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화 〉제 01계-챕터 02: 의도치 않은 인연
1만 원=1T라는 공식을 확인한 공선자는 잠시 인상을 구길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1원=1T라는 공식이 성립되도록 도저히 살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던 제4문명과 제5문명의 카테고리에 속하는 상품들은 도대체 어느 정도의 가치를 지녔다는 것인가?
‘하긴, 보니까 막 이족보행병기나 우주 전함 같은 것도 있던데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지. 아니, 어떻게 봐도 그림에 떡에 불과한 물건은 차라리 목록에 띄워 두질 말라고.’
설마 T만 잘 모으면 우주 전함에 건담도 살 수 있는 거야? 하고 약간 기대했던 자신이 바보 같이 느껴지는 공선자였다.
딱히 남자의 로망 같은 이유로 기대했던 것은 아니다. 그러기에는 현재 공선자의 감정 제어가 열 일을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저 저런 물건을 살 수 있으면 이 플라워 차원의 예정된 멸망이라는 녀석도 보다 손쉽게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던 것.
허나, 어떻게 봐도 이쪽 세계의 전 화폐를 털어 넣어도 구매하는 게 불가능할 것 같은 가격에 공선자는 깔끔하게 제4문명과 제5문명의 카테고리는 없는 취급하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그나마 제3문명은 구매 자체가 불가능한 것 같은 수준은 아니라는 건데……. 역시 비싼 건 매한가지네. 결국 실질적으로 내가 적당하게 구매해서 사용할 수 있는 건 제2문명까지가 한계라는 건가?’
그렇게 판단을 내린 공선자는 이내 한숨을 내쉰 뒤에 나뭇가지를 판매하는 것을 취소하는 것이었다.
지금 당장은 T보다는 먹고 살기 위한 돈이 더 다급한 상황. 그런 만큼 인벤토리에 모아둔 나뭇가지는 길드 회관에 갔을 때 자유 의뢰를 달성하기 위한 물건으로 사용할 예정이었다.
‘자, 그럼 확인할 것도 확인했으니 다시금 나뭇가지를 모아…….’
아직까지 인벤토리에는 여유 공간이 넘쳐났다. 그런 만큼 그것은 전부 나뭇가지를 보관하는 것으로 대처하려고 했던 공선자였지만 순간적으로 멈칫하고 그 자리에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하, 과연. 이게 몬스터라는 건가?”
달빛조차 제대로 비추지 않는 숲 속. 그 숲 속의 어둠조차도 어렵지 않게 꿰뚫어보는 공선자의 안광이 멀지 않은 위치에 존재하는 1미터 정도 크기의 그림자를 발견한 것.
“끼르르륵!”
그것을 뭐라 표현하면 좋을까? 어떻게 봐도 덩치는 타조인 녀석이 생김새는 확실히 닭처럼 보인다고 해야 하나?
아무리 머릿속을 뒤져보아도 공선자가 알고 있는 조류의 종류에는 저따위 괴이한 녀석 따위 존재하지 않았다.
보는 것만으로도 평범한 사람이라면 본능적인 공포감을 불러오게 만드는 무엇인가가 있는 생명체.
생김새는 말했던 것처럼 단순히 타조인지 닭인지 구별이 안 될 뿐인 녀석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능을 자극하여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거기에 지금은 평범한 이들은 한 치의 눈앞도 살펴보기 힘든 한밤중. 그런 밤중에 저런 ‘괴물’과 마주치게 된다면 그대로 비명을 지르며 자빠져도 이상할 게 없을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선자는 냉정하게 자신과 대충 15미터 정도 거리를 두고 있는 괴생명체를 마주 보며 사고회로를 회전시키는 것이었다.
‘본래라면 이런 식으로 정면에서 마주할 생각은 요만큼도 없었는데 말이야. 운이 나빴나. 역시 세상은 생각대로 돌아가 주지 않는군.’
몬스터라 불리는 괴물과의 첫 번째 대면이었다. 당연히 만반의 준비를 갖춘 뒤에 안전하게 몬스터란 게 어떤 것인지 살펴볼 생각이었던 것.
하지만 일이 틀어졌다. 최대한 기척을 죽이고 나뭇가지를 모으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정면으로 ‘쌈닭’과 딱 마주쳐버렸으니 말이다.
딱히 공선자가 실수를 한 것은 아니었다. 쌈닭 역시 공선자를 찾아서 막 돌아다닌 건 아닐 터. 이건 그냥 운이 나빴던 것이다.
흔적을 살펴보며 최대한 쌈닭의 흔적이 없는 장소 위주로 나뭇가지를 주우러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쌈닭과 마주한 것은 그냥 운이 나빴다는 것 외에는 표현할 방법이 없는 것.
