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1화 〉제 01계-챕터 02: 의도치 않은 인연
아침의 공선자는 극복이고 나발이고 그런 거 생각할 정신도 없었고 말이다. 까놓고 말해서 자신이 당한 것이 살기라는 현상인 것은 알겠다.
허나, 애초에 그 살기라는 게 어떤 방식으로 자신을 공포에 집어 삼켜지게 만든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그저 그런 것이 있다, 라는 수준의 지식만 있는데 무슨 수로 대응책을 이야기해줄 수 있겠는가?
지금의 공선자가 이야기해줄 수 있는 것은 그저 한 가지였다. 살기를 받게 되면 어마어마한 공포심이 감정의 수면 위로 떠오른다는 사실 하나.
감정이란 것은 주관적인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 공포심이라는 게 어느 수준일지는 공선자라고 해도 섣불리 이야기해줄 수 없는 것. 기준점이라는 것을 세울 수 없었으니 말이다.
“제,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그저 정신력이 강해서 공포심을 이겨내야 극복할 수 있다……, 뭐, 이 정도 수준밖에 안 돼서…….”
공포라는 것이 감정인만큼 아예 극복이 불가능한 것은 아닐 터. 허나, 공선자 자신이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으니 네 사람에게는 뭐라 설명을 하기가 힘든 것이다.
“하아……, 그런 거야? 역시 일단은 부딪혀보는 수밖에 없으려나? 아니, 하지만 역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움직이는 건 엄청 위험할 것 같은데…….”
그렇기에 실제로 살기를 경험했다고 해도 그에 대해서 공선자가 눈앞의 네 명에게 설명해줄 수 있을만한 요소가 존재하지 않았다.
때문에 당연하게도 공선자에게 쌈닭의 살기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얻을 수 없었던 프로아의 표정을 좋지가 않았다.
이 살기라는 것에 대해서는 결국 스스로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는 것이 현재로서 내릴 수 있는 유일한 결론이었으니 말이다.
“핫! 살기니 뭐니 해도 결국에는 스프라우트 등급의 의뢰에서나 마주칠 법한 몬스터 아니야? 아무리 위험해 봤자 얼마나 위험하겠어? 그러니 일단 한 번 사냥해보자고!”
살기에 대한 대처법이라도 알고 움직이고 싶었기에 공선자에게 살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없었던 프로아는 전전긍긍했다.
그러나 그런 그녀와는 대조적으로 당장 살기라는 현상 자체는 부정하지 않지만 설령 그렇다고 해도 자신들이 꿀릴 것 없다는 어조로 이야기하는 고그.
지금 그의 발언은 허세라고 말할 수준은 아니었다. 그야 살기라는 현상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는 경험자인 공선자의 설명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그저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자신을 압박하는 무엇인가. 그 무엇인가 때문에 공선자는 제대로 싸울 생각조차 못하고 울며불며 도망을 쳤다고 하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공선자가 ‘살기’에 겁을 먹고 도망쳤다는 이야기. 즉, 다시 말해서 쌈닭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증명해도 ‘강하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라는 소리였다.
“흐음……. 이번만큼은 저 녀석의 이야기도 완전히 틀린 건 아니다. 스프라우트 등급은 분명히 막 모험가가 된 사람이라고 해도 홀로 어렵지 않게 클리어할 수 있는 의뢰였지? 그런 의뢰에서 만나는 몬스터가 그 ‘살기’라는 것만 어떻게 할 수 있으면 충분히 대처할 수 있는 수준의 몬스터일 터.”
이어진 밀리언의 주장 역시 틀린 것은 아니었다. 스프라우트 등급의 의뢰에서 만나는 몬스터.
까놓고 말해서 공선자 역시 쌈닭이 엄청나게 강하다! 라고 주장할 수는 없었으니 말이다.
아니, 아직 다른 몬스터를 만나본 적이 없으니 강하다, 약하다, 라고 구분 지을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일반인이 상대할 수준’은 된다고 이야기할 수는 있었다.
공선자만 해도 하룻밤 만에 21마리에 해당하는 쌈닭을 사냥하지 않았는가? 당장 기술은 둘째 치고 신체능력은 눈앞의 이들과 다를 게 없는 그가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확실히 쌈닭은 스프라우트 등급의 모험가라고 해도 잡으려고 하면 ‘잡을 수 있을 수준’의 몬스터라고 할 수 있을 터.
그러니 고그과 밀리언의 주장처럼 설령 살기라는 특이성이 있다고 해도 그렇게까지 겁을 먹을 필요는 없다, 라고 주장할 수도 있었다.
심지어 그들은 현재 최소 4명의 인원을 확보하고 있는 상태. 거기에 공선자를 파티에 영입하려고도 하고 있었다.
즉, 숫자의 폭력에 기댈 수도 있는 상태라는 소리였다. 그러니 더욱더 쌈닭을 얕본다, 는 수준은 아니라고 해도 크게 긴장하지 않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닐 터.
