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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9화 〉제 01계-챕터 02: 의도치 않은 인연 (109/194)



〈 109화 〉제 01계-챕터 02: 의도치 않은 인연

마치 홀로 다른 시간대에 있는 것처럼 슬로우 모션에 가깝게 천천히 하늘로 치솟는 쌈닭을 바라보며 공선자는 빠르게 사고를 이어나갔다.

실제로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은 아니었다. 단련을 거듭한 경험이 있는 공선자의 사고가 보다 빠르게 진행되어 그에 비례하여 마치 현실의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처럼 보일 뿐.

그렇게 홀로 가속된 시간 속에서 여러 가지 선택지를 분석하던 공선자는 이내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심장의 위치를 모른다. 그럼에도 상대를 일격에 죽이고 싶다. 그렇다면 노려야 할 곳은 정해져 있지. 다름 아닌 목!’

결정을 내렸으면 신속하게 움직인다. 두개골과 다르게 목은 뼈로 보호받지 않는 부위. 설마하니 몬스터라고 해도 그게 다르겠는가?

아니, 다를 수도 있겠지. 인간과 다른 종족이니까. 허나, 그렇다면 목을 뼈로 보호할 정도인데 뇌를 보호하는 두개골이나 장기를 보호하는 갈비뼈가 없겠는가?

그렇다면 차라리 뼈가 없을 확률이 높은 급소인 목을 노리는 것이 정답이었다. 적어도 공선자가 알고 있는 생명체들 중에서 뇌로 피를 공급하고, 호흡한 산소를 운반하는 기관인 목을 꿰뚫리고도 멀쩡하게 살아있는 생명체는 본적이 없으니 말이다!

‘사람이라면 동맥이나 정맥을 끊어버리면 된다. 하지만 상대는 몬스터, 맥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지 못해. 그렇다면…….’

……호흡을 끊는다. 그런 판단을 내린 순간 이미 공선자는 내달리고 있었다. 자신이 왜 허공에 매달려 있는 것인지 이해하지도 못하고 얼이 빠져버린 닭을 도축하기 위해서 전력으로 들고 있던 단검을 내질렀다.

단검을 써본 적이 없지만 비슷한 나이프는 써본 적이 있었다. 그렇게 기본적인 파지법은 숙지하고 있었고, 나이프를 통해 싸우는 나이프 파이트 역시 할 줄 알았다.

그런 공선자의 일격은 매우 정밀하기 그지없었던 것. 심지어 단검을 뻗은 그 순간도 어지간히 절묘했다.

밧줄에 끌려가던 상황이나 밧줄이 완전히 팽팽해져 쌈닭을 허공에 매달고 있던 상황이라면 정확하게 목을 찌르기 힘들 터였다.

그럴 것이 밧줄에 끌려가는 도중이라면 쌈닭이 끌려가는 식으로 움직이고 있었고 밧줄이 팽팽하게 당겨져 쌈닭을 매달아 놓은 상황이라면 쌈닭이 저항을 했을 테니 말이다.

허공에 매달려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한다고 해도 완전히 움직임이 틀어 막힌 것은 아니다. 그러니 당연히 살려고 반항을 하지 않겠는가?

그런 상황이라면 쉽게 원하는 장소에 단검을 찔러 넣기 힘들 것이다. 거기에 적어도 돌진에 의한 부리 공격은 당하지 않는다고 해도 큰 덩치에 어울리게 거대한 날개에 얻어터지거나 날카로운 부리에 잔 상처를 입었을 터.

그렇기에 공선자는 정확하게 쌈닭이 완전히 팽팽해진 밧줄에 매달린 직후를 노렸다. 아직까지 상황파악을 못 해서 굳어버린 상태로 고기저장 창고의 도축된 돼지처럼 허공에 쌈닭이 매달리는 바로 그 순간을!

푹!

“끼르륵……?!”

정밀하게 공선자가 머릿속으로 그렸던 궤도를 따라 정확하기 그지없는 궤적을 그린 칠흑의 일섬이 그대로 쌈닭의 목덜미에 꽂혔다.

나뭇잎들 사이로 가끔씩 흘러내리는 달빛조차 반사할 시간을 주지 않을 정도로 잽싸게 휘둘러진 단검을 쌈닭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그대로 숨구멍을 틀어막아 버린 것.

촤악!!

“켁……! 켁……!!”

또한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쌈닭의 목덜미에 박힌 단검을 유려하게 느껴질 정도의 동작으로 회수하는 공선자.

목덜미에 박히는 순간 목 근육이 수축하여 단검이 뽑히는 것을 방해해왔지만 공선자는 찌르는 것보다 더욱 빠르게 단검을 정확한 타이밍에 빼내어 쌈닭의 목 근육이 단검을 붙잡기도 전에 단검을 회수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단검이 뽑힌 자리에서 피가 분수처럼 치솟기 시작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쌈닭의 목구멍에 피가 차오르며 쌈닭의 호흡을 막아버리기 시작하는 것.