‘……이게 바로 몬스터가 다른 종족에게 갖은 무조건적인 적의라는 건가? 본능에 각인된 공포를 자극하는 것 같은 느낌이 기분 나쁘군. 그래도 지금의 나라면 신경 쓸 요소는 아니야.’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눈치 채는 순간 이미 그냥 모른 척 지나갈 수 없게 되어버렸다. 공선자보다 먼저 그의 기척을 눈치 챈 타조인지 닭인지 구분이 안 가는 저 괴물은 이미 당장에라도 그에게 달려들 것처럼 적의를 내뿜고 있었으니 말이다.
저쪽 세계에서 지적능력을 지닌 인간들의 적의를 마주한 적은 많았다. 심지어 초능력자라 불리는 이들의 경우에는 적의를 넘어 살의라는 녀석에 모종의 힘마저 싫어 공선자를 압박한 적도 있었던 것.
허나, 지금 눈앞의 괴물이 내뿜는 적의는 그 ‘궤’를 달리했다. 엄청나다! 라는 기준으로 궤를 달리한다는 게 아니었다.
말 그대로 지적생명체가 내뿜는 적의, 그리고 그 적의를 넘어선 살의와는 완전히 다른 쪽의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지적능력을 지닌 이들이 보여주는 적의와 살의가 전신에 소름을 돋게 만드는 계열의 의지였다면 지금 눈앞의 괴물이 내뿜는 의지는 좀 더 원초적인 공포를, 자신이 사냥감이라는 것을 인식시켜주는 ‘공포’를 자극하는 느낌의 적의라고 해야 할까?
과연 몬스터라고 해야 할지 공선자보다 감각이 예민했던 것인지 그보다 먼저 그를 발견한 저 괴물은 그 원초적인 공포를 자극하는 적의를 십분 내뿜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사냥감을 위축시키겠다는 거겠지. 즉, 이미 저 녀석은 날 사냥감으로 인지하고 죽이려들 생각으로 넘쳐난다는 이야기.’
적의, 아니, 이제는 살의로 변화하는 상대는 의지가 전신으로 느껴지고 있었다. 그것은 정말이지 묘하기 그지없는 감각.
단순히 원초적인 공포를 자극한다는 것을 넘어서 마치 공선자가 지구에서 알고 있던 초능력자들처럼 살의 그 자체에 힘을 실어 이쪽으로 쏘아내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미세하기 그지없지만 단순히 상대의 의지에 공포를 심는 것을 넘어서 물리적으로 신체에 이상을 일으키는 ‘힘’이 존재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몬스터라는 녀석들은 전부 이런 적의를, 살의를 내뿜는 건가? 그렇다면 확실히, 단순히 짐승을 넘어서 괴물, 몬스터라고 불릴만하군.’
생전 처음 몬스터라는 생명체와 정면을 대면해본 공선자는 그렇게 생각하며 순간적으로 호흡을 고르는 것이었다.
당장 공포라는 감정이 감정 제어에 의해서 완전히 제어되고 있는 공선자이기에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지 처음으로 몬스터와 마주한 사람은 저 살의로 승화된 적의를 앞두고 제대로 움직이기도 힘들 터.
설령 정면에서 싸우면 이길 수 있을 정도의 스펙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저 살의를 처음 마주하게 된다면 어지간히 정신력이 강하지 않으면 제대로 싸우는 것은 힘들어 보였다.
몬스터가 괜히 몬스터라고 불리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 저렇게 상대를 ‘죽이는 것’에 특화된 괴물들이기에 몬스터라 불리는 것이었다.
대충 몬스터라는 녀석들이 어떤 존재인지 실감할 수 있었던 공선자는 호흡을 고르는 것으로 상대의 살의에 의해서 위축된 근육을 다시금 적당하게 탈력시키려고 했던 것. 그리고 그와 동시에 허리춤에 매달아두었던 단검의 손잡이에 손을 올려놓으려고 했다.
“꼬이이익!!!!!!!”
“흡!!”
그리고 그 순간, 그렇게 공선자가 약간의 움직임을 보이려 했던 것은 신호로 삼아 약 2초 정도 그와 대치하고 있던 쌈닭이 드디어 행동을 계시했다.
바로 공선자를 향해 냅다 달려들기 시작한 것. 공선자 역시 상대가 그렇게 나올 줄 알고 있었기에 곧바로 주저 없이 행동에 나서는 것이었다.
단검의 손잡이에 손을 올려둔 것은 어디까지나 혹시나 있을 사태에 대비해서였을 뿐이다. 공선자는 결코 당장 저 괴물과 정면으로 싸울 생각이 없었다.
운이 나쁘게도 정면에서 마주쳤다고 해도, 또 설령 위축되지 않은 만큼 어렵지 않게 상대를 죽일 수 있다고 해도 상대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지금 그냥 막무가내로 정면에서 싸울 생각은 결코 없는 것.
그렇다면 공선자가 선택할 선택지는 과연 무엇인가? 두말할 것도 없었다. 곧바로 그대로 뒤로 돌아서 전력으로 도망치기 시작하였으니까!
