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18화 〉제 01계-챕터 02: 의도치 않은 인연 (118/194)



〈 118화 〉제 01계-챕터 02: 의도치 않은 인연

감정에 휘둘리는 자신이 아닌, 냉철하기 그지없는 자신에게 모든 것을 떠넘겨버렸다. 정말이지 아이러니하기 그지없는 상황.

아침의 공선자나 밤의 공선자나 결국은 같은 공선자였다. 결코, 다른 인격이 아니었다. 그저 어느 쪽이 더 냉정할 수 있는가의 차이.

허나, 그 차이가 지금과 같이 같은 자신에게 일을 미루게 만드는 판단을 만들었다. 정말이지 아이러니하다는 말 외에 어떤 표현을 사용해야 하겠는가?

그렇기에 공선자는 일단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고 자리에서 일어나 도시로 돌아가기 위해서 길을 따라 걷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쌈닭을 사냥할 때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냥했다. 거기에 사냥하는 쌈닭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더욱 쌈닭의 사냥에 익숙해져 점점 더 한 마리의 쌈닭을 사냥할 때 소모되는 체력의 양이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1마리의 쌈닭을 사냥하기 위해서 공선자는 대부분의 체력을 소모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발이 무거웠다. 여기에 피로도까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구쳐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설마하니 고작해야 감정이 제어되고 제어되지 않고의 차이로 이 정도까지 정신력의 차이가 발생할 줄은 몰랐다.

당장이라도 바닥의 드러눕고 싶어지는 것을 어떻게든 이 장소는 위험하다는, 그렇기에 살고 싶으면 도시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존 본능으로 견뎌내며 공선자는 꾸역꾸역 걸음을 옮기는 것이었다.

한걸음, 한걸음 옮길 때마다 몸이 점점 더 천근만근으로 무거워지는 기분이었다. 마치 길을 걸어나갈 때마다 쇠사슬이 바닥에서 치솟아 그대로 공선자의 전신을 구속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전신이 무거워질 때마다 뇌리에 자신의 목소리가 속삭였다. 이렇게까지 해서 살아갈 필요가 있을까?

너는 이미 충분히 괴로워했잖아? 이만 죽어서 편해지는 게 낫지 않을까? 애초에 왜 이렇게 꾸역꾸역 살려고 발악을 하는 건데?

살고 싶어서 사는 것도 아니잖아? 오히려 죽으려고 했는데 빌어먹게도 억지로 되살려졌을 뿐이잖아? 그러니까 이만 포기하자.

포기하고 죽자. 그럼 편하다. 더 이상 이렇게 괴로워할 일도, 겁쟁이인 자기 자신 때문에 자괴감을 느낄 일도, 죽기 직전의 공포에 의사와 다르게 몸이 덜덜 떨릴 일도 없을 것이다.

여기서 죽으면 편해질 수 있다. 애초에 자신은 살아서 무엇을 할 생각인가? 자유를 되찾는다?

이 목숨 자체 이미 위대한 존재니 하는 녀석이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되살린 모르모트나 다를 게 없는 목숨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오히려 지구에 있을 때보다 상황이 안 좋았다. 지구에 있을 때는 적어도 세계를 멸망시키면 자유를 되찾지는 못해도 자신을 속박하던 이들을 물귀신처럼 끌고 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라도 있었다.

허나, 에볼루션 시스템을 만들고 죽은 자마저 되살릴 수 있는 위대한 존재라는 존재는? 공선자가 뭔 지랄을 해도 동귀어진을 할 수 있을만한 상대가 아닌 것이다.

애초에 상대의 얼굴조차 볼 수 없을 확률이 높았다. 그런 존재를 상대로 자유를 되찾는다고? 웃기지 마라. 그게 가능할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러니 여기서 그냥 죽자. 죽으면 편해질 수 있다. 그런 생각이 계속해서 뇌리를 맴돌았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선자는 죽을 수 없었다.

……포기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뇌리에서는 계속 포기하자는 사고가 맴돈다. 허나, 그 이상으로 한 가지 광경이 끝도 없이 공선자의 정신을 자극해오고 있기도 하였다.

자신이 반신이 눈앞에서 자신을 대신하여 희생했던 그 광경. 자신의 품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 그의 모든 것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던 자신의 모습.

……그래, 죽고 싶었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을 수 없었다. 자신의 목숨의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자신을 위해서 모든 것을 바쳐서 희생한 자신의 반신, 자신의 유일한 형제, 그 형제의 희생을 무의미하게 만들 수는 없었다.

이것은 부채감, 겁쟁이라고 해도 짊어지고 가는 게 무섭다고 해도 결코 버리고 갈 수 없는 공선자 자신의 만의 책임.

