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2화 〉제 01계-챕터 02: 의도치 않은 인연
거기에 쌈닭을 사냥하며 틈틈이 에볼루션 시스템에 대해서 파악을 하려고 시도했던 밤의 공선자 덕분에 아침의 공선자 역시 이럴 때에 사용하기 적당한 시스템을 하나 알고 있는 것.
‘스, 슬롯 원, 셋 다운.’
다름 아닌 장비 셋 시스템. 공선자가 평범하게 생각했던 게임 속의 장비 시스템하고는 요모조모 다른 느낌의 시스템이었다.
일단 게임의 장비 시스템과 다르게 에볼루션 시스템은 현실에 적용되는 시스템인 것. 때문에 게임처럼 착용할 수 있는 장비가 신체 부위마다 한정되어 있는 게 아니었다.
착용하려면 어떤 장비든 얼마든지 착용할 수 있는 것. 허나, 이것은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게임이 아닌 현실이기에 갖게 되는 장단점.
일단 장점은 말했다시피 얼마든지 장비를 착용할 수 있다는 것. 게임처럼 반지 슬롯이 2개이기에 손가락은 10개인데 반지는 2개밖에 못 낀다, 라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려고 한다면 10개, 아니, 손가락 하나당 1개씩, 10개를 넘어 손가락 하나당 2개씩, 20개도 낄 수 있는 게 현실인 것.
그리고 특별한 힘을 지닌 장비는 착용하는 것만으로도 착용자의 강력한 힘이 되어주는 법이었다.
허나, 분명히 현실이기에 갖는 단점도 존재했다. 정점과 비교하자면 극히 미미하지만 일단 첫 번째로 ‘직접’ 착용을 해야 한다는 점.
게임에서는 그냥 아이템 창에 장비를 가져가면 저절로 착용 되지만 여기는 현실. 당연하게도 직접 스스로 장비를 착용해야 했다.
전투 전이라면 모를까 전투가 진행되는 도중 전투에 맞춰서 장비를 교체해야 할 경우에는 어지간히도 귀찮은 일이 된다는 것.
반지나 휘두르고 있던 무기를 바꾸어 끼는 것은 그렇다고 치다. 하지만 입고 있던 갑빠(갑옷)를 바꾸어야 한다면?
예를 들어서 상대가 전기 계열의 공격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에 맞춰서 전기 계열에 내성이 붙는 갑옷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착용하고 있지는 않고 있다. 지금 내가 착용하고 있는 건 화염 계열에 내성을 주는 갑빠인 것.
그렇다고 전투 중에 낑낑거리면서 갑옷을 갈아입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냥 몸으로 때우면서 싸울 수밖에.
허나, 여기서 게임이라면 살짝 이야기가 달라질 것이다. 게임마다 케바케(케이스 바이 케이스)이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게임을 일단 전투 중이 아니라고 판단된다면 장비를 교체할 수 있을 터.
말했던 것처럼 그냥 장비를 장비 창에 대충 드래그해버리는 것으로 말이다. 현실이라면 전투에서 퇴각한다고 해도 쉽게 갑옷을 갈아입을 수는 없을 것이다.
허나, 게임은 경우에 따라서는 전투 중에도 장비를 갈아 끼울 수 있는 것. 무슨 변신 합체 로봇 마냥 말이다.
이것은 현실의 단점이라기보다는 현실의 ‘한계’라고 말하는 게 좋을 터였다. 여기에 더불어 게임의 경우 대부분 장비 템은 귀속된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적어도 전투 중에 적한테 빼앗기거나 어디 튕겨 나가서 사용하지 못할 일은 없다는 이야기.
하지만 현실은? 현실은 시궁창이었다. 들고 있던 무기도 적한테 탈취당할 수 있으며 때로는 전투 과정에서 어디 찾아보기도 힘든 장소 저 멀리 무기가 튕겨져 날아갈 수도 있었다.
게임이 아닌 현실이기에 발생하는 단점. 장비가 사용자한테 귀속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에볼루션 시스템에는 이 시궁창이나 다름없는 현실을 커버해줄 시스템이 존재했으니, 그것이 다름 아닌 장비 셋 시스템!
“어? 뭐야? 방금 전까지 입고 있던 거 기초 장비 셋트지? 갑자기 어디로 사라진 거야? 인벤토리에 수납한 거? 신체에 접촉하고 있으면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어떻게 동시에?”
그 장비 셋 시스템을 이용해서 공선자는 일단 입고 있던 경갑을 한꺼번에 인벤토리에 보관해버리는 것이었다.
그 과정을 지켜보고 있던 프로아는 물론 다른 두 소년 소녀도 놀란 것인지 눈을 화등잔만하게 뜨는 것이었다.
이것은 말했다시피 에볼루션 시스템을 지닌 챌린저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장비 셋 기능의 효과였다.
