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3화 〉제 01계-챕터 02: 의도치 않은 인연
……하긴, 생각해보면 당장 공선자만 해도 초능력 중 하나인 시안을 사용할 때 무슨 영화에서 나오는 마법사처럼 지팡이 같은 것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그러니 스킬을 사용해 마법과 비슷한 현상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초능력, 정확히는 권능인 에볼루션 시스템이 일으키는 ‘모조권능’에 속하는 현상.
요컨대 공선자가 사용하던 시안과 같은 맥락의 이능이라는 이야기였다. 그런 만큼 초능력자들이 대가만 지불하면 아무런 장비도 없이 초능력을 사용할 수 있었던 것처럼 현상을 일으키는 계열의 초능력을 사용한다고 해도 딱히 무슨 무기가 필요하지 않은 게 당연한 것일 수도 있었다.
‘……아마도 나중에 가면 스킬, 즉, 모조권능을 강화시켜주는 계열의 무기들이 나올 수도 있지만 그건 좀 더 나중에 간 뒤의 이야기겠지.’
그야 그런 옵션이 붙어 있는, 요컨대 게임에서 레어 아이템 취급을 받을 수 있는 장비를 초반부터 쥐여줄 리가 없지 않은가?
‘권능이 아니라 마법을 사용하는 이쪽 세계의 마법사들은 잘 모르겠지만 말이야.’
똑같이 불꽃을 다룬다고 해도 아마 마법과 권능을 다른 이치가 적용될 터. 그런 만큼 설령 비슷하게 보인다고 해도 권능과 마법은 완전히 별개의 체계일 것이다.
그러니 권능이 지팡이나 뭐, 그런 쪽의 매개체가 필요하지 않다고 해도 마법도 그런다는 보장은 없는 것.
‘흐음, 생각해보면 마법 쪽은 당장 신경을 쓸 부분이 아닌가. 마법이 매개체가 필요한지, 아닌지를 지금의 내가 알아봤자 딱히 쓸 때도 없고 말이야.’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권능과 마법은 다른 체계의 이능이었다. 그런 만큼 마법에 대해서 알아봤자 앞으로 에볼루션 시스템이라는 이름의 권능으로 성장해 나아가야 하는 공선자에게는 딱히 도움이 되지 않는 것.
나중에 마법사와 싸우게 될 일이 생기면 모를까 지금은 딱히 도움이 되지 않는 지식이라는 소리였다.
그러니 그보다는 당장 자신이 어떤 무기를 골라야 할지부터 결정하는 쪽이 정답이었다. 애초에 지팡이니 뭐니 하는 것도 결국 에볼루션 시스템이라는 권능을 성장시킬 때 지팡이라는 무기가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에서 떠올린 화두가 아닌가?
그렇기에 공선자는 잠깐 동안 고민에 잠겼던 화두를 미루어두고 다시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검은색 박스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냉병기의 ㄴ자도 모르던 사람들이 갑자기 차크람이나 연검과 같은 무기들을 다룰 수 있을 리가 없어. 오히려 자멸을 할 확률이 높겠지. 그리고 그건 나한테도 해당하는 이야기야.’
공선자라고 해도 처음 다루는 무기를 달인급으로 다룰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가 평범한 사람들을 기준으로 많은 전투 경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허나, 그것이 그가 그 어떤 무기라고 해도 어렵지 않게 다룰 수 있다, 라는 이야기는 아닌 것.
그가 가진 전투 경험은 어디까지나 그가 주로 다루던 무기를 통한 싸움들로 한정되어 있다는 소리.
그럴 것이 총을 잘 다루던 사람이 검이나 창도 잘 다룬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지 않은가?
만약 총이라도 쥐여준다고 여태까지의 경험을 통해서 쌓아온 기술들을 십분 발휘할 자신이 있었지만 검은색 박스 표면에 떠오른 스크린을 아무리 내려 보아도 총이라는 단어를 찾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결국 공선자도 거의 다루어본 적이 없는 냉병기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인데……. 아무리 전투의 프로라고 해도 다루어 본 적도 없는 무기를 갑자기 프로 수준으로 다룰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도 챌린저 전원이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점만큼은 동일하니까 어떤 무기를 선택한다고 해도 그렇게 큰 차이가 나는 건 아니겠지.’
총을 주로 다루어오던 공선자의 입장에서는 솔직히 검이나 창이나 활이나 그게 그거라는 느낌이 있었다.
그야 총과 다르게 어떤 무기든 결국 그것을 다루는 ‘기술’이라는 것이 필요한 법. 그리고 이 기술에 따라서 사용자의 우열이 갈라질지언정 무기의 우열이 갈라진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그였으니 말이다.
공선자가 알고 있는 소수의 초능력자 중에서는 자신의 초능력을 이용해서 단검 두 자루로 총을 든 이들을 학살하던 괴물도 존재했다.
