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2화 〉제 01계-챕터 02: 의도치 않은 인연
들킬 것을 감안하고 확실하게 처리하기 위해서 더욱 접근할 것인가, 아니면 들키기 전에 확실하지는 않다고 해도 일격을 넣을 것인가.
이런 양자택일의 상황에서 공선자가 선택한 수단은 둘 중 그 어느 것도 아니었다. 다름 아닌 조용히 검집에서 뽑아들었던 단검을 들고 있지 않은 손을 갑작스럽게 휘두르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타악!
“끼익?!”
애초에 선택지가 생각나기도 전에 본능적으로 행한 행동. 허나, 그 행동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었다.
공선자가 휘두른 손안에서 빠른 속도로 돌멩이 하나가 쏘아져 나가더니 그대로 막 시선을 돌리려던 쌈닭의 정면 쪽으로 떨어졌으니 말이다.
누가 보았다면 공선자가 쌈닭을 노리고 던진 돌멩이가 빗나가 쌈닭의 어깨를 지나 그대로 풀숲 너머로 사라졌다고 착각할 수 있는 상황.
허나, 그것은 결코 실수가 아니었다. 애초부터 공선자가 들고 있던 돌멩이는 지금과 같은 순간을 대비해서 들고 있던 돌멩이였으니까!
‘지금이다!’
돌멩이가 풀숲 너머로 사라짐과 동시에 그 부근에 돌이 떨어지는 소리가 울리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당연히 우연히도 막 공선자가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리려던 쌈닭의 신경이 순간적으로 돌멩이로 인하여 소리가 난 방향으로 다시금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
즉, 뒤쪽으로 시선을 돌리려던 쌈닭의 시선이 다시금 정면을 향하게 되었다는 소리. 이로 인하여 벌 수 있는 시간은 0.7초 남짓.
갑작스럽게 들려온 소리가 쌈닭이 정면에 시선을 돌림과 동시에 ‘경계심’을 갖기까지 걸릴 것으로 추정되는 시간.
여태까지는 공선자의 존재를 눈치 채지 못했기에 경계심이 낮은 상황이었다. 허나, 그가 던진 돌멩이로 인한 소리를 인식한 순간 쌈닭은 당연하게도 경계심을 갖게 되는 것.
그리고 경계로 인하여 쌈닭이 긴장을 하게 된다면 당연하게도 암습으로 일격에 해치우는 것은 힘들 터였다.
긴장감이 풀렸을 때와 긴장의 끈을 당기고 있을 때의 반사 신경의 차이를 생각해봐라. 아무리 공선자가 자신의 기술을 전부 쏟아 부어 허공에 일섬을 긋는다고 해도 그 속도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
그렇기에 공선자의 공격에 쌈닭이 대응할 수도 있었다. 물론 아무리 반사 신경이 좋아도 이 상황에서 완벽한 대응을 불가능할 것이다.
허나, 적어도 약간 몸을 트는 것으로 공선자가 노렸던 ‘급소’를 조금이라도 피해 가게 만드는 것에 성공할 수도 있었다.
그 정도 대응으로 피해가 확 줄어든다고는 결코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일격에 죽었어야 했을 생명이 적어도 반격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으로 그칠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닌 것.
그렇기에 공선자가 노리는 것은 상대가 ‘경계심’을 갖게 될 때까지는 그 일순간의 시간이었다.
돌멩이로 인한 소리를 인식하고 경계심을 갖기까지 걸리는 그 짧은 순간만큼은 아직 쌈닭은 ‘긴장하고 있지 않은’ 상황을 테니까!
그러니 그 상황을 정확하게 노려서 쌈닭이 대응을 하기도 전에 자신이 원하는 정확한 위치에 단검을 꽂아 넣는다.
……그리고 그를 위한 확실한 타이밍을 붙잡은 순간 공선자는 전신을 근육을 모조리 동원해 자신의 신체 속도를 가속시키며 쌈닭을 향해 뛰어들었다.
몇 걸음 부족한 거리를 쌈닭이 돌멩이에 시선이 돌아간 그 순간 전력으로 내달려 좁힌다. 여태까지처럼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것이 아닌 전력질주.
그렇기에 발소리가 날 수밖에 없었다. 허나, 순간적으로 돌멩이가 낸 소리에 ‘모든 신경’이 집중된 쌈닭은 그 발검을 제대로 인식할 수가 없었다.
돌멩이가 낸 소리를 인식하는 것에 모든 신경이 집중되었기에 돌멩이가 낸 소리를 인식한 ‘뒤’에야 공선자의 발소리를 인식할 수 있을 테니까.
그렇기에 돌멩이가 낸 소리를 인식하고 긴장감을 갖게 될 때까지 걸릴 단 영 점 몇 초의 시간 동안 쌈닭은 공선자의 존재를 제대로 인지할 수가 없었다.
푸욱!!
“끼케엑?!”
