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6화 〉제 01계-챕터 02: 의도치 않은 인연
그를 위해서 우거진 나뭇잎으로 햇빛을 가리는 나무 위로 올라갈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나무 위로 올라가 저 지평선 너머에서 어둠을 물리치며 떠오르는 해를 발견한 공선자.
그 풍경은 매우 아름다웠다. 공선자가 살아가던 21세기 지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맑은 자연경관.
단순히 지구에서 보았어도 가슴을 울컥하게 만드는 무엇인가가 있는 것이 새벽녘의 풍경인 법.
그런 풍경이 다른 세계에서, 그것도 매연 따위 존재하지 않아 지평선 끝까지 또렷하게 보이는 플라워 차원에서 재현된 것이었다.
여기에 다른 세계에 와서 처음 맞는 새벽이라는 의미까지 부여한다면 가슴이 웅장해지는 느낌을 받아도 전혀 이상할 것은 없다는 소리.
허나, 감정제어로 인하여 그런 웅장한 감정을 느낄 수 없는 공선자는 그저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자신이 있는 곳까지 해가 뜰 때까지 걸릴 시간을 계산하는 것이었다.
‘……뭐지? 이 느낌은? 왜 당장에라도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고 느껴지는 거지?’
아니, 오히려 공선자는 꽉 막혀 있던 가슴을 뻥 뚫리게 만들어줄 것 같은 눈앞의 다가오는 여명을 바라보면서도 오히려 불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무엇인가가, 무엇인가가 잘못되어 가고 있는 것 같은 불안감. 감정이 제어되고 있기에 결코 느낄 리가 없는 그런 불안감이 공선자의 차분하게 가라앉은 심장은 다른 의미로 뛰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일단 도시로 돌아가자. 인벤토리도 가득 찼고, 신체 자체도 많이 지친 상황이야. 휴식이 필요해. 이 이상 쌈닭을 사냥하는 건 자살행위야.’
기분 나쁜 불안감을 느끼며 공선자는 일단 이 자리에서 벗어나 도시, 소나타로 돌아가기로 결정을 내리는 것이었다.
그와 함께 미리 결정을 내렸던 대로 스테이터스 창을 켜서 가지고 있던 3의 스텟 포인트를 다시금 친화 스텟에 몰빵해버리는 공선자.
일단은 쌈닭과 같은 레벨은 레벨 5가 될 때까지는 친화 스텟에 모든 스텟 포인트를 몰빵하기로 결정을 내린 것.
당장의 힘이 아닌 나중을 위한 투자. 스텟 포인트를 가지고 있게 된다면 괜히 다른 스텟을 올려버리고 싶어질 것 같아 일부로 망설임 없이 가지고 있던 스텟을 전부 친화 스텟에 몰빵을 한 것이었다.
‘……역시 세부 스텟의 수치를 조정한 건 실수였나. 덕분에 쌈닭을 21마리 사냥할 동안 수월하게 암살을 할 수 있었지만 재속 수치가 10%밖에 안 되어서 그런지 회복 속도가 더디군.’
체감 상으로는 아마도 오늘은 더 이상의 사냥은 무리일 것 같다. 이렇게 판단한 공선자는 어쩔 수 없이 도시에 도착하면 오늘 하루는 푹 쉬기로 결정하는 것이었다.
재속 수지가 정상이었다면 몇 시간만 쉬고 다시금 쌈닭을 사냥하러 왔을 수도 있었다.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수면 효율이 압도적인 공선자라면 밤새도록 쌈닭을 사냥한 뒤라고 해도 충분히 활동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허나, 아무리 수면 효율이 좋아도 재속 수치가 낮아서야 본래보다 10배는 더한 휴식이 필요할 터.
즉, 수면을 통한 회복을 취한다고 해도 평범한 사람들과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휴식을 취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
여기에 더불어 레벨을 올리는 것 외에도 앞으로 플라워 차원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자잘하게 할 일과 조사할 것들도 있으니 일단 도시로 돌아가면 오늘 하루는 더 이상 쌈닭을 사냥하기 위해 쌈닭의 서식지에 오기는 힘들 터였다.
그런 이유로 세부 스텟을 조작한 것은 실수였다고, 동시에 오늘 사냥은 여기까지라고 잠정적으로 결론을 내린 공선자는 친화 스텟에 스텟을 몰빵한 뒤 곧바로 스테이터스 창을 끄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는 숲을 벗어나서 도시로 돌아가기로 결정을 내렸으니 말이다. 쌈닭의 서식지를 벗어나기 위해서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
아무리 공선자라고 해도 밤새도록 쌈닭을 찾으러 숲을 헤집고 다녔으니 자신이 다녔던 길을 죄다 외우는 것은 무리였다.