급속도로 빠져나가기 시작하는 피. 거기에 그 피가 호흡까지 막아버리니 쌈닭은 괴로운 신음소리조차 내지 못하며 그대로 허공에 매달려 미친 듯이 발버둥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허나, 쌈닭의 발버둥은 몇십 초를 이어지지 못했다. 단순히 호흡이 막히는 것이라면 몇 분은 더 버틸 수 있을지 몰랐지만 뇌로 향해야 하는 피까지 미친 듯이 목의 상처를 통해서 쏟아져 내리니 견딜 재간이 없었던 것.

심지어 쌈닭은 거꾸로 매달린 상태였다. 그 상태로 목에 구멍이 뚫리니 더욱더 철철 피가 흘러나올 수밖에 없는 것.

그렇다면 남은 것은 당연히 하나. 그 어떤 생명체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도달하게 될 그런 ‘최후’였다.

“……휴우. 생각했던 것보다 무난하게 잡았나. 최악의 경우에는 중상도 각오하고 있었는데 말이지.”

몇십 초 정도 발버둥을 치다가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축 늘어진 쌈닭의 모습을 확인한 공선자가 이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이었다.

처음 마주할 때부터 그의 정신을 압박하던 기묘한 적의, 아니, 살의가 사라졌다. 정신을 압박한다고 해도 진짜로 공선자의 정신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었다.

공선자 자신이 고작 그 정도로 정신을 영향을 받지 않을 정도로 냉정한 상태라는 점. 거기에 공선자에게는 몽계불침이라는 이름의 스킬이 존재하는 상황.

그렇기에 정신 방벽의 수치가 무려 100배 상승한 상태. 이 상태에서는 타의에 의한 정신의 영향을 받기가 극히 힘든 것.

때문에 정신이 압박받는다고 해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허나, 설령 아무렇지도 않다고 해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단단한 피부를 지녔다고 해도 피부를 무엇인가가 누르면 그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가?

그렇기에 상대의 살의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해도 그 살의를 담은 힘만큼은 느낄 수 있었던 것.

다른 사람이라면 실시간으로 자신의 정신을 조여 오는 살의, 아니, 살의를 넘어서 현실에 영향을 끼치는 그 정체불명의 현상에 압박감을 느꼈을 것이다.

정신적인 무엇인가가 아니라 실제로 물리적으로도 영향을 끼칠 것처럼 느껴지는 무엇인가였던 것.

그랬던 그 ‘정체불명의 무엇인가’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그 사실을 토대로 공선자는 눈앞의 쌈닭이 확실하게 사망했다고 판단을 내린 것.

‘내 정신을 압박하던 그 모종의 현상이 정확하게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게 이 몬스터라는 생명체 때문에 일어났던 현상인 것은 분명해. 그리고 그 현상이 사라진 이상 이 녀석은 확실하게 죽은 거겠지.’

어떤 현상을 일으킨 원인이 있을 때 그 원인이 사라지면 당연히 해당 현상도 멈춘다. 말할 것도 없는 그 인과관계를 토대로 쌈닭의 죽음을 확신한 공선자가 조심스럽게 죽어서 허공에 널브러져 있는 쌈닭에게 다가가는 것.

물론 확신을 가졌다고 해도 방심을 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쌈닭이 살아있을 때를 대비해 언제라도 반격할 수 있도록 최대한 조심스럽게 쌈닭에게 다가간 공선자는 직후 다시 한 번 단검을 휘둘렀다.

푸욱!!!!

‘……흐음, 확실히 죽은 척을 하고 있는 건 아니네. 거기에 시험 삼아 두개골의 단단함도 확인하려고 했는데 역시 튼튼한 걸 미간을 뚫는 걸로는 일격에 죽이기 힘들겠어.’

이미 죽었다는 확신을 내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허공에 매달려 있던 쌈닭의 미간을 향해 휘둘러진 단검.

공선자는 전력으로 내지른 단검을 단단하기 그지없는 쌈닭의 두개골을 뚫는 것에 성공했다. 허나, 공선자는 역시나 이것으로는 안 되겠다는 판단을 내린 것.

무엇이 안 되느냐면 이후 쌈닭을 사냥할 때 일격에 상대를 죽이기 위해서 공격할 부위가 두개골이면 안 되겠다는 의사를 결정했다는 소리.

두개골이 생각했던 것보다 튼튼했다. 상정했던 최악 수준의 단단함, 애초에 단검이 박히지도 않을 정도의 단단함을 아니었다.

허나, 적어도 인간의 두개골보다는 튼튼하다는 판단을 내린 공선자. 이미 수십을 넘어 수백 번은 사람의 머리를 단검으로 꿰뚫어본 경험이 있는 공선자의 판단이었다.

결코 틀리지는 않을 터. 그리고 인간의 두개골보다 튼튼하다면 현재의 공선자의 힘과 기술로는 일격에 죽이지 못할 수도 있는 것.

‘뇌를 꿰뚫어야지 순식간에 움직임이 멈추도록 만들 수 있지만 이 정도 튼튼함이어서 두개골을 뚫어도 뇌에 그렇게까지 깊게 상처를 입히기는 힘들겠어. 물론 멀쩡하지는 않겠지만 죽기 전에 나한테 반격을 할 가능성은 충분하겠지.’