상대의 인식의 틈을 정확하게 노리고 휘둘러지는 일격. 다시금 허공을 수놓은 섬뜩한 일선. 그 선의 종착점은 공선자가 노렸던 대로 정확하게 쌈닭의 목 중앙에 해당했다.
단검이 자신의 목을 꿰뚫는 그 순간이 되어서야 간신히 자신의 목을 꿰뚫은 공선자의 존재를 인식한 쌈닭.
허나, 이미 늦고 말았다. 쌈닭이 어떻게든 대응하려고 했을 때에는 이미 공선자는 쌈닭의 목에 꽂혀 있던 단검을 회수한 뒤 쌈닭과 2미터는 되는 거리를 벌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맛있게 야식을 즐기고 있는 상황에서 부지불식간에 뇌로 피를 공급해주는 중요한 혈관과 산소를 공급해야 하는 기관지를 당한 쌈닭의 운명은 이미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무리 저항하려고 해도 방법이 없었다. 이대로 있어도 자신의 목숨은 고작해야 몇 분 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쌈닭은 발달된 야생의 감으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리고 몇 초의 시간을 들여서 지금 자신의 상태를 이해한 쌈닭은 분노했다. 죽음에 대한 공포마저 눈앞의 괘씸하기 그지없는 인간에 대한 분노로 바꾼 쌈닭이 설령 자신이 죽는다고 해도 기필코 저 버러지 새끼를 데리고 가겠다는 증오를 온몸으로 표출하는 것.
“꾸케르르륵!!”
목소리를 내고 싶어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들려오는 것은 피가래가 끓는 소리.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쌈닭은 신경 쓰지 않고 분노를 내질렀다.
그리고서는 죽기 전의 자신의 모든 것을 마지막으로 불태우며 자신을 죽인 빌어먹을 버러지에게 복수를 하려고 움직이려고 하였다. 허나…….
“……역시 바로 죽지는 않나. 사람이라면 쇼크사해도 이상할 게 없을 텐데 말이지. 일단은 그 상태로 얼마나 버티는지 볼까?”
……쌈닭이 가물가물해지는 정신을 분노와 증오로 어떻게든 붙잡고 공선자에게 명확한 살의를 드러내는 그 순간 이미 공선자는 못해도 쌈닭과 10미터는 되어 보이는 거리를 벌리고 있었다.
아니, 단순히 거리를 벌렸을 뿐일까? 어느새 하나의 나무를 열심히 타고 올라가 절반 이상은 나무 위에 올라가 있던 상태였다.
……요컨대 날개가 있어도 날지 못하는 쌈닭은 도저히 뒤쫓을 수 없는 장소에서 느긋하게 쌈닭은 내려 보고 있다는 소리.
실제로 공선자가 여유롭냐고 묻느냐면 그것은 아니었다. 여유보다는 냉철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테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웃기게도 닭과 닮은 몬스터인 쌈닭이 닭 쫓던 개 신세가 되어버렸다는 점이었다.
정말이지 아이러니하기 그지없는 상황. 그 사실을 깨달은 쌈닭은 당연하게도 어떻게든 공선자는 물귀신처럼 끌고 가기 위해서 발악을 하기 시작했다.
쌈닭이 만약 어느 정도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생명체였다면 어쩌면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포기했을 수도 있었다.
허나, 쌈닭은 몬스터. 설령 당장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고 해서 그저 황망하게 죽음을 기다릴 생명체가 아니었다.
이성이 아닌 본능에서 끌어 오르는 분노. 자신의 생명을 끊어버린 자에 대한 원초적인 증오가 죽어가는 신체를 움직이고 있었다.
아무리 할 수 있는 게 없어도 그저 죽어줄 수는 없다는 악다구니로 움직인다. 공선자가 타고 올라간 나무를 향해 미치듯이 돌진을 시작하는 것.
쾅! 쾅! 쾅!!!
‘몸무게는 가벼울 텐데 돌진의 위력이 상당하군. 속도 때문인가?’
자신이 못 올라간다면 공선자를 떨어트리면 된다. ……딱히 그런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고 나무를 향해 돌진을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본능적으로, 어떻게든 공선자를 죽이겠다는 살의를 죽어가는 신체로 실행했을 뿐인 행동.
그와 같은 막 나가는 식의 행동이 제대로 된 결과를 불러올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쌈닭이 미친 듯이 나무에 자신의 몸을 들이박아도 어느새 나무의 꼭대기까지 기어 올라간 공선자에게는 큰 영향이 없는 것.
그렇기에 공선자는 오히려 나무 위에서 차분하게 밑동에 신체를 들이박고 있는 쌈닭을 관찰하며 쌈닭의 신체능력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죽은 사체를 통해서는 확인할 수 없었던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를 통해서 보다 확실하게 쌈닭의 공략법을 정리해가는 그.
쌈닭은 그저 머리끝까지 차오른 분노에 몸을 맡기고 자신뿐 아니라 자신의 동족을 위협할 수 있는 정보를 공선자에게 넘겨주고 있을 뿐이었다.