검과 총의 무기로서의 성능을 생각하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 하지만 그 있을 수 없는 일을 단검 두 자루를 든 이는 전투 기술과 자신의 초능력(권능)을 이용해서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것을 생각한다면 검이든 창이든 활이든 결국 무기로서의 우열은 없는 거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는 것.
그야 기술에 약간의 이능이 더해지는 것으로 검과 총 수준의 압도적인 무기의 성능을 뒤집어버린 것이다.
검과 창, 그리고 활의 리치나 그를 비롯한 성능에서 오는 우열 따위 마법이나 무술, 거기에는 심지어 과거 공선자가 초능력이라고 부르던 권능이라는 이능까지 포함하여 각종 이능이 넘쳐나는 이런 세계에서 의미를 갖겠는가?
결국 무기는 사용하는 이 따름이라는 것이다. 그런 만큼 챌린저들이 초반에 어떤 무기를 선택하든 같은 수준이라면 무기로 인한 전투력의 차이는 크지 않은 터.
‘물론 재능 같은 걸 생각한다면 자신에게 맞는 무기를 선택한 쪽이 성장 속도 면에서 압도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건 무기의 탓이라기보다는 사용자의 덕이라고 봐야겠지.’
이능이 넘쳐나는 세계인만큼 사람이 무기의 덕을 보는 것은 힘들 터, 오히려 무기가 사람의 덕을 보는 것은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역시 연검이나 차크람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다루면 자멸할 수도 있는 무기는 각하야. 재능이 있다면 모를까 재능이 없으면 기본적으로 성장 속도가 둔화 될 수밖에 없어.’
단, 아무리 무기의 우열이 없다고 해도 연검이나 차크람과 같은 종류의, 다루기 위해서 기본적인 기술이 필요한 무기들은 제외였다.
그야 제대로 다루기 위한 기초적인 기술을 배우기 위해 필요한 시간이 요구되는 만큼 다른 무기들에 비하여 시간을 더 투자할 수밖에 없는 것.
‘……초능력, 아니, 이제는 권능이라고 할까. 그래, 권능을 동원한다면 무기를 다루는 기술을 습득하는 초반 시간이 줄일 수 있을지도 모르지.’
공선자만 해도 과거 시안이라는 권능으로 도움으로 보다 무기를 수월하게 다루어낼 수 있었던 경험이 있으니 말이다.
당장 상점 시스템에서 스킬 목록을 확인하면 확실히 무기에 관련된 스킬(모조권능)이 존재했고 말이다.
이런 스킬들을 구매한다면 설령 연검이나 차크람과 같은 무기라고 해도 처음부터 어렵지 않게 다루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을 터.
‘하지만 그건 SP를 소모한다는 가정 하의 이야기야. 가뜩이나 배우고 싶은 스킬들이 많은 상황에서 굳이 다룰 수 있는 무기가 있음에도 불과하고 다른 무기를 다루겠다고 SP를 소모해 스킬을 습득하는 것도 바보 같은 이야기지.’
거기에 주로 무기를 다루는 것을 보정해주는 스킬들은 마스터리 스킬로서 분류가 되어 있는데 이런 마스터리 계열의 스킬들은 SP가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도 습득하는 게 가능했다.
보통 직업을 습득하게 된다면 해당 직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마스터리 스킬을 직업 코어 스킬로 자동적으로 습득하는 경우가 이와 같은 방식으로 마스터리 계열의 스킬을 습득할 수 있는 것.
이와 같은 요소를 생각한다면 마스터리 스킬을 습득하기 위해서 SP를 소모하는 것은 경우에 따라 낭비로 보일 수도 있는 법.
‘물론 아무런 무기도 다룰 수 없을 때는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말이야. 거기에 마스터리 스킬이 스킬인 이상 같은 무기를 다룬다고 해도 마스터리 스킬을 가지고 있는 쪽이 나중에 가서는 더 강할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해야 해.’
초반이야 마스터리 스킬을 가진 사람과 처음부터 무기를 다루는 법을 아는 사람의 차이가 그렇게 극심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아니, 오히려 마스터리 스킬을 가진 사람보다 기술적으로 더 많은 세월 동안 해당 무기를 다루어온 사람이 더 강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마스터리 스킬은 말 그대로 스킬, 즉, 모조권능의 한 축인 것이다. 그런 만큼 마스터리 스킬은 성장하는 것에 따라 단순한 기술을 뛰어넘을 수도 있는 것.
그야 단순한 무기술은 어디까지나 ‘물리법칙’ 속에 포함되었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럴 것이 검은 아무리 미친 듯이 잘 휘두른다고 해도 검이 막 공간을 뛰어넘거나 하지는 않지 않은가?
