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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7화 〉제 01계-챕터 02: 의도치 않은 인연 (117/194)



〈 117화 〉제 01계-챕터 02: 의도치 않은 인연

사고가 정리되지 않는다. 본능과 본능이 출동하여 오히려 더욱더 거대한 혼란만을 남긴다.

그런 상황이기에 공선자는 그저 쌈닭이 경계하듯 울부짖었을 뿐임에도 불구하고 과장되게 반응하는 것이었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사, 사, 살려줘어어어어어어어………!!!!!!!!!!!!!!!”

당장에라도 자신의 죽음이 눈앞에 드리워진 것처럼 그저 미친 듯이 비명을 질렀다. 몬스터가 본능적으로 내뿜어내는 ‘살기’가 공선자를 결코 도망칠 수 없는 구렁텅이로 밀어 넣는 것이었다.

“끼렉?! 끼레레렉?!”

그리고 그런 공선자의 비명소리에 쌈닭은 생각지도 못한 반응을 보였다. 당장이라도 공선자를 향해 달려들 줄 알았던 쌈닭이 오히려 공선자보다 더 놀란 모습을 보이더니 덤벼드는 것이 아닌 거리를 취하며 경계태세를 보이는 것이 아닌가?

그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간신히 공선자의 눈에 약간이지만 이성의 빛이 돌아왔다. 죽는 줄 알았다. 이대로 죽을 수밖에 없는 줄 알았다.

어떻게든 살아야 했다. 자신의 반신이 구해준 목숨이다. 이대로 개죽음을 당할 수는 없었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포를 이길 수는 없었다.

생전 처음 홀로 세계에 떨어졌다. 신체를 자신의 의지로 움직이는 것도 처음이었다. 그저 느끼기만 하던 세상을, 받기만 하던 세상과 상호작용을 시작했다.

그래, 공선자는 그냥 나이만 많은 어린아이와 다를 게 없었다. 그러니 무서울 수밖에 몬스터와, 자신에게 무조건적인 살의를, 그리고 그 살의를 모종의 힘에 담은 ‘살기’를 내뿜는 몬스터와 마주한 순간 공포에 이성을 잃는 게 당연했다.

오히려 방금 전까지의 공선자가 이상한 것이었다. 몬스터와 처음 마주하면서 일격에 그 목숨을 끊어내던 공선자가 이상한 것이었다.

지금의 공선자가 평범한 사람이, 정확히는 겁쟁이가 보여야 지당한 반응인 것.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설령 공포에 이성이 잠식되었다고 해도 살고자 하는 본능 역시 거짓인 것은 아니었다.

‘도, 도망……!’

비명을 지르며 꼴사납게 바닥에 주저앉아 버리고 말았다. 솔직하게 이 상태로 다시 일어나는 것도 미친 듯이 힘들었다.

신체가 아니라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죽음을 앞에도 평범한 사람이 움직일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렇지만 그럼에도 공선자는 꾸역꾸역 움직였다. 당장 공포에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도 어떻게 해서든 살고 싶다는 생존본능으로 꾸역꾸역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바보 같은 짓이었다. 쌈닭은 공선자보다 빠르다.

아니, 현재는 세부 스텟을 조절했기에 공선자와 비슷한 속도라고 해야 할까?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막무가내로 도망치는 것은 어리석은 선택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공선자에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이성이 도망치라고 해서 도망치는 게 아니었다.

전신을 마비시키는 공포보다 더한 죽음의 공포 때문에 본능적으로 이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 도망치는 것에 불과했다.

그런 상황에서 상대의 정황을 살펴본다는 이성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공선자는 그저 저 무서운 괴물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그저 필사적으로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꼴사납게, 그저 살아남기 위해서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으어어어어어……!!!”

도망치는 과정에서 나무뿌리에 걸려서 바닥을 굴렀다. 설령 이성이 없는 상황에서도 몸에 남은 경험은 어디로 가지 않는다는 걸까?

순간적으로 낙법을 펼쳐서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허나, 공선자는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낙법을 펼쳤다는 사실조차 인식할 수 없었다.

그저 조금이라도 더 멀리, 등 뒤에서 느껴지는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눈물과 침을 질질 흘리며 미친 듯이 달려나가는 것에 집중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끼륵?”

어떻게 보면 광기까지 느껴지는 모습을 지켜보며 쌈닭은 공선자를 추격하는 것이 아닌 그저 멍하니 그 자리에 서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이었다.

본래라면 눈앞의 공선자를 적으로 판단하고 살기를 내뿜으며 죽이려고 들었어야 했을 쌈닭.

