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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8화 〉제 01계-챕터 02: 의도치 않은 인연 (108/194)



〈 108화 〉제 01계-챕터 02: 의도치 않은 인연

사실 차선책이라고 해도 별것 없었다. 그냥 달리던 기세 그대로 정면이 아니라 냅다 옆으로 뛰어드는 것이었다.

물론 그저 몸을 날리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냉정한 이성이 그가 가진 경험을 십분 발휘하여 바닥을 구르면서도 최대한 빠르게 일어날 수 있도록 신체를 움직여 주었으니 말이다.

흔히 말하는 낙법. 그림에 그린 것과 같이 앞으로 내달리던 속도 그대로 옆으로 몸을 날린 공선자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바닥을 한 바퀴 구른 뒤 일어났다.

바닥에서 한 바퀴 구를 때 절묘하게 구르는 방향을 조절하여 몸을 일으킬 때는 구르던 방향이 아닌 그 반대 방향을 바라보도록 일어서는 것이었다.

그것이 얼마나 물 흐르듯이 이루어졌으면 공선자는 처음부터 구르던 방향이 아니라 그 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었던 것처럼 보일 정도.

그리고 당연하게도 쌈닭은 공선자의 기민한 몸 날리기에 곧바로 대응하지 못했다. 그대로 공선자가 서 있던 자리를 지나치며 직진으로 돌진하는 것.

“끼르르륵!!”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돌진하던 속도를 줄이며 공선자가 구른 방향 달리던 방향을 틀었지만 공선자에게 있어서 상대가 돌진속도를 속도를 줄이는 그 순간이 바로 기회였다.

‘……공격해야 하나? 아니, 아직은 아니야. 당장의 빈틈이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저 빈틈을 비집고 들어가서 지금 내 공격으로 일격에 살해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어.’

세상은 과연 만만하지 않았다. 일단 어쩔 수 없이 아무런 준비도 없을 때 정면에서 적을 상대해야 한다는 최악의 상황에 대한 대비는 나중에 한다고 결정했음에도 곧바로 그런 상황에 처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방심도, 자만도 하지 않았음에도 그저 운이 없었기에 벌어진 일. 그렇다면 이 기회에 지금과 같이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았을 때 정면으로 적과 싸우는 경험을 해둬야 할까?

아니, 공선자는 결코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유는 두 가지. 일단 첫 번째로 확실히 지금의 공선자는 아무런 준비도 없이 적과 정면으로 마주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공선자’에게 아무런 준비도 안 되었다는 것인지 그가 정말로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

그렇기에 당장 자신이 ‘준비’를 해둔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서 냅다 달리고 있었던 것이고 말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공선자는 그 어떤 대비도 없이 적과 마주쳐서 정면으로 싸우는 경험이 필요하다는 사실 자체는 인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인정한다고 해도 그 경험을 쌓기 위해서 무리를 할 생각은 없었다. 그야 생각을 해봐라 아무런 준비도 없이 자신과 동등한 적을 마주해서 정면에서 싸웠을 때 승리할 확률이 과연 몇 퍼센트겠는가?

대충 계산해도 50% 안팎일 터. 여기에 동등한 상대가 아니라 자신보다 강한 적을 만난다면? 승리하여 생존할 확률이 더더욱 떨어진다. 경우에 따라서는 1% 미만에 해당할 터.

물론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으면 그것이 경험이 되어서 다음에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다시금 살아남게 해줄 확률이 증가하기는 할 터.

허나, 그래 봤자 50%가 60~70%가 되는 정도. 1%가 5%가 되는 수준일 터였다. 물론 이것도 감지덕지했다.

……하지만 고작 그 정도 확률을 올릴 경험을 쌓기 위해서 승산이 50%인 싸움을 지속적으로 해나간다?

아무리 운이 좋아도 사람이란 것은 언젠가는 꽝을 뽑기 마련이었다. 설령 경험이 쌓여 50%가 60%, 70%, 아무리 잘 쳐줘도 99%까지 상승한다고 해도 결코 100%가 될 수는 없는 법.

그런 전투를 수없이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 그저 ‘운이 없어서’ 죽을 수도 있었다. 공선자가 가진 경험은 그 사실을 아주 제대로 인지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그렇기에 결코 스스로 죽을 확률이 있는 전투에 뛰어들지 않았다. 애초에 봐라 세상은 요지경이었다.

처음부터 작정하고 안전 위주로 몬스터를 사냥하려고 해도 그대로 정면에서 마주치게 만드는 게 세상인 것.

이런 세상에서 굳이 경험을 쌓겠다고 위기에 스스로 말을 들이밀지 않아도 결국에는 살아남다 보면 정면에서 자신과 동등, 혹은 그 이상의 강적과 아무런 준비도 없이 싸우는 일들은 여러 번 벌어질 터였다.

그렇다면 그냥 그때 가서 대비하는 게 나았다. 나중에 혹시 모를 위협에 대비해서 당장의 위기를 자초한다?

