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1화 〉제 01계-챕터 02: 의도치 않은 인연
‘결정했으면 일단 적당한 장소에 올무를 다시 설치하고 쌈닭을 찾아서 이동해볼까.’
판단을 신중하면서도 신속하게, 그리고 일단 판단을 내렸으면 망설이지 않고 움직인다. 그것이 바로 살아남기 위한 기본 전제.
그렇기에 스테이터스 창을 살펴보기 위해서 안전한 장소에 앉아있던 공선자는 다시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후 약 20분 후……. 한동안 최대한 기척을 죽이며 자신이 사냥한 것 외의 또 다른 쌈닭의 흔적을 찾아 돌아다니던 공선자는 올무를 설치하기 적당한 장소를 찾은 뒤 10분 정도의 시간을 들여서 올무의 설치를 끝내는 것.
애초에 밧줄을 만드는 것에 대부분의 시간을 사용했던 공선자였다. 그렇기에 이미 만들어둔 밧줄이 있는 상황에서는 그렇게까지 올무의 설치에 시간이 걸리지 않았던 것.
한 번 사용했던 밧줄을 재활용하여 다시금 올무의 설치를 끝낸 공선자는 대충 근처에 자신이 설치한 올무를 알아볼 수 있는 표식을 남겨둔 뒤 본격적으로 스스로 쌈닭을 사냥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리지어 다니는 쌈닭이 있을 수 있으니 일단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내가 먼저 상대한테 들키는 실수는 해서는 안 돼.’
방금 전 사냥했던 쌈닭이 혼자 떨어져 있었던 것은 어디까지나 운이 좋았다고밖에 이야기할 수 없었다.
물론 만약 쌈닭이 무조건 무리를 지어 다니는 몬스터였다면 길드의 그 험상궂은 사내가 경고를 해줬을 터.
그런 경고가 없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아마 쌈닭은 무리를 짓지 않는 몬스터일 것이다. 거기에 스프라우트 등급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거의 확실하겠지.
허나, 절대라는 것은 없으니 자신의 추측만으로 움직일 생각은 없었던 공선자는 최대한 자신이 먼저 쌈닭들에게 발견되는 일이 없도록 이동하는 방식을 바꾸었다.
추륵! 탁! 차륵! 부욱!
쌈닭은 숲 속에서 다리를 통해서 이동한다. 요컨대 땅을 밟고 이동한다는 이야기. 그렇다면 똑같이 땅을 밟고 이동하게 된다면 아무리 기척을 죽인다고 해도 이쪽이 먼저 쌈닭의 기척을 눈치 채지 않는 이상은 운이 나쁘면 정면에서 마주할 수도 있었다.
아까 전처럼 나뭇가지를 줍는 것에 정신을 분산시키는 것이 아니기에 작정하고 숨기면 먼저 발견되지 않을 자신은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신중의 신중을 기하는 쪽이 좋았다.
그렇기에 공선자는 쌈닭처럼 땅을 밟으며 이동하는 것이 아닌, 나무를 타고 이동하기 시작했다.
21세기 현대에서 에이전트로 활동하려면 필수적으로 익혀야 하는 기술, 파쿠르. 아니, 정확히는 세계를 적으로 돌리고도 살아남으려면 무조건 익혀야 하는 기술이라고 해야 할까?
고층 빌딩이 즐비한 도시에서 전장을 자신의 것으로 삼으려면 그 어떤 장소라고 해도 무리 없이 이동할 필요성이 존재했다.
그렇기에 공선자는 파쿠르, 혹은 프리런닝이라고 불리는 기술을 쓸 줄 알았고 그를 이용해서 나무에서 나무로 뛰어넘으며 마치 만화에서나 나올법한 닌자처럼 어렵지 않게 이동할 수 있는 것.
물론 어디까지나 인간의 신체적 한계 내에서 뛰어넘을 수 있는 거리만큼 나무와 나무의 거리가 벌어져 있을 때에 한정된 이야기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무에서 나무를 타고 넘나드는 것으로 공선자가 먼저 쌈닭에게 발견될 확률이 극단적으로 적어졌다.
‘찾았다.’
그렇게 몇십 분 정도 시간을 들여서 할 수 있는 전력으로 기척을 죽이고 나무 위를 프리 런닝으로 이동하던 공선자는 이내 자신의 목표물을 찾아낼 수 있었다.
공선자가 타고 다니던 나무 아래에서 어둠 속에서도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는 움직이는 인영이 있었던 것.
거기에 그 인영의 움직임에 따라서 부스럭거리는 소음이 발생하고 있으니 최대한 소리를 죽이며 나무에서 나무로 이동하던 공선자가 상대를 발견하는 것을 필연이었다.
그리고 이 근방은 몬스터인 쌈닭의 서식지. 그렇기에 당연하게도 이 짙은 밤에 밤이 무서운 줄 모르고 돌아다닐 수 있는 존재는 쌈닭뿐이었다.