허나, 쌈닭은 공선자와 마주치는 순간부터 본능적으로 공선자를 단순한 ‘적’이 아닌 자신의 목숨을 위협할 수 있는 ‘강적’으로 판단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마주치기 전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마주치는 순간부터 희미하게 느껴지는 ‘냄새’때문.

지독하다는 수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쌓이고 쌓여 그렇게 후각이 좋은 것이 아닌 쌈닭조차 눈치챌 수 있을 만큼의 ‘피 냄새’가 공선자에게는 배어있었다.

그것은 다르게 이야기하자면 눈앞의 공선자가 자신과 같은 쌈닭들을 못해도 두 자리 숫자는 넘게 살해한 존재라는 이야기.

그렇기에 섣불리 달려들지 못했다. 냄새가 경고를 해주는 것이었다. 상대는 자신의 동족들을 살해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진 존재.

그리고 그 말은 막무가내로 달려들었다가는 자신 역시 동족처럼 될 수 있다는 이야기. 그렇기에 쌈닭은 공선자를 경계하고 있었다. 그래, 경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공선자가 지 혼자서 미친 듯이 비명을 지르더니 바닥에 주저앉은 직후 냅다 도망쳐버리는 모습을 보고 얼이 빠져 추격할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

……설마하니 본능이 그렇게 위협적이라고 경고하던 적이 저렇게 꽁무니 빼며 도망칠 줄은 상상도 못했던 쌈닭은 공선자의 도주극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공선자에게는 천운으로 작용했다. 쌈닭이 제대로 정신을 차라기 전에 이미 공선자는 쌈닭의 감각에서 벗어난 장소까지 도망친 뒤였으니 말이다.

“……꼬익.”

그렇게 영문도 알 수 없게 정체불명의 괴인과 마주쳐버렸던 쌈닭은 자신이 도대체 뭘 목격한 것인지 알 수 없다는 의문을 담은 울음소리를 한 번 토해내더니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신의 무리가 기다리는 장소로 이동하는 것이었다.

+++

“헤엑……! 헤엑……! 헤엑……! 사, 살았어……?”

미친 듯이, 아니, 뭐에 홀린 듯이 도망쳤다. 그저 살고자 하는 본능에 몸을 맡긴 채로 전신의 체액은 죄다 짜낼 기세로 도망쳤다.

땀이 전신을 흠뻑 적셨다. 공포에 의해서 뻥뻥 쏟아지던 눈물과 침이 얼굴을 뒤덮였다. 허나, 공선자는 그런 자신의 상태에 기분이 나쁘다는 감각을 받을 여유조차 없었다.

그저 살았다. 살아남았다는 그 사실에 다리에 탁 풀려버릴 것 같은 것을 필사적으로 붙잡고 있었으니 말이다.

“사, 살았어!!! 살았다고!! 하, 하하하하……! 난 살아남은 거야. 으허어어어엉……!!”

그리고 간신히 자신이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이성이 어느 정도 돌아온 공선자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안도감과 함께 그 자리에 주저앉아 꺼이꺼이 울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공선자 자신도 왜 자신이 울고 있는 것이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안도감에 눈물이 흘러나왔다. 당장 울지 않으면 도저히 이성이 회복될 것 같지 않다는 본능에 그저 우는 것에 집중했다.

……그렇게 그가 한동안 미친 듯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을까? 한 10분 정도의 시간이 지난 뒤 간신히 어느 정도 정신을 수습한 공선자는 잠깐 동안 허탈한 기분을 느끼며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난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현재 공선자가 주저앉아 있는 장소는 쌈닭의 서식지에 들어가기 전에 존재하던 정비된 길 한복판이었다.

막 아침이 밝아오기 시작하는 상황이어서 그런지 지나가는 사람은 없었다. 쌈닭 역시 쫓아오는 기색은 없었고 말이다.

그렇기에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길바닥에 주저앉아 있을 수 있었던 공선자는 방금 전까지의 자신의 한심하기 그지없는 자체를 되돌아보며 일종의 현자 타임에 빠져 있는 상태인 것.

‘감정이 억제되지 않은 나는 이렇게까지 멍청한 녀석인 거야? 강해지기 위해서는 필히 사냥해야 하는 몬스터조차 앞에 두면 그렇게 바보처럼 겁에 질릴 정도로?’

정말로 어이가 없었다. 감정이 억제될 때까지는 그저 몬스터가 아니라 단순한 가축을 도축하듯 사냥하던 쌈닭을 감정이 되돌아온 뒤로는 제대로 눈을 마주치지도 못했다.

몬스터가 내뿜어내는 정체불명의 힘. 그 힘에 영향을 받아 공포로 이성이 마비되었다. 아니, 마비되는 것을 넘어서 자멸할 정도로 공포에 집어 삼켜져 버렸다.