하지만 마스터리 스킬은 스킬, 즉, 모조권능인 만큼 이능적인 요소를 통해서 물리법칙조차 무시하는 게 가능할 수도 있었다.
그런 만큼 결국 무기를 다룰 것이라면 해당 무기의 마스터리 스킬을 익히는 쪽이 정답일 터. 하지만 말했다시피 마스터리 스킬을 습득하는 것에는 SP가 소모되는 상황.
거기에 직업을 습득하게 된다면 해당 직업에 걸맞은 마스터리 스킬을 습득할 수도 있었다.
그것을 생각한다면 적어도 직업은 얻기 전까지는 마스터리 스킬을 습득하는 것을 지양하는 게 좋을 수도 있다는 것.
무기를 다룰 것이라면 해당 무기의 마스터리 스킬을 습득하는 게 정답이지만 이것을 굳이 SP를 소모해서 얻지 않아도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단, 이것은 어디까지나 모종의 무기를 다룰 수 있는 기술을 지녀 직업을 얻기 전까지 마스터리 스킬이 필요 없을 경우의 이야기였다.
만약 마스터리 스킬이 없다면 그 어떤 무기도 다룰 수 없는 상황이라면? 당연히 무기 하나를 선택하고 그 무기에 맞는 마스터리 스킬을 초반부터 습득할 필요가 존재했다. 그리고 공선자의 경우 어느 쪽에 속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로 총을 사용했으니까 냉병기 중에서 제대로 다룰 수 있는 무기가 드물어.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없는 건 아니지.’
다행이도 화약 무기를 기본적으로 다루어왔던 공선자라고 해도 냉병기를 다루어본 경험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야 기본적으로 화약 무기에 사용되는 총알과 같은 요소들은 소모품인 것이다. 그때그때 보급을 할 수 있으면 괜찮았지만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겠는가?
심지어 공선자는 전 세계를 적으로 돌린 희대의 테러리스트인 것. 그러니 마음대로 보급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런 만큼 탄약과 같은 소모품이 필요 없는 냉병기를 사용하는 방법을 필히 익혀둘 필요가 있었다.
단, 21세기 지구에서의 이야기였던 만큼 가지고 있으면 딱 봐도 수상한 장검이나 창, 활과 같은 무기들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아니, 애초에 활의 경우에는 사용되는 화살이 탄약과 같은 소모품이 아닌가? 그런 이유로 당신 공선자가 사용하던 몇 안 되는 냉병기의 종류는 다름 아닌 ‘단검’과 ‘권각’이었다.
두 가지 모두 가지고 다녀도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아 수상하지 않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는 무기들.
단검, 좀 더 구체적으로는 나이프라고 불리는 무기야 호신용으로 가지고 다니는 사람들도 많았고 권각의 경우에는 그냥 공선자의 신체가 무기라는 이야기였다.
그러니 사지가 멀쩡하게 붙어서 돌아다닌다고 해도 의심을 받지 않는 게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런 이유로 공선자는 검이나 창 같은 무기를 다룰 수는 없어도 적어도 단검이나 너클, 혹은 각반 정도의 무기는 다룰 수 있는 상황이었다.
‘못 다루면 살아남을 수 없는 나날이었으니깐 말이야. 자, 그런 이유로 내가 골라야 할 무기는 단검과 너클, 각반, 이 셋 중에서 하나라는 건데…….’
나중에 다른 무기를 사용하고 싶어진다고 해도 그것은 적어도 직업을 선택하여 해당 직업의 마스터리 스킬을 얻을 수 있는 레벨인 10레벨에 도달한 뒤의 이야기였다.
그 전까지는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무기인 단검과 너클, 각반으로 버텨야 한다는 이야기. ……아니, 그런데 잠깐만.
‘……생각해보니까 마스터리 계열의 스킬들은 죄다 병과 제한이 붙어 있는데? 이건 즉, 해당 병과에 속하는 직업을 하나라고 가지고 있지 않은 이상은 마스터리 스킬 못 익힌다는 거잖아?’
……그렇다면 결국 마스터리 스킬을 습득하기 위해서는 하나라고 직업을 얻을 수 있는 레벨 10에 도달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
‘애초에 지금 나는 마스터리 스킬을 습득할 수 있을 정도의 스킬 포인트를 가지고 있지도 못하고 말이야. 소지하고 있던 SP가…….’
슬쩍 스킬 창을 열어서 확인해본 결과 현재 공선자가 가지고 있는 스킬 포인트는 단 3에 불과했다.
이것은 아마 현재 공선자의 직업, 챌린저가 레벨이 1이기에 이 1이라는 레벨에서 얻을 수 있었던 스킬 포인트에 해당할 터.
1레벨에 3점을 시작으로 10레벨까지 같은 양의 SP를 총 10번을 지급하는 것으로 30의 스킬 포인트를 지급하는 직업인 챌린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