칭호 효과로 인하여 사고 스텟이 5증가해 본래의 자신이 가지고 있던 기억력보다 더 기억력이 좋아진 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그래도 무리는 무리.
대신에 숲 속을 이동하며 남겨둔 각종 표식들이 존재했기에 그 표식들을 이용한다면 어렵지 않게 길을 찾아 소나타까지 이어지는 정리된 길에 도착할 수 있는 것.
두근! 두근! 두근……!!
‘이건 도대체 뭐지?’
허나, 도착하기만 하면 그대로 쭉 길을 따라가기만 해도 소나타로 돌아갈 수 있는 정비된 길에 도착하기 전에 공선자는 자신의 이상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이게 산 사람의 심장인지, 죽은 사람의 심장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고요하던 그의 심장.
허나, 그의 심장이 어째서인지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체력 수치와 재속 수치가 낮아진 상태였기에 확실히 공선자는 현재 피로하기 그지없는 상태였다.
스테이터스 창의 높은 피로도와 낮은 체력 수치가 그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었고 말이다. 그렇기에 심장이 미친 듯이 뜨는 것은 언뜻 봐서는 이상하지 않게 느껴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공선자는 느낄 수 있었다. 이 심장의 고동은 결코 자신의 체력이 바닥이 났기에 전신에 에너지를 공급하고자 뛸 때 느껴지는 박동의 소리가 아니라고.
확실히 체력은 바닥이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미친 듯이 심장이 뛸 정도는 아니었다. 객관적으로 자신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이성을 지닌 공선자가 그렇게 판단을 내린 것.
그렇다면 그것은 높은 확률로 사실일 터였다. 그러면 도대체 원인은 뭐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심장이 뛰는 거지?
‘이, 일단 길로, 길로 돌아가야 해. 여기는 위험해. 이게 내가 알 수 없는 이상 상태의 증후라면 이대로 몸에 어떤 문제가 생길지 알 수 없어!’
그리고 그 상태에서 혹시라도 쌈닭을 만나게 된다면 농담이 아니라 죽을 수도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더욱 강하게 뛰기 시작하는 심장의 고동 때문에 제대로 된 사고조차 하기 힘들어지기 시작한 공선자는 본능적으로 자신이 위험한 상황에 처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
‘제길! 누가 내 정신에 간섭하기라도 하는 거야?! 생각이 제대로 이어지지가 않잖아?! 이럴 줄 알았으면 사고 스텟을 건드는 게 아니었어!’
괜히 감각을 올린다고 지혜와 지능 스텟을 건드려서 더욱더 제정신이 아니게 된 것 같다고 느껴졌기에 공선자는 뇌리에서 욕지거리를 내뱉는 것이었다.
에볼루션 시스템에 존재하는 기능인만큼 일단은 시험 삼아 사용해보기는 해야 했다. 하지만 설마 타이밍이 나쁘게도 그 시험 삼아 사용해보는 것 때문에 더욱더 자신의 상태가 안 좋게 변한 것처럼 느껴지다니. 이건 운이 나빴다고밖에 이야기할 수 없었다.
정말이지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이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체력이 바닥까지 떨어졌을 뿐 별 이상이 없었던 몸이 왜 갑자기 이렇게 이상을 일으키기 시작한 것인지 공선자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돌아가야…….’
하지만 원인을 알 수 없고 억울해서 미칠 지경이라고 해도 벌어진 일은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그러니 어떻게든 쌈닭의 서식지를 벗어나 안전하다고 할 수 있는 정비된 길로 돌아갈 필요가 있었다.
‘으윽……! 이, 이 상태로 나무를 타고 움직이는 건 위험해. 이, 일단은 땅으로 내려가서 이동하자!’
점점 더 거대해지는 심장의 고동소리, 그리고 그에 비례하듯이 더욱더 혼란스러워지는 정신상태.
그것을 느낀 공선자는 더 이상은 자신이 정밀하게 나무와 나무를 건너다니는 게 무리라고 판단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어쩔 수 없이 바닥으로 내려온 뒤 걷기 시작하는 공선자. 다행히도 필사적으로 움직인 덕분에 얼마 지나지 않으면 쌈닭의 서식지를 벗어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 덕분에 공선자는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전신을 장악하기 시작하는 불안감.
……아니, ‘공포’를 드디어 떨쳐낼 수 있다는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한계까지 위축된 신체가 탈력 되려고 했던 것.