물론 운이 좋으면 그 위기를 어렵지 않게 돌파하고 경험을 쌓아 나중의 위기에 더욱 확실하게 대처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운이 나쁘면? 그대로 끽 가버리는 것이다. 나중의 위기고 나발이고 스스로의 자처한 위기에 개죽음을 당해버리는 것.

그렇기에 다시금 이야기하지만 공선자는 결코 ‘스스로의 의지’로 위험을 자처할 생각이 없었다.

그런 위험에 대응하는 경험 따위 ‘자처’하지 않아도 쌓을 수 있다는 사실을 공선자는 알고 있었으니까.

오히려 공선자가 살아온 삶은 나중을 대비하겠답시고 당장의 위기를 자초했다가는 그대로 모가지가 날아가 버리는 삶이었다.

그런 삶을 살아온 공선자가 당장의 위기를 자처하는 일을 할 것 같은가? 거기에 자신과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전력을 지닌 상대와 본의 아니게 싸워야 하는 경험 따위 공선자에게는 질리도록 있었다.

물론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람을 상대로 한 경험에 불과하고 지금 눈앞에 있는 쌈닭과 같이 몬스터를 상대로 한 경험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해도 적어도 아무런 준비도 없이 자신이 타파하기 힘든 상황에 처했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행동양식 정도는 숙지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니 이쪽 세계에 와서 처음 치르는 이 전투에서 공선자는 결코 무리를 할 생각이 없었다.

지금의 자신은 준비된 것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완벽하게 아무런 준비도 갖추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 빈틈이 보여도 섣불리 달려들지 않는다. 애초에 쌈닭이라는 몬스터를 처음 상대하는 공선자는 저게 진짜로 빈틈이 맞는지조차 확신을 내릴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신중하게, 계획한 대로. 미지는 다른 말로 위험이다. 결코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어. 초조해하지 마. 굳이 무리를 할 이유가 없어.’

때문에 공선자는 상대의 빈틈을 보고 달려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빈틈을 이용해서 좁혀졌던 거리를 벌리는 것을 선택했다.

찰나의 순간에 공격할 것인지 다시 도망칠 것인지의 기로에서 판단을 내린 것이다. 칠흑의 어둠 속에 휩싸여 있는 풀숲으로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다시금 달려가기 시작하는 것으로.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렇게 마구잡이로 어두운 밤중에 숲을 뛰어다니면 길을 잃어버리기 십상이었다.

아니, 길을 잃어버리기 전에 어두워서 안 보이는 풀이나 나무 뿌리에 걸려 넘어져도 이상할 게 없는 것.

허나, 공선자에게는 경험이 있었다. 이런 산속에서도, 거기에 어둡기까지 한 상황에서도 전력으로 내달리며 움직여본 경험이 공선자에게는 분명히 존재하는 것.

그것도 한두 번이 아녔다. 못해도 십수 번, 잘하면 수십 번이 넘을 정도의 횟수를. 지금과 비슷한 경험을 해본 것.

‘아니, 오히려 지금보다 더 환장할 것 같은 상황이었지. 단순히 나보다 빠른 괴물이 쫓아오는 걸 넘어서 스치면 중상인 초음속의 탄환들이 여기저기 빗발치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러니 고작 이런 어둠 속에서 발을 헛디딜 일은 없었다. 길 역시 정확하게 외우고 있었다. 사실 마구잡이로 이동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벌릴 수 있었던 거리는 대충 20미터 정도. 지금의 내 신체능력이면 100미터도 가볍게 10안에 주파할 수 있을 터, 그렇다면 고작 2초도 되지 않아서 다시금 날 쫓아오기 시작했다는 건가. 돌진에 의한 힘을 줄이는 시간을 생각하면 상당한 수준의 반사신경이야.’

공선자처럼 낙법이라도 사용하지 않은 이상 자신이 내달리던 힘을 곧바로 줄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저 쌈닭이라는 몬스터는 과연 괴물이라는 것인지 그저 무식하게 힘으로 앞으로 나아가던 자신의 신체를 붙잡고 다시금 공선자를 향해 기명을 지르며 내달려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허나, 그럼에도 공선자는 걱정하지 않았다. 또다시 거리가 몇십 초 지나지 않아 좁혀질 것 같은 상황이었지만 적어도 당장은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고 있었으니 말이다.

‘사실 계획이라고 해도 이렇게 쫓겨 다닐 계획은 없었으니 어디까지나 플랜 B지만 말이야. ……그렇다고 해도 방금 전의 속도로 내달리던 걸 고장 2초도 안 되어서 멈추고 다시 날 따라온 걸 보면 생각보다 몸무게는 가벼운 건가? 그러면 적어도 플랜 C까지 넘어갈 일은 없겠어.’

몸무게가 무거운데 그 정도로 속도로 내달리던 것은 억지로 멈춘 것이라면 덩치 이상을 근력을 지녔다는 이상인데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 근력을 지녔으면 성인남성 혼자서 별 무리 없이 잡기는 힘들 것이다.