“꼬륵?!”
……설마하니 자신을 정면으로 마주하고도 전혀 위축되지 않아 보이던 상대가 도망칠 줄은 몰랐던 것인지 순간적으로 쌈닭이 어이없다는 의사를 담은 울음소리를 토해냈다.
허나, 공선자는 단순히 쌈닭이 무서워서 도망친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깔끔한 동작으로 뒤를 돌아 후퇴하기 시작했으니까.
그 모습을 보여 어처구니없음과 마치 자신이 개 무시당했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은 쌈닭이 분노를 뿜어내며 더욱더 빠르게 공선자의 뒤를 따라 내달리기 시작했다.
투두두두두두두두!!!!!!!!!!!!
‘……미친 저게 어딜 봐서 닭이야? 타조지!’
등 뒤에서 자신을 따라오는 묵직한 발소리를 들은 공선자가 슬쩍 자신의 등 뒤를 살펴본 뒤 내심 질색을 하는 것이었다.
어떻게 봐도 도저히 닭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속도로 자신에게 내달려오는 괴생명체의 모습을 확인하면 누구라도 질색을 넘어 공포심을 느낄 것이다.
겉모습은 영락없이 크기만 한 닭인데 어째 타조로밖에 안 보이는 속도로 내달려오니 그 괴리감이 장난 아니었다.
‘속도는 일단 나보다 빠른가? 평범한 방법으로는 따돌리기 힘들겠군. 감각도 과연 몬스터라는 건지 나보다 뛰어난 것 같고 말이야.’
최대한 기척을 죽이고 움직였음에도 불구하고 쌈닭이 공선자보다 몇 초 더 그를 빨리 발견했다는 사실을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일단 나뭇가지를 주우러 다녀야 했기에 정말로 작정하고 기척을 최대한 죽인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한 어둠 속에 동화된 공선자를 그보다 먼저 찾아낸 것은 생각하면 쌈닭의 감각을 생각보다 훨씬 날카로운 모양.
‘하지만 그렇게까지 큰 차이가 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즉, 나뭇가지를 줍는 걸 포기하고 정말로 작정하고 숨어서 움직이면 아마 내 기척을 찾아내는 건 무리겠지.’
저쪽이 자신을 먼저 발견하게 되어 지금처럼 쫓기게 된다면 따돌리는 것이 어렵다. 그런 판단을 내린 공선자는 달리면서도 냉정하게 다음에 다시 쌈닭과 싸우게 되었을 때를 상정하는 것이었다.
확실히 먼저 발견되면 지금처럼 쫓기게 될 수밖에 없지만 그거야 먼저 발견될 때의 이야기였다.
나뭇가지를 줍느라 분산되었던 신경을 집중해서 오로지 기척을 죽이는 것에 공들여 움직이면 감각의 발전 수준이 엇비슷한 쌈닭을 속이고 암습을 가하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판단이 든 것이었다.
‘물론 그러려면 지금보다 더 움직이는 것에 공을 들여야 하고 거기에 냄새 같은 것도 신중을 기하여 지워야 하겠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쌈닭을 상대로 추격전을 벌이는 상황에서 뒤쪽 세계에서 에이전트로 단련된 공선자의 감이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뭐, 그것도 지금 자신의 뒤를 발에서 땀나게 추격해오고 있는 쌈닭을 상대로 살아남았을 때의 이야기였지만 말이다.
과연 몬스터는 몬스터라는 것일까? 진짜로 전력으로 내달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빠른 속도로 상대와 자신의 거리가 좁혀지고 있다는 사실이 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통해서 파악되고 있었으니 말이다.
처음 10미터는 넘게 차이가 나던 거리는 어느새 바로 등 뒤에서 푸드득 거리는 날갯짓 소리가 들려올 정도로 가까워진 상황.
만약 서로가 달리고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면 그대로 쌈닭이 공선자를 향해서 달려드는 것이 가능할 정도의 거리라는 이야기.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선자는 냉정하게 계산을 하는 것이었다. 본래의 그였다면 공포심에 제대로 된 사고도 못하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도망치고 있었을 상황.
그러나 공포라는 감정이 없는 지금 공선자는 단순히 무서워서 도망치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하나 다음 상황을 ‘계산’하며 도망치고 있는 것.
‘조금만 더 가면…….’
그리고 그런 공선자의 계산대로라면 몇 초만 더, 몇 초만 더 쌈닭에게 따라잡히지 않고 도망칠 수 있다면 그가 생각한 대로 일을 진행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무리겠군.’
그러나 다시금 이야기하지만 세상이라는 게 계획대로만 돌아가지는 않는 법. 당장 쌈닭과 정면으로 마주할 생각이 없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거리가 좁혀지는 것이 아니라 몇 초 있지 않으면 그나마 있던 거리도 제로가 될 것이라는 게 확연하게 느껴지는 감각에 공선자는 혀를 차며 어쩔 수 없이 차선책을 선택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