‘역시 목을 노리는 걸로는 곧바로 죽지는 않나. 하지만 대비를 하고 있으면 그다지 위험한 것도 아니군.’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서 스스로의 목숨을 불태우는 저 분노를 정면에서 받았어야 했다면 곤란했다.
허나, 예상하고 미리 대비하고 있던 이상은 쌈닭이 아무리 발버둥을 친다고 해도 공선자에게는 티끌만큼의 영향도 없는 것.
오히려 저렇게 미친 듯이 나무에 돌진을 하며 더욱더 목에 난 상처에서 피가 쏟아져나와 스스로의 최후를 앞당길 뿐이었다.
“끄르르르…….”
“끝났군.”
그리고 결국 본래라면 몇 분 정도는 더 목숨을 이어갔을지도 모를 쌈닭은 공선자에 대한 분노에 홀로 폭주하다가 십수 번 정도 그가 있는 나무에 돌진을 하던 중 사망했다.
과다출혈과 질식사, 어느 쪽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포기하고 가만히 있었으면 몇 분 정도는 더 살 수 있었던 것이 괜한 움직임에 의해서 죽음을 더욱 빠르게 자초한 결과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쌈닭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몇 분 후. 죽은 척이 아니라 확실하게 죽었다는 확신이 선 순간 공선자는 다시금 나무에서 내려와 쌈닭의 시체를 살펴보는 것이었다.
‘이걸로 두 마리 째. 이번에는 딱히 확인할 게 없나.’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쌈닭의 시체를 조심스럽게 발로 툭툭 건드려본 공선자는 이내 한 번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대로 쌈닭의 시체를 인벤토리에 보관하는 것.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시체가 사라지는 순간 공선자는 쌈닭이 죽었다는 확신을 가질 수가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인벤토리에 쌈닭을 보관할 수 있을 리가 없었으니까. 그렇게 쌈닭이 죽었다는 것을 확인한 공선자는 일단 다시금 피가 묻는 단검을 정리했다.
대충 근처에서 뜯어낸 풀로 단검의 피를 닦아낸 뒤 다시금 칼집에 넣어둔 공선자는 잠깐 그 자리에 서서 확인할 것이 없나 주변을 살펴본 뒤 고개를 내젓고는 이동하기 시작하는 것.
쌈닭에 대한 확인은 처음 쌈닭은 잡았을 때 끝내두었다. 그러니 다시금 쌈닭을 잡았다고 해도 딱히 확인할 것은 없는 것.
‘아, 잠깐 기다려 봐. 로그 창 좀 확인해볼까? 레벨 업을 했을 수도 있으니까. ……거기에 지금 막 떠올랐는데 내가 가진 스킬인 멸업의 멸업 수치. 분명히 무엇인가를 멸하는 멸업이라는 개념 자체를 양분으로 치환하는 거였지?’
잠깐 잊고 있다가 떠오른 자신의 스킬에 공선자는 경험치를 획득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뿐 아니라 멸업 수치가 올라간 것인지도 확인하기 위해서 로그 창을 살펴보는 것이었다.
무엇인가를 멸하는 개념. 그렇다면 생명체에 속하는 몬스터를 잡는 것만으로도 멸업 수치 역시 상승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가지고 로그 창을 살펴보는 것이었다. 처음 쌈닭을 잡았을 때는 경험치에만 집중해서 다른 로그들은 넘겨버렸으니 말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맨 아래에 존재라는 로그가 쌈닭을 통해 경험치를 획득했다는 로그였기에 그것만 확인하고 로그 창을 껐던 것.
‘경험치는……. 들어와 있네. 하지만 레벨 업은 하지 못한 건가? 그리고 멸업은……, 흠, 확실히 멸업 수치도 올라갔다는 로그가 있어. 하지만……, 단순히 몬스터를 사냥한 것뿐만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도 올라가는 건가?’
확실히 쌈닭을 죽인 것으로 멸업이 올라가기는 했다. 쌈닭의 목숨을 멸하여 업이 쌓였다는 식의 로그가 존재했으니까.
하지만 그것에 그치지 않았다. 단순히 쌈닭을 죽인 것뿐만 아니라 나무를 깎아냈다, 밟아서 나뭇가지를 부러트렸다, 풀을 뽑아 풀을 죽였다 등등.
도저히 멸업 수치가 올라갈 것이라고 상상도 못 했던 행동들을 통해서도 놀랍게도 멸업 수치는 쌓이고 있었던 것.
물론 그 수치는 지극히 미미하기 그지없었다. 오죽하면 로그 창에 ‘무의미한 수준의 멸업이 쌓였습니다!’ 라는 식으로 기록되겠는가?
수치로 환산하자면 0.0000001%는 쌓인 것인지도 알 수 없는 수준. 하지만 공선자는 이를 통해서 한 가지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