‘역시 나무 위로 이동하던 게 유효했어. 저 녀석은 날 눈치 채지 못하고 있어. 자,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즉, 자연스럽게 공선자가 자신의 발아래에서 확인한 인영은 쌈닭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였고, 실제로도 그랬다.
거기에 공선자가 노린 대로 쌈닭은 이 어두운 숲 속에서 나무 위까지 확인할 정신은 없었는지, 아니면 공선자의 은폐가 정교했던 것인지 그의 존재를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상대는 자신을 눈치 채지 못하고 있지만 자신은 상대를 눈치 채고 있다는 이 상황은 공선자가 상정했던 대로 암습하기에는 절묘하기 그지없는 상황.
그렇기에 공선자가 고민하는 것은 암습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가 아니었다. 어떤 방식으로 암습을 할 것인지가 그의 고민거리였던 것.
‘이대로 나무 위에서 뛰어내리면서 암습을 가할 거냐. 아니면 최대한 인기척을 없앤 상태로 나무에서 내려간 뒤에 암습을 가할 거냐.’
전자나 후자 모두 각각의 장점과 단점이 존재했다. 일단 전자는 상당한 높이인 나무 위에서 뛰어내리며 암습을 가한다는 점에서 단검을 내지르는 위력이 훨씬 강해진다는 단점이 있었다.
요컨대 위치 에너지마저 단검에 담아서 공격할 수 있다는 이야기. 그렇다면 목이 아니라 미간, 혹은 정수리를 노려도 일격에 쌈닭을 해치우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었다.
여기에 굳이 시간을 끌 필요 없이 즉시 쌈닭을 공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괜한 움직임으로 상대가 자신을 눈치 챌 가능성을 배제할 수 있다는 장점 역시 존재했다.
그렇다면 단점은? 간단했다. 일단 단검에 무리가 간다는 부분.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무기를 무기로 사용하는 것이니 감안하려고 한다면 감안하기 어렵지 않았다.
보다 확실하게 상대를 해치우는 것으로 자신이 안전이 보장되는데 무기를 아껴 쓰겠다고 위험을 자초하는 바보짓을 할 생각은 없었으니까.
문제가 되는 것은 이 선택지가 가지고 있는 난이도 그 자체였다. 나무 위, 그것도 수 미터는 되는 나무 위에서 뛰어내리며 그대로 쌈닭을 덮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기술이 요구되는 것.
거기에 설령 쌈닭에게 일격을 성공시킨다고 해도 말했다시피 수 미터 위의 나무에서 뛰어내리는 것이었다.
아무리 단련된 신체를 지녔다고 해도 스테이터스로 인해서 신체 능력이 평준화된 지금의 공선자라면 잘못하다가는 부상을 입을 수도 있는 것.
물론 그가 살아오며 쌓아온 경험이 있었기에 그럴 확률은 매우 적었다. 겉멋으로 파쿠르를 이동해서 나무에서 나무로 이동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럴 만한 ‘기술’을 공선자는 몸에 익히고 있는 것. 그렇기에 단순히 수 미터 위의 나무에서 뛰어내리는 것이라면 낙법을 이용해 별 상처 없이 착지하는 게 가능한 공선자였다.
……허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단순히 나무 위에서 뛰어내릴 ‘경우’로 한정되었다. 즉, 단순히 뛰어내리는 것이 아닌 나무 위에서 뛰어내리며 쌈닭을 덮치는 상황이라면 난이도가 더욱 증폭될 수밖에 없는 것.
즉, 쉽게 말해서 위험했다. 성공한다면 빠르게 적을 사냥할 수 있지만 실패한다면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것.
아니, 설령 일격에 적을 해치운다고 해도 타이밍을 잘못 잡거나 운이 나쁘면 착지 과정에서 부상을 입을 수도 있는 수단이었다.
다시 말해서 전자의 장점은 보다 확실하게 자신의 은신을 들키지 않은 상태에서 적을 해치울 수 있다는 것.
단점은 그만한 기술이 없다면 매우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후자의 경우는 어떤가? 후자의 경우 장점은 안전성이었다.
나무 위에서 내려와서 공격하는 만큼 나무 위에서 뛰어내릴 때의 위험성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었다.
굳이 위험하게 공격과 바닥의 착지를 동시에 소화할 필요가 없는 것. 여기에 일격으로 미간이나 정수리를 뚫어 상대를 죽일 수는 없었지만 그만큼 단검에 무리가 가지 않다는 점도 존재했다.
위치 에너지를 이용할 수 없다면 뼈에 보호받는 두개골보다는 뼈에 보호받지 않는 목을 공격하는 쪽이 나았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단점은? 일단 첫 번째로 쌈닭의 근처에서 나무 위에서 아래로 내려와야 한다는 점이었다.
아무리 기척을 최대한 죽이고 있다고 해도 움직일 때의 소리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는 법. 그렇기에 운이 나쁘면 나무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과정에서 쌈닭한테 들킬 수가 있었다.