설령 살기라는 현상이 있다고 해도 고작 스프라우트 등급의 의뢰에서 마주칠 수 있는 몬스터, 거기에 이쪽은 최소 4명의 인원을 확보 중.
그러니 설마 죽기야 하겠는가? 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공선자 역시 밀리언과 고그가 어째서 저런 식으로 이야기한 것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었고 말이다.
“못해도 네 명, 그러니 다구리 치면 위험성이 저하된다는 이야기?”
쿠루미 역시 공선자와 마찬가지고 고그와 밀리언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깨닫고 살짝 눈을 가늘게 뜨며 되묻는 것이었고 말이다.
그에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는 밀리언. ……고그의 경우에는 알고 보니 딱히 그렇게까지 깊게 생각하고 내뱉은 이야기가 아니었던 것인지 ‘어? 으음? 그, 그게 그런가?’ 라는 살짝 어이가 없는 반응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 그건 즉……, 이, 일단 쌈닭을 한 번 사냥하러 가겠다는 이야기인가요?! 위, 위험해요!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다고요?!”
그리고 그런 그들의 모습에 공선자는 위기감을 느끼는 것이었다. 쌈닭을 직접 사냥해본 공선자는 알고 있었다.
그들에게 전해지도록 말로 설명하는 것은 힘들어도 알고 있는 것이었다. 확실히 쌈닭 자체는 성인 남성이라고 해도 방심만 하지 않으면 큰 부상 없이 잡을 수 있는 수준의 전투력만을 가지고 있었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쌈닭은 몬스터였다. 그래, 성인 남성, 경우에 따라서는 여성조차 대항할 수 있는 수준의 무력을 지니고 있음에도 몬스터.
그리고 공선자는 쌈닭이 어째서 몬스터라고 불리는 것인지 그 생명체가 직접 마주친 뒤에 깨달을 수 있었다.
그 살기를 느끼고, 절대적인 ‘적의’를, 아니, 적의에서 승화된 ‘살의’를 느끼고 몬스터가 어째서 몬스터라 불리는 것인지 그제야 실감하게 된 것.
그런 실감을 하게 된 공선자였기에 쌈닭의 전투력 이전에 몬스터와 싸운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것.
그것은 저항에서부터 시작하는 생사투였다. 본래라면 사냥감에 불과한 이들이 사냥감이 아닌, 대등한 적으로서 기어 올라가 서로 ‘목숨’을 걸고 싸우는 전투.
그래, 인간과 몬스터의 전투는 처음부터 적과 적의 싸움인 것이 아니었다. 사냥감과 사냥꾼, 그 입장을 뒤집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정신력.
그 사실을 공선자는 뼈저리게 느낀 것. 그렇기에 자신도 모르게 네 사람을 말리는 것이었다. 몬스터와의 전투는 단순히 서로의 전력만을 보는 전투가 아니었다.
본래라면 그저 사냥당할 뿐인 사냥감인 인간이, 그 천적인 몬스터에게 사냥감이 아닌 적으로서 인식되는 것을 시작으로 하는 생사투.
그렇기에 몬스터와의 전투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것은 다름 아닌 ‘정신력’인 것이다. 쌈닭에게서 살기라는 것을 제대로 받아본 공선자는 그렇게 단언할 수 있었다.
살기를 견뎌낼 모종의 수단이 있거나, 혹은 ‘정신력’이 강하지 않는 이상은 아무리 쌈닭보다 전력이 강하다고 해도 제대로 싸울 수 없을 것이라고 본능의 영역에서 판단을 내리고 있는 것.
“블러드의 이야기대로 위험하다는 건 나 역시 동감이야. 그렇기에 어떻게든지 지금 같은 상황에서도 파티의 인원수를 늘리려고 하는 거고, 또 할 수 있는 한 앞으로 모험가로서 활동하기 위해서 필요한 정보를 모으려고 하는 거니깐 말이야. 하지만…….”
공선자가 기겁을 하며 내뱉은 이야기에 프로아 역시 수긍을 했다. ……허나, 그렇다고 해도 그녀, 정확히는 네 사람에게는 어쩔 수 없는 사정이라는 게 있었다.
“……이 이상 우리들이 늘릴 수 있는 선택지가 거의 없다시피 하니깐 말이야. 뭐가 되었던지 결국 모험가로서 제대로 된 활동을 하려면 늦든 빠르든 몬스터를 사냥해야 하는 거잖아?”
그야 모험가로서의 활동 내용 대부분이 던전과 몬스터에 관련된 업무인 만큼 어쩔 수 없기는 했다.
즉, 아무리 공선자가 위험성을 어필해 봐도 늦든 빠르든 결국 네 사람은 그 위험에 몸을 던져야 하는 입장이라는 소리.
“당장 엄청나게 급한 것은 아니지만 기억도 되찾아야 하고, 더불어 앞으로 찾아올 멸망이라는 녀석도 막아야 하고 말이지. 결국, 뭐가 되었던 이대로 있을 수만은 없다는 거다.”