“어……? 어? 고, 공포? 나 지금……, 떠, 떨고 있는 거야?”
그리고 그 순간 공선자는 2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일단은 첫 번째로 자신이 어느 순간부터 ‘공포’라는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점.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야 현재의 공선자는 각성 스킬, 일야몽의 효과로 인한 감정제어에 의해서 감정에 억제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그런 공선자가 감정을 느낀다? 그래, 본래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본래’라면 말이다.
‘……서, 설마?!’
그리고 그 본래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공선자는 비로소 지금 자신의 상태를 이해할 수 있었다.
……감정 제어가 해제되었다. 즉, 방금 전까지만 해도 감정을 죽이고 오로지 이성으로만 행동하던 공선자는 더 이상 이 자리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
여기 있는 것은 이제 막 혼자 세상에 나온, 경험을 많지만 그 경험을 제대로 활용할 수 없는 겁쟁이에 불과한 공선자였으니까!
‘어, 어째서?!’
여태까지 자신의 정신을 보호해주던 감정제어가 사라졌다는 사실에 공선자는 공황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여태까지 그가 냉철하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어디까지나 그의 감정이 제어되고 있었기 때문.
허나, 그 감정 제어가 사라졌다. 그렇다면 더 이상 제어되지 못하는 감정이 밀물처럼 공선자의 사고를 휩쓰는 것도 당연한 이야기였다.
이렇게 된다면 제대로 이성이라는 사고 회로가 돌아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감정이라는 소금물에 이성이라는 사고 회로는 부식되고 녹슬어갈 수밖에 없는 법.
그런 상태의 공선자가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공선자가 눈치챈 두 번째 사실.
그것은 단순히 지금 공선자가 느끼는 공포가 감정 제어가 풀렸기 때문에 덮쳐오는 공포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끼르륵?”
……운이 나빴다. 그래, 운이 나빴다고밖에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공선자 자신의 운이야 원래 나쁜 편이라는 것은 자각하고 있었지만 설마 이런 타이밍에 지금과 같은 상황을 마주하게 될 줄은 몰랐다.
공선자가 느끼고 있는 공포라는 감정은 감정 제어가 풀린 것과 더불어 한 가지 요소가 더 추가되어 그의 이성을 완전히 마비시킬 정도의 규모로 성장한 것.
그리고 그 요소라는 것은 다름 아닌……, 정말이지 운이 나쁘게도 그가 정면에서 쌈닭을 마주하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몬스터와 마주치는 순간부터 몬스터에게서 자신에게 향해지는 명확한 적의, 아니, 살의. 거기에 그 살의는 단순한 살의가 아니었다.
지금의 공선자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분명하게 타인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모종의 힘이 담긴 살의.
아니, 역으로 모종의 힘에 살의를 담았다는 느낌일까? 아니다. 지금은 어느 쪽이든 공선자에게는 어찌 되었든지 좋을 이야기.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 살의가 담긴 모종의 힘을 내뿜는 적과 어떻게 생각해도 제대로 이성을 활용할 수 없는 지금의 공선자가 결코 마주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었다.
그럼에도 마주했다. 그래, 마주하고 만 것이었다. 그 사실이 가져다주는 절망감, 처음으로 감정이 억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몬스터를 마주한 순간부터 파도처럼 몰려오는 공포.
……그 모든 것이 공선자를 휩쓸었다. 이성은커녕 본능조차 서로 충돌하여 공선자 자신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게 만들 정도의 감정의 폭풍.
‘도, 도, 도망쳐야……!’
그 과정에서 간신히 떠오른 것은 생존 본능이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도망쳐야 했다. 도망쳐서 저 괴물한테서 벗어나야 했다.
마주보고 있기만 해도 공포가 머릿속을 점령하여 아무것도 못 하게 만드는, 다리가 덜덜 떨리고 오금이 저리게 만드는 저 괴생명체에게서 도망을 쳐야했다.
“끼르륵!!!”
“으, 으아아아아악?!!!!!!!!!!!!!!!”
도, 도망쳐야 한다. 도망, 도망, 도망, 도망, 도망, 도망, 사, 살려줘, 죽고 싶지 않아, 죽는다! 죽는다! 죽는다! 움직여! 아니, 움직이지 마! 자극을 하면 안 돼! 하지만 이대로 있으면 어차피 죽는데?! 죽어? 죽는다?! 죽어어어어어어어어……!!!!!!! 살고 싶어, 아니, 난 살아야 해. 죽을 수 없어. 죽고 싶지 않아. 그렇지만 죽는 게 편하지 않을까? 무서운데?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무무무무무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