그렇게 된다면 상대의 의표를 찌른 암습이 어려워진다는 것이 후자의 단점. 요컨대 전자의 경우에 단검을 다루는 실력과 높은 곳에서 떨어질 때에 안전하게 착지할 수 있을 정도의 기술.
여기에 더불어 착지와 공격을 동시에 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변수에 대응할 반사 신경을 요구한다면 후자는 나무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과정에서 결코 쌈닭에게 들키지 않을 정도의 은신 능력을 요구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머릿속으로 자신이 고를 수 있는 선택지의 각각의 장점과 단점을 떠올리고 짧은 시간 동안 고민을 해보던 공선자는 이내 쌈닭이 다음 행동을 하기 전에 결정을 내리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별 고민도 없이 그냥 움직이기 시작한 것처럼 보이겠지만 훈련을 통해서 평범한 사람들보다 더 빠른 사고 속도를 가진 공선자는 나름대로 긴 고찰 끝에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레벨을 올리면 스테이터스를 올릴 수 있어. 그럴 경우 신체 능력이 강화되니 착지에 실수해도 부상을 당할 확률이 줄어들겠지. 공중에서 덮치는 방식은 그 방식을 고수해도 안전이 확보되는 그때 가서 시도해도 되겠지.’
그러니 지금은 혹시 모를 부상을 입을 수 있는 방식보다 부상을 입을 확률이 적은 방식을 선택하기로 하였다.
거기에 설령 후자를 선택한 뒤 쌈닭에게 들킨다고 해도 그대로 도망치면 될 일. 한 번 쌈닭하고 추격전을 벌여본 공선자는 확실히 쌈닭은 빠르지만 도망치지 못할 수준은 아니라고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쌈닭의 순간적인 속도는 확실히 빨랐지만 설령 몬스터라고 해도 짐승의 모습을 하고 있는 한 심폐지구력에서 인간을 뛰어넘을 수는 없을 터.
아니, 설령 뛰어넘는다고 해도 속도의 차이가 어마어마하지 않은 이상은 얼마든지 도망칠 수단이 존재했다.
그러니 은폐가 들킨다면 그때 가서 그냥 도망을 치면 되는 일. 그렇기에 공선자는 실수를 하게 된다고 해도 부상을 당하지 않을 선택지를 고르는 것이었다.
……결코 단검의 내구력이 아까워서 그런 것이 아니다. 말했다시피 공선자는 무기를 아끼겠다고 일격에 상대를 해치울 수 있는 수단을 고르지 않을 바보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럼 시작해볼까.’
결정을 내린 뒤에는 곧바로 행동한다. 망설임을 변수를 만들어낼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공선자는 조심스럽게 자신이 발견한 쌈닭과 약간 떨어져 있는 나무 위로 이동한 뒤에 소리를 죽인 채 서서히 나무 위에서 내려오는 것이었다.
은폐를 하는 능력이 이미 충분히 프로의 경지에 도달한 공선자였기에 바로 옆에서 집중해서 듣지 않는 이상은 소리가 난다는 사실 자체도 인식하지 못할 정도의 약간의 소음만을 일으키며 움직이는 공선자.
당연히 몇 미터 정도의 거리가 있고 열심히 풀을 뜯어 먹는 것에 집중하고 있는 쌈닭은 그 소리를 눈치 채지 못하는 것이었다.
상대가 자신을 눈치 채지 못하게 만들려면 상대의 사각에, 그리고 인식 밖을 파고들어야 하는 법.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상대의 감각을 피한다는 것을 넘어서 상대의 사고를 읽는다는 것이기도 했다.
적이 어떤 생각으로 움직이고 있는지 알아야지만 적의 인지 밖에서 움직일 수 있기 때문.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단순히 자신의 움직임에 집중하는 것을 넘어서 ‘상대’의 움직임에도 집중해야 하는 법.
때문에 공선자는 자신의 감각을 총동원하여 맛있게 잡초 먹방을 찍는 쌈닭을 관찰하며 정말로 조심스럽게 상대의 뒤로 접근하는 것이었다.
최대한 은밀하게, 그러면서도 최대한 빠르게, 발걸음을 죽이며 이동하던 공선자는 거의 쌈닭의 바로 등 뒤까지 이동한 순간 이변을 눈치 챌 수 있었다.
“끼륵?”
딱히 이상한 낌새를 느낀 것 같지는 않았다. 그저 우연. 그저 우연히 잡초를 먹던 쌈닭이 뜯어먹던 잡초를 삼키며 그대로 등 뒤로 돌려는 기미를 보이려는 것.
그 사실을 확인한 순간 공선자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아직 거리는 부족하다. 그렇기에 지금 이 순간에 공격에 들어서면 상대의 목을 확실하게 꿰뚫을 정도의 힘을 단검에 담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조금 더 가까이 가고 싶어도 바로 곧바로 상대의 목이 움직여 자신이 있는 방향으로 시야를 돌리려고 하고 있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