거기에 두개골의 단단함에 의해서 그 두개골을 뚫어야 하는 단검에 무리가 갈 터였다. 최대한 단검을 아껴서 사용할 생각이 공선자에게 그것은 그다지 내키지 않는 이야기인 것.

촤악!!!

확인사살을 위해서 미간을 꿰뚫었던 단검을 회수하며 공선자는 결론을 내렸다. 쌈닭과 싸울 때 미간을 노리는 건 공선자의 기술이 더 좋아지거나 신체능력이 더 좋아지지 않는 이상은 지향해야겠다고.

‘목을 노리게 된다면 호흡곤란과 과다출혈로 사망할 때까지 발버둥을 치겠지만……, 미리 대비하고 있으면 큰 피해를 입지는 않을 터야. 어차피 두개골을 노리나 목을 노리나 반격을 대비해야 한다면 단검의 내구력에 무리를 주지 않게 목을 노리는 쪽이 낫겠군.’

그나마 미간을 뚫는 쪽은 근육의 수축 작용에 의해서 단검을 빼기가 어렵거나 하지 않다는 점이 장점이라면 장점이었지만 역시 단검의 내구력을 생각하면 목을 노려야 했다.

현재 공선자가 단검을 다루어내는 숙련도를 생각하면 근육의 수축작용이 일어나기도 전에 단검을 회수하는 것을 일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스테이터스를 올려서 신체 능력이 올라가면 미간을 노리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겠지. 일격에 사살해 반격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깐 말이야.’

단, 그렇다고 해도 계속해서 목만 노릴 생각은 아니었다. 단검의 내구력도 내구력이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공선자 자신의 안전.

스테이터스가 올라 신체능력이 강화되어 힘이 강화되어 두개골을 뚫고 확실하게 뇌를 곤죽으로 만들 수 있게 된다면 주저 없이 미간을 뚫어버린 생각이었다.

단검을 다루는 기술, 즉, 단검술의 숙련도가 올라간다면 적은 힘으로 더 확실하게 두개골을 뚫을 수도 있겠지만……, 까놓고 말해서 현재 공선자가 단검을 다루는 기술은 이미 달인이라고 말해도 충분한 경지에 도달해 있는 것.

물론 어디까지나 현대 지구의 기준이고 이쪽 플라워 차원의 기준은 아니었지만……, 이능이 간섭하지 않는 영역에서는 충분히 단검을 귀신같이 다룬다고 이야기해도 모자람은 없을 터.

그런 상황에서 이 이상으로 더 단검을 확실하게 다루는 것은 힘들 터였다. 그러니 당장 쉽게 강해질 수 있는 방법은 역시 레벨 업에 의한 스테이터스 상승.

‘그런 이유로 어디, 경험치가 얼마나 상승했나 확인할까? 아니지, 당장 급한 건 이쪽인가.’

미간을 한 번 꿰뚫는 것으로 완벽하게 확인사살까지 끝마친 공선자가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쉬었다.

쌈닭이 움직임을 멈춘 순간에 내쉰 한숨이 이겼다는 안도의 한숨이라면 지금 깊게 호흡을 고른 것은 전투가 끝났다는 확신을 가진 순간 무의식적으로 바짝 당겨졌던 긴장의 끈을 약간 느슨하게 풀기 위해서 내쉰 호흡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완전히 긴장을 푸는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당장은 완벽한 빈틈을 찌르기 위한 일격을 내지르기 위해서 딱딱하게 굳어버린 전신의 근육을 적당하게 탈력시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으니 말이다.

지금의 깊은 호흡은 그렇게 근육의 힘을 적당하게 빼기 위해 공선자가 무의식적으로 내쉰 호흡이었던 것.

그렇게 긴장감에 굳었던 몸은 이완시킨 공선자는 우선은 들고 있던 단검을 정리했다. 아무리 귀신같은 빠르기라고 해도 어디까지나 인간의 한계 내에서의 빠르기였다.

소설이나 만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단검에 피도 묻지 않을 정도의 빠르기는 불가능한 것. 때문에 당연히 공선자의 단검에는 피가 묻었다.

그것을 공선자는 근처의 풀을 대충 뜯어서 꼼꼼하게 닦은 뒤 허리에 찬 칼집에 수납하는 것으로 정리한 것.

단검에 피가 묻은 상태로 두어서 좋을 게 없었다.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칼에 바르는 기름 같은 것도 구해서 관리를 해줘야 할 터.

그렇게 몇십 초 정도를 소모해서 단검의 정리를 끝낸 공선자는 그다음으로 아직까지도 피를 뚝뚝 흘리고 있는 눈앞의 쌈닭을 살펴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다음으로……. 이거 인벤토리에 들어가나?’

가장 급했던 단검을 정리하고 자신이 잡은 1미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닭의 사체를 살펴보는 공선자.

일단 인벤토리에 살아있는 생명체는 당연하게도 보관하는 게 불가능했다. 하지만 나뭇가지가 보관되는 것처럼 ‘살아있던’ 생명체, 즉, 생명활동이 중지된 유기물, 보다 쉽게 말해서 ‘사체’는 보관할 수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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