그러니 움직였다. 정신에 짊어진, 자신의 목숨을 생각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목숨을 위해 희생한 반신에 대한 부채감이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몸과 정신을 채찍질하며 어떻게든 그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그저 뇌리에 조금만 더를 외치며 걷고 걸었다. 올 때는 10분이 조금 넘게 걸렸던 길이 돌아갈 때는 1시간은 더 걸은 것처럼 느껴졌다.

그럼에도 그는 포기할 수 없었다. 애초에 포기라는 선택지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를 악물며 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눈앞이 어지러워지는 것을 참으며, 전신의 탈력 되어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것을 참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노력이 빛을 발한 것일까? 공선자는 한없이 느려졌던 시간 속에서 간신히, 정말로 간신히 도시 소나타로 돌아올 수 있었다.

“정지, 지나갈 거라면 자신의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물건을 제시하도록. ……이봐? 야! 어딜 보고 있는 거야?!”

허나, 소나타에 도착했다고 해서 공선자가 곧바로 도시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어느새 중천에 뜬 해가 어둠을 완전히 몰아내고 쨍쨍하게 빛을 내뿜고 있는 시간대. 그렇기에 밤과 달리 거대한 도시의 성문이 열린 채로 도시를 드나드는 사람들을 들이거나 내보내고 있었다.

다행히도 아직 막 새벽이 지난 시간대여서 그런지 어지간히 부지런히 움직이는 사람들이 아닌 이상은 이 시간대에 활동하는 사람들은 드문 편.

그렇기에 성문을 통과하기 위해서 모여 있는 사람들의 숫자도 적었다. 때문에 그렇게 긴 시간을 기다리지 않고 성문의 앞에 설 수 있었던 공선자.

허나, 도시의 성문은 그냥 통과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니었다. 당장 공선자는 2번 그 사실을 경험한 상태였고 말이다.

그런 이유로 당연하게도 성문에서 검문을 실시하고 있던 경비병으로 보이는 이들이 공선자를 멈춰 세웠는데 당장 아무 데나 드러눕고 싶은 공선자는 당연하게도 경비병들의 말에 제대로 반응을 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경비병으로 보이는 사내들은 성문을 검문하던 경험이 풍부했던 것인지 자기들 멋대로 현재의 공선자의 상태를 판단하고 대응해 나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흐음? 기다려 봐. 이 녀석 완전히 눈빛이 맛이 갔는데? 거기에 차림새도 상당히 지저분하고 말이지. 아마 사냥이나 의뢰를, 혹은 소규모 던전의 탐사를 끝내고 돌아오던 모험가 같은데 가끔씩 이런 녀석들이 있어. 모험가 활동하다가 조금 정신적으로 충격받을 일을 겪은 녀석들이 말이야. 그러니까 그렇게 화를 낼 필요는 없어. 오히려 이런 녀석들은 꽥꽥 소리 지르면 더 반응을 못 하니까 시간이 걸려도 차분하게 이야기하는 게 답이야.”

“그런 거냐? 하긴, 차림새를 보니까 딱 새내기 모험가 같은데 오늘 처음 몬스터라도 마주한 건가? 그러면 이럴 수도 있지. 솔직히 나도 처음에 몬스터라는 족속들을 마주했을 때는 오금이 다 저리더라. 그걸 뭐라고 하더라? 살기?”

어질어질한 정신으로는 경비병들이 뭐라고 말하는 것인지조차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허나, 어떻게든 필사적으로 돌아가지 않는 사고회로를 돌려본 공선자는 저들이 무엇은 원하는 것인지 억지로라도 떠올릴 수 있었다.

‘그, 그래……. 증명패……. 증명패를 제시해야 하는데…….’

성문을 지나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신분을 증명해야 한다. 해가 밝으며 교대를 한 것인지 밤에 공선자를 내보내 준 사람들과는 다른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공선자 자신의 신분을 증명하기 위해서 모험가 증명패를 제시할 필요가 있는 것.

그 사실을 간신히 떠올린 공선자는 경비병으로 보이는 이들이 뭐라 이야기하든 신경 쓰지 않고 현기증이 심한 정신으로 옷에 달린 주머니 속에 손을 넣는 것이었다.

“그래, 몬스터라는 녀석들은 아무리 약한 몬스터라고 해도 마나에 살의를 담는 살기를 사용할 줄 아니깐 말이지. 새내기 모험가들은 어지간히 정신력이 강하지 않거나 마나로 대응할 줄 모르는 상태로 몬스터랑 처음 마주하면 대부분이 전부 저런 느낌이라는 거지. 하지만 저런 상태로 잘도 살아 돌아왔네.”

“……응? 잠깐만, 이 녀석 증명패를 꺼냈는데? 눈은 풀린 주제에 완전히 정신줄을 놓고 있는 건 아니라는 건가?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 이러니까 살아 돌아올 수 있었겠지. 어디 한 번 보여줘 봐.”