설령 무기가 있어도 그 정도 근력이라면 성인남성도 아차 하는 순간에 당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거기에 보통의 경우 근력은 곧 속도로 이어지기도 한다. 즉, 현재 공선자를 뒤따라오는 속도보다 더 빠른 속도로 내달렸을 것이라는 소리.

그 사실을 유추하자면 저 덩치라고 해도 과연 조류라는 것인지 조류 특유의 가벼운 몸무게를 지닌 모양이었다. 여태까지 쫓기면서 슬쩍슬쩍 확인한 데이터를 토대로 유추하자면…….

‘대충 몸무게는 아무리 높게 쳐줘도 100킬로그램 미만으로 추정되는군. 상정 범위 안이야. 밧줄하고 나무가 충분히 버텨낼 수 있을 수준이라는 거지.’

즉, 이대로 플랜 B를 속행해도 문제없다. 그렇게 판단한 공선자는 예상했던 시간 만에 목적지에 도착하는 순간 있는 힘껏 옆으로 몸을 던지며 다시금 낙법을 취하는 것이었다.

허나, 방금 전과는 사정이 달랐다. 아직까지 쌈닭과의 거리는 대충 8미터 정도 차이가 나는 상황.

전처럼 바로 등 뒤까지 따라온 이상이 아니어서야 굳이 쌈닭이 급브레이크를 밟아 몇 초 정도의 시간을 낭비할 이유가 없었다.

그저 달리던 속도 그대로 어느 정도만 방향을 틀면 되었으니깐 말이다. 그렇게 하기만 하면 그대로 공선자를 덮칠 수 있었다.

한 바퀴 땅에서 굴러 방금 전과 마찬가지로 자연스럽게 구르는 반향을 조절하여 180도 후방을 향해 시선을 던지고 있는 공선자를.

그래, 마치 도망치는 것을 포기한 것처럼 한쪽 손에 단검을 꺼내 쥐고 있는 저 죽이고, 죽이고, 또 죽이고 싶은, 자신과는 다른 생명체를 그의 날카로운 부리로 꿰뚫을 수 있을 터였다.

푸직! 부우우우웅! 파앙!!

“끼르르르륵?!!!!!!!!”

직후, 달리는 것이 아닌, 공선자를 향해 돌진을 하려고 다리에 더욱더 강하게 힘을 준 순간, 다리 부분에서 들려오기 시작하는 기괴한 파열음이 아니었으면 말이다.

그리고 그 파열음이 들려옴과 동시에 쌈닭은 본능적으로 위기감을 느끼고 더욱 빨리 땅에서 발을 떼려고 하였다.

추격이 아닌 돌진을 위해서 있는 힘껏 진각처럼 힘을 주어 내디딘 발은 쌈닭의 의사를 무시하고 땅에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찰나의 순간, 객관적으로 고작 0.7초 정도에 해당하는 그 틈을 주는 순간 이미 늦은 것이었다.

쌈닭의 발이 땅에서 떨어지기 전에 단단하기 그지없는 밧줄이 그대로 쌈닭의 다리를 휘감았다.

그리고서는 팽팽하게 당겨지기 시작한 밧줄을 허공으로 치솟기 시작하더니 당연하게도 밧줄에 의해서 밧줄이 휘감긴 쌈닭을 그대로 허공으로 들어버리기 시작하는 것.

‘역시 생각해보다 몸무게가 가볍게 보여. 이거라면 생각보다 더 오래 매달아둘 수 있겠어. ……하지만 방심은 금물.’

공선자가 설치해두었던 스프링 올무가 작동한 것이었다. 공선자가 옆으로 몸을 날리며 그대로 뛰어넘은 올무의 매듭을 쌈닭은 그대로 밟아버렸다.

혹시라도 쌈닭이 올무를 운 좋게 밟지 않으면 그대로 정면대결을 해야 했기에 단검을 들고 싸울 준비를 하던 공선자의 걱정이 무색하게 쌈닭은 훌륭할 정도로 제대로 올무에 걸려 하늘 높이 치솟기 시작한 것.

그 광경을 지켜보며 공선자는 냉정하게 판단했다. 그다지 내구력이 좋지 않은 밧줄로도 몇 분 정도는 매달아 둘 수 있을 정도로 쌈닭의 몸무게가 가볍다는 사실을.

……그리고 동시에 자신의 설치한 함정이 제대로 기동했다는 뿌듯함을 느끼기도 전에 이 절호의 기회를 결코 놓쳐서도 안 된다는 살의를 가지는 것이었다.

‘노려야 할 급소는……, 미간은 안 돼. 몬스터의 두개골이 얼마나 단단할지 난 아직 모르고 있어. 그렇다면 눈은? 나쁘지 않아. 설령 일격에 죽이지 못해도 상대의 시야를 빼앗을 수 있겠지. 하지만 기필코 일격에 죽이려면 역시 심장이지. ……문제는 몬스터인 쌈닭이 심장이 어디인지 내가 알 수 없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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