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4화 〉제 01계-챕터 02: 의도치 않은 인연
그 챌린저의 직업 덕분에 현재 공선자는 3의 스킬 포인트를 가지고 있었지만……. 고작 3에 불과한 스킬 포인트로는 그 어떤 스킬도 습득할 수가 없었다.
상점창에서 스킬들을 살펴본 결과 스킬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당장 익힐 수 있는 노멀 등급의 스킬들은 평균 20의 SP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
이런 상황에서 스킬 습득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적어도 레벨 10을 찍어서 30의 스킬 포인트를 벌어야지 간신히 1개의 스킬을 습득할 수 있는 수준인 것이었다.
‘즉, 이건 다시 말해서 그 어떤 무기를 다루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마스터리 스킬을 습득해서 곧바로 자신이 선택한 무기를 다루어내는 방법은 사용할 수 없다는 이야기지?’
그야 마스터리 스킬을 익히려면 전제조건으로 그 어떤 직업이든 1가지 직업을 습득해서 병과 제한을 충족해야 하니 말이다.
즉, 스킬 포인트를 아낄 생각이 없다고 해도 현재의 여러 상황을 생각한다면 결국에는 자신이 가장 잘 다룰 자신이 있는 무기를 선택해야 한다는 결과에 도달하는 것.
그야 마스터리 스킬을 당장 습득할 방법이 없는 이상 어디까지나 자신의 힘으로 이 박스를 통해서 지급 받은 기초 무기를 다루어내야 하는 상황이었으니까.
‘……쫌 친절한가? 하고 생각했지만 결국에는 이런 식이군. 스스로 싸울 줄 모르는 이들까지 배려하지는 않는다는 건가?’
처음부터 권능이라는 이름에 의지하게 하지는 않겠다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그냥 난이도가 x망인 거든지. 어느 쪽이든 공선자로서는 달갑지 않았다.
‘결국 뭐가 되었던지 내가 다룰 수 있는 무기를 선택하는 게 이득이라는 거군. 나중에 다른 무기의 마스터리 스킬을 얻게 된다고 해도 그동안 직접 다루어야 할 테니깐 말이지.’
그렇게 잠깐 동안 고민하여 마스터리 스킬을 비롯한 여러 요소를 고려한 끝에 공선자는 결국 한 가지 무기를 선택하는 것이었다.
‘고르는 건 단검. 단순히 무기로써만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할 수 있을 테니깐 말이지.’
무기는 리치가 길면 길수록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기 마련이었다. 그러니 안전하게 싸우기 위해서는 리치를 고려하여 활이나 창을 골라야 하겠지만 그처럼 리치를 고려한다고 해도 공선자에게는 단검이 더 나았다.
말했다시피 창과 활을 써본 적도 없지만 적어도 단검을 다루어본 경험은 있는 것. 그 경험을 생각한다면 오히려 공선자의 경우에는 처음 쓰는 창과 활보다는 단검 쪽이 더 안전하다는 이야기.
설령 리치가 창과 활보다 훨씬 짧아 근접하여 전투를 벌여야 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선자가 쌓아온 경험을 그냥 가져다가 버려야 하는 창과 활보다는 그의 경험을 십분 이용할 수 있는 단검 쪽이 더 생존율이 높을 터였다.
또한 공선자가 생각한 것처럼 단검은 단순히 무기로서의 용도로만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날이 있는 도구가 요구되는 작업에 사용될 수 있으며 이 경우 당연히 긴 날을 가진 장검보다 훨씬 쉽게 작업을 진행할 수 있을 터.
예를 들자면 몬스터의 사체를 도축하거나, 장작이 필요할 때 나뭇가지를 베어오거나 혹은…….
‘함정을 만들 때 이것저것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지.’
물론 무기로써도 사용할 수 있었다. 요컨대 현재 공선자에게 있어서 단검이야말로 가장 다루기 쉽고, 또 여러모로 사용하기 편한 ‘도구’이자 ‘무기’라는 이야기.
그렇기에 공선자는 검은색 박스에 떠오른 스크린을 통해서 처음에 지급받을 무기를 단검으로 지정하는 것이었다.
‘글자를 단검으로 고정시킨 뒤에 열기 버튼을 터치하면…….’
선택이 끝났으면 결과만을 확인하면 되는 이야기. 그렇기에 공선자가 조작을 끝낸 뒤 검은색 상자를 살펴보고자 하는 순간 곧바로 상자에서 반응이 돌아오는 것이었다.
푸쉬쉬쉬쉬!!!!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짐작하기 힘들 정도로 정밀하게 만들어진 상자는 말했다시피 이음새조차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밀봉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렇기에 조작이 끝난 순간 각 상자의 모서리 부분에서 증기로 보이는 기체가 뿜어져 나오는 순간 공선자는 흠칫, 하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열린다?’