경비병들이 자기들끼리 뭐라 떠들든 신경 쓰지 않고 일단 주머니에 손을 넣어 증명패를 꺼내는 척하며 인벤토리에서 증명패를 꺼내 드는 공선자.

적어도 아무리 정신이 안드로메다로 가출 중인 상황이라고 해도 다른 사람들의 눈앞에서 인벤토리를 공개한다는 바보짓은 하지 않을 정도의 정신은 남아있는 상태였나 보다.

그렇게 경비병으로 보이는 남자들이 자기들끼리 떠드는 사이에 자신의 증명패를 꺼내 들어 제시하자 눈앞의 사내들도 뒤늦게 공선자가 꺼내 든 증명패를 받아든 뒤에 요리조리 살펴보는 것이었다.

“스프라우트 등급의 모험가였다. 역시 새내기였군. 하긴, 장비 수준도 그렇게 좋아 보이지는 않았으니깐 말이지. 오늘이 처음으로 몬스터라 싸워본 날이었나 보네?”

“빨리 들여보내 주자고. 지치고 힘들었을 테니깐 말이지. 돌아가서 씻고 푹 쉴 수 있도록 해줘야지.”

정말이지, 검문의 베테랑이라는 것인지 잘도 현재 공선자의 상태를 유추해내는 그들이었다.

실제로 그들이 이야기한 것처럼 공선자가 정신줄을 놓고 있는 이유는 ‘맨정신’으로 처음으로 몬스터의 살기라는 것과 마주했기 때문이기는 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덕분에 배려를 받을 수 있었던 공선자는 그저 다시금 자신의 증명패를 넘겨받으며 자신이 배려받았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 채로 앞으로 7일, 아니, 하루가 지났으니 6일 동안 머물 수 있는 여관을 찾아 걸어가는 것이었다.

“들었냐? 어젯밤에 건달들끼리 제대로 패싸움이 터졌다는 모양이던데? 아주 난리가 났다고 하더라.”

“그 녀석들이 지들끼리 영역 다툼하며 치고받고 싸운 게 어디 하루 이틀이냐? 정말이지. 치안수호대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배짱도 그런 똥배짱이 없어요.”

“아니, 그게 말이지. 어제는 조금 달랐다는 모양이야. 그렇지 않으면 그렇게 소문이 났을 리가 없지. 그냥 어디에나 있는 사건으로 묻혔을 거야.”

“확실히 그렇겠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데? 평소랑 뭐가 달랐으니까 자네가 그렇게 입이 근질근질거린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것 아닌가?”

주변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잡음들. 누군가는 서로 시시콜콜한 소문에 대한 대화를 주고받고 어떤 이들은 아침 일찍부터 장사를 시작하여 호객 행위를 하고 있었다.

밤에는 볼 수 없었던, 활기 넘치는 아침의 풍경. 허나, 공선자는 그 속에서 그들의 일원 중 하나로 섞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혼자만 마치 다른 세상에 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본래 공선자가 이쪽 세계의 사람이 아닌 것도 한몫했지만 무엇보다 지금 그의 정신이 주변을 도저히 신경 쓸 수 있을 정도의 정신 상태가 아니라는 게 가장 주된 이유.

그렇기에 평소라면 정보를 모으기 위해서라도 열어두었을 귀가 닫혀 있었다. 그러니 그저 홀로 주변과 동떨어져 있는 것 같다고 느끼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닌 것.

‘……도착했다.’

그처럼 혼자서만 완전히 별개에 세계에 있는 것 같은 기분에 휩싸여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몸을 이끌고 꾸역꾸역 걸어가던 공선자는 마침내 목표로 했던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름 아닌 자신이 머물고 있는 여관에 말이다. 모험가 길드의 길드장인 준비해준, 일주일, 앞으로 6일 동안 머물 수 있는 숙소.

그 장소에 도착한 공선자는 순간적으로 맥이 탁 풀리는 것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도착한 것이다. 자신이 안전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에.

“흠? 손님인가? 아니, 그 얼굴을 기억에 있군. 어제 단체로 몰려온 이들 중 한 명……, 어?”

그러니 여관의 문을 열고 도착하는 그 순간 그대로 천천히 몸이 앞으로 쓰러지기 시작했다고 해야 이상할 게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쓰러지는 공선자는 여관의 카운터에 앉아 있던 남자가 목격하고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는 일도 당연했다.

그야 갑자기 여관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그대로 기절하는 사람을 보게 된다면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겠지.

공선자는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며 그대로 천천히 무의식의 바닥으로 가라앉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어어어어?! 가, 갑자기 왜 정신을 잃는 건가?! 기, 기다려 보게?! 죽은 건 아니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