애초에 이 이상 그들이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없었다. 무슨 정보라도 있어야지 대책을 세우던 하는데 경험자인 공선자조차 살기가 그저 위험하다는 식으로밖에 이야기할 수 없으니 그들로서는 일단 한 번 경험해보자! 라는 선택지밖에 선택할 수 없는 것.
‘처, 천천히 몬스터와 관련될 일이 없는 의뢰를 중심으로 모험가로서 경험을 쌓도록 하자! ……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히, 힘들겠지?’
밀리언이 언급한 것처럼 그들은 공선자와 다르게 자신들의 과거를 잊고 있었다. 정확히는 잊혀 버렸다.
그렇기에 그 잃어버린 과거를 되찾기 위해서라도 결국에는 모험가로서 활동을 해 힘을 얻어 세계의 멸망을 막을 필요가 있는 것.
그러니 스프라우트 등급을 전전하며 그저 생활비를 벌어 이쪽 세계에서 평화롭게 살아가라고 하는 것은 무리인 것.
아니, 애초에 스프라우트 등급의 안전한 의뢰들은 당연하게 그 의뢰금이 적다. 그것만으로는 생계를 꾸려가는 게 힘들다는 소리.
거기에 설령 그게 가능해도 앞으로 빠른 시일 내에 세계가 멸망해버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느긋하고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이들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심지어 챌린저들은 자신들의 기억을 잃어버리기까지 했고, 멸망을 막으면 자신들의 과거를 되찾을 수 있다고 하는데?
즉, 챌린저들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결국 정해진 순수.
다시 말해서 늦든 빠르든 결국 몬스터들과 싸우는 위험천만한 세계에 말을 들이밀 수밖에 없었다.
그 사실을 네 사람은 이해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 껄렁한 고그마저도 결국 자신들이 몬스터와의 전투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
그렇기에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설령 위험하다고 해도 일단 경험해보자! 하는 생각에 공선자가 그 위험성을 어필해도 분위기가 우선은 한 번 쌈닭과 싸워보자! 라는 쪽으로 흘러가는 것.
“그러면 일단 쌈닭이랑 관련된 의뢰를 길드 회관에서 찾아봐야 할까? 사체를 팔아서 돈을 벌 수 있는 계열의 몬스터가 아니라면 토벌형 의뢰를 수주받아야 돈을 벌 수 있는 거잖아?”
“아니, 사냥 자체에 실패할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일단 우리들끼리 사냥이 가능한가를 파악한 뒤에 의뢰를 받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데 괜히 의뢰에 실패해서 페널티를 받고 싶지는 않군.”
“헹! 고작해야 덩치가 큰 닭을 잡을 뿐인데 실패할 것 같아?! 그럴 일 없고, 설령 그런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 어딘가의 누구 씨가 쫄아서 도망칠 경우겠지. 뭐, 그런 일이 벌어지면 이 내가 수습해줄 테니까 안심하라고.”
“……왜 그 말을 하면서 날 쳐다보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군.”
처음 프로아가 스프라우트 등급의 의뢰 게시판에서 언뜻 봤던 의뢰들을 떠올리며 입에 담은 말에 밀리언이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하자는 취지의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나 늘 그랬듯이 그 의견에 반발하는 의견을 꺼내는 고그. 거기에 어디까지나 조심할 뿐인 자신을 마치 쫄보라는 것처럼 이야기하니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이 날카로워지는 것도 당연했다.
그런 그들의 바라보며 주문했던 식사를 거의 다 먹어치운 공선자가 눈썹에 경련을 일으키며 생각하는 것이었다.
‘이, 이 사람들, 괜찮을까? 아니, 일단 숫자를 믿고 스프라우트 등급을 무시한 뒤 바로 1단계 위의 의뢰에 도전하는 것보다는 무모하지 않은데…….’
아니, 솔직히 무모하다고 이야기할 수준은 아니었다. 쌈닭은 확실히 성인 남성 수준의 무력을 지닌 사람 4명이라면 손쉽게 잡을 수 있을 정도의 무력만을 지녔으니까.
문제는 살기. 아무리 무력으로 압도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제대로 싸울 수 있을 경우의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허나, 그것은 다르게 말하자면 무력 수준만 보자면 그렇게 위험하지 않다는 뜻이기도 한 법. 그런 의미에서 확실히 네 사람은 무모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처지를 제대로 이해하고 일단 착실하게 가장 아랫등급인 스프라우트 등급의 토벌 의뢰부터 해 나아가려고 하니 말이다.
물론 이들이 평범한 모험가들이었다면 조금 무모하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었을 터. 그야 보통의 모험가들은 토벌 의뢰를 받기 전에 채집 의뢰나 혹은 잡무에 해당하는 의뢰를 하며 모험가로서 경험을 쌓아나갔으니 말이다.