허나, 세 사람의 반응을 보아하니 아직 그들은 장비 셋 기능을 시험해보지 않은 모양. 공선자도 기초 장비 셋트를 지급받는 것으로 전투 장비가 생긴 뒤에나 잠깐 살펴본 것이니 어쩌면 당연했다.
방금 전의 그들의 대화를 들어보건대 그들은 아직 모험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하지 않은 상태인 것 같았으니 말이다.
그러니 아직 기초 장비 셋트를 지급받지 않았고 그것은 장비가 없다는 이야기. 그런 이유로 장비 셋 시스템을 자세히 살펴보지 않을 수도 있는 것.
……단지, 그런 것치고는 일단 기초 장비 셋트에 대해서는 알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에 걸렸지만 지금의 공선자로서는 그 이유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그렇기에 일단은 생각하던 것을 멈추고 의아해하는 그들에게 장비 셋 시스템에 대해서 설명해주는 것이었다.
어차피 도움말 시스템을 이용해 장비 셋 시스템에 대해서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으니 숨길 이유가 없는 정보인 것.
“그……, 장비 셋 시스템을 이용하면 슬롯에 저장해둔 장비를 순식간에 인벤토리에서 넣다가 빼는 식으로 착용하는 게 가, 가능해요.”
공선자의 설명에 세 사람이 너도 나도 허공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역시 그들도 챌린저였다.
자신과 같은 장소에서 기억을 잃고 있었다는 사실은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혹시나 했었다.
하지만 자신처럼 허공의 시스템 창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니 더 이상 의심의 여지도 없는 것.
아마 공선자가 스테이터스 창 같은 시스템 창을 확인할 때도 저것과 비슷한 모습을 터였다. 그런데 이렇게 제3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보니 어지간히 이상한 모습인 것.
그야 방금 전까지 대화를 하던 사람이 갑자기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허공에 막 손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허공에 손짓을 하는 것은 보다 편하게 시스템 창을 조작하기 위해서일 테지만 그저 허공을 바라보기만 해도 이상한데 손짓까지 하고 있으니 더 이상한 사람으로 보일 수밖에.
물론 같은 챌린저인 공선자도 사돈 남 말 할 때가 아니기는 했지만 말이다. 아니, 오히려 여기저기 먼지에 피가 묻어 있는 공선자의 행색이 더 이상했다!
“장비 셋이라는 시스템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장비가 없어서 신경 쓰지 않았는데 이런 시스템이었구나……. 써먹으려면 역시 뭐가 되었든지 장비가 있어야겠는데?”
“기초 장비는 일단 각자의 포지션은 정한 다음에 받는다고 하지 않았나? 지금은 일단 이런 시스템도 있다는 사실만 알아두도록 하지.”
“장비 창이 아니라 장비 셋 창. 게임 같으면서도 묘하게 현실에 맞춰서 시스템이 정립된 것 같음. 흐음……. 미묘한 느낌.”
장비 셋 시스템이란 레벨마다 늘어나는 슬롯에 현재 자신이 착용하고 있는 장비들의 ‘구성’을 저장해둘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구성을 저장해둔 장비들이 인벤토리에 보관되어 있을 경우 특정 명령어를 통해서 곧바로 착용할 수 있었다.
그래, 마치 애니메이션에서 나오는 변신 히어로나 마법 소녀들의 전투복처럼! 거기에 착용 해제 명령어를 사용하면 지금의 공선자처럼 저장해둔 구성에 속하는 장비들‘만’ 곧바로 해제하여 인벤토리에 수납하는 게 가능한 것!
이 기능을 통해서 앞서 이야기한 게임이 아닌 현실이기에 발생하는 단점 2개를 장비 셋 시스템이 커버해줄 수 있었다.
당장은 1개뿐이지만 레벨이 올라 슬롯이 늘어나면 슬롯마다 구성을 저장해놓고 여러 장비들을 전투 도중에도 바꾸어가며 사용할 수 있었다.
거기에 구성이 저장된 장비를 설령 손에서 놓쳐버린다고 해도 슬롯을 해제하는 것으로 다시 인벤토리로 돌아오는 것!
설명을 들어보면 다른 차원이 아닌 이상은 구성이 저장된 장비를 어디에 있든지 간에 인벤토리에 다시금 수납된다는 모양이었다.
이를 통해서 놓쳐버린 장비를 수거할 수 있었다. 단지, 전투에서 사용할 경우 약간의 부작용이 있다는 게 문제.
요컨대 슬롯을 통해서 해제하면 놓쳐버린 무기뿐 아니라 모든 장비가 죄다 인벤토리에 회수된다는 것. 하지만 곧바로 다시 착용하면 문제는 되지 않을 터였다!
