이는 문지기가 열어준 작은 성문을 통과하던 공선자가 문뜩 떠오른 의문을 입에 담았다.
“아, 저, 저기……. 그런데 통행세 같은 건 안 걷는 건가요?”
“통행세? 아, 아아. 확실히 그런 걸 걷는 영지가 있다는 말을 들은 것 같기는 한데 적어도 우리 영주님이 다스리는 영토에서 통행세를 걷는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는걸? 우리 영주님은 보다시피 던전 도시인 소나타를 소유하고 계시는 분이어서 말이지. 듣기로는 엄청나게 돈이 많다는 모양이야. 그러니 굳이 통행세 같은 푼돈을 거둘 이유가 없다나, 뭐라나…….”
“저기 선배님? 제가 알기에는 소나타는 모험가나 용병들 때문에 워낙 인구 유동이 많아서 통행세를 걷게 되면 불만이 폭주할 수도 있어서 그런다고 알고 있는데요.”
“뭐, 그런 이유도 있을 수 있겠지. 우리도 정확한 이유는 몰라. 그냥 소나타는 통행세를 걷지 않는 도시라고만 알고 있어.”
단, 모든 도시가 이곳과 같은 것은 아니니 주의해두라고 이야기하는 문지기의 이야기에 공선자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돌아올 때는 적어도 해가 뜬 다음에 돌아와 줬으면 좋겠는데? 나가는 거라면 몰라도 들어오는 거는 아무리 귀찮다고 해도 이것저것 꼼꼼하게 따질 필요가 있거든.”
즉, 나가는 건 귀찮으니 대충 내보내 주는 게 가능해도 들여보내는 것은 그것이 힘드니 되도록 자신들을 귀찮게 하지 않기 위해서 날이 밝은 다음에 오라고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어두운 밤보다는 낮이 검문이 더 느슨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을 테니 말이다. 거기에 저들은 아마도 밤에 문을 지키는 문지기들 같으니 아침에는 교대를 할 터.
그런 이유로 결국 자신들을 귀찮게 하지 않기 위해서 공선자에게 낮에 돌아오라고 이야기해주는 것이었다.
공선자 역시 검문이 느슨한 편이 더 편했기에 알았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여주는 것. 밤과 다르게 낮이라면 증명패가 있는 만큼 별 의심 없이 검문을 통과할 수 있을 테고 말이다.
‘……나온 건가.’
그리고 마침내 공선자는 성문을 넘어 성벽 밖으로 나올 수가 있었다. 혹시라도 딴죽을 걸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조심스러운 태도를 연기하며 성문을 완전히 넘어온 공선자는 어느 정도 성벽에서 멀어진 뒤 주변을 둘러보았다.
현재는 늦은 밤이었다. 공선자가 도시 안을 돌아다니며 어느 정도 시간을 소모하기는 했지만 적어도 새벽이 밝아올 정도의 시간을 사용한 것은 아니었다.
시계가 없는 지금 공선자로서는 시간을 예측하기 어려웠지만 적어도 아침이 밝으려면 아직까지 한참은 남았다는 사실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즉, 주변이 어둡다고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다는 이야기. 도시 안에서의 밤과 도시 밖에서의 밤은 그 느낌이 달랐다.
도시 밖에서의 밤이 더욱 서늘한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할까? 당연하게도 위험도 역시 비교를 불허라 정도로 차이가 났고 말이다.
“……길을 따라 쭉 가라고 했던가.”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벽에서 어느 정도 떨어지자 공선자의 발걸음에서 망설임이 사라졌다. 감정이 완벽하게 제어되고 있는 지금의 공선자에게 공포는 존재하지 않았다. 거기에 다시금 이야기하지만 그는 낮보다 밤이 더 친숙하기 그지없는 삶을 살아온 인물.
이제 와서 한 치 앞도 보기 힘들 정도로 주변이 어둡다고 해서 망설일 리가 없는 것. 오히려 방금 전까지 문지기들 앞에서 보이던 위축된 태도가 거짓말이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가벼운 발걸음으로 길을 따라 나아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살짝 쌀쌀하군. 훈련을 받은 내가 쌀쌀하다고 느낄 정도면 상당한 추위인 건데 말이지.’
어두운 밤길을 혼자 걸으면 목적지인 쌈닭의 서식지까지 이동하는 공선자. 근처에 사람이 없다는 확신이 들어서 그런 것인지 그는 더 이상 본래의 자기 자신을 연기하지 않았다.
그저 냉정하기 그지없는 시선으로 어둠을 꿰뚫는 시선으로 주변을 살펴보며 조심스럽게, 그러면서도 적당한 수준의 속도로 길을 걸어가는 것이었다.
‘내가 있는 이 대륙의 이름은 윈터, 분명히 북극에 가깝게 위치해서 1년 중 절반 이상이 눈에 덮인 대륙이라고 했어. 그걸 생각하면 그나마 이 정도 수준의 기온인 게 따뜻한 거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적어도 눈이 올 수준의 기온은 아니었다. 그걸 생각하면 앞으로 추워지면 추워졌지 결코 따뜻해지지는 않을 것 같았다.
‘할 수 있으면 두꺼운 옷도 미리미리 준비해둬야겠군. 아니면 추위에 내성을 갖게 해주는 스킬을 익히던가. 어느 쪽이든 일단 몬스터를 사냥해보는 게 시작이라고 할 수 있겠어.’
모험가로서 돈을 벌든, 아니면 레벨을 올려서 스킬 포인트를 벌든 결국에는 몬스터를 한 번 사냥해 봐야 제대로 이쪽 세계에서의 생활을 시작한다고 할 수 있을 터.
그렇기에 공선자는 복잡하게 표면의식으로 떠오르는 감정을 감정 제어로 억누르며 좀 더 빠르게 쌈닭의 서식지로 이동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