그리고 그렇게 증기가 뿜어져 나온다는 것은 상자의 모서리 부분의 연결들이 끊어졌다는 이야기.
그렇기에 상자에서 증기가 전부 뿜어져 나오는 순간 검은색 박스가 마치 전개도처럼 열리며 그 내부에 담긴 물건들의 정체를 공개하는 것이었다.
‘……과연, 말 그대로 기초 장비들을 지급한다는 건가.’
검은색 상자는 열리는 순간 그 내부에 담고 있던 물건들의 모습을 드러내고 그대로 빛에 녹아드는 그림자처럼 그 자취를 감추는 것이었다.
있었는데, 없습니다, 라는 드립을 그대로 실현하는 것처럼 소멸해가는 상자의 새삼 자신이 물리법칙 따위 개밥 말아먹은 세계에 존재한다는 것을 실감하면서도 일단 모습을 드러낸 물건들을 집중해서 살펴보는 공선자.
상자 내부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다름 아닌 한 세트의 경갑 형태의 가죽 갑옷과 한 자루의 단검이었다.
조금 튼튼해 보이는 부츠를 비롯하여 간신히 중요 급소만을 보호하는 형태의 가죽 갑옷. 갑옷 자체가 옷 대신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면적이 넓지가 않은, 옷 위에 걸쳐 입어야 하는 형태의 경갑이었다.
아니, 솔직히 경갑이라고 말하기도 조금 미안할 정도로 부실해 보이는 갑옷. 단, 그래도 외관은 깔끔해 보이는 것이 신제품은 맞는 모양.
혹시라도 중고였으면 어디다가 클레임 넣어야 하는 거야? 라는 쓸데없는 사고를 진행하던 공선자는 일단 경갑을 착용하기로 하였다.
그래도 치명적인 급소들은 지켜주니 입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 처음에는 이것들은 어떻게 입어야 하나 고민하던 공선자였지만 이내 몇 번 살펴보는 것만으로 대충 감을 잡은 뒤에 어렵지 않게 착용하는 것이었다.
지구에서 이런 갑옷을 입어볼 경험은 없었지만 갑옷 못지않게 입기 힘들었던 방탄조끼나 특수한 환경에서 자신을 보호해주는 보호복 등을 입어본 적이 있던 공선자인 만큼 어렵지 않게 착용법을 깨우칠 수 있었던 것.
일단 이런 식으로 처음 입어 보는 옷들은 무리하게 입기보다는 착용순서를 먼저 숙지하는 게 정답인데 그 부분만 지킨다면 착용하는 것 자체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었다.
‘부츠가 생각보다 조금 불편한 느낌이 있기는 한데 그래도 내구성만 생각하면 지금까지 신고 있던 신발보다는 낫다.’
여태까지 신고 있던 신발은 어디까지나 천을 덧대어서 만든 신발이었다. 그렇기에 돌멩이 같은 것을 밟으면 꽤나 아팠던 상황.
그런데 천보다 훨씬 두꺼운 가죽으로 만들어진 신발을 신으니 이제 돌멩이를 밟아도 그다지 아프지 않았다.
이것만으로도 갑옷을 입기 잘했다는 생각을 떠올리던 공선자는 이내 가죽경갑을 전부 입은 뒤 검은색 상자가 토해낸 장비들 중 마지막 바닥에 떨어져 있던 장비를 들어 올리는 것이었다.
‘저쪽에서 사용하던 나이프에 비해서 조금 큰 감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라면 무리 없이 다룰 수 있을 것 같군.’
바닥에서 주운, 칼집이 씌워진 단검을 칼집에서 꺼내 살펴보던 공선자는 몇 번 단검을 허공에 대고 찔러본 뒤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단검을 사용해봤다고 해도 검의 품질에 대해서까지 잘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지금 자신이 들고 있는 단검이 명품인지, 아니면 겉만 깔끔한 쓰레기인지는 알 수 없는 상황.
하지만 몇 번 휘둘러보니 적어도 무게 중심은 무난하게 잡혀 있는 것 같았고, 거기에 검날을 손등으로 툭툭 쳐보니 내구력도 그럭저럭 괜찮은 것 같았다.
때문에 조심스럽게 사용하고 관리만 잘해주면 몇 달은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판단을 내린 공선자는 문제없다고 판단하고 뒤쪽 허리 부분에 찬 뒤에 그곳에 단검을 수납하는 것이었다.
‘신고 있던 신발은……. 인벤토리에 넣어둘까? 아니면 그냥 버릴까? 부츠가 다 닳는 상황을 생각하면 예비로 신고 다닐 신발이 있으면 좋기는 하겠는데…….’
애초에 지금 신고 있는 부츠가 다 닳게 될 때가 된다면 새로운 가죽 부츠를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던 공선자.
그렇다면 편하게 있을 때 불편한 부츠보다 편한 천 신발을 신기 위해서 보관한다는 방법도 있었는데…….