그런 기능을 가진 시스템이 바로 장비 셋 시스템이었다. 그리고 공선자는 일단 그 장비 셋 시스템의 슬롯 1에 자신의 단검과 가죽 경갑옷을 저장해둔 것.
여하튼 그렇게 각자 공선자가 설명해준 장비 셋 시스템을 살펴보며 각자의 의견을 내보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발언 중에 공선자가 무시하기 힘든 발언이 몇 가지 섞여 있었다.
“어……, 저, 저기……. 포, 포지션은 정한다는 게 무슨 의미죠? 거, 거기에 그쪽 분은 게임에 대해서 알고 계시네요?”
“응, 자세히는 모르지만 대충은 알고 있음. 그래서 이 에볼루션 시스템 보고 처음에는 가상현실이니 하는 오버테크놀로지 게임에 들어온 줄 알았음. 현실이었지만. 그런데 그쪽도 게임을 알고 있음? 같은 세계 출신인 듯? 아니, 그런데 같은 세계 출신인 것 같은데 게임에 대해서 모르던 사람들도 있던데……?”
오히려 쿠루미 쪽이 공선자가 게임에 대해서 알고 있다는 게 신기하다는 것처럼 물어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알고 싶은 건 공선자였다. 그야 기억을 잃지 않아 게임에 대해서 모르고 있다고 해도 기억을 잃은 쿠루미는 아니지 않은가? 서, 설마 나 같은 경우인가?! 하고 순간 당황하던 공선자였지만 그럴 리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야 공선자처럼 인격이 두 개인 사람이 바닥에 돌 굴러다니듯이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하물며 50명밖에 안 되는 챌린저들 사이에 그런 사람이 더 있을 리가 없었다.
물론 다른 방식으로 기억을 보존한 것일 수도 있었지만……, 공선자는 그보다는 우습게도 그냥 쿠루미가 게임 관련 지식도 그녀가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지식이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고 있었기에 기억을 잃지 않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귀찮아서 굳이 나서서 확인하지는 않았는데 분위기를 보면 챌린저들 중에서 게임에 대한 개념을 가진 사람은 나 혼자 같았음. 그런데 그쪽도 알고 있음. 뭔가 공통점이 있는 것 같은데 어쩌면 그게 잃어버린 기억을 찾는 ‘또 다른 단서’가 될 수도 있음. 그러니 어떻게 알고 있는 건지 알려줬으면 좋겠음!”
“에? 저, 저기……, 그게…….”
방금 전까지의 어딘가 늘어지던 분위기와 다르게 조금 활발하게 공선자에게 다가오며 묻는 쿠루미의 질문에 공선자는 진심으로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것이었다.
대답을 돌려주려고 해도 공선자는 그냥 기억을 잃지 않은 것이었다. 허나, 아무리 제대로 된 사고가 힘든 상태라고 해도 자신의 특이성을 그냥 이야기할 정도로 멍청해진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 뭐라고 대답해줘야 할지 알 수 없어 그가 당황하고 있을 때 그런 쿠루미의 어깨를 붙잡으며 프로아가 그녀를 말리는 것이었다.
“기다려 봐. 게임이라는 게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중요한 요소는 아니잖아? 그런 거 몰라도 도움말 시스템 사용하면 에볼루션 시스템은 전부 파악할 수 있고. 그러니까 이제 막 깨어나서 정신없을 애를 그렇게 몰아붙이지 마.”
“으음. 안 어울리게 조금 들뜬 듯. 실수했음.”
프로아가 말려주는 것으로 쿠루미는 진정한 모양이었다. 단지, 공선자로서는 게임에 대해서 문제없다는 말은 수긍하기 힘들었지만 말이다
그야 에볼루션 시스템이 게임 시스템을 기반으로 두고 있는 만큼 게임 자체에 대한 이해도가 높으면 앞으로의 자신의 성장 방향을 잡는 것에 큰 도움이 될 테니 말이다.
물론 도움말 시스템이 있으니 그렇게 큰 차이는 발생하지 않겠지만 유비무환이라고 알고 있으면 좋지 않겠는가?
“그보다는 포지션에 대한 이야기부터 하지. 우리뿐만 아니라 그쪽도 딱히 무관계한 이야기는 아닐 테니깐 말이야. 아니, 보아하니 네 녀석, 소속된 ‘파티’나 ‘레기온’은 없는 모양인데 이번 기회에 우리들과 파티를 짜보는 건 어떠냐?”
프로아가 쿠루미를 말리고 있을 때 이번에는 밀리언 쪽에서 공선자로서는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을 꺼내오는 것이었다.
그에 공선자가 밀리언이 뭘 이야기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어, 멀뚱멀뚱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우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자 프로아가 한숨을 내쉬는 것이었다.
“아니, 그러니까 이제 막 깨어나서 정신없을 애한테 그렇게 다짜고짜 말을 꺼내는 건 그만두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