그런 자신이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감정이 억제될 때라면 느껴지지 않았을 자괴감에 당장이라도 울고 싶은 것을 꾸역꾸역 참으며 공선자는 어떻게든 제대로 돌아가지 않은 사고 회로를 회전시키며 자신에게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지 파악하려고 애를 썼다.

‘가, 감정 제어. 감정 제어가 풀렸어. ……그래서 그렇게 패닉 상태에 빠진 거야.’

정확하게는 본래의 자신으로 돌아온 것이었지만 감정 제어가 풀리지 않았다면 방금 전과 같은 공황 상태에 빠질 일은 확실히 없었을 터였다.

그렇다면 어째서? 어째서 감정 제어가 갑작스럽게 해제된 것이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던 공선자는 다급하게 스테이터스 시스템을 열어보는 것이었다.

뇌리에 스테이터스 창이 자신의 정신 상태를 표시해주던 것이 생각났기 때문. 그랬기에 공선자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스테이터스 창을 띄운 것.

그렇게 행동함과 동시에 공선자는 확인할 수 있었다. 어느새 85%까지 치솟은 피로도와 그 아래에 적혀 있는 세부사항의 내용을.

-해가 밝음과 동시에 각성스킬, 일야몽에 의한 영향에서 벗어났습니다.

‘아, 아침……. 그래, 아침이 되어서…….’

스테이터스 창을 확인함과 동시에 공선자는 이해할 수 있었다. 어째서 자신에게 적용되던 감정제어가 해제된 것인지.

……그래, 확실히 기억에 있었다. 일야몽의 습득 영향. 심상이 2개면 밤과 낮의 인격이 바뀌고 심상이 융합되어 하나가 된다면 습득자의 정신에 모종의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그런데 설마하니 그 ‘모종의 영향’이라는 녀석이 심상이 2개일 때 낮과 밤에 따라 인격이 바뀔 때처럼 낮과 밤에 따라 적용되고 안 되고자 결정되는 형태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공선자는 당연히 일야몽의 영향인 만큼 지속적으로 감정 제어가 영향을 끼칠 것이라 상상하고 있었기 때문.

하지만 아니었다. 감정제어는 오로지 ‘밤에만 적용’되며 아침이 되는 순간 공선자는 그 영향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마치 심상이 두 개일 때 밤과 낮에 따라 인격이 바뀌는 것처럼 공선자는 밤과 낮에 따라 감정이 제어되는 것으로 이중인격처럼 같은 사람이지만 다른 사람처럼 보이는 변화를 일으키게 되는 것.

생각해보면 공선자는 이쪽 세계에 떨어진 직후에 감정 제어를 받지 않았다. 그때 당시에도 공선자는 일야몽이라고는 스킬을 가지고 있었을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선자가 감정 제어의 영향을 받기 시작한 것은 다름 아닌 모험가 길드의 길드장이 준비해둔 여관에서 피로를 풀기 위해 수면을 취하고 난 뒤였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일야몽은 낮에는 영향을 주지 않고 밤에만 영향을 준다. 그러니 막 이쪽 세계에 떨어졌을 때에는 영향이 없었다. 낮이었으니까.

하지만 몇 시간 동안 잠을 자는 사이에 밤이 됨과 동시에 일야몽의 감정 제어가 공선자에게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던 것.

그리고 다시금 날이 밝으며 일야몽의 영향력이 사라졌다. 그 결과 공선자는 다시금 겁쟁이 공선자로 되돌아오게 된 것.

‘여, 여명을 보며 심장이 뛰기 시작했던 건 감정 제어의 영향력이 사라지며 내 감정이 되돌아오기 시작했기 때문이었어!’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공선자는 자신의 정신이 멍해지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이었다. 이러면 안 됐다.

공선자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버릴 수 있다면 그를 겁쟁이로 만드는 감정을 버려야만 했다. 당장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 감정에 의한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죽을 뻔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설마하니 밤에는 감정이 사라지고 아침에는 돌아오는 방식이었다니! 이렇게 된다면 밤의 공선자가 세웠던 앞으로의 계획들이 뒤틀릴 수밖에 없었다.

그야 아침의 공선자는 자신이 밤에 세웠던 기억조차 제대로 떠올리기 힘들 정도로 이성이 감정에 휘둘리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이, 일단 도시로 돌아가자. 돌아가서……, 바, 밤이 될 때까지 기다리자.’

스스로 무엇인가를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무서웠으니까. 자신의 선택에 따른 책임을 지는 것이 무서웠으니까.

그렇기에 공포에 잠식된 이성은 아침 동안에 무엇인가를 한다기보다는 일단 살아남아 밤이 오는 것을 기다리기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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