‘부츠의 밑창이 두꺼운 걸 생각하면 불편해도 그냥 부츠를 신고 다니는 게 내 발 건강에 좋을 것 같은데?’
그렇다고 신고 있던 신발을 팔자니 누가 사줄 것 같지도 않았다. 그렇기에 결국 그냥 신고 있던 신발을 대충 어디다가 버리기로 결정하는 공선자. 허나, 그 순간 문득 떠오른 발상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거 천이잖아? 찢으면 여러 가지로 이용할 수 있을 것 같기는 한데…….’
천이라고 해도 신발에 사용된 천이기에 상당히 두꺼운 재질의 천이었다. 아니면 그냥 천을 여러 개 덧댄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허나, 어느 쪽이든 사용하려고 한다면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현재 공선자가 떠올리고 있는 발상은 천을 사용하게 된다면 좀 더 무난하게 진행시킬 수 있는 발상이었고 말이다.
‘그러면 일단 인벤토리에 보관해둘까. 사용할 때 꺼내 쓰고 말이지.’
그렇게 결정을 끝낸 공선자가 이내 잠깐 자신의 몸 상태를 점검하더니 깊게 호흡을 들이쉰 뒤 내쉬는 것이었다.
입고 있는 옷 위에 조금 없어 보이는 가죽 경갑을 덧대어 입은 공선자의 모습은 어떻게 보아도 아마추어 모험가였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눈빛만큼은 그야말로 고요하게 가라앉은 바다와 다를 게 없을 정도로 잔잔했다.
처음으로 몬스터의 서식지에 들어가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 거기에 호흡마저 고르니 전신의 근육들 역시 적당한 수준으로 탈력된 상태였고 말이다.
아무리 평범한 사람과는 다른 경험을 쌓아왔다고 해도 당연히 미지에 대한 공포가 있기 마련이었다.
아니, 공선자가 쌓아온 경험은 애초에 그의 경험이 아니었다. 그의 반신의 인격이 쌓아온 경험.
그렇기에 현재 근본 인격으로서 활동하는 공선자는 경험만 많을 뿐 그 경험을 쌓으며 함께 성장했어야 할 ‘정신’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때문에 본래라면 몬스터라는 미지를 앞에 두고 공선자가 이렇게 냉정이 있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무리 경험이 많아도 겁을 먹고 과연 스스로의 걸음으로 몬스터의 서식지 내부로 들어갈 수 있을지조차 확실하지 않은 것.
그야 아무리 경험이 많아도 반신의 인격과 다르게 근본 인격은 오히려 다른 사람들보다 멘탈이 약한 겁쟁이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오히려 경험만 많기에 더욱더 겁이 많았다. 다른 사람들은 상상도 못할 끔찍한 인생을 제3자로서 늘 지켜봐 왔기에 더욱더 공포에 약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이들은 그저 막연하게 상상 밖에 못할 ‘최악’의 상황이라는 녀석을 공선자는, 근본 인격은 알고 있었다.
그 상황을 직접 겪으며 내성을 쌓아온 것이 아니었다. 그저 제삼자로서 실감 나게 그 상황을 ‘경험’해봤을 뿐이기에 내성 따위 있을 리가 없었다.
최악의 상황을 자신의 힘으로 극복한 게 아니었다. 그저 다른 이가, 자신의 반신이 극복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기만 했을 뿐이다.
그러니 내성이 없었다. 허나, 내성이 없지만 다른 사람들은 막연하게 상상 밖에 할 수 없을 것을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을 ‘경험’이 존재했다.
경험이 쌓인다면 그에 맞춰서 강대해졌어야 했을 정신. 하지만 현재의 공선자는 ‘경험’은 있을지언정 그에 맞는 ‘정신’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경험과 정신이 비례하지 않는 상황. 그렇기에 원래부터 어린아이처럼 소심했던 공선자는 더욱 겁쟁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
……허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공선자가 ‘감정’을 느끼고 있을 때의 이야기. 그 어떤 감정조차 느끼지 못하는, 그래, 공포라는 감정조차 제어되고 있는 지금의 공선자는 정신의 성장 유무와 상관없이 오로지 이성만을 통해서 움직이는 기계가 가까운 상황.
그렇기에 자신이 지닌 경험을 전부 활용할 수 있었다. 겁을 먹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었다.
효율만을 따진다. 생존에 필요한 요소만 구별하며 그 외에 필요 없는 것은 뭐든지 냉철하게 배제할 수 있는 상태.
정신과 경험이 서로 비례하지 않는다면 억지로라도 비례하게 만들면 되는 것이다. 현재 공선자의 상태가 바로 그런 상태인 것. 그렇기에 그는 완벽한 상태로 발걸음을 내딛는 것이었다. 이쪽 세계에서 모험가로서 